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0일 토요일

11-4. 뒤르켐: 사회적 사실

1. 질문과 검토

+ 1. 권력power과 지배domination는 서로 명백히 다른 것인가

권력이란 자신의 의지를 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과할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 권력에는 분명히 억압coercion의 요소가 들어있다. 당신은 사람들을 억압하여 명령에 복종시킬 수 있다. 반면에, 지배란 제도적으로systemically 억압없이 명령에 복종시킬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재미있게도,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을 합법화legitiamte하기 위한 이유들을 이미 사람들 마음 속에 내부화internalize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당성legitimacy이란 무엇이었는가. 정당성이란 권력자와 복종자 사이의 관계가 합리적이라는 것을 정당화justify하는 주장이다. 여기까지는 매우 간단했다. 논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베버가 주장한 정당성의 개념이 문제가 되었다. 보통, 우리는 현대 민주적 이론에 따라서 대중의 동의에 의할때 그 시스템은 합법적legitimate 이라고 믿는다. 보편적 참정권universal suffrage을 생각해보라.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하여 지도자가 선출되고 그 지도자는 그 직위를 행사한다. 따라서 그 지도자의 권력은 합법적legitimate이 된다.  베버는 정당성의 개념을 폭넓게 이해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100년 전 당시 보편적 찹정권과 더불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인정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베버는 인간 역사의 24시간 중에 전체 24시간이 아니라 마지막 10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정당성을 개념화하고자 했던 것 같다. 베버의 정당성 개념은 매우 재미있다. 재미있게도, 베버에 따르면 사람들은 권력자의 정당성에 대하여 어느 정도 타당한 신념belief을 갖고있다. 그 개인적인 신념belief은 다소 수동적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권력자를 사랑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재미있게도, 그 권력자는 선출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간단히 '좀 더 낫은 대안alternative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자를 선출했던 것이다. 다른 지도자는 이 지도자보다 훨씬 더 나쁠 수 있다. 이 지도자는 비록 독재자이지만 합법적인 지도자이다. 사람들이 적어도 이러한 신념을 갖고 있는 한 권력자는 제도적으로 억압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권력자의 정당성은 합법적이겠다. 이것이 베버가 강조한 정당서의 포인트이다. 물론 이러한 정당성에는 억압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사람들이 법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분명 억압당할 것이다. 정당성에는 분명 억압의 요소가 있고 심지어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그렇다. 사람들은 법에 불복종하여 감옥에 들어가게 되거나 처형되기까지 한다. 따라서 정당성에는 억압의 요소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억압이 얼마나 제도적으로 지지되어야 하는가에 있다. 베버에 따르면 순수한 권력행사는 상대적으로 드물고 스스로 한계적rare and marginal 이라고 하였다. 예를들어, 히틀러의 마지막 2, 3년은 꽤 불법적illegitimate 이었다. 그때 히틀러는 엄청난 억압을 사용해야 했다. 스탈린이 지배하던 소비에트 연방은 불법적이었지만 그것은 스탈린이 지배하던 모든 기간에 해당하지는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스탈린은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갖추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천만명의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수 십만 또는 수 백만을 살해했을 때 그것은 분명 불법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것이 정당성의 찬반에 관한 논란이다.

+ 2. 전통적 지배와 법-합리적 지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전통적 지배에서, 당신은 인격적인 주인master을 갖는다. 반면에, 법-합리적 지배에서, 당신은 인격적 주인을 갖지 않으면서 법에 복종해야하고 권력자 또한 그 법에 똑같이 복종해야 한다. 당신은 전통적 지배에서는 오래된 관습age-old rules에 따라야 한다. 매우 재미있게도, 베버는 전통적 지배 요소를 현대사회의 여러 유형의 조직들에도 적용하였다. 따라서 현대사회는 많은 전통적 지배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 3. 베버는 왜 관료제가 효율적이라고 보았는가.

관료제는 정말 효율적인가. 베버는 왜 관료제가 효율적efficient 이라고 믿었는가. 다름아니라, 베버는 기술적인 이유technical terms 때문에 관료제가 효율적이라고 보았다. 베버에 따르면 관료제란 사람들이 경쟁competence을 통하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관료제는 법의 지배rule of law, 예상가능한 관료적 환경, 그리고 탄원의 위계hierarchy of appeals를 통하여 작동된다. 알다시피, 어떤 실수가 있었다면 탄원을 해야한다. 탄원은 관료제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관료제는 비효율적이다.. 베버는 관료제의 비효율성을 어느 정도 알고있었다. 베버에 따르면 관료제는 형식적 합리성formal rationality과 실질적 합리성substantial rationality 사이에서 고립될 수 있다. 베버는 관료제가 항상 효율적이라고 믿을 정도로 나이브하지는 않았다. 관료제는 순수하게 형식 합리적일 때만 효율적이다. 좋은 예로서 복지 관청이 있다. 복지 분야의 관료들은 관청과 민원인 사이의 관계를 후원자-고객patron-client관계로 세우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복지-의존welfare-dependency이라고 불린다. 물론 이것은 관료제의 비효율적인 면이다.

+ 4. "바락 오바마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이다.'' 베버는 이 말에 찬성할까 반대할까.

잘 알다시피,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위기때 나타난다. 그때 사람들은 변화를 바라게 된다. 바락 오바바는 선거 캠페인 동안 베버를 주의깊게 읽었던 같다. 왜냐하면 오바마는 어떻게 자신의 메세지를 카리스마적으로 프레임frame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 변화에 관한 것이었고 희망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나 존 맥케인John McCain과는 대조되는 것이었다. 클린턴과 멕케인은 경험이 많다고"we are experienced" 자신들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변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했던 것이 아니었다. 반면에, 바락 오바마는 카리스마적 호소를 하였고 이것은 성공을 거두었다. 많은 사람들은 오바마의 카리스마에 응답하였다. 그러나 바락 오바마는 반대자들에 의하여 록 스타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오바마를 보고 열정적으로 흥분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었다. 오바마는 그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무기가 있었다. 오바마는 카리스마적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법-합리적 지배제에서 운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최근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자신의 카리스마의 실재realities와 직면하게 되었다. 카리스마는 원래 예수나 모하메드같은 위대한 종교지도자나 예언가의 속성이었다. 원칙적으로 카리스마는 법-합리적 지배의 정치가들에게 적용될 수는 없겠다. 베버는 아마도 바락 오바마를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부르기에 불편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베버는 오바마가 갖고 있는 그런 카리스마적 특성들을 확실히 인정했을 것이다.

+ 5. 뒤르켐은 왜 사회를 분석하면서 법을 탐구했는가.

뒤르켐은 방법론적 집단주의자로서 사회의 집단 양심을 포착하고자 했기 때문에 법을 탐구하였다. 알다시피, 집단양심은 개인 의식들의 총합을 넘어서는more than the sum total of individual consciousness 의식이다. 또한 뒤르켐은 과학자로서 엄밀한 방법을 통하여, 이론의 전개를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 사실로부터 출발하였다. 따라서 뒤르켐은 모순contradiction에 빠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집단양심은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아이디어는 객관적으로 탐구될 수 있는가. 재미있게도, 법은 가장 객관적인 아이디어를 표상하고 있다. 법은 문자로 성문화되어 있다. 따라서 당신은 법을 객관적으로 탐구할 수 있다. 당신은 법을 연구하면서 개인의 의식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디. 뒤르켐이 자신의 이론의 출발점으로서 법을 탐구한 이유는 법은 엄밀하게 탐구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법은 사회적 사실로서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법이 어떠한 환경에서 생성되고come into being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물론 뒤르켐은 이러한 영감을 몽테스키외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방법론적 개인주의자일 수 있다. 특히 당신이 경제학을 전공했다면 방법론적 개인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주의rational individual actors를 산봉하면서 개인 이외의 것을 상정하는데에는 매우 회의적skeptical이 된다. 이것은 방법론적 개인주의자의 전형이다. 오늘날 사회과학의 지배적인 트렌드는 방법론적 개인주의화와 방법론적 집단주의에 대한 회의주의이다. 이것이 오늘날 사회분석을 위한 비판수단이다. 그러나 적어도 당신은 그것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당신은 왜 방법론적 집단주의가 실제로 더 합리적인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하겠다.

+ 6. 뒤르켐의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는 베버의 지배유형론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이것은 매우 간단하다. 뒤르켐과 베버는 서로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뒤르켐은 사회를 통합하는 인자를 연구하였다. 뒤르켐의 중심개념은 연대solidarity에 있었다. 반면에 베버는 사회를 분열시키는 사회갈등인자를 탐구하였다. 따라서 베버는 권력을 둘러싼 투쟁을 연구하였다. 베버는 계보lineage상 홉스와 니체의 뒤를 잇고 있다고 보겠다. 베버의 아이디어는 그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물론 뒤르켐과 베버는 서로 유사한 면도 있다. 뒤르켐의 유기적 연대는 베버의 법-합리적 지배에 해당한다. 유기적 연대와 법-합리적 지배는 모두 현대성을 포착하고자 하였다. 뒤르켐과 베버는 사회 유형론과 사회 조직의 유형에 있어서 유사하다. 이것이 그들의 유사성이다.

+ 7. 뒤르켐의 아노미이론과 인간본성론을 비교하라.

뒤르켐의 아노미는 충분한 규제의 부재absence of sufficient regulation로부터 나온다. 아노미는 일시적인 생산물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기게적 연대가 붕괴하고 유기적 연대가 아직 세워지지 않았을 때 아노미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노미는 전통사회의 기계적 연대로부터 현대 도시산업사회로 이전하면서 발생한다. 그때사람들의 가치시스템은 규제의 부재, 즉 아노미에 직면한다. 그러나 아노미는 곧 사라진다. 한편, 아노미에 숨어있는 인간본성은 무엇인가. 보통, 우리는 질서는 밖에서부터 들어와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들 각자는 일정한 사회적societal level 질서, 즉 집단양심을 창조하지 않고서는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집단양심에 따라서 규제될 필요가 있다. 물론, 뒤르켐은 사람들이 과잉규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규제 과잉은 병리 현상를 낳은다. 그러나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의 전환과정에서 나타나는 병리현상은 규제의 부재로 인한 것이다. 이때 인간은 비정상적이거나 병적인 악행을 범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악행들에 대한 통제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 8.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과 맑스의 소외론을 비교하라.

아노미 이론과 소외론은 여러면에서 서로 상충된다. 소외란 사람들이 과잉규제되었을 때 나타난다. 사회적 과잉규제로 인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fate과 자신의 생활을 통제할 수 없는 상테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소외이다. 맑스는 헤겔뿐만 아니라 루소의 영감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소외 개념은 다소 루소의 인간본성 개념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따라서 루소가 말했던 것처럼 문제는 사회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맑스는 우리는 사회에서 태어났고 본성이 사회적이라고 했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사회가 제거된다면 우리는 다시 바람직하게 사회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뒤르켐의 아노미는 규제의 부재이고 그것은 병리현상을 초래한다.

+ 9.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과 베버의 탈마법화disenchantment 개념을 비교하라.

