1. 맑스 소외론(the theory of alienation)의 중요성
맑스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먼저, 맑스는 계급투쟁 이론, 착취 이론, 공산주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다음, 맑스는 헤겔의 관념론을 신봉하면서 소외 이론을 전개했던 인간주의자였다. 맑스는 현대성 아래에 놓여있는 인간의 조건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맑스는 이런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동안 맑스는 헤겔주의자로서는 잊혀져왔으나 1960년대 이후로 재발견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맑스의 한 쪽 면만을 봄으로써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맑스의 소외개념은 많은 문학작품들에 영향을 끼쳤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프란츠 카프카의 여러 작품들, 헨리크 입센의 연극 <페르 귄트Peer Gynt>는 소외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21세기의 사회이론은 맑스의 소외 이론 없이는 설명될 수 없을 정도이다. 재미있게도 맑스의 <파리원고Paris Manuscripts>는 1931년이 되어서야 최초로 출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소외 아이디어는 일찌기 회자되고 있었다. 게오르크 루카치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아르도노, 호크하이머, 마르쿠제 등은 맑스 소외론의 전문가들이었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 소외이론이 없이는 문화이론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소외론은 중요하다. 소외론이 없었다면 바우만Bauman도 콜라코프스키kolakowski도 없었을 것이다.
+ 헤겔의 소외론
헤겔은 관념론자였다. 헤겔에 따르면 인간 의식은 물질적 실존(material existence)에 선행한다. 이 아이디어 때문에 헤겔은 관념론자인 것이다. 헤겔이 얼마나 종교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디어는 종교적이거나 신학적인 명제가 아니다. 이 아이디어는 물질적 세계가 존재하기 전에 이미 절대정신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세계의 기원은 절대정신absolute spirit이고, 이 절대정신은 물질세계 속으로 실존한다는 것이다. 헤겔은 전 세계의 역사는 소외문제와 직결되고 주체와 객체 사이의 점진적 분리 문제로서 설명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맑스의 이론뿐만 아니라 현대 비판이론에서도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헤겔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절대정신(absolute spirit)이다. 절대정신은 단지 신(God)일 뿐만 아니라 관념(idea)이다. 절대정신은 총체(totality)로서 그 자체(in itself)안에서 주체이자 동시에 객체이다. 비판이론에서 말하는 절대정신이란 바로 이 총체이다. 따라서 절대정신을 찾았다는 의미는 주체와 객체의 통일(unity)을 말하는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주체와 객체는 서로 분리되었고 또한 의식이 없이는 물질세계가 존재하지 못한다. 결국, 의식은 절대의식에 도달한다. 왜냐하면 그 의식은 물질세계 속으로 투사되기 때문이다. 헤겔에 따르면 소외란 주체로부터 객체가 분리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의식은 인간의 주체와 객체가 서로 통합되기 시작할때 등장한다. 이를테면, 주체subject는 당신이고 객체object는 당신의 생활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신이 누군가와 상호작용하고 있다면 그는 당신의 객체, 즉 당신의 생활 조건(conditions of your life)이다. 예를들어, 당신이 방안에 있다고 치자. 이제 방은 객체, 즉 객관적 조건objective condition이 된다. 그리고 당신은 주체이면서 주체의 위치에서 반성reflet하게 된다. 당신은 자신의 의식을 더 세련되게 연마하면서 객체, 즉 생활의 조건을 정복하기 시작한다. 헤겔은 주체가 객관적 조건를 통어할 수 있게 될때 비로소 소외 문제가 극복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때 당신의 의식은 자신의 실존에 꼭 들어맞게 되고 당신은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될것이고 생활의 조건의 주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생활의 조건들은 더 이상 당신을 지배하지 못한다. 당신이 바로 생활의 조건의 주인이 되었기 띠문이다. 이것이 헤겔 소외론의 핵심 아이디어이다. 맑스는 이 헤겔의 아이디어를 따라갔다. 그러나 맑스는 헤겔의 절대정신 아이디어는 제거하였다. 맑스는 헤겔의 절대정신 아이디어는 너무 사변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맑스는 소외 문제를 결코 사유(thought)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따라서 맑스는 소외 문제를 보다 현실적으로 일상의 경험칙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였다. 당시 맑스는 불운하게도 현대사회(modernity)의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개념을 갖고있지 못했다. 심지어 맑스는 애매모호한 자신의 사소유권 개념을 이용하여 당시 현대modernity 산업도시생활을 이전의 농촌 공동체생활로부터 구별짓고 개념화하고자 시도하였다. 맑스는 이 현대성(modernity)을 진보(progress)라고 말하였다. 맑스는 이 현대성, 즉 진보에 대하여 사람들은 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 비싼 대가는 바로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말한다. 이전 농촌사회의 농부는 자신의 실존인 객관적인 조건objective condition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았다. 당시 농부는 자신의 객관적인 조건과 통일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그 농부는 토지에 묶여 있었다. 심지어 노예들도 스스로 실존의 객관적 조건으로부터 분리되어있지 않았다. 따라서 노예들은 거래의 대상으로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보다시피, 이전 사회에서는 어떤 주제도 객체로부터 분리되지 않았다. 맑스는 현대적 조건 아래에서 주체는 객체와 분리되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맑스의 독특한 아이디어이다. 이 아이디어는 혜겔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맑스의 소외 이론은 마침내 착취 이론으로 이어진다. 맑스는 청년기를 거쳐서 노년기를 맞이하였고 자신의 이론을 노련하게 다듬었다. 맑스의 포인트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타인의 강요로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소외된 것이라는 데 있다. 물론 당신이 스스로 선택하여 일을 하고있다면 때때로 그 일이 하기싫더라도 강제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당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당신은 자유를 갖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자신의 객관적 조건을 통어할 수 없다면 당신은 소외인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 자유롭고 자신의 선택으로 일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당신은 강요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맑스의 포인트이다. 당신은 자유롭고 타인들과 평등하다고 느끼지만 당신은 정말로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당신은 스스로 창출한 객관적 조건 때문에 문제를 겪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자기개발(self-development)이 일work과 함께 동기화 되어있지 않다면 그것은 소외된 것이다.
2. 소외론에 대한 지성적 각성
밁스는 1843년과 1844년 두 해를 통해서 엄청난 지적 발전을 이루었다. 맑스는 1843년 여름, 비완성 원고인 <헤겔 법철학에 대한 비판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을 썼다. 맑스는 처음에 프랑스 혁명을 열렬히 옹호한 급진주의자였지만 점차 나이가 듦에 따라 보수적이 되어가면서 프랑스 혁명의 결과들에 대하여 걱정하였다. 맑스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 관하여 회의적이었다. 왜냐하면 혁명 후 프랑스 사회는 두 계급(classes)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 두 계급이란 자본과 노동을 말한다. 그러나 맑스는 헤겔만큼 정확히 이것을 짚어내지는 못했다. 헤겔은 프랑스인들을 빗대어 말하기를 "도대체 누가 옳은지, 누가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라고 하였다. 당시 프랑스인들은 서로 싸웠다. 주인들과 일꾼들은 서로 대적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그들은 각각 서로 다른 특별한 이익을 내세웠던 것이다. 헤겔은 묻는다. 보편적 이익(universal interests)은 어디에 있는가. 공통선과 같은 보편적 정의가 있다면 자본과 노동을 통합할 수 있을 터이다. 그 공통선은 어디서 나오는가. 재미있게도 헤겔은 <법철학Philosophy of Right>에서 공통선은 정부, 즉 국가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헤겔은 국가가 보편적 이익을 대변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헤겔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은 현대 부르조와 사회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현대 부르조와 사회는 특수한 계급들을 창조하였다. 특수한 계급들은 공통선으로서 보편적 인자가 필요하다. 이 보편적 인자는 바로 보편적 계급이다. 헤겔은 보편적 계급은 국가가 떠맡아야한다면서 국가공무원civil sevants은 공통선을 표상해야한다고 말하였다. 헤겔 자신은 죽기전에 분명히 <법철학>에서 보편적 계급은 공무원 조직이라고 밝혔다. 이 헤겔의 아이디어는 결코 어리석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헤겔은 여러 면에서 로크와 루소의 일반의지 아이디어와 맥을 같이한다. 정부는 때때로 일반의지를 시민들에게 알리면서 보편적 이익을 표현할 수 있다. 미국시민들은 때때로 연방정부가 그렇게 하기를 기대한다. 물론 연방정부는 우리의 그러한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시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을 보라. 누가 시민들에게 법을 준수하도록 강제하고 누가 사회의 각 조직들을 통어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름아닌 연방정부이다. 바비 케네디Bobby Kennedy는 남부의 각 주(Southern States)에 내려가서 그들에게 법을 따르도록 권고하였다. 우리 시민들은 정부가 보편적 이익을 표출할 것을 기대한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맑스는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맑스는 헤겔은 너무 나이브한 정부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맑스는 정부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비-편파적(non-partial)이지 않다고 하였다. 이를테면, 정부는 가난한 자들보다 부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사실, 워싱턴 D.C에는 많은 로비스트들이 있다. 그 로비스트들은 대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여러 활동을 한다. 로비스트들은 특히 입법부에 많은 입김을 불어넣는다. 건강보험 법률안을 생각해 보라. 당신은 그 법안을 위하여 상원의원을 방문하거나 이 메일 또는 편지를 보내어 무언가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거대한 제약회사들은 상원의원들에게 막대한 로비자금을 써가면서 특정 법률안이 통과되도록 강요한다. 로비스트들은 상원의원들을 압박하면서 다음선거에 낙선할 수 있다고 위협한다. 물론 당신은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정부는 개인보다는 대기업에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할 것이다. 따라서 맑스가 말했듯이, 어떻게 정부가 보편적 계급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맑스가 헤겔에 반박한 포인트이다. 국가는 보편적이지 않다. 다만, 정부는 보편을 가장했을 뿐이다. 맑스는 국가는 보편적인 체하지만 그러한 정당성은 진정한 보편이 아니라고 하였고 또한 공무원도 보편적 계급이 아니라고 하였다. 때때로 매우 부패한 공무원들을 볼 수 있다. 미국은 안 그렇지만 어떤 나라의 공무원들은 부정부패가 매우 심하다. 그들은 무료좌석이나 개인 항공기를 제안받으면 기꺼이 접수한다. 그 공무원은 그것을 제공한 사장에게 무언가를 보답한다. 모든 공무원이 다 순수한 것은 아니다. 공무원은 언제라도 부폐할 수 있다. 따라서 공무원은 그렇게 보편적인 계급이 아니다. 모든 공무원이 다 천사인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도, 맑스는 보편적 참정권이 도입된다면 우리는 보편적 선거를 통하여 보편적 대표를 선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잘 알다시피, 맑스는 옳아 보이지 않는다. 현재 우리는 모두 동등한 한 표를 가지고 있지만 동등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맑스는 1843년 여름까지 여전히 그렇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부르조와 리버럴이었다.
+ 청년 맑스의 지적 발전
맑스가 원고 <헤겔 법철학에 대한 비판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을 폐기하게 되는데는 세가지 중요한 단계가 있다. 맑스는 헤겔로부터 떠나면서 자신의 고유한 지성적, 정치적 계획을 급진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맑스는 <유대인 문제On the Jewish Question>에서 헤겔을 옳다고 지지하면서 보편적인 것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사회는 특정한 이익(particularistic interest)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싸우도록 방관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어떤면에서 존 스튜어트 밀과 아담 스미스의 공리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다. 맑스는 개인이 자기-이익을 추구하면서 서로 싸우는 것으로 보편선에 이르게 된다는 아이디어는 마땅하지 않다고 보았다. 맑스에 따르면 보편선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보편선은 특정한 이익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맑스는 <헤겔 법철학에 대한 비판The 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의 전문에서 '우리는 보편적 해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누가 보편적 해방을 인류에게 가져다 줄 것인가.' 라고 물었다. 맑스는 인류의 보편적 해방을 수행할 인자(agent)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맑스는 그 전문에서 그것을 수행할 인자는 분명히 프롤레타리아라고 밝혔다. 이제 맑스는 정말로 잘못된 길로 들어섰는가. 실제로 맑스는 이것을 계기로 프롤레타리가 우리들을 해방시키고 선한 사회로 인도할 것이라는 밑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사실, 맑스는 이후 자신의 나머지 인생을 깊은 코너로 몰고가게 되었다. 바판가들은 맑스의 해방 이론은 쓸데없는 소리라고 폄훼하면서 철학자들도 인류를 해방시키지 못했는데, 어떻게 어리석은 노동자들인 프롤레타리아가 인류를 해방시키겠는가라면서 맹비난하였다. 비판가들은 소외 의식을 갖고있는 노동자들이 완전히 비소외적인(unalienated)세계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해방이론 아이디어는 무식의 소치라고 보았다. 맑스는 <파리 원고Paris Manuscripts>에서 자신의 소외 이론을 구체화하였다. 맑스는 소외를 경제적인 상품생산(commodity production)과 연계하면서 현대사회에서 가장 완벽하게 소외된 자들은 오직 노동자들 뿐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노동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들의 소외를 극복하자 시도할 것이라고 하였다. 맑스는 분명 노동자 계급이 인류의 해방을 가져오리라는 아이디어를 갖고있었다. 물론 맑스는 <파리원고>을 발간하지 않았다. 비록 맑스는 이 책을 써놓긴 하였지만 누구도 자기의 이론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맑스는 아무리 소리높여 노동자계급의 소외를 울부짖더라도 어느 한 노동자도 바리케이트 앞에서 목숨을 내던질 것이라고 믿지않았다. 맑스는 사실, 노동자들은 소외에 관하여 관심조차 없으므로 차라리 왜 노동자계급이 난동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 나으리라고 믿었다. 여기까지가 청년맑스의 아이디어였다. 한편 성년 맑스는 애덤 스미스와 리카아도, 그리고 정치경제학을 접하면서 착취 이론을 전개해 갈 것이다.