이것은 다소 어려운 문제이다. 사실, 베버의 책에서 '탈마법화'란 용어를 찾기란 쉽지 않다. 베버는 정말이지 그 용어를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다. 베버는 다양한 종교사회학을 종합하면서 썼던 에세이에서 '탈마법화'를 가장 비판적으로 사용하였다. 탈마법disenchantment은 독일어의 매직magic에서 번역되었다. 탈마법이란 세계가 마법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때 마법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게 된다. 이러한 생명력 상실은 합리화rationaliztion가 등장하면서 함께 발생했다. 역사적 진화의 큰 흐름은 합리화와 마법의 상실이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정신> 에서 그것을 크게 다루었다. 특히, 칼빈니즘과 예정론은 마법을 완전히 제거해버렸다. 베버는 자신을 합리주의자라고 말하면서도 합리주의의 단점downside을 잘 보았다. 베버에 따르면 우리는 마법을 상실한 대신에 그 댓가를 합리화에 지불하게 되었다. 베버는 마법적 세계에 대하여 다소 노스탤직nostalgic했는데 전통적 세계는 마법적이었다. 따라서 마법은 전-현대사회의 영구적 조건이었다. 왜냐하면 마법적 세계에서는 어떤 것도 훨씬 더 나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과의 큰 차이이다. 실제로, 마법의 상실은 맑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댜. 왜냐하면 마법의 상실로 인하여 사람들은 더더욱 자신의 운명fate에 노출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마법사들은 전능한 신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었다. 예를들어, 마법사들은 당신을 구원할 수 있었다. 마법사들은 마법적 수단을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합리화된 세계에서,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덜 통제하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베버의 탈마법화 개념은 뒤르켐의 아노미보다는 맑스의 소외론과 가깝다.

+ 9. 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살펴보고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을 비교하라.

자살은 매우 개인적인 사사로운 일인가. 뒤르켐에 따르면 자살은 개인적인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에 따라서 자살율이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들은 매우 지속적stable인 경향이 있었다.또 자살과 종교, 그리고 자살과 교육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따라서 자살과 같은 매우 개인적인 행위에도 사회적 결정인자 social determinants가 존재한다. 자살은 두가지 차원에서 결정돨 수 있다. 그 두가지 차원이란 통합과 규제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과도한 통합과 과도한 규제 그리고 너무 약한 통합과 너무 약한 규제는 모두 비정상적abnormal 이다. 따라서 뒤르켐은 황금중도golden middle road를 강조하였다. 정상성normality이란 중도에 놓여있는 것이다. 아노미적 자살은 사람들이 충분히 규제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이기적 자살은 사람들이 사회에 충분히 통합되지 않았을 때 일어난다. 그때 당신은 이기적인 자살을 저지른다. 이를테면, 당신은 사랑하는 자들beloved one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죽이더라고 사랑하는 자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을것이지 상관하지 않게된다. 그것은 당신이 사회에 통합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당신은 애인들을 좋아할때 이기적인 자살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을 죽임으로써 애인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싶지않기 때문이다. 한편 아노미적 자살은 사람들이 충분히 규제되지 않았을 때 일어난다. 따라서 아노미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살을 저지를 수 있다.


2.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the rules of sociological method>의 주요 내용

뒤르켐의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은 1895년에 출간되었다. 그때는 <노동분업labour division in society>이 발간된지 2년 후였고 <자살론>이 발간되기 2년 전이었지만 양쪽의 요소들을 예고하고 결합하였다. 그럼, 사회적 사실facts social은 언제 존재하는가. 우리는 언제 사회적 사실들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사회적 사실들을 관찰할 수 있는가. 이것이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의 포인트이다. 뒤르켐은 정상상태와 병적 상태를 구별하였고, 유명론Nominalism과 실재론Realism을 구별하면서 유명론과 실재론의 대안과 사회의 분류classification of societies를 제시하였고, 선구자적으로 인과성causality을 다루었다.


3. 사회적 '사실'은 언제 존재하는가.

먼저, 우리는 사회적 현상과 생물학적 또는 심리학적 현상 사이의 구별을 해야한다. 사회적 사실은 얼마나 객관적인가. 실제로 생물학적 사실은 명백히 객관적인 반면에 심리학적 사실은 그렇게 명백히 객관적이지는 않다. 그리고 사회적 사실은 최소한 객관적이다. 그럼, 왜 사회적 객관적인가. 왜 사회적 사실은 집단적collective 인가. 교육은 그 주요 동력mechanism이 될 수 있다.

+ 사회적인 것은 생물학적인것과 심리학적인 것과는 구별된다.
뒤르켐에 따르면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모두 사회적이라면 사회학이라는 학분은 있을 수 없다. 이미 지적했듯이, 뒤르켐은 사회학을 학문시했던 최초의 사람이다. 실제로, 뒤르켐은 사회학을 샘명과학life sciences의 일부분이라고 보았다. 셍명과학은 세 분야, 즉 사회학, 생물학, 심리학으로 나누어진다. 사회학, 생물학, 그리고 심리학은 각각 상이한 개체units와 상이한 대상objects을 다룬다. 생물학은 육체를 다루고 십리학은 인격성personality을 다룬다. 반면에 뒤르켑의 사회학은 집단 표상collective representations을 다룬다. 뒤르켐은 집단의식 아이디어를 집단표상으로 승화하였다. 집단표상이란 비교적 객관적으로 형성된embodied 사실a fact의 집단의식을 말한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집단표상은 다른 사실들과 구별할 수 있는 일종의 현상 셋트a set of phenomena 이다. 그럼, 사회적 행동은 언제 시작하는가."라고 했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나는 계약을 실행할때 사회적으로 행동한다. 나는 외부적으로 정해진 나의 의무를 수행한다. 나는 의무를 수행할 때 사회적으로 행동한다. 그때 나는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사람이 된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사회적 사실에 대한 매우 간단 명료한 설명이다. 그럼 사회적 사실은 얼마나 객관적인가. 첫 눈에 사회적 사실은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의무obligation의 의미는 매우 주관적subjective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당신이 파트너로부터 ''당신은 무책임하다."라는 말을 듣는다. 파트너는 당신의 의무감에 호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무감에는 주관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르켐은 그 의무감이 여전히 객관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러한 의무obligations가 객관적일 수 있는 이유는 다소의 외부적 강제enforcement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당신이 이러한 의무를 져버린다다면 벌칙penalties이 주어질 것이다. 운좋게도, 당신은 때때로 그 벌칙을 모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처벌punishment을 받아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처벌은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거나 복종을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그 의무는 외부적으로 강제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 스스로 자신이 의무를 갖고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는 단지 주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의무는 외부로부터 내부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은 오늘 오후 7시에 인터넷에 들어가서 두 문제를 풀어야 할 책무가 있다. 이것은 물론 당신 자신의 주관적인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당신이 시간 안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죄책감guilt feelings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것은 당신 안에 내부화될 것이다.잘 알다시피, 때때로 숙제를 늦게 제출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러면 조교들teaching fellows과 교수는 점수를 깍는다. 당신은 그런 위태로운 사태와 직면하고 싶지않을 것이다. 게다가 당신의 깊은 내면은 기꺼이 제 시간 안에 과제를 제출하기로 마음먹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칙을 받게 되리라고 걱정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만드는 이유이다.

+ 사회성의 집단적 면모, 교육의 역할
사회성은 집단적인collective 것으로서 단지 개인적일 수는 없다. 보통, 우리는 의무에 대한 집단 감각a collective sense of obligation를 갖고 있다. 뒤르켐은 그것을 '습관habit'이라고 하였다. 습관은  매우 좋은 용어이지만 뒤르켐 이전에는 그렇게 강제적으로 사용되어 본 적이 없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학자인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이 습관habit이란 용어를 해비투스habitus로 변형시키면서 폭넓게 사용하고 있다. 습관habit, 해비투스habitus, 관례mores, 방식manners, 요령ways of life이란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나갈지 스스로 알고있다. 우리는 어떻게 상황에 대처할지 스스로 안다. 이것이 습관habit이자 사회생활의 행동 방식이다. 그럼, 습관은 어디서 나오는가. 뒤르켐에 따르면 습관은 교육에서 나온다. 당신은 사회에 나가서 해야할 것을 지금 교육받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홉스가 정확히 의도한 것은 아니다. 홈스도 방식과 관습manners and customs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지만 단지 개인적 인자에 불과했다. 홉스에 따르면 개인은 행동하고나서 타인another, 즉 타자Alter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개인은 타인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응답을 측량evaluate하면서 스스로 헤쳐나갈 항법을 배우게 되고 또 가능한 처벌도 예상하게 된다. 따라서 홉스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자로서 습관을 해결하였다. 그러나 뒤르켐은 홉스를 반박하면서, 우리는 행동하거나, 처벌받거나, 타인의 처벌을 보면서 습관을 배우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뒤르켐에 따르면 습관은 교육시스템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재미있게도, 이것이 뒤르켐이 말하는 습관의 포인트이다. 뒤르켐에 따르변 집단의식은 결정화된 행동양식crystallized 'ways of acting' 이다. 바로 이 집단의식이 습관habit이고 해비투스habitus 이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해비투스는 우리가 배워서 수행하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각자는 자신이 가진 습관 또는 해비투스에 따라서 상이한 상황에 잘 대처하게 된다. 때때로 목표를 수행하기에는 적절appropriate치 못한 해비투스를 가진 자들이 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그 목표를 잘 수행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적절한 해비투스를 갖고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습관은 생애의 초기에 내부화되면서 점차로 여러 사회적 상황을 대처하는 데 조력한다..


4. 사회적 사실은 엄밀한 훈련을 통해서 관찰된다.