3. <유대인 문제On the Jewish Question>, 보편적 해방.
브루노 바우어는 반-유대주의(anti-Semitism)의 기원에 대한 글을 썼다. 바우어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반-유대주의를 갖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바우어는 어떤 국가든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세우면 모두 반-유대주의적이 된다고 말하였다. 바우어에 따르면 반-유대주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교회를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해방으로 인하여 반-유대주의는 반드시 철폐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댜. 재미있게도, 맑스는 바우어를 비판하면서 미국의 예를 들었다. 맑스는 미국은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유대주의가 적지 않다고 말하였다. 미국은 19세기 뿐만아니라 1920년대와 1930년대에도 반-유대주의가 만연하였다. 사회학자 제레미 카라벨Jeremy Karabel은 1920년대 대학 입학정책에 대한 책을 쓰면서 예일Yale대학을 포함한 아이비비그Ivy League 대학들은 입학쿼터제를 통하여 미국 내의 유대인 인구와 연동하여 유대인의 입학을 제한하였다고 말하였다. 믿든지 말든지 그것은 공식적인 정책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시행되었었다. 따라서 국가가 교회로부터 분리되었더라도 국가가 비세속적인 경우에는 반-유대주의가 충분히 가능하다. 맑스는 인종주의(racism)는 어디서 나오는가라고 물었다. 맑스는 인종주의는 시민사회(civil society)에서 나온다고 답하였다. 당시 맑스는 자본주의 개념을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하였다. 맑스는 인종주의는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뿌리박고 있다고 하면서 반-유대주의는 다름아닌 시민사회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일부 사람들이 유대인들로부터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반-아프리카계 아메리칸니즘(anti-African Americanism)이 생기는 이유는 일부 미국인들이 미국 내 아프리카인들의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종주의가 발생하는 이유이다. 시민사회의 문제들은 고쳐쳐야 한다. 문제는 바로 시민사회에 있는 것이지 국가에 있는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보편적 해방(universal emancipation)이 필요하겠다. 이것이 <유대인 문제On the Jewish Quesestion>의 포인트이다.
4. <헤겔 법철학에 대한 비판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의 전문
여기에는 아주 대단한 것들이 있다. <헤겔 법철학에 대한 비판>은 사회과학서라기 보다는 강한 어조의 시라고 보는 편이 낫겠다. 맑스는 우리의 현재 상황를 단지 관조(contemplation)하기만 하는 포이에르바하를 넘어서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인간은 현실 속에서 자기-탈존(self-estrangement)의 신성한 형상이 드러나기를 기대하면서 살아간다. 포이에르 바하에 따르면 인간은 신을 창조하였댜. 그리고 인간은 신을 창조하면서 소외의 길로 들어섰다고 강조하였다. 재미있게도 맑스는 인간 존재의 자기-탈존은 소외( alienation)라고 해석해버렸다. 맑스는 이 소외는 세속적인 형태(unholy form), 즉 매일 매일 일상의 경제활동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고 밀하였다. 이것이 맑스의 포인트이다. 더 나아가서 맑스는 청년 헤겔파들을 공격하면서 '비판적인 비판가가 되어라(Be a critical critic)' 라고 일갈하였다. 당시 청년 헤겔파들은 주로 자신들이 신봉하는 헤겔의 이론을 비판하였다. 맑스는 이것은 옳은 비판이 아니라고 하였다. 맑스는 매우 논란이 되면서도 매우 아름다운 문장으로 반박하기를 "비판론의 무기는 비판을 무기로 삼는 것이 아니다(The weapons of criticism cannot be replace the criticism by weapons)." 라고 하였다. 이것은 단지 사유로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미였다. 비판 위에서 행동으로 옮기고 무언가를 해야하는 것이지 단지 이야기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맑스는 다시 아름다운 문장으로 말하기를, "이론은 대중을 사로잡는 순간 물질적 힘이 된다(Theory becomes a material force as soon as it has gripped the masses)." 고 하였다. 이론은 광고ad hominem 하자마자 대중을 사로잡을 만한 준비된 힘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맑스의 포인트이다. 맑스에 따르면 좋은 이론이란 자신을 해방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이론이고 좋은 이론의 본질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이다. 이를테먼, "아하, 그랬구나(It did me)" 라는 말이 절로 나오면 좋은 이론이다. 물론 좋은 이론은 사람들에게 알리고ad hominem 당면한 문제를 지적할 때만 가능하다. 사람들이 이론에 무지하고 또 그 이론은 사람들과 무관하다면 그 이론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서 이론이 지루하다면 그 이론은 나쁜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이론은 사람들을 놀라게(fascinated) 할 필요가 있겠다. 이론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사람들이 스스로 생활을 바꿀 정도로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 이론은 어떤 대중에 충격을 주어야 하는가. 이론은 어떤 청중을 포착해야 하는가. 맑스는 근로자 계급(working class)이 물질적인 토대(material base)로서 이론과 아이디어를 장착하였을 때 비로소 혁명적 변화를 이끌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노동자 계급을 얼마나 호의적으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맑스는 노동자들을 물질적 토대의 수동적 요소(passive element)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프롤레타리아이다. 맑스는 왜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면 아니 되는가에 답하면서 '그들은 쇠사슬을 뻬고는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였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는 보편적 본성을 갖고 있으므로 그들은 보편적 계급이라고 말하였다. 당시 1843년의 상황에서 그 발언은 진리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대사회의 노동계급은 쇠사슬 이외에도 잃어버릴 것이 너무 많이 있다. 확실히 2009년의 시점에서 볼때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노동계급은 쇠사슬 이외에도 잃어벌릴 것이 너무 많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멋진 교외의 주택이 될 수 있고 자가용 두 대가 될 수도 있으며 주식시장의 연금펀드(pension fund)가 될 수도 있다. 아주 평범한 노동자조차도 어제의 다우존스를 확인하면서 오늘을 준비한다. 그러나 맑스의 시대에서는 그것이 옳았다. 맑스는 그것으로 시대의 문제를 풀고자 하였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는 당연히 보편적 계급이 되어야 했다. 맑스는 <파리 원고Paris manuscripts>에서 가장 소외된 것은 프롤레타리아라고 강조하였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를 논리적으로 소외 이론과 연계하였지만 소외 문제를 노동계층에 한정하고 말았다. 따라서 맑스가 소외 이론을 공장의 산업생산 노동자에 한정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했던 것은 흠결(damage)이 아닐 수 없겠다. 맑스 소외론의 메세지는 현대 생활의 일반적인 불편한 경험들에 확장하여 해석할 수는 없는가. 이것이 20세기 초 소외론의 큰 틀(frame)이었다. 우리는 고향상실(homelessness)로 인하여 상실감(homeless mind)속에서 세계를 방황하고 있다. 이것이 맑스가 포착하고자 했던 소외이다. 불운하게도 맑스는 소외 문제를 노동자들에만 한정하였다. 분명 맑스는 정치적인 계획 속에서 혁명적인 계급을 창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게도 맑스는 이러한 계획을 포기하였다. 그 후 맑스는 역사적 유물론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5. 역사적 유물론
맑스는 역사적 유물론을 전개하면서 두 단계를 이용하였다. 첫 단계는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변증법(dialectics)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포이에르바하는 기계론적 유물론자(mechanical materialist)였다.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에 동력(dynamics)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맑스가 말하는 동력이란 역사적으로 특화된 물질적 힘(historically specified material force)이다.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German ideology>에서 이 역사적으로 특화된 힘으로서 이론을 전개하였다. 또 맑스는 새로운 유물론적 접근법을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Theses on Feuerbach>에서 시도하였다. 이것은 열 한 개의 테제로 되어있고 매우 짧다.
1. 구 유물론은 반성적이다.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은 매우 반성적(reflective)이라고 반박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에서 주체는 객체에서 분리된 채로, 객체를 주체의 밖에서 반성하는 데 그친다고 하였다. 또한 주체는 자기의 활동만을 지배하므로 객체적 조건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단지 주관적 조건들만을 반성한다고 비난하였다.
2. 새 유물론의 진리는 실천적인 것(practical question)이다.
맑스는 새 유물론의 진리는 실천적(practical)인 것이라고 말하였다. 맑스의 새 유물론에 따르면 인간은 실습(practice)을 통하여 주체와 객체를 통합하게된다. 이를테면 당신은 객관적인 생활조건들을 변화시켜 나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수동적 인자(passive agent)와 초결정론(over-determination)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사실, 맑스는 결정론자로서 알려져있는데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맑스의 철학은 프락시스praxis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맑스 유물론의 키 포인트는 프락시스Praxis, 즉 실천적 활동(practical activity)이다.
3.인간은 환경을 변화시켜 나간다.
우리는 각자 특정한 조건에서 태어났지만 그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그 조건들을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홀로 행동할 수는 없다. 맑스는 우리는 협력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4. 우리는 대중이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5. 헤겔은 추상적 사유로부터 출발하였다. 반면에 포이에르바하는 감각(sensuous)과 관조(contemplative)로부터 출발하였다.
이들과는 다르계, 맑스는 감각과 실천적 활동(sensuous and practical activity), 즉 사회적 활동으로부터 출발한다.
6. 구 유물론은 개인을 강조하였다. 반면에 신 유물론은 집단적 사회관계(social relation)을 강조하였다.
맑스는 개인보다는 관계(relational)를 강조한다.
7. 종교 또한 사회 생산물이다.
8. 사회 생활은 실습적(practical) 이다.
9.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이 관조(contemplation)한다.
10. 새 유물론은 인간을 사회화 시킨다.
맑스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함께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집단행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11. 철학자들은 이제까지 세계를 해석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논란이 되어온 것이다. 그리고 분명 잘못 되었다. 좋은 이론은 단지 기술하는 것 뿐만아니라 인생에 대한 행동 지침 또한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맑스 아이디어의 포인트이다.
+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요점
-테제 1.구유물론은 반성적이다.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비롯한 구 유물론을 비판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구 유물론은 지나치게 관조를 강조한다. 구 유물론에서 인간은 관조를 통하여 대상(Gegenstand), 실재(reality), 감각성(sensuousness)을 객체 형상으로서 표상한다. 맑스는 이러한 유물론은 인간의 감각적 활동, 즉 실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비난하였다. 사실, 우리는 관조로서 객체를 감각한다. 그러나 감각성(sensuousness) 자체는 인간행위로써 지각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질료(stuff)를 감각할 뿐이고 그 질료를 위하여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맑스는 감각적 활동(sensuous activity)의 실행을 강조한다.
-테제 2. 새 유물론에서 진리는 실천적인 것(practical question)이다.
객관적 진리는 인간 사유로부터 나올 수 있는가. 맑스는 진리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적인 문제이다. 이-세계성(worldliness)의 진리는 실천in practice을 통하여 증명되어야 한다. 진리는 단지 관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여기 맛있는 푸딩이 있다. 진리는 단지 그것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데 있다. 맑시스트 철학자이자 무솔리니에 의하여 옥사했던 안토니오 그람시는 맑시즘을 프락시스Praxis 철학이라고 불렀다. 맑시즘의 핵심(essence)은 진리는 주체가 자신의 객체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사이의 상호작용이다. 따라서 주체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객체를 변화시켜 나간다. 이것이 안토니오 그람시의 포인트이다. 맑스는 우리의 가능한 활동영역 밖의 객관적인 조건들을 가리켜, 실증주의(positivism)라고 불렀다. 맑시즘은 단지 실증주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맑시즘은 단순히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감옥에서 <옥중 수기The Prison Notebooks>를 쓰면서 맑시즘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그람시는 간수가 맑시즘이란 용어를 발견하면 자신을 억압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옥중 수기>는 그의 생전에 감옥 밖으로 밀반출 되었다. 그람시는 맑시즘(Marxism)이란 용어 대신에 프락시스 철학(Philosophy of Praxis)을 사용하였다. 물론 그 파시스트 간수는 프락시스Praxis 철학이 무엇인지 몰랐다. 따라서 간수들은 그가 맑시즘에 관한 책을 쓰는지 몰랐다. 어쨌든 그람시는 맑시즘의 포인트를 잘 짚었다.
-테제 3. 인간은 환경을 바꾼다.
맑스에 따르면 환경은 인간에 의하여 변화된다. 맑스는 아주 멋진 문장으로 '선생은 자기자신을 가르쳐야한다.' 고 말하였다. 교육자는 교육되지 않으면 안된다(The educator must be educated)는 것이다.
-테제 4. 우리는 대중이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맑스의 정치계획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언가를 얻기위해서 당신은 혼자서 행동할 수 없다. 당신은 누군가와 협력하여야 한다. 당신은 타인과 협력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테제 5. 추상적 사유, 관조, 그리고 프락시스Praxis
헤겔은 추상적 사유로부터 출발하였다. 반면에 유물론자인 포이에르바하는 감각을 통하여 실재를 포착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맑스는 포이에르바하를 반박하면서, 감각적인 실천적 행동(sensuous practical activity)을 통해서만 실재reality를 포착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맑스는 우리가 감각적이고 실천적이기를 기대한다. 맑스의 유물론은 20세기 최고 철학자인 유르겐 하버마스를 매료시켰다. 맑스가 생각한 인간의 본질은 감각하는 인간 행동 자체에 있었다. 맑스는 생애의 후반기에 환원주의자(reductionist)가 되었다. 왜냐하면 맑스는 인간의 감각적 활동을 경제적 활동으로 환원하였기 때문이었다. 맑스는 섹스를 포함한 모든 인간상호작용을 감각적 활동으로서 인식하였다. 따라서 맑스와 프로이트는 물질적 실재(material reality)개념과 관련하여 큰 차이는 없다.
-테제 6. 구 유물론은 개인을 강조한다. 반면에 새 유물론은 사회관계를 강조한다.