뒤르켐에 따르면 사회적 사실은 사물things이다. 사회적 사실을 분석social analysis을 위해서는 엄격한 훈련이 필요하다. 또 사회적 사실을 위하여 고정관념preconception은 제거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들의 가치에 독립하여 조사 대상objects of our investigations을 정의해야 한다. 뒤르켐은 사회 분석을 가치로부터 자유로운value-free 과학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적 사실로서 너무 주관적인 사물things이나 대상objects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 사회적 사실은 사물things이다.
매우 재미있게도 뒤르켐은 <독일 이데올로기>의 맑스처럼 말한다.뒤르켐은 말하기를 "올바른 과학은 아이디어로부터 사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로부터 아이디어로 진행한다proper science should not proceed from ideas from things, but from things to ideas.'' 고 하였다. 어것은 거의 <독일 이데올로기>의 맑스와 동일하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뒤르켐의 이 사물things은 재산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물은 실제로 집단 현상collective manifestation안에 들어있는 집단 아이디어 이다. 따라서 뒤르켐의 사물의 개념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재미있게도, 뒤르켐의 포인트는 사물은 개인적인 아이디어가 아니고 일종의 결정화된 저 너머, 우리 밖에 있는 불변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개인들은 정말로 그 사물을 바꿀 수 없다. 뒤르켐에 따르면 사회과학은 마치 자연과학처럼 편견을 제거하고 독단dogma를 뛰어 넘으면서 사실 연구study of facts를 향하여 진화한다. 이것은 바로 17세기 때 베이컨이 제시하였던 것이다. 베이컨은 모든 과학적 조사는 귀납법induction을 이용하여 감각적으로 관찰가능한 사실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뒤르켐의 사회적 사실은 베이컨으로부터 빌려온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뒤르켐이 강조한 것은 반드시 감각적인 경험sensuous experience은 아니더라도 고정관념과 독단preconceptions and dogmas를 뛰어넘자는 것이었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이론은 과학이 충분히 고급화된 단계advanced stage에서만 도입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대학원생들이나 학위논문 준비자들에게 매우 좋은 충고이다. 당신들은 이론으로부터 출발하지 말고 사회적 사실을 분석함으로써 시작하라. 당신은 충분히 발전했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알맞는 이론을 찾아보아라. 당신이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면 꼭 이 말을 상기하기 바란다. 위대한 관용구bid words에서 출발하지 말라. 실제적인 분석actual analysis에서 출발하고 과학적인 아이디어를 갖게 되었을때 비로소 적절한 이론을 찾아보아라. 재미있게도, 뒤르켐은 당대의 경제학자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뒤르켐의 비판은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것이다. 뒤르켐은 비판하기를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은 원칙적으로 경제가 실제로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보다는 경제가 마땅히 운용되어야하는 당위성에 집착하고 있다." 고 하였다. 폴 크루그만Paul Krugman은 몇 주 전에 뉴욕 타임즈에 자신의 동료들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크루그만은 비판하기를 "당신들이 이러한 금융시장의 혼란mess을 초래하였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경제가 실제로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보지 못하고, 경제가 마땅히 수행해야할 당위에 기초하여 경제를 운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우리는 경제가 어떻게 스스로 운용해 나가고있는지를 연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경제학자들에 대한 매우 재미있는 비판이겠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모든 경제학자들에게 반드시 해당하는 사실은 아니다. 현재, 표준normative과학은 당위성을 기초로 기술되고 운용되고 있다. 그럼, 표준과학은 합법성에 반illegitimate하는가. 확실히, 뒤르켐은 당위가 기준normative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아이디어를 고수하였다. 먼저, 우리는 고정관념부터 제거해야 한다. 이미 지적했다시피, 데카르트와 베이컨은 방법론을 두고 서로 다투었다. 베이컨에 따르면 분석은 감각적으로 관찰가능한 현상을 보면서 귀납적으로 시작하고 나중에 그것을 이론화해야한다. 반면에, 데카르트는 연역적 방법을 선택하였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분석은 일반적인 추상general abstractions으로부터 출발하여 이 추상으로부터 파생된 가설hypotheses로 옮기고나서 사실facts로 이동해야한다. 이것이 베이컨과 데카르트 사이의 차이점이다 그러나 뒤르켐은 말하기를 "그러나 베이컨과 데카르트는 한가지 점에서 서로 동의한다. 즉, 그 추론이 귀납적 방법에 따라, 관찰로부터 이론으로 나아가든지, 아니면 연역적 방법에 따라, 이론으로부터 관찰로 나아가든지 간에, 독단dogmar과 고정관념stereotypes을 제거해야 한다는 데 서로 동의하였다. 이것은 특히 사회과학에서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사회가 어떻게 진행해나가고 있는지를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단과 고정관념에 대한 뒤르켐의 포인트이다. 우리는 사회가 어떻게 진행해나아가고 있는지를 설명해줄 사회과학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회를 경험하면서 사회가 어떻게 진행해가는지works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는다. 또 우리는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가설과 발견들이 우리의 신념이나 관심 또는 감정에 어긋나면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사회과학에서 독단을 제거하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는 사회과 경제에 대한 평범한ordinary 지식을 갖고있지만 그것은 과학적지식이 아니고 개인적 이익을 바탕으로 건설된 지식에 불과하다. 따라서 고정관념을 제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우리는 정념에 매우 잘 이끌리므로 먼저, 강한 정념sentiments을 연구해야 한다. 분명, 정념들은 객체objects로서 연구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우리는 더이상 그러한 정념들에 이끌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열정과 편견없이 사회분석을 진행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로부터 독립하여 조사대상들을 정의해야define 한다. 따라서 뒤르켐은 조사 대상에 관하여 객관적인 정의를 산출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뒤르켐은 예를 들아 말하기를 ''법죄란 무엇인가.'' 라고 물었다. 뒤르켐은 답하기를 "범죄란 처벌받는 사회적 행위이다." 라고 답하였다. 따라서 범죄를 정의하는 데는 가치 판단value judgement이 필요없겠다. 어떤 사회에서 특정한 행위가 제도적으로 처벌된다고 한다면 그 행위는 범죄로서 정의된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러한 정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개인은 특정행위가 범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사회에서는 범죄이다. 이를테면, 많은 사회에서 동성애 행위는 범죄로서 정의된다. 그런 사회에서 동성애는 범죄이다. 당신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고 "동성애는 비범죄화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운좋게도, 어떤 나라에서는 동성애가 비범죄화 되었다. 이제 동성애는 더이상 범죄가 아니다. 또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파는 것은 범죄이다. 그것으로 처벌받고 감옥에 갈 수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당신은 마리화나는 비범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 마리화나 소비와 판촉은 범죄라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다. 따라서 그 행위가 범죄인지 아닌지는 법을 들여다봄으로써 조사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미국의 판사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이것이 뒤르켐의 사회적 사실에 대한 포인트이다. 당신이 어떠한 가치를 갖고있는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실제practice이다. 도덕성도 또한 사회적 사실과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은 타인들을 가리켜 비도덕적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타인들은 자기와 다르게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모든 사회는 도덕을 가지고 있으므로 당신은 먼저, 도덕을 이해해야한다. 그 도덕은 당신 자신의 도덕과 다를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매우 주관적으로 보이는 정보들을 무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척도이다. 뒤르켐은 사회분석을 하는 중에 과학적인 추론에 매우 매료되었다. 과학적 추론은 매우 프량스적인 아이디어이다.


5. 정상과 병리사이의 구별

정상normal과 병리pathological는 어떻게 구별하는가. 뒤르켐은 말하기를 "정상은 가장 빈번한 행동 형태이다."라고 하였다. 먼저, 우리는 정상에 대한 개념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정상성을 정의하는 것 없이는 사회적 사실을 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행동은 언제 비정상이 되는가. 또 우리와 상관없이 결정되어진 그 비정상은 객관적일 수 있는가. 재미있게도, 뒤르켐에 따르면 우리가 가장 공통적으로 행하는 행위most common way of act는 정상이고 그 극단적인 행위들the extremes은 비정상이다. 가장 널리퍼진 행위는 동시에 가장 도움이 되는advantageous 행위라고 상상되지 않으면incomprehensible 안된다. 이것이 뒤르켐의 포인트이다.그러나 뒤르켐은 스스로 그 견해를 후퇴시켰다. 실제로, 뒤르켐에 따르면 우리가 행동할 때마다 자주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들은 유용하지 않다. 이 부수적인 것이란 과거로부터 전수된 것들을 말한다. 한 때, 그것들은 순기능을 발휘했었지만 이제 상황은 변했다. 사람들이 여전히 그러한 습관을 지키면서 행동하다면 그것은 비정상이다. 비록 그 행동이 꽤 평균적일지라도 그렇다. 예를들어, 인종주의racism를 한번 생각해 보라.

+ 범죄는 언제 정상 또는 병리적이 되는가.
뒤르켐은 범죄에 대한 매우 재미있는 주장을 하였다. 뒤르켐은 범죄는 정말로 정의상 병리적이라고 말하였다. 정말 그럴까. 뒤르켐은 범죄는 모든 사회에 현존한다고 말하였다. 재미있게도, 뒤르켐에 따르면 우리는 사회에 너무 많은 범죄가 존재할 때 범죄가 비정상이라고 부른다. 범죄는 그 자체로per se 그렇게 정상적인 상태이다.


6. 인과성의 문제

뒤르켐에 따르면 사회과학의 임무는 인과성causality을 기술하는 것뿐만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다. 인과성을 조사하는 데는 상이한 방법이 있다. 사회과학에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조사방법은 실험적experimental이라기 보다는 비교학적comparative이다. 보통, 자연과학에서는 실험적 방법을 사용한다. 반면에 사회과학에서는 실험적 방법을 쓸 수 없다. 실험적 방법에 따르면, 우리는 인구표본population에 어떤 자극제stimuli를 무작위로 할당하고 사람들이 이 자극제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게 된다. 이것이 실험적 방법의 포인트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에서 그러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이미 <자살론>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결혼하도록 할당하고 다른 사람들을 미혼으로 남도록 할당한 후에, 결혼의 효과가 자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조사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비교학적 방법이다. 뒤르켐은 비교학적 방법에 두가지 유형이 있다고 제안하였다. 그것은 동일성과 차이성에 따른 유형이다. 이를테면, 당신은  비슷한 두 사회를 비교한다. 예를들어, 미국과 캐나다를 비교하여 이 두 나라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당신은 가난이 범죄와 관련될 수 있다는 이론을 갖고있다. 알다시피, 배고픈 자들은 음식을 훔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는 자신을 먹여 살려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은 가난의 수준에 따라서 두 나라를 비교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동일한 유형의 범죄를 더 저지르는지 조사한다. 또 당신은 매우 다른 두 나라를 비교할 수 있다. 당신은 미국을 방글라데시와 비교할 수 있다. 미국과 방글라데시는 서로 범죄율의 차이가 심하다. 먼저, 당신은 미국과 방글리데시 사이에 고유한 다른 범죄가 있는지 조사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충분한 사례cases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뒤르켐은 상관관계correlation법이 가장 옳은 방법이라고 제안하였다. 상관관계법이란 두 변수들variables 사이의 상호작용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사회과학을 대표하는 조사방법론이다. 실제로, 뒤르켐은 대부분의 사회 비판가cruncher보다 유능했다. 그럼, 인과관계는 정말 인과성을 보증하는가. 뒤르켐은 말하기를 "따라서 우리는 귀납법을 쓰면서, 둘 중에 하나가 어떻게 다른 하나를 생산해냈는지를 조사해야한다."고 하였다. 뒤르켐에 따르면 진정한 인과성real causality을 조사하고자 한다면 실험적 방법보다는 통계적 방법으로, 서로 상관하는correlate 두 현상을 함께 연관하는 인과적 동력causal mechanism을 파악해야한다. 그러나 통계적인 상관관계correlation라고 해서 하나가 반드시 다른 하나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당신은 황새stork가 아기를 데려온다는 이론을 갖고 있다. 따라서 당신은 이것을 테스트해본다. 당신의 통계에 따르면 스칸디나비아의 임신율fertility이 낮다는 것은 스칸디나비아에 황새가 많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황새의 수와 신생아의 수는 서로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통계는 황새가 아기를 데려온다는 이론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아기들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인과 동력causal mechanism을 조사해야 한다. 이것이 초창기 뒤르켐의 방법론에 대한 통찰력있는 포인트이다.






<참고문헌>

원문,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2012년 3월 8일 목요일

11-3. 뒤르켐: 자살론

1.  자살의 정의

오늘의 주제는 자살이다. 실제로 자살은 학생들 사이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있다. 이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교수가 죽음과 자살에 관한 강의를 위하여 초청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교수의 강좌가 곧 폐강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강의실은 꽉 찼다. 분명, 자살은 인기있는 토픽이었다. 나는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 내가 당신들 나이때 가끔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당신들 중에도 다수는 자살을 생각해 본적이 있었을 것이다.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왜 우리는 자살을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감행하지 않는지 그 답을 제시하였다. 왜 당신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자살을 생각하는가. 아마 그들 중에 일부는 이미 자살을 시도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일부는 실제로 자살을 했을 수도 있겠다. 오늘날 자살은 빅 이슈가 되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뒤르켐의 <자살론>은 여러 면에서 개척자적인path-breaking 책이다.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사회 현상과 관련하여 최초로 엄밀한 경험적 연구를 도입하였다. 보통, 자살은 매우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심리학자들은 자살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다. 반면에 사회학자들은 도대체 왜 자살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사실, 자살은 사회적으로 매우 드문 현상이다. 운좋게도, 대부분의 나라와 대부분의 사회에서 자살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자살은 매우 개인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학자들이 자살을 해명하려 하는가. 사실, 뒤르켐은 매우 어려운 자살문제를 스스로 이슈화하였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학문화하였다. 앞으로 보겠지만, 뒤르켐은 상당히 멋진 방법론적 혁신innovation을 통하여 자살문제를 다룬다. 오늘날 많은 사회학자들은 <자살론>의 방법론적인 통찰력에 감탄한다. 재미있게도, <자살론>의 핵심은 방법론에 있다. 그럼, 자살이란 무엇인가. 자살은 어떤 죽음을 말하는 것이고 또 언제 결정되는가. 사회학자들은 무슨 이유로 자살을 연구하려 하는가. 이것이 뒤르켐 <자살론>의 포인트이겠다. 뒤르켐은 자살에 대한 여러 유형을 제시하였다. 오늘날 사회학자들은 뒤르켐의 자살 유형을 대체로 공감한다. 뒤르켐이 분류한 자살유형에는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운명론적 자살이 있다.

+ 자살이란
자살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자살은 특히, 통계와 관련하여 매우 미묘tricky하게 정의될 수 있다. 통계로 보고되는 자살을 살펴보자. 이를테면, 한 사람이 죽으면서 사람이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 사람이 자살을 시도했는지 아니면 단순한 사고였는지 판단하기가 매우 힘들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명백히 밝혀질 때도 있다. 그(그녀)는 목을 메어 자살했을 수 있다. 목을 메는 것은 특별한 경우에 특정한 유형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자신을 목멘다는 것은 자살을 가리키는 지표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죽음의 원인을 조사하면서 그 자살 여부를 자주 혼동스러워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수면제을 과잉 복용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우연히 정량 이상의 수면제를 복용했는지 아니면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는지는 명백하지 않다. 따라서 자살에 관한 통계조사 자료는 많은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자살자의 사회적 환경에 기초하여 그 자살 여부를 판단한다. 그럼, 의사들은 뒤르켐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회학자들을 알고 있는가. 의사들은 어떤 근거에서 자살자가 그런 환경아래서 그런 자살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가. 이를테면, 의사들은 현장에서, 죽은자의 생활환경을 유추하면서 말하기를 "이 노인의 부인은 최근에 타계했으므로 이 노인은 분명 자살했음에 틀림없다." 고 하는가. 실제로, 자살의 정의는 의학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환경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그러면 무엇이 자살인가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보자. 자살은 어떠한 환경아래서의 죽음을 말하는가. 여기, 뒤르켐의 정의가 있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자살이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긍정 또는 부정적 행위을 통하여 초래되는 죽음으로서, 희생자 스스로 그러한 자살의 결과를 인식한 모든 죽음에 해당될 수 있다." 고 하였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개념처럼 보이지만 매우 정곡을 찌르는 좋은 개념이다.

+ 자살에는 의도intention가 필요하다.
먼저, 주목할 점은 자살의도이다. 죽음이 자살이라고 부를 수 있기 위해서는 자살자가 스스로 자신을 위한 의도가 있어야한다. 이 의도는 다양할 수 있다. 자살의도의 목적은 반드시 자기-파괴적일 필요는 없다. 그 목적aim은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다. 예를들어서, 자살 폭파범suicide bomber를 생각해 보라. 자살 폭파범은 원래 자신들을 죽이고자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타인들을 죽이기 위하여 자기들의 육체를 무기로서 이용하는 것이다. 자살 폭파범은 타인들을 해치기 위하여 자신의 육체를 폭파시킨다. 이것은 분명히 자살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왜냐하면 자살 폭파범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스스로 자기가 죽을 것임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살 폭파범은 그 자신을 목표로하지는 않지만 자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 자살은 간접적이고 부정적일 수 있다
자살행동은 간접적일 수 있다. 사실, 자살은 부정적negative일 수 있다. 대부분의 자살은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행동이다. 즉, 당신은 50층 위에서 직접 뛰어내려서 자신을 죽일 수 있다. 당신은 수면제를 과잉 복용하여 자신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자살은 간접적이고 부정적일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을 굶주려서 죽일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을 죽이려고 의도하는 한 그것은 자살이라고 불릴 수 있다. 따라서 자살의 정의는 매우 기교적tricky인 것이다. 약물을 남용하거나 알콜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은 실제로 약물 과잉이나 알콜 과잉으로 죽을 수 있다. 그들이 스스로 죽을려고 의도한 바가 아닌 술을 좋아하거나boozing 코캐인 애용으로 죽었다면 그것은 자살이 아니다. 지난 35년간 많은 러시아인들이 사망하였다. 특히, 러시아의 중년 남성들은 파리처럼 죽어나갔는데 그 이유는 보드카 과음이었다. 그러한 경우, 대부분은 자살이 아니다. 그들은 우울했고depressed, 어리석었다silly. 그들은 보드카가 우울감을 해소하는 데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결과 간암으로 사망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당신이 방문을 잠그고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하기 위하여 보드카 한 병을 마신다면 그것은 자살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자살로 인정되기위해서는 당신 스스로 자신을 죽이겠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의 자살 개념의 포인트이다. 알다시피, <자살론>은 사회학자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자살론>은 죽음의 원인을 결정내리는 의학 조사팀에 대한 대단한 도전이었다. 자살자의 자살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살의 경우, 그 의도는 확실하게 파악될 수 없다. 사망자가 자살을 의도한다는 글을 남겨놓지 않는한, 그 죽음이 단순한 사고에 의한 것인지, 의도된 것인지를 파악하기란 대단히 힘들다.

+자살은 개인적 행위인가, 사회적 현상인가.
자살은 매우 사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살하겠다는 말을 한다. 그들은 보통 그런 말을 하면서도 실제로 자살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보통, 자살자는 자살을 진지하게 내부화하면서 그것을 자신 내부에 고이 간직한채로 자신을 죽인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는 자살할 것 같다."라고 할 때, 그것은 단지 타인의 관심을 받고자하는 것일 뿐이다. 심지어 그들이 자살을 시도할지라도 그것은 자주 거짓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너무도 영악해서 단지 수면제를 조금 더 사용했을 뿐이겠다. 재미있게도, 그들은 이미 자살을 결심했다고 말했던 터였으므로 친구들은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와주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자살은 매우 개인적인 행위이다. 당신은 자살을 하겠다는 의도를 숨기는 것이 보통이고 타인들과 자살에 대하여 대화하지 않는다. 당신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죽이는 것은 개인적인 일처럼 보인다. 도대체 왜 사회학자들은 이렇게 개인적인 일 또는 사적 행위로 보이는 자살에 대하여 대단한 관심을 갖는 것일까.

+ 자살률은 나라마다 대단히 다양하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보라, 자살률이 나라마다 얼마나 다른가.'' 라고 하였다. 뒤르켐은 나라마다 자살율이 엄청난 차이가 난다고 주장하였다. 어떤 나라들은 자살율이 매우 낮고 또 어떤 다른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자살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죽음의 제 1순위는 아니다. 그러나 몇몇 나라의 특정한 나이 그룹에서, 자살은 죽음의 원인으로서 쉽게 톱 5 안에 들어간다. 덧붙여서, 그런 나라에서 자살은 보통 오랜동안 그런 관행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안정적인 지표indicator일 수 있다. 대개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나라들은 자살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나의 조국인 헝가리는 오랫동안 자살 제 1순위였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자살 연구는 뒤르켐의 영감을 빌리고 있다. 오늘날 뒤르켐은 많은 도전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110년이 지난 지금도 자살 연구에 관한 어젠다 설정자agenda-setter이다. 만약, 당신이 생물학자나 사회학자 또는 의사가 된다면 자살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분명 뒤르켐을 배우게 될 것이다. 자살 연구는 뒤르켐 없이는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서, 뒤르켐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은 나라 곳곳의 자살을 살피게 된다. 재미있게도, 자살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대단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어떤 지역의 자살율은 매우 높고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일정하다constant. 현재, 헝가리는 자살율에 있어서 셰계 2위 또는 3위이다. 헝가리는 이전 한 세기 동안 자살율 세계 1위를 유지해 왔었다. 나는 뒤르켐의 영감을 받고 자살을 연구하는 헝가리의 한 동료가 있다. 그는 헝가리의 한 지역의 자살율이 특히 높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실제로 자살하는 자들의 유형과 자살방법 사이의 관계를 밝혀냈다. 그 통계는 한 세기 동안 거의 불변하였다. 그에 따르면 격리된 농장detached farms에 살고 있는 나이 든 남성농부들은, 부인들이 갑자기 사망하면(여성은 보통 남성보다 더 오래 산다.) 전형적으로 한결같이 다락에 들어가 목을 멘다. 이러한 행동은 오랜동안 이어져 왔다고 한다. 이제 격리된 농장에 사는 남성노인은 자신의 부인이 죽으면 다락으로 가서 목을 멘다는 것은 공식이 되었다. 어떤 면에서 자살은 죽음에 이르는 한 방법a way of dying이다. 확실히, 자살 문제는 특정한 사회의 특정한 환경과 관련되어있다. 사실, 우리 남자들은 꽤 바보같은 면이 있는데, 우리는 요리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꾸며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나이가 들어서 당신의 부인이 죽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특정한 상황에서 자살을 저지를 수 있다. 재미있게도,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살하는 방법에는 사회적 패턴pattern과 문화적 패턴이 있다고 한다. 뒤르켐에 따르면 거대하고 놀라운 역사적 이벤트는 자살율에 상당한 영향를 끼친다고 한다. 그럼, 거대한 사회적 혼란turmoil이 발생하면 자살률이 상승할 것인가.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틀렸다. 거대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면 자살율은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혁명의 시기에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는다. 어쨌든 뒤르켐의 포인트는 자살은 집단적인 현상collective phenomenon이라는 데 있었다. 자살은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 자살의 유형
그럼, 자살 유형을 살펴보자. 뒤르켐의 자살 유형론은 다소 어렵다. 뒤르켐은 자살의 원인를 통합integration과 규제regulation의 문제로 구별했다. 통합이란 당신이 살고 있는 조직 또는 사회가 얼마나 밀도있게 조직되었는가를 말해준다. 이미 언급했듯이, 뒤르켐은 정상 대 병리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뒤르켐은 정상normal이란 전형적인typical인 것이라고 말하였다. 쉽게 말해서, 정상이란 일종의 평균average이다. 정상이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부족하면 병리적이거나 비정상이다. 이것이 뒤르켐의 근본적인 아이디어이다. 따라서 뒤르켐 유형론typology의 한 차원은 통합이다. 우리는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적 그룹에 얼마나 잘 통합되었는가. 그것은 너무 높을 수도 있고 너무 낮을 수도 있다. 너무 높은 통합과 너무 낮은 통합은 사회적 병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병리현상 중의 하나는 당신이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뒤르켐 유형론의 또다른 한 차원은 규제regulation이다. 규제란 여러 기준들이 엄밀하게 사람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을 말한다. 그 기준은 너무 높거나 또는 너무 낮을 수 있다. 따라서 규제 또한 병리현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뒤르켐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개인으로 하여금 황금중도golden middle road로부터 일탈하게 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황금중도의 궤도 위에서만 정상이 되는 것이고 그 궤도에서 일탈하면 비정상이 되는 것이다. 이 뒤르켐의 가설은 매우 문제가 되는 것으로서 많은 도전을 받고있다. 그럼, 이 두가지 차원, 즉 통합과 규제는 서로 독립되어있는가 아니면 복합되어있는가. 통합과 규제는 서로 완전히 독립되어있지는 않다. 따라서 통합과 규제를 2x2 식table으로 완전히 갈라놓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몇몇 비정상의 유형은 통합과 규제의 복합을 통하여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통합과 규제, 두가지 차원을 복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2x2식 보다는 훨씬 나은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겠다. 통합과 규제는 좌우로, 높고 낮음은 상하로 도식화될 수 있다. 이렇게 개념화 한 것은 보통의 2x2식과는 다른 것이다.