맑스는 현대사회의 문제는 고립된 부르조아 개인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이 고립된 부르조아 개인은 인간상호작용을 통하여 타인들과 결합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맑스는 공동체주의자(communitarian)였고 공산주의자(communist)였다 맑스는 개인이 고립되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맑스는 인간들이 상호작용하기를 원하였다.
-테제 7. 종교는 또한 사회 생산물이다.
-테제 8. 사회 생활은 실천적이다.
이것은 매우 명백한 사실이다.
-테제 9.사회에서 고립된 개인은 관조한다.
맑스에 따르면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항상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원자화된 개인들은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테제 10. 새 유물론은 사회화된 인간성을 창조한다.
구 유물론의 출발점은 시민사회와 고립된 부르조와 개인이었다. 반면에 새 유물론의 출발점은 인간사회(human society)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형제와 자매가 될 수 있고 연대(solidarity) 행동을 통하여 조화를 이룰 수 있다.
-테제 11. 세계 바꾸기.
이것는 매우 논란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점이 없지 않다. 맑스에 따르면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여러모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맑스는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라고 하였다. 어떤 면에서 이 명제는 초기의 아이디어, 즉 프락시스Praxis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프락시스 철학에서 말하는 진리는 실천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한 철학자가 어떤 개인의 인생을 변화시켰다면 그것으로 그 철학자의 소명은 충족되었다. 만약 당신이 어느 철학자의 책 또는 이론을 읽다가 잠들어 버렸다면, 아마도 그 이론이 잘못되었든지 아니면 그 철학자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철학자의 이론이 재미있다면 당신은 수면제를 먹어가면서 잠들어야 할 것이다. 그때 당신은 단지 세상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으로 넘쳐날지도 모르겠다.
6, 변증법(Dialectics)
맑스는 초기의 자연주의를 거쳐서 역사적 유물론으로 전향했다. 맑스의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는 유물론 보다는 실천적 행동(praxis action), 변화(change), 그리고 미완의 결정론에 관한 것이었다. 맑스는 유물론자, 결정론자, 특히 경제적 결정론자가 되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진실과 사연이 있었다. 맑스가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를 계기로 많은 갈등을 겪으면서 자연주의에서 유물론으로 전향하는 데는 프락시스praxis, 즉 인간실천(human practices)아이디어가 중심동력이 되었었다.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에서 그 아이디어를 밝혀다. 사실 그 내용은 변증법적이었댜. 맑스는 매우 드물게 '변증법적dialectical' 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맑스는 분명 '변증법dialectics과 '변증법적dialectical'의 의미를 구별하여 사용하였다. 맑스는 생애 후반기에 엥겔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기는 무엇인가를 혼동할때 그것을 '변증법적' 이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변증법적' 이란 두 현상사이의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설명은 너무 단순한 면이 없지 않다. 사실, '변증법적' 이란 용어는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사용되었다. 변증법 아이디어는 변화와 과정을 강조하였다. 한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는 변증법적 본질에 대하여 아주 시원하게 정의하였다. 그 철학자는 말하기를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You cannot step into same water twice)." 라고 하였다. 이를테면, 5분 후에 그 강물에 다시 발을 담글지라도 그 물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같은 강물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따라서 '변증법적' 이란 세계는 흐름(flux)속에 있고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변증법적' 인 것을 이해하는 포인트이다. 재미있게도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에서 우리는 세계를 단지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맑스는 '변증법적' 이었다. 따라서 당시 맑스는 유물론과 결정론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변증법(dialectics)이란 용어는 헤겔로부터 유래하였다. 사실, 맑스는 '변증법' 이란 용어를 꺼려하였다. 그러나 친구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변증법' 이란 용어를 애용하였다. 엥겔스는 심지어 '변증법적 유물론(dialectical materialism)'이란 용어도 조어하였다. 알다시피, 엥겔스는 역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구별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면 헤겔의 변증법이란 무엇인지 살펴보자. 헤겔은 세계의 변화 과정들을 포착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미 그리스철학의 변증법자들은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세계는 그림이 아니라 영화라고 강조했었다. 우리는 영화에서 매초마다 달라지는 영상들을 본다. 헤겔은 그러한 변화의 본질에 대하여 능란하게 파악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헤겔은 이 변화의 본질 속에서 숨어있는 대립을 발견하였다. 헤겔은 바로 이 대립이 변화를 이끌어 간다(Contradictions drive changes)고 말하였다. 헤겔은 정립, 반정립, 그리고 종합(thesis, antithesis, synthesis)을 명확히 구별하여 변증법을 기초하였다. 변증법은 일상 생활에서 변화를 포착한다. 변증법은 정립, 즉 실제적 조건에서 출발하여 반정립, 즉 그 조건의 부정에 이르고, 마지막으로 종합, 즉 부정의 부정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 초기 조건들은 결과적으로 재구성되어지는데 헤겔이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초기의 것과는 다르게 재구성되어진다. 헤겔은 그것을 '폐지함으로써 보존한다(preserving it by abolishing it)' 고 하였다. 맑스와 맑스 주의자들은 이러한 헤겔의 통찰력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변증법적'이겠다. 맑스는 '변증법적'으로 프락시스praxis 철학에서 결정론적인 실증주의 사회과학으로 전향했다. 실증주의는 실제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명백한 아이디어를 파악하고 제시하는 것이다. 오늘날 실증주의 사회과학은 종속변수와 독립변수를 규정하고 종속변수와 독립변수가 각각 작용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우고 실제와 비교하고 기술하는 학문이다. 이것이 성년 맑스가 몰입했던 포인트이다. 실제로 맑스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과학자(normal science)였다. 사실, 맑스는 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규정되지 못한 많은 차이점을 인식하면서 과학자가 되어갔다. 맑스는 자신을 사회과학계의 다윈으로 보고 싶어하였다. 맑스는 생애 후반기에 과학적인 추론(scientific reasoning)에 매료되었고 심지어 <자본론Das Kapital>을 찰스 다윈에게 봉헌하고자 하였다. 맑스는 자신이 인간역사를 위하여 연구한 것은 다윈이 종의 진화에 관하여 연구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맑스는 분명 인간사회의 진화에 기여하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운좋게도 맑스는 그것을 이루지 못하였고 사회다윈주이자(social Darwinist)가 되지도 못하였다.
7. 문제가 되는 두 가지 테제
+ 제 1테제: 구 유물론은 반성적이다.