2. 첫째, 이기적 자살

이기적 자살은 사회 통합과 관련이 있다. 이기적 자살은 사회적 통합이 너무 낮을때 발생한다. 뒤르켐에 따르면 자살 의도자들이 속해있는 있는 그룹의 통합력이 약화되었을때 그 사람은 그 그룹에 덜 의존하게 된다. 뒤르켐은 이것을 이기주의egoism라고 불렀다. 당신은 자신이 속한 그룹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할 때 이기적 자살을 저지르게 된다. 즉, 자살을 고려하는 자들은 이타주의가 결핍되고 그룹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자살을 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당신은 말하기를 "나는 이제 인생의 목적이 없다. 나의 남자친구(여자친구)가 떠나갔다. 따라서 나는 죽는 게 낫다." 라고 한다. 그리고나서 말하기를 "나는 정말이지 엄마 때문에 자살을 못하겠다. 정말이지. 내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없게 되었다. 그룹 안에서의 친밀성tightness, 즉 그룹 연대성은 당신을 자살로부터 보호해준다. 따라서 당신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당신 자신만을 배려한다는 의미이다. 그룹 연대는 다양할 수 있다. 그 연대는 종교일수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 연대는 정치 사회일 수도 었다.  종교적, 가족적, 사회적 연대는 당신을 자살로부터 보호할 것이다.

+ 종교
자살은 종교와 관련이 있는가. 자살은 종교와 교육에 얼마나 연관되는가. 뒤르켐은 정말이지 자살연구에 관한 돌파구를 마련하였다. 당시 통계학적인 기술이 개발되지는 못했음에도 뒤르켐은 통계분석을 다중변수로서 논리화multivariate statistical analysis하였다. 뒤르켐은 숫자가 없는 회귀모델regression model을 사용하였다. 그것이 뒤르켐의 논증논리였다. 뒤르켐은 자살과 관련하여 유대인들만은 예외라고 언급하였다. 재미있게도, 자살에 관한 뒤르켐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사실, 일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자들이 자살율이 높다는 것이다. 또 자살과 종교 사이에는 일련의 관계가 있다. 개신교도들은 자살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 캐돌릭교도들은 자살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이 있다. 캐돌릭교도들은 교육수준이 낮고, 개신교도들은  교육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 개신교도들의 높은 교육수준은 자살을 저지르기가 더 쉽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뒤르켐은 유대인들은 예외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유대인 자살율은 매우 낮은 편이고 교육 수준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대인 수수께끼이다. 도대체 왜 교육수준이 높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죽이지 않는가. 당신이 루터교도나 장로교도이면서 교육을 받았다면 당신은 자살을 저지르게 된다. 그런데 왜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이것이 수수께끼이다. 자살은 교육 또는 종교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도대체 왜 교육은 높은 자살율을 초래하는가.

+ 종교와 자살
이미 지적했다시피, 뒤르켐은 개신교도들 사이의 높은 자살율을 발견하였다. 캐돌릭교도들은 자살율이 낮았고 유대인들은 가장 낮았다. 뒤르켐이 유럽국가들을 관찰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사실, 이슬람교도들은 자살율이 가장 낮다. 재미있게도, 캐돌릭교도들은 교리상 자살을 저지르면 벌을 받는다. 그러나 뒤르켐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모든 종교는 자살을 반대한다. 어떤 종교도 자살을 허락하지 않늗다. 로만캐돌릭이 자살에 대하여 조금 더 엄격한지도 모르겠다. 왜나햐면 자살자들은 보통 종교적 의례로서 장례에 따라 매장되는 복을 누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로만캐돌릭 신부들은 자살자들을 매장하려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에, 개신교 성직자들은 매장 의례를 거행한다. 재미있게도, 당신이 자살을 저지른다면 자신이 어디에 매장되고 또 어떻게 매장될지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겠다. 문제는 종교인들이 왜 자살을 저지르는가에 있겠다. 먼저, 한 종교인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자살 금지율는 타 종교의 그것보다 더 설득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자살을 저지를 수 있다. 사실, 모든 종교는 자살을 금지하고는 있다. 뒤르켐은 여기서 통합의 아이디어를 추론하게 되었다. 뒤르켐에 따르면 개신교회는 캐돌릭교회보다 훨씬 덜 통합되어있는 공동체이다. 반면에 유대교는 실제로 가장 밀도있게 통합되어있는 공동체이다. 따라서 유대교인은 이기적인 자살을 저질를 여지가 거의 없다고 본 것이다. 왜냐하면 높은 수준의 통합 때문에 그렇다. 통합 수준은 개신교도들 사이에 낮고, 캐돌릭교도 사이에 높고, 유대교인들 사이에 특히 높다.

+ 집단양심, 교육과 자살
도대체 어떻게 교육이 자살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뒤르켐은 공통적이고 관습적인 편견common and customary prejudice이 약해지게되면 자살유행은 증가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뒤르켐이 가리키는 편견이란 우리가 편의상 말하는 그 용어의 의미가 아니다. 뒤르켐이 기리키는 편견은 교육을 통하여 과잉생성된overcome with education 지식을 말한다. 당신은 점점 더 많은 교육을 받게 됨에 따라서 당신은 점점 덜 독단적doctrine이 되어간다. 교육이란 비판하는 훈련이다. 이 비판훈련은 바로 내가 이 강좌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이 비판이론가가 되어서 자신의 의식을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아주기를 바란다. 때문에 당신들은 어려운 시험 문제를 비판이론가들의 비판으로서 풀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교육에 관한 모든 것이다. 따라서 독단으로서의 편견은 쇠퇴하고 있다. 일단, 독단dogma이 줄어들게 되면 이제까지 믿어왔던 고정관념stereotypes도 줄어들게 되면서 우리는 좀더 자살을 저지르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집단양심이 약화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은 점점 더 개인의 의식을 향하게 되고 또 비판적 사상가는 개인의 의식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갖게된다. 뒤르켐에 따르면 교육은 종교와 함께 나아간다고 하였다. 캐돌릭 신자들은 덜 교육받는 경향이 있고 개신교도들은 더 많은 교육을 받는 경향이 있다. 그럼, 이러한 사실은 믿을만 한가. 사실, 개신교 교회들은 전통적으로 교육을 대단히 강조해왔다. 개신교 신자들과 그 성직자와의 관계는 독특하다. 고전적인 캐돌릭 신학에 따르면 성직자들은 신자들을 위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러나 종교개혁Reformation의 대혁명으로 인하여 성경은 각 나라의 자국어native languages로 번역되였다. 그 성경은 막 등장한 인쇄기술을 이용하여 대량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개신교 성직자들은 신도들이 성경 읽기를 장려하게 되었다. 반면에, 중세의 로만캐돌릭 교회에서는 오직 사제들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다. 반면에 개신교회는 대중교육과 함께 나아가면서 읽고 쓰는 교육으로 계몽하였다. 따라서 개신교도들이 캐돌릭교들도보다 많은 교육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종교적 차이는 교육 수준의 큰 변수가 되지 못하고있다. 어떤 면에서 종교와 교육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공유관계correlation라고 보겠다. 또 뒤르켐에 따르면 진보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덜 교육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완전히 사실이 아니다. 미국을 포함한 서양의 선진국에서는 여성들은 실제로 남성들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있다. 남성들은 이제 여성들을 따라잡기 위하여 더 열심히 일해야 할 지경이댜. 왜냐하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있기 때문이다. 당시 뒤르켐이 살던 시대에는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덜 교육받았고 또 자살을 덜 저지르는 경향이 있었다. 오늘날도 여전이 그러한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자살을 덜저지르는 경향이 있다. 사실, 여성들은 자살을 더 많이 시도하지만, 자살율은 여성들보다 남성들 사이에서 훨씬 더 높다. 이것이 기본적인 포인트이다. 여성과 남성은 종교, 즉 개신교와 캐돌릭에 따라서 자살율에 차이가 나는가. 그것은 오늘날 의심스럽지만, 확실히 여성에게는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서양 선진국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더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여성들은 훨씬 더 많은 교육을 받았다. 재미있게도, 뒤르켐은 방법론적으로 다변수multivariate 분석을 시작하였다. 뒤르켐은 자살의 경향을 종속변수dependent variable로 두면서 일종의 회귀모델regression model을 이용하였다. 뒤르켐은 국가, 성gender, 교육, 종교 등을 회귀모델화하여 자살율의 변수로 설정하였다. 이것은 매우 멋진 연구계획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사회과학이 되었다. 그럼, 유대인 수수께끼를 살펴보자. 실제로,유대인은 여전히 비유대인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유대인의 종교와 교육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뒤르켐이 <자살론>을 쓰고 있던 19세기 후반기에, 유대인들은 확실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있었다. 유대인들은 특히 유럽에서 대단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또 1920년대와 30년대의 미국의 유대인들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유대인들은 많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자살은 덜 저지르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뒤르켐의 설명 모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제 뒤르켐은 배움의 목적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배움의 목적은 비유대인들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 뒤르켐의 포인트가 있다. 뒤르켐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집단편견을 모면하기 위하여 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투쟁을 위한 더 나은 무기로서 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탈무드와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랍비를 찾아가고 온갖 교육을 다 받는다. 또 유대인들은 미쓰바mitzvah를 위하여 매우 많은 교육을 받는다. 유대인들은 미쓰바를 통과하기 위하여 피땀흘리면서 헤브루어를 공부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은 독단doctrine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단에서 자유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집단양심을 훼손하지 않는다. 교육은 유대인들의 집단양심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것이 뒤르켐의 포인트이다. 매우 재미있게도, 뒤르켐은 그러한 사실을 방법론적으로 정립하였던 것이다. 뒤르켐이 1897년에 개발한 이 방법론은 오늘날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박사과정의 학생들이 준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당신은 연구 계힉을 방법론에 의거하여 증명하여야만 지도교수는 좋아할 것이다. 뒤르켐에게 교육은 매우 재미있는 아이디어였으므로 교육과 종교사이의 상호작용 효과interaction effect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육과 종교는 서로 영향을 끼친다. 뒤르켐은 모든 것은 교육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교육이 집단양심을 약화시킨다면 당신은 스스로 배우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비판적이 될 것이며 교육은 자실의 원인이 될 것이다. 반면에 교육이 집단양심을 강화한다면 교육은 사회 통합의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 가족과 자살
실제로, 당신이 가족 안에서 통합되어있다면 당신은 덜 자살을 저지를 것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기혼자는 미혼자나 과부widowed에 비하여 자살을 덜 저지른다는 증거가 있다. 실제로 그렇다.  일반적으로 결혼은 건강한 혜택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당신이 결혼을 포기했다면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보라. 통계에 따르면, 결혼을 하면 당신은 더 오래 살게된다. 또 당신은 혼자 지낼 때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다. 더군다나, 당신은 덜 자살을 저지를 것이다. 뒤르켐은 이것을 가리켜 자살에 대한 결혼면역matrimonial immunity이라고 불렀다. 왜 그런가.  매우 놀랍게도, 뒤르켐은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당신이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당신은 공동체 내에서 자살을 저지르지 않는다. 이를테면 당신은 말하기를 "나는 나의 부인spouse에게 나를 죽여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의 부인은 내 죽음으로 인하여 비난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부인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한다. 따라서 당신은 자살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 젊은이들은 주로 부모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자살을 포기한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뒤르켐은 자살은 결혼을 통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자살에 더 노출될 수 있는 사람들은 먼저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이 만약 통계학을 수강하고 있다면 뒤르켐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자살은 통게학의 범주안에 있지는 않았다. 오늘날 통계학에서는 이것을 선택문제selection problem라고 말한다. 자살은 확실히 선택문제이다. 뒤르켐은 왜 결혼한 사람들이 자살을 덜 저지르는지 알 수 없다고도 하였다. 왜냐하면 정말로 자살의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을 가능성이 컷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먼저 외로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기혼자들 사이의 낮은 자살율은 결혼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결혼이 자살을 방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져다 준 결과라고 보는 것이 낫겠다. 이것이 고전적인  '선택문제'의 예이다. 선택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실험방법론Experimental method에 있다. 실험은 선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당신이 정치학과의 그린Green교수의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면 내가 말하는 바를 정확히 알 것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정말이지 실험을 해야한다. 그 실험은 무작위로 행해져야한다. 당신은 무작위로 사람들에게 결혼하게하거나 결혼하지 않게하고, 그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서 표본선택편향sample selection bias의 문제를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사회에서 무작위로 실험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결혼을 강제로 하라거나, 말라거나 할 수 없고 또한 30년 후에 그들이 살아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통계학자들의 통계 보고는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도 있으므로 유일한 해결책은 오로지 실헙 방법밖에 없다. 뒤르켐은 실험에 관한한 매우 앞서있다. 표본선택은 실험을 통하여 통계in statistics가 나온다. 뒤르켐은 1897년 당시 표본선택모델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는데 1980년대에도 큰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통계적 문제가 아니라 연구계획적 문제였다. 실제로, 뒤르켐은 표본선택모델로서 가산제matrimonialism가 가장 적절하다고 주장하였다.