맑스는 포이에르바하를 비롯한 이전의 유물론자들을 비판하였다. 구 유물론에 따르면 객체적 사물, 즉 대상은 주체의 밖에 놓여있다. 주체는 자신의 밖에 놓여있는 이 객체적 지식 또는 대상(gegenstand)을 마음의 반성작용을 통하여 포착하게 된다. 이것은 진리에 관한 매우 전형적인 이론이다. 이것은 오늘날 매우 광범위하게 알려진 이론이다. 지식은 언제 정확해지는가. 당신의 마음 거울이 객체의 영상(image of object), 즉 주체의 밖에 놓여있는 객관적 세계(objective world)를 정확히 반성할 때 오류없는 지식이 가능하다. 따라서 가장 완벽한 주체의 마음거울이 최대한 정밀하게 객관적 실재(objective reality)를 포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맑스는 이것을 반박하였다.맑스에 따르면 이것은 단순한 반성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이것을 너머서는 것이다. 맑스는 포이에르바하가 말하는 선(good)이란 몽테스키외의 선과 다를 바 없다고 하였다. 맑스는 홉스를 비롯한 유물론자들은 감각성sensuousness으로부터 출발하면서 인간의 본질을 생물학적 조건에서 찾았다고 하였다. 따라서 맑스는 구 유물론에서 말하는 실재란 감각을 통하여 포착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를테면, 우리는 냄새맡고, 만지고, 본다. 또 만지지는 못해도 볼 수 있거나 냄새 맡을 수 있는 것이 있다. 따라서 유물론자는 실제로 그것이 존재하는지 어떤지 의심하게된다. 이것이 바로 유물론자가 관념론자와 구별되는 포인트이다. 그러나 인간은 감각을 통하여 아이디어를 얻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마음을 통하여 아이디어를 얻기 때문이다. 밁스는 이러한 유물론은 감각적인 관조(in the sense of contemplation)에 기초한다고 비판하였다. 구 유물론에서 우리의 감각은 주체의 밖에 놓여있는 객체를 포착할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맑스는 새 유물론적 접근법을 제시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감각적인 인간활동(sensuous human activity)을 통하여 객체적 대상를 포착할 수 있다고 하였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맑스가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서 이렇게 주장한 것에 찬성하였다. 하버마스는 한때 유물론자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자신은 오로지 유물론자라고 고집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우리 인간은 감각적인 경험, 즉 감각을 통해서 궁극적인 실재(ultimate reality)를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버마스는 맑스를 평하면서, 맑스는 환원주의자(reductionist)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맑스는 감각적인 인간활동을 생산, 경제활동으로 환언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버마스는 맑스의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는 옳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모든 감각적 인간행동은 물질적(material)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멋지게도 하버마스는 인간의 감각적 행동은 생산과 경제에 한정될 수 없으므로 인간상호작용에까지 확장하자고 제안하였다. 따라서 하버마스는 칼 맑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서로 화해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하버마스의 주장은 맑스의 생산이나 프로이트의 성적 충동에 상반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당신의 성적 충동 또는 타인과의 성적 상호작용은 매우 감각적이다. 실제로 그것은 일하는 것보다 더 감각적이다. 맥도날드 가게에서 햄버거를 서빙하는 것은 감각적 활동이다. 그러나 타인과의 성적상호작용은 훨씬 더 한 감각적 행동이다. 이것이 하버마스의 포인트이다.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에서 감각적 인간활동을 공개하였지만 너무 애매모호하였고, 결국 출판을 거부하게 되는 이유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맑스는 자신의 이론이 더 정교해질필요을 느꼈고 드디어 대영도서관에서 아담스미스와 리카아도를 읽으면서 남은 생애를 보내게 된다. 이후 맑스는 자신의 유물론에서 감각적 인간활동(sensuous human activity)을 보다 현실적으로 구체화하면서 경제와 경제적 이익으로 환원하게 된다.
+ 제 2테제: 새 유물론의 진리는 실천적인 것이다.
이것은 진리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 진리란 무엇인가. 두 가지 유력한 진리 이론이 있다. 첫째, 대다수가 공유하는 진리 반성론(reflection theory of truth)이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은 거울이다. 각자의 마음이 더 멀리있는 객관적 실재를 반성하면 할수록 그 마음은 더욱더 진리와 지식으로 빛나게 된다. 그러나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에서 그것을 반박하였다. 맑스는 진리는 실천적인 문제(practical question)라고 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진리 반성론은 실증주의적(positivist)와 소외에 중점을 두고있다. 20세기 철학자 게오르크 루카치는 진리반성을 물화된 의식(reified consciousness)라고 불렀다. 물화Reified는 독일어로 verdinglichung을 말하는 것으로서 여기서 ding은 사물thing을 의미한다. 또 Reified에서 rei는 라틴어로서 사물thing을 의미한다. 물화(reification)란 아직 사물이 아닌것을 객관적 사물(objective thing)로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재미있게도 루카치는 맑스의 소외 개념(notion of alienation)을 재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물화(reification)는 독일어로 entfremdung인데 fremt는 alien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당신이 스스로 동떨어짐alien을 느끼면 그것은 소외alienated , 즉 고향상실homeless in the world한 것이다. 루카치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이 세계를 창조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객관적 세계의 주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객관적 세계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 개인은 소외되기 시작한다. 소외의 본질은 우리 각자는 자신을 세계의 주인으로 보지 못하고 오히혀 피지배자으로 본다는 데 있다. 이것이 루가치가 강조하는 소외의 본질이다. 루카치는 소외를 물화된 의식상태라고 하면서, 인간이 스스로 물화된 의식상태에서 객관적 실재를 보면 그는 그 현실에 대한 어떤 대처도 불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 잘알다시피, 청년 맑스의 프락시스praxis 철학은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를 통하여 끝났다. 프락시스praxis 철학의 포인트는 세계를 바꾸는 것이었다. 오늘날 이것은 실증주의라고 불린다. 실증주의자는 객관적인 사실이 저 밖에 있다고 가정하는 사회과학자이다. 실증주의자는 가장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객관적 사실들의 실체를 밝히기 위하여 사회적 조사(social investigation)를 실시한다. 경제학자들은 객관적 사실들을 기술한다. 사업자들은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사업계에서 도태되기 때문이다. 잘알다시피, 자기-이익 추구는 마치 자연의 힘처럼 파괴적이다. 게오르크 루카치는 멋지게 이것을 제 2의 자연(second nature)이라고 조어하였다. 루카치는 우리 인간이 사회생활에 몰입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자연의 힘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실제로, 여러 경제법칙들은 번개나 지진같은 자연현상처럼 매우 위력적이어서 우리는 어떤 대처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일을 예측할 수는 없다. 갑자기 허리케인이 온다면 우리는 차 안으로 들어가서 그곳을 탈출하여야 한다. 실증주의자들에 따르면 사회현상은 자연과 같은 위력적인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루카치가 사회를 제 2의 자연으로 보는 이유이다. 루카치는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우리들이고 우리들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제 2의 자연은 바람직한 개념이 아니라고 하였다. 루카치에 따르면 우리는 세계의 주인으로서 객관적 조건들(objective conditions)을 변화시키면서 소외을 극복하고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German Ideology>에서 "인간은 조건들을 바꾸어 나간다(change).''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 특정한 환경조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그 조건을 절대로 바꿀 수 없다거나, 어느 정도는 바꿀 수 있다는 것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이것은 홉스의 자발적 행동(voluntary action)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주체와 객체의 문제