+ 정치적 사회와 자살
자살과 사회와의 관계도 똑같이 반-직관적이다. 뒤르켐은 사회적 대격변이 발생하면 실제로 사회적 감정social sentiments이 상승한다고 하였다. 혁명기를 생각해보라. 당신은 스스로 자신과 조국을 동일시하게되므로 자살할 수가 없다. 역설적으로, 혁명이 없었다면 당신은 자살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대혼란기에는 자살율은 내려갈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이기적인 자살에 관한 것이다.

3. 둘째, 이타적 자살altruistic suicide

이타적인 자살은 사회통합이 매우 높을 때 발생한다. 그때 사람들은 이타적 자살을 저지르게 된다. 예를들어, 나이든 노인들은 자살을 저지른다. 할머니들은 자기 남편이 죽으면 자살을 저지른다. 왜냐하면 그 자살이 남편이 바라는 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추종자들과 노비servants들은 우두머리가 죽으면 자살을 저질렀다. 이것이 이타적인 자살의 포인트이다. 사람들이 이타적인 자살을 저지르는 이유는 자신을 죽이는 것이 자신의 의무duty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타적인 자살은 사회가 사람들에게 사회적 희생을 부과할 때 일어난다. 또한, 이타적 자살은 특정한 사회에서 강제obligatory될 수 있다. 이를테면, 당신은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당신이 일본 군인이라면 하리끼리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인 장군들은 하리끼리를 저질렀다. 또 이타적인 자살은 일종의 신비적인mystical 자살일 수 있다. 알다시피, 힌두교도Hindus들은 때때로 갠지스강에 몸을 던져서 자살을 저지른다. 뒤르켐에 따르면 오늘날 이타적 자살은 상대적으로 매우 드물지만 군대에서도 일어난다. 군인들은 자신들을 죽일 때가 있다. 그 이유는 군인들이 충분히 통합되어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인들은 개인주의가 약화되었을 때 이타적 자살을 저지르게 된다.

4. 세째, 아노미적 자살anomic suicide

알다시피, 아노미란 사회 규제의 부재lack of social regulation 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가치시스템이 항상 변하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은 정말로 더 자살을 저지르게 된다. 이것이 아노미적 자살의 포인트이다. 또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노미적 자살의 원인일 수 있다. 대공황기Great Depression에 은행들은 자주 붕괴되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창 밖으로 뛰어 내렸다. 실제로, 지난 가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주식시장이 하향세였을 때였다. 또 내부적domestic 아노미가 있을 수 있다. 아내가 죽었거나 이혼당했을 때 아노미적 자살은 빈번해 질 수 있다.

5. 넷째, 운명론적 자살

마지막으로, 운명론적 자살이 있다. 이미 지적했다시피, 뒤르켐의 운명론 개념은 맑스의 소외개념과 쌍벽을 이룬다. 너무 심한 규제와 그 반면에 충분치 못한 사회적 통합은 운명적 자살을 초래할 수 있다. 노예들이나 자식이 없는 여성들이 운명적 자살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






<참고문헌>

원문,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2012년 3월 6일 화요일

11-2. 뒤르켐: 아노미 이론

1. <노동분업labour division in society> 리뷰

아노미 개념은 매우 간단한 것처럼 보인다. 아노미anomie란 기준상실 상태state of normlessness를 의미한다. 따라서 아노미는 쉽게 해석될 것도 같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아노미는 꽤 어려운 문제이다. 사실, 뒤르켐은 현대 시장경제 사회에서 생성되는 비정상abnomalities에 대한 복잡한 개념을 갖고 있었다. 본론에 앞서, 뒤르켐의 <노동분업labour division in society>을 재검토해 보자. 뒤르켐은 집단양심collective conscience 아이디어에서 출발하면서, 왜 법이 집단양심의 지표가 되는지 설명하였다. 뒤르켐은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를 구별하면서도 그렇게 많은 차이점을 던져주지는 못했다. 전-현대사회pre-modern society와 현대사회룰 가르는 중대한 기준은 노동분업이었다. 뒤르켐에 따르면 노동분업은 역사를 견인하고 끌고가는 인자였다. 이런 면에서, 뒤르켐은 애덤 스미스로부터 지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알다시피, 애덤 스미스는 인간사회의 진화를 노동분업의 역사로 보았다. 애덤 스미스 사회를 기간적으로 수렵, 채집, 목축, 그리고 농업과 상업으로 구별하였다. 반면에 뒤르켐은 사회를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로 구별하였다. 물론 기켸적 연대 사회와 유기적 연대 사회는 각각 상이한 법 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은 노동분업에 있었다. 기계적 연대사회는 구성원들의 유사성에 기초하여 형성되고 노동분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유기적 연대사회는 대단한 양적 노동 분엽을 이룩한다. 그 이유는 사회 구성원들의 비유사성이 양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러한 높은 수준의 노동분업과 또 다양하게 역동하는 사회에서, 도대체 연대solidarity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애덤 스미스의 노동분업 이론은 뒤르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맑스 또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애덤 스미스의 노동분업 이론을 이용하여 사회를 기간적periodicization 구별했었다. 따라서 맑스 또한 애담 스미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뒤르켐의 연대 유형 아이디어도 애덤 스미스의 노동분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뒤르켐은 몽테스키외로부터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사실, 뒤르켐은 경험적으로 관찰가능한 집단 양심의 지표로서 법laws을 상정하였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몽테스키외의 아이디어와 관련되어있다. 뒤르켐은 몽테스키외로부터 한가지 더 빌려온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회제도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한 이론이다. 뒤르켐은 사회와 환경사이의 관계를 좀더 섬세하게 사회적 연대와 사회의 노동분업 사이의 관계로서 이해하였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뒤르켐의 결점neglect이다. 왜냐하면 환경 문제와 환경 조사는 경제학과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의 중점과제여야 했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는 특히, 정치학과 사회학 그리고 인류학에서 그 당위성 만큼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환경 연구는 환경 사회운동environmental social movements에 한하여 너무 좁게 범주화된 면이 없지않다. 한편 뒤르켐은 새 접근법을 시도하면서 사회연구가social researcher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많은 경제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은 뒤르켐으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다. 그럼, 새 접근법이란 무엇인가. 뒤르켐은 <노동 분업>의 핵심 아이디어인 생태계ecosystem를 제안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리적 환경, 인구의 규모와 노동분업 그리고 기술적인 사회유형, 즉 사회적 연대 사이에는 상호 관계가 있다. 사실. 이 생태계 아이다어는 이제까지 많이 간과되어왔던 것이다. 생태계 아이디어는 바로 우리는 환경을 갖고 있고, 인구를 갖고 있고, 기술을 갖고 있고 또 사회조직을 갖고 있다는 데 기초한다. 이 네가지, 즉 환경, 인구, 기술, 사회조직은 제도system를 구성하고 서로 상호작용한다. 뒤르켐은 이 전체를 통한 제도whole system를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기술을 보라. 오늘날, 기술technology은 노동분업과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기술은 생태계ecosystem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뒤르켐은 기술을 생태계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환경연구가들은 이것을 생태계라고 부른다. 오늘날 사회학자들이 환경문제를 생태계로서 보고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캘리포니아의 남부를 생각해 보라.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남부 캘리포니아는 매우 건조한 기후dry climate였으므로 물 부족이 심각하였다. 로스 엔젤레스 분지basin는 20,000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었다. 이 환경에 정착한 약 20,000명의 사람들은 매우 기본적인 기술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노동분업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보다시피, 인구의 규모는 기술과 환경에 대단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 사회는 기계적 연대로 조직되었다. 그럼, 오늘날 로스엔젤레스 분지basin의 수리hydraulic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놀랍게도, 로스엔젤레스는 조만간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분지에 2천만 명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기술을 사용하여 공기를 최대한 적게 오염시키지만 여름철 로스엔젤레스의 중심가down town는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게다가 그 사회는 유기적 연대로 작동되고 있으므로 환경은 곧 망가질 수 있게되었다. 고맙다. 우리는 아주 멋지고 줄기차게 생태계를 망치고 있으므로 곧 로스엔젤레스 분지는 황폐화가 될 것이다. 실제로, 뒤르켐이 주장한 생태계ecosystem아이디어는 이런 식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 뒤르켐의 생태계 아이디어는 사회조직의 문제, 인구 통계학적 문제, 기술적 이슈와 평화로운 실존과 이것들이 상호작용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엄밀한 과학적 틀framework을 제공한다. 생태계는 뒤르켐의 노동분업 이론의 핵심 포인트이다.