주체와 객체의 문제는 맑스뿐만 아니라 비판이론과 20세기와 21세기의 반-실증주의(anti-positivism)에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예를들어, 문화이론(cultural theory)가들은 반-실증주의적이고 사회과학을 보통의 과학으로서 폄훼하기도 한다. 주체와 객체는 이를테면 주체는 당신이고 당신은 인지적으로 지식을 창출하는 인식활동(cognitive activity)을 한다. 객체는 당신이 인식활동을 통하여 창조한 지식내용이다. 진리반성론(reflection theory of truth)에 따르면 주체의 마음거울은 객체를 포착한다. 이 포착된 객체는 진리라고 말한다. 이 과정은 바로 가설에 대하여 입증하는 검증 테스트이다. 예를들어, 나는 한가지 가설을 세웠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그 가설을 사회현실에 비추어 보면서 검증 테스트를 한다. 가설이 현실과 들어맞는다면 그 가설은 입증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진리를 얻은 것이다. 한편 맑스의 프락시스praxis 철학에 따르면 진리는 단순히 반성이 아니다. 맑스의 진리실천론(practice theory of truth) 주체와 객체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아르도노(Adorno)라는 멋진 철학자가 있었다. 아르도노는 프랑크프루트학파 학자였고 주로1930년대 40년대 60년대에 활약하였다. 아르도노는 매우 강력한 진리 공식을 제안하면서 말하기를 "진리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힘-장이다."(the truth is force-field between subject and object)라고 하였다. 진리는 단지 주체가 객체를 반성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의 긴장(tension)사이에 놓여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정말 멋진 명제이다. 진리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힘-장(force-field)의 어딘가에 숨어있다. 그러면 아이디어는 언제 진리가 되는가. 아르도노는 나찌즘의 실재(reality)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면서 나찌 아이디어는 너무 잔인(miserable)해서 역사적 사실(true)이라고 부를만한 가치도 없다고 비난하였다. 사실, 아르도노는 유대인이었고 그의 가족들은 다수가 나찌에 의하여 희생되었다. 우리는 무시무시한 것을 보게되면 이것은 사실(true)일 수 없다고 말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아르도노가 주장하는 포인트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 비참하므로 그것이 사실일 수 없다고 말한다. 나찌 아이디어의 잔인성은 마치 자연의 힘처럼 강력하였으므로 사람들은 그 앞에서 완전히 무력해질 수 밖에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에 대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했다. 사람들은 아우슈비츠와 관련하여 무언가를 해야했지만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이것이 아르도노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였다. 아르도노는 이 실재는 사실이라고 불러서느 아니되고 진리일 수 없다고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칼 만하임(Karl Mannheim)의 진리이론을 짚고 너머가자. 만하임은 매우 보수적인 철학자로서 맑시즘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의 저작은 주로 영국에서 이루어졌다. 칼 만하임은 말하기를 "진리는 존재가 아니다The truth is not being. 진리는 생성이다The truth is becoming."라고 하였다. 정말 멋진 명제이다. 진리는 단지 사물이 어떻게 있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고또 그것에 관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 인식의 진정한 목적은 세계를 단지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계로 바꾸는 것이다. 진정한 진리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한 길을 알고있다. 따라서 진리는 존재가 아니라 생성이다. 이것이 칼 만하임의 포인트이다. 재미있게도 칼 만하임의 포인트는 프락시스praxis 철학과 일치한다. 맑스는 프락시스 철학을 기초로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를 썼지만 <독일 이데올로기German Ideology>에서는 프락시스 아이디어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맑스는 이 책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를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공동저술하였지만 내용이 너무 자의적(voluntaristic)이라고 판단하여 발간하지 않았다. 맑스는 이전에 <파리 원고Paris Manuscript>가 모호(fluffy)하다고 하여 출간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 맑스는 말하기를 "어느 누구도 소외된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정하면서 그 책의 발간을 포기하였다.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의 11개 테제가 모두 탁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중 몇 몇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맑스는 그 책을 완성하였지만 결코 출간하지 않았다. 맑스는 그 내용이 너무 자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맑스는 임박한 혁명과 자본주의 붕괴를 입증할만한 이론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맑스는 그 변화를 이끌 주체나 그 변화의 필요성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에 대한 이론을 정립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맑스는 결정론(deterministic)적 궤도위에 올라서게 되었다.그러나 실제로 맑스는 결정론적이 아니었다. 맑스는 분명 아이디어가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맑스는 대영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책과 씨름할 수 있었다. 결국 맑스는 결정론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가 완성한 책의 내용은 경제적 결정론을 향하고 있었다. 맑스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사회변화를 이끌면서 이전사회와 비교하여 대댠한 업적을 이루어냈지만 결국에는 영원히 존속할 수는 없다. 이것이 맑스가 이론화하고자 했던 포인트이다. 때문에 맑스는 결정론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맑스는 자신의 유물론을 전개하면서 물질적 조건들이 인간의 행동과 의식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German Ideology>에서 역사적 유물론을 전개하였다..
8. <독일 이데올로기German Ideology> 1845-46, 주요내용
맑스는 <독일 이데돌로기> 제 1권에서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 포함된 유물론적 내용들을 보완하면서 포이에르바하을 비판하였다. 맑스는 자신이 개발한 새 유물론, 즉 역사적 유물론을 전개하면서 '변증법적'인 것을 자제하였고, 역사와 역사 발전을 유물적으로 개념화 하였다. 재미있게도 맑스는 아담스미스가 정립한 수렵사회에서 시작하여 채집, 방목, 농업, 상업시회로 이어지는 역사유형을 새롭게 유형화 하였다. 맑스가 들고나온 새 유형typology은 생산방식(mode of production)이었다. 사실, 맑스는 이 <독일 이데올로기German ideology>에서 아담 스미스를 매우 친절하게 다루었다. 결국 이것을 기화로 맑스이론은 헛점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를 완성도 못하고 출간도 못하였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가 타계하고 난 후인 1903년 최초로 미완의 형태로 발간되었다. 먼저,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역사의 이데올로기느 어디에서 나오는가라고 물었다. 다음, 맑스는 생산력(productive forces)의 개념과 생산력의 발전 그리고 생산관계(relations of production)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재미있게도 당시 맑스는 생산관계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으므로 결국 <독일 이데올로기German Ideology>는 실패하게 되었던 것이다. 맑스는 청년헤겔파인 부르노 바우어와 막스 슈티너(Max Stirner)애 대하여도 서술하였다. <독일 이데올로기> 제 2권은 별로 재미가 없다. 따라서 맑스이론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독일 이데올로기German Ideology>의 포인트는 역사적 유물론과 생산양식(modes of production)을 구성하는 생산력(the force of production)과 생산관계(relations of production) 그리고 노동분업(division of labour)이다. 당시 맑스는 여전히 애덤 스미스의 아류였으므로 사회 진화를 노동분업의 진화로서 이해하였다. 맑스는 인간 사회와 역사를 전개하면서 인간의 양심과 의식을 사회적으로 조명하고자하였다.
+ 역사와 유물론materialism
맑스는 최초의 실증주의 사회과학자였다.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밝힌 내용들은 오늘날 실증주의적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심리학에서 무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자의적이거나 독단적인 전제들을 제외하면서 자신의 유물론을 다듬어갔다. 맑스는 방법론적으로 추상(abstraction)은 전제로부터 상상(imagination)으로 발현하게 됨으로 우리는 먼저 객관적 조건들을 조사(speculate)해야 한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맑스 이론의 출발점은 개인과 인간행동이었다. 맑스에 따르면 모든 인간 행동은 생산으로 이어지고, 생산에 의한 모든 생산물은 인간생활의 조건이 된다. 생활의 조건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들과 더불어 인간행동에 의하여 생산된 모든 것을 말한다. 맑스는 말하기를 "독일철학자들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지만 우리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간다." 고 하였다. 아이디어는 연역(deduction)이 아니라 귀납(deduction)을 통해서 나온다. 이것이 맑스의 포인트이다. 이것은 실증주의자들이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증주의자들은 귀납법이야말 진정한 과학이라고 말한다. 재미있게도 맑스는 아이디어(ideas)는 어떤 역사도 없고 어떤 발전도 없었다고 말하면서 인간은 물질적인 조건들을 발전시켜왔고 물질적인 조건들은 인간의 사유thought를 바꾸어 왔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물질적 실존(material existence)만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아이디어(ideas)는 다만 이 물질적 조건에서 반성된 것이다..
+생산양식(the mode of production)
맑스에 따르면 인간이 동물과 다를 수 있는 것은 의식과 종교 때문이다. 인간은 생산하고 또 목적에 따라서 환경environment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새롭게 변화되어질 환경에 대한 비전(image)을 갖고 있다. 이것이 맑스의 포인트이다. 그러나 맑스는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생산하는 생산물이 아니라 생산환경(양식)이라고 하였다. 생산양식(환경)은 생산자가 어떻게 생산하고 생산자들이 어떻게 서로 묶여있느냐와 관련되어있다. 사실 생산양식은 역사를 통하여 변화하면서 생산물을 창조하였다. 맑스의 생산양식 아이디어는 완전히 새롭고 놀라운 개념이었다. 맑스 이전의 박물관은 위대한 인물, 왕과 여왕, 장군, 교황의 초상화을 걸어놓고 그들의 역사를 기술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박물관은 로마시대의 왕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요리하고 어떻게 식사했는지 거실과 식기와 요리도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맑스로부터 연유한 혁명적 아이디어이다. 역사는 위대한 아이디어와 위대한 사람들의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지에 관한 아이디어이고 그 아이디어가 어떻게 생산되고 재생산되는지에 관한 아이디어이다.
+ 생산력, 생산관계, 그리고 노동분업
맑스는 생산력, 즉 기술개발과 더불어 내부 상호작용(internal intercourse), 즉 노동분업이 국가들 사이의 차별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이것은 매우 애덤 스미스적이다. 에밀 뒤르깽 또한 노동분업의 발전정도를 사회진화의 척도로 보았다.
+ 인간 역사
맑스에 따르면 역사는 생산양식의 차이에 따라서 기술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생산양식은 부족재산제(tribunal property)이다. 부족재산제는 기술technology이 매우 단순하고 노동분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남성과 여성의 자연적인 노동분업이 있었을 뿐이다. 남성은 사냥을 나갔고 여성은 숲에서 땔감을 모았다. 맑스는 이것을 자연적(natural)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것은 성차별주의(sexist)이다. 두번째 생산양식은 고대공동재산제(ancient communal or state property)이다. 고대공동재산제는 기술을 통한 생산력 발전으로 소유권(ownership)과 노동분업이 분리되므로써 사람들은 초과 생산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리스와 로마의 노예들은 밤낮 일하였고 철학자들은 여유롭게 아이디어를 구상하였다. 노예들은 주인을 위해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였고 주인은 먹고 즐길 수 있었다. 이것이 노동분업이다. 세번째 생산양식은 봉건재산제(feudal property)이다. 이전의 고대공동사회에서 노예들은 생산을 위해서 값싸게 이용되었다 그러나 고급 노예는 자신의 기술을 싼 값에 제공하려들지 않았다. 따라서 봉건재산제가 개발되었던 것이다. 봉건제산제에서 농노들(serfs)은 노예들을 대체하였다. 농노들은 집과 토지를 가질 수 있었다. 농노들은 일주일 중 며칠을 영주의 가택과 토지를 위하여 생산하였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재산을 위하여 생산할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그리스와 로마의 멸망 이후 샤를마뉴의 등장에 이어서 중세시대(Dark Middle Ages)에 도달하였을 때 노동분업의 발전은 더이상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놀랍게도, 11세기와 12세기의 노동분업은 1세기나 2세기의 노동분업 보다 진화하지 못하였다. 이제 맑스는 더이상 자신의 방법론을 들이밀 수 없게 되고말았다. 맑스는 깊은 수렁에 빠진 나머지 <독일 이데올로기>를 더아상 밀고나갈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맑스는 네번째 생산양식을 전개할 수 없었다.
+ 지식 사회학(sociology of knowledge)
맑스는 매우 중요한 제안을 하면서 말하기를 "생활이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Life determines consciousness, rather than the other way around." 라고 하였다. 또 맑스는 통찰력있게 말하기를 "지배계급은 모든 사람과 관련하여 지배아이디어를 결정한다Ruling class always determines ruling ideas of each people." 고 하였다. 이것은 분명 오류이다.
+ 생활이 의식을 결정한다
의식이 생활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명제는 유물론의 핵심이다. 맑스에 따르면 특별히 생산적인 개인(definitive individuals)은 특별한 사회적, 정치적 관계속으로 진입한다. 아이디어라는 것은 인간들이 물질적 행동들을 통한 상호작용으로 생산된다. 이것이 맑스의 포인트이다. 이를테면 "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말해보라. 나는 당신이 갖고있는 아이디어를 알 수 있겠다." 또 "당신이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는지 말해보라. 나는 당신이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있는지 알겠다." 재미있게도 아이디어의 계급적 속성은 투표행위에도 매우 대조적으로 존재한다. 보통 미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투표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 민주당은 노동계급의 표를 얻기 위하여 중산층의 눈치를 보면서 여러가지를 시도한다. 이것이 미국 민주당의 전통적인 약점이다. 반면에 오스트레일리아의 노동당은 탄탄한 노동계급의 표를 확보하고 있다. 당신의 계급적 위치를 말하라. 그러면 나는 다음선거에서 당신이어떻게 투표할지 알겠다. 미국 부자들은 공화당에 기우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맑스주의자들이 바라는 바이다. 당신의 물질적 관심을 말하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 프로이트는 말한다. " 당신의 성생활을 말하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 맑스 유물론의 포인트는 한마디로 '바로, 실존이 의식을 결정한다It is existence which determines consciousness.' 는 것이다. 당신은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에 자기이익your interests form your ideas을 추구한다.
+지배계급과 지배이념(idea)
지배계급이 지배이념을 생산한다는 것은 그렇게 옳은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수긍 못 할 것도 없겠다. 분명 세계에는 이념의 헤게모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원문번역,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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