2. 아노미: 노동분업의 비정상적인 결과

뒤르켐에 따르면 아노미는 노동분업의 비정상적인 결과 중에 하나이다. 아노미는 비정상 또는 사회 병리social pathologies에 관한 아이디어로서 뒤르켐의 독특한 개념이다.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은 대단히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사회의 비정상적 상태와 정상적 상태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회연구가는 건강한 사회적 조건들을 가정하게 되는데, 병리pathology란 이러한 가정에서 판단되는 것이다. 아노미는 뒤르켐 초기의 기능주의로부터 나온 것이다. 뒤르켐은 생물학자는 아니었지만 생물학의 영향을 대단히 많이 받았다. 이미 지적했듯이, 유기적 연대는 인간의 육체로 비유metaphor될 수 있다. 인간 육체의 각 장기들은 서로 의존하면서 재생산을 수행한다. 따라서 병리pathology란 용어는 의학medical sciences으로부터도 빌려온 것이다. 분명, 사회는 병리적인 특성들을 가질 수 있고 또 비정상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연구가들은 비정상의 본질과 병리학의 본질을 정의 내린다. 이것은 적어도 사회학자들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학자는 적어도 가치 중립적인 분석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또 사회학자들은 사회 현상을 명확하게 분류하고자 시도하지도 않는다. 사회학자들은 규정화labeling 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범죄 또는 비정상으로서 규정되는 이유는 그것들이 아마도 사회에서 이상한unusual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이 다른 사회에서는 실제로 정상적인 행동일 수 있다. 따라서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을 규정하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한다. 고대 사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회와 문화에서는 아주 최근까지도 게이gay가 되는 것은 일종의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현재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더 그렇다. 따라서 섹스 활동은 시대times에 따라서 정상이거나 비정상이 될 수 있다. 사실, 사회학자들의 임무는 정상적인 섹스활동과 비정상적인 섹스활동을 분류하여 개념화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학자들이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왜 사람들은 어떤 섹스 행위를 정상이라고 부르고 다른 섹스 행위를 비정상이라고 부르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왜 특정한 섹스 행위는 용인하면서도 다른 섹스행위는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가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뒤르켐을 이은 사회학자들이 연구해야하는 것이다. 뒤르켐은 비정상이 어떻게 뱔전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미 지적했듯이, 뒤르켐은 사회가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 이전할때 병리가 등장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뒤르켐은 병리를 사회적 맥락에서 파악하였다. 당시 1890년대 말 1900년대 초, 뒤르켐은 보르도에서 파리로 이동하는 중에 신Sin에서 온갖 사회 병리학적 징표들을 보게되었다. 알콜중독과 노숙자homelessness, 매춘과 절도 등 여러 범죄들은 2-30년 전의 프랑스 농촌rural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매우 드물었던 현상이었다. 뒤르켐은 비정상적이거나 병리적으로 보여지는 거대한 현상에 직면하면서 그것은 기게적 유대에서 유기적 연대로의 이전이 빚어낸 병리현상이라고 보았다. 병리는 두가지 상이한 뿌리를 갖고있다. 첫째, 병리는 일반적 의미로서 규범의 부재absence of rules이다. 이것이 바로 아노미anomie이다. 둘째, 재미있게도, 병리pathologies는 실제로 고도로 발전된 노동분업에서 과잉규제overregulation로 인하여도 나올 수 있다. 이것은 매우 놀랄만한 점이다. 보통, 우리는 맑스의 소외 이론과 뒤르켐의 아노미이론을 대립counterimpose시켜서 본다. 뒤르켐은 사회 규제가 부족하다고 불평한다. 반면에 맑스는 사회 규제가 너무 많다고 불평한다. 사실, 맑스와 뒤르켐은 서로 그렇게 많은 차이는 없다. 뒤르켐은 맑스의 소외 개념에 대해서 매우 민감했다. 뒤르켐은 그 소외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근접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 규범의 부재로 인한 병리
재미있게도, 노동분업은 연대의 근거source of solidarity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반-직관적counter-intuitive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연대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동체에서 비교적 유사한 구성원들이 동일한 가치, 제도, 기준을 공유하면서 연대 감정을 통하여 형성된다. 그러나 도시 구성원들은 매우 다양하고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이방인처럼 자신들의 가치관만 고집한다. 그들은 때때로 공공의 가치조차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도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촌락을 떠나서 거대하고 죄많은sinful도시에 들어왔으나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들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그들은 절도가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몸을 파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므로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잡혀가지 않았으므로 자신들도 잡혀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러한 비정상적인 행동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시 환경의 비유사성 속에서 그 사람들은 연대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정관념stereotypes은 사람들은 도시산업사회에서 연대를 이룰 수 없다는 선입견이다. 고정관념이란 원래가 그렇다. 이를테면, 뉴욕에서는 빈민들이 길거리에서 죽어가고, 행인들은 죽어가는 사람 위를 넘어간다고 생각한다. 뉴욕 사람들은 너무 매정해서 사람이 거리에서 죽어가더라도 자기 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 타임스 광장Times Square에 어떤 사람이 아파서 쓰러져있다면 행인들은 그에게로 달려가서 상태가 어떤지를 묻는 것이 보통이다. 어쨌든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이 도시에 괸한 고정관념이다. 도시사회의 익명성anonymous, 다양성, 고도의 노동분업성 속에서 실제로 연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수수께끼이다.

+ 병리적 형태들

+ 1: 위기와 계급투쟁
재미있게도, 뒤르켐의 병리 아이디어는 맑스와 매우 유사하다. 먼저, 제도 내에서 위기가 찾아온다. 이어서 계급투쟁이 점차 증가하게 된다. 이 계급 투쟁class conflict은 병리적이다. 이것이 뒤르켐의 포인트이다.

+ 2: 노동 분업의 분화와 과잉특화
이것은 맑스 후반기와 다르지 않다. 노동 분업은 지나치게 과잉될 수 있고, 너무 심한 노동 분업은 병리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 3: 규제 결핍, 아노미
이것은 뒤르켐의 독특한 점이다. 병리는 규범의 결핍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뒤르켐은 이것을 아노미라고 불렀다.

+ 노동분업은 연대의 근거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대체로, 노동분업은 사회적 연대를 창조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우리는 노동분업이 사회적 연대를 창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회적 연대가 병리 현상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라고 하였다. 또 뒤르켐은 의학적 비유를 하면서 "병리학은 생리학을 보조ancillary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병리학은 사회 생리학physiology of society로부터 출발한다. 보통, 병리학과 생리학은 동일하게 병리적 현상을 연구한다. 이것이 병리에 관한 뒤르켐의 포인트이다. 어떤 면에서 뒤르켐의 노동분업은 병리 문제에 대한 독특한 방법론으로 보인다.

재검토

+ 병리 1: 위기와 계급 투쟁
계급 투쟁은 병리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가. 뒤르켐은 말하기를 "노동이 점차적으로 분화되어감에 따라서 상업적 위기, 파산, 그리고 노동과 자본사이의 적대가 발생하게 되고, 이러한 갈등은 계속해서 더 자주 일어나게 된다."고 하였다. 또 뒤르켐은 말하기를 "전통적 사회의 기계적 연대 속에서 계급갈등은 드물고 이상한 것이었다." 라고 하였다. 알다시피, 오늘날 계급갈등은 그렇게 이상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뒤르켐은 근로계급working class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말하기를 "근로계급의 일부는 자신의 지위status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착취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고도로 분화된 노동분업은 타자의 부재in absence of others로 인하여 심한 계급갈등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계급투쟁은 고도의 노동분업으로 인한 병리 현상이다.

+ 병리 2: 노동분업은 분화되고 과잉특화된다.
뒤르켐은 맑스의 <파리 원고Paris Manuscript> 접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맑스의 <파리 원고>는 뒤르켐이 타계한지 14년이 지나서야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매우 재미있게도, 뒤르켐은 말하기를 "개인은 지나친 노동분업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고유한 활동 안으로 고립되어갈 것이다. 그 개인은 더이상 동일한 목표를 위하여 협력하는 조력자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그는 공동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잊어버릴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정말 놀랍다. 뒤르켐은 <파리 원고Paris Manuscripts>가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맑스의 소외론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분명, 이것은 맑스의 소외론에 가까운 것이지만 헤겔의 소외론과 가까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뒤르켐은 소외 병리의 뿌리를 과잉된 노동분업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시장, 과도한 경쟁이 병리현상을 초래한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점이다. 그런데 뒤르켐은 대수롭지 않게 이 점을 종종 건너 뛰었다.

+ 병리 3: 규제의 결핍: 아노미
아노미는 매우 중요하고 독특한 뒤르켐의 업적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병리는 규제의 결핌lack of regulation으로부터 초래될 수 있다. 알다시피, 규제의 결핍이란 아노미를 말한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사회생활에 반드시 투쟁이 없을 필요는 없다." 라고 하였다. 투쟁은 그 자체로in itself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유기적 연대의 역할은 경쟁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완화moderate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애덤 스미를 상기시킨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공감설sympathetic theory of human nature을 주장하면서 무제한적인 경쟁과 이기적인 행동은 옳지않으므로 우리는 타자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타자로부터 인정받고자 투쟁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 뒤르켐과 애덤 스미스 사이의 유사한 점이다. 뒤르켐은 매우 중요하게 말하기를 "노동분업의 발전은 경쟁완화를 위한 규제화regulatory process를 정립하지 못했고 또 노동분업의 분화는 경쟁완화 규제와 관련이 없다."고 말하였다. 뒤르켐의 포인트는 규제가 불충분하다는 것으로서, 규제가 아예 없든지 규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노동 분업이 연대를 창조하지 못하는 것은 인체 장기organs들이 서로 규제regulated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아노미이다." 라고 하였다. 뒤르켐의 포인트는 사회적 체질social context이었다. 사회적 체질로 볼 때 아노미는 경험적인 좌표점empirical reference point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농촌의 젊은이가 기차를 타고 가르 라자Gare Lazare, Saint Lazare에서 내린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파리의 거리를 활보한다. 이 죄로 가득찬 파리에서 그들은 곧 자신들을 잃어버리면서 촌락의 가정에서 배웠던 가치시스템이 갑자기 붕괴되는 것을 보게된다. 그들은 촌락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사이좋게 지냈고 또 공동체의 법을 위반하면 그 즉시 처벌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잘못을 저지르면 소문gossip이 순식간에 퍼질 것이고 엄마와 아빠는 아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정확히 알았다. 그러나 이제 아들은 파리에 있다. 누구도 아들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 아들도 타인들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도시는 분명 자유의 세계처럼 보일지 모른다. 아들은 이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촌락에서라면 아들이 파트너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왜냐하면 소문이 곧 아들의 약혼자와 그녀의 부모에게 즉시 전달되고 스캔달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들은 불미흐Boul'Mich 거리를 거닐면서 뭐든지 할 수 있다. 아들은 어느 누구의 손도 잡을 수 있고 누군가와 키스할 수도 있다. 아무도 아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것이 문제이다. 사람들은 사회 속에 들어가서 그 속에서 자신을 상실lost한다. 이것이 아노미이다.

+ 아노미 개념
그럼, 아노미의 개념을 살펴보자. 뒤르켐의 아노미 개념과 맑스의 소외개념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있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노동 분업은 근로자를 기계의 역할로 축소시킬지도 모른다. 그 근로자는 어느 작업단게에서 자신이 필요한지 의식하지 못하고 또 그것을 자신의 목표와 연계시키지 못한다. 매일 그는 단순하고 똑같은 움직임을 반복하지만 그것에 대한 어떤 이해도 갖고있지 못하다." 고 하였다. 얼마나 재미있는 말인가. 기준과 가치의 결핍은 곧 가치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온다. 이것이 뒤르켐의 포인트이다. 그럼, 아노미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아노미문제는 기준 시스템의 교정을 통하여 가치 시스템을 변화시킴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아노미는 노동 분업의 필연적인 결과는 아니다." 라고 하였다. 뒤르켐의 포인트는 아노미는 노동 분업의 강제와 노동분업의 과잉에서 나온다는데 있다. 집단양심collective conscience의 속성 중에는 절제moderate도 있다. 절제 노동분업의 경쟁과 관련된 속성이다. 사실, 노동 분업화 된 문화적, 법적, 도덕적, 윤리적 장치들이 적절하게 제자리를 찾는다면 노동분업은 아노미를 생산하지 않을 것이다. 아노미는 그런 적절한 장치들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할 것이다. 재미있게도, 뒤르켐은 말하기를 "나를 로맨틱하게 보지 말라. 소년소녀들이 기차를 타고 파리에서 하차할 수밖에 없는 그런 촌락 공동체는 이상화되어서는 안된다." 고 하였다. 또 뒤르켐은 말하기를 "나는 소년소녀들을 다시 촌락 공동체로 되돌려 보내고 싶지않다. 나는 유기적 연대에서 기계적 연대로 되돌아 가는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환경이든지 유기적 연대에는 병리적 결과가 따르게 마련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적절한 처방를 찾아야 한다. 적절한 약의 배합cocktail of drugs을 통하여, 우리는 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고 하였다. 이것이 뒤르켐의 아노미에 관한 중심 아이디어이다.

+ 병리 현상은 과잉 규제와 강제된 노동 분업에서 나온다.
보통, 규제과잉과 강제된 노동분업은 간과되어왔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보라, 사회적 병리현상은 과잉규제와 강제된 노동분업으로 인하여 초래되기도 한다." 고 하였다. 이것은 이미 <노동분업labour division in society>에 나와 있는 것이지만, 주요 출처는 <노동분업>의 제 2 서문second introduction 이다. 사실, 뒤르켐의 <노동분업> 첫 판은 정치적으로 너무 보수적이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때문에 뒤르켐은 두번째 판 제 2서문을 쓰게되었던 것이다. 정말 뒤르켐에 관심이 있다면 <노동분업> 제2판의 서문을 읽어라. 거기서 뒤르켐은 아노미 문제를 진보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또 유기적 연대사회로서 현대사회의 계급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사실, 사회학자들은 뒤르켐의 주요 아이디어는 <노동분업>의 제 2판에 다 있다고 하면서 직업적으로 연대한다. 사회학자들은 직업적인 조직안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연대성을 확인한다. 뒤르켐에 따르면 선한사회good society란 직업적 조직이 다양하게 진화해나갈 때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직업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강한 직업적 정체성과 연대적 자세를 갖추게 된다. 이것이 뒤르켐의 포인트이다. 재미있게도 이 아이디어는 매우 급진적이 되어버렸다. 보통, 직업조직은 시장에 다소 독립적이므로 시장을 혼란하게 하지않는다. 사실, 직업조직이 효과적이기만 한다면 시장과 함께 망가지지는 않는다. 재미있게도, 미국의료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는 망가졌다mess up. 왜냐하면 그 노동조합은 의사들의 이익을 편파적으로 과잉 대표했기 때문이다. 뒤르켐은 <노동분업> 제 2판에서 말하기를 "병리는 과잉규제 또는 강제된 노동분업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고 하였다. 한편 뒤르켐은 또 다른 개념인 운명론fatalism을 소개하였다. 현대사회에는 두가지 상이한 병리가 있다. 그 하나는 기계적 유대에서 유기적 유대로 이전하면서 초래되는 공통 가치의 부재, 즉 아노미가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그것과는 반대로 지나친 과잉규제이다. 사람들은 과잉규제로 인하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운명주의fatalism에 빠지게 된다. 아노미란 당신이 "어떤 것도 가능하다. 나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다."라고 말할때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고 말할 때는 필사적이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운명주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어떤 통제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일어난다. 자신이 지나치게 규제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운명론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과잉규제되었으므로 자신이 할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때문에 어떤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3. 아노미, 소외, 그리고 탈마법 사이의 비교

맑스, 베버, 뒤르켐의 아이디어들을 비교해 보자. 뒤르켐은 결론적으로 "보라,  현대사회의 독특한 병리현상에 대한 나의 성과는 아노미 이론이다. 현대사회로의 이전과정에서 우리는 일시적으로 규범의 부재absence of rules에 직면하게된다. 그러나 이것은 곧 회복될 수 있다. 왜냐하면 적절하게 완화된 경쟁과 노동분업은 실제로 매우 높은 수준의 연대를 창조하지 못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뒤르켐이 <노동분업> 제 2판에서 소개한 기계론은 전문직업조직professional organization의 창출에 관한 것이었다. 사회는 사람들을 그러한 전문직업 공동체에 할당해야한다. 그 사람들은 촌락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직업적인 공동체 속에서 연대 아이디어와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전문직업조직이 아노미의 해결을 위한 일종의 결론이다. 뒤르켐은 맑스가 언급했던 계급투쟁과 착취 등의 문제에 민감했다. 뒤르켐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계급투쟁을 초래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근로계급은 자신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근로계급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지위에 불만족한다. 뒤르켐은 이것이 문제라고 하면서도 착취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뒤르켐은 노동의 과잉분업은 일종의 소외를 창조한다고 하였고 과도한 규제는 마음의 병리 상태인 운명주의를 창조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뒤르켐의 중대한 업적은 이미 언급하였듯이 사회의 불충분한 규제insufficient regulation, 즉 아노미이다. 아노미 이론은 뒤르켐의 독특한 업적이다. 이미 보았던 것처럼 맑스의 소외론은 뒤르켐의 운명론과 같은 것이다. 운명론은 과도한 규제로부터 나온다. 그럼, 뒤르켐의 아노미를 베버의 탈마법disenchantment 개념과 비교해보자. 마법의 성의 상실loss of the enchanted garden이란 다름아닌 현대적 상황아래 놓여있는 인간 조건의 느낌 또는 감정이다. 베버의 마법magic의 상실은 맑스의 소외론이나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과 동일시될 수 있다.. 마법의 상실이란 어떤 면에서 춤dance을 비롯한 모든 면의 관계들이 도구적 관계로 전환된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게오르크 루카치의 아이디어와 매우 유사하다. 루카치는 맑시스트로서 물화reification이론을 개발했다. 반면에 베버는 현대성의 문제점을 탈마법 이론으로 개발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우리는 마법의 성을 잃어버린 후로, 너무 이성적이고, 너무 냉정하고, 너무 도구적이 되어버렸다. 그때 루카치는 헤겔로부터 맑스로 전향하면서 물화이론을 개발하였다. 당시 베버와 루카치는 하이델베르크에 살고 있었는데 게오르크 루카치는 20대의 젊은이었다. 루카치는 베버의 집에 자주 방문했었다. 왜냐하면 마리안느 베버가 살롱을 운영하였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루카치는 소외을  독특하게도 인간관계의 물화로 해석하였다. 반면에 베버는 소외를 생활의 도구화instrumentalization of life로 개념화하였다. 이것들은 분명히 아노미나 소외와는 구별되는 것이댜.

4. 인간 본성에 관한 이론

뒤르켐은 인간본성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했을까. 맑스와 베버사이에는 명확한 구별이 있다. 맑스는 주로 루소의 라인을 따라가면서도 더이상 자연상태의 개념을 믿지않게되었다. 19세기 중반에 자연상태의 개념은 지루해졌고 끝내는 폐기되고 말았다. 맑스는 인간본질과 관련하여 종적인 존재species being란 용어를사용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좋은essentially fine 존재이다. 따라서 여러 문제들은 사회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개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재미있게도, 이것은 맑스가 정확히 루소의 영감을 받은 것이다. 맑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선했지만 사회에서 타락했다. 어떤 면에서 맑스는 루소를 넘어섰다. 왜냐하면 루소의 숭고한 야만인noble savage은 사회로 옮겨져서 양육되어야할 개인 야만인이기 때문이다. 맑스는 이 점에서 루소와 차이난다. 맑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사회에서 태어났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의 본성은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선할 뿐만아니라 사회적이다. 우리를 타락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이고 또 우리을 서로 경쟁하도록 하고 서로 죽이도록 하는 것도 사회이다. 이러한 맑스의 인간 본성론은 홉스와는 정확히 정반대되는 것이고, 루소의 인간 본성론을 상당히 능가하는 것이다. 한편 뒤르켐의 인간 본성론은 실제로 홉스와 상당히 가깝다. 왜냐하면 뒤르켐은 사회 병리는 사람들에 대한 통제의 진공 상태로부터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통제가 아니될 때, 그때 바로 범죄, 자살, 매춘 등이 시작된다. 따라서 뒤르켐은 인간본성에 대하여 회의적skeptical 이었다. 뒤르켐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통제되지 않는한 악행evil을 저지를 수 있다. 이것이 뒤르켐의 인간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아이디어이다. 마지막으로, 뒤르켐은 사회에는 개인들 스스로 적절한 가치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원문,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2012년 3월 4일 일요일

11-1. 뒤르켐: 사회적 연대의 유형

1. 역사적 맥락에서 본 뒤르켐

뒤르켐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미 맑스와 베버가 두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에밀 뒤르켐 또한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청년 뒤르켐Durkeim은 기능주의자functionalist이면서 실증주의자positivist였지만 후일에는 인식론적 전환epistemological turn을 통하여 문화분석가cultural analyst가 되었다. 재미있게도 뒤르켐의 그러한 득특한 면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보통 저자들은 복합적인 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뒤르켐의 초기 작품들은 이미 문화주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사실, 뒤르켐은 말년에 <종교생활의 기본 형태Elementary forms of a religious life>에서 자신의 사회학 방법론을 드라마틱하게 전환하였다. 이것은 뒤르켐 자신의 개인적인 사생활과도 많은 관련이 있다. 뒤르켐은 유대인 랍비가정에서 성장하였고 랍비가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뒤르켐은 니체가 그랬던 것처럼 부모에 반항하고 아마도 무신론자가 되었던 것 같다. 그 후 뒤르켐은 더이상 활동적인 유대교 신자는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뒤르켐은 생애 후반기에 다시 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철학적이고 실존적 종교가로 변해갔다. 우리는 뒤르켐의 <노동분업Division of Labour in society>, 대작 <자살론Suicide>, 다소 어려운 <사회학적 방법론의 규칙Rules of Sociological Method>를 살펴볼 것이다. 잘알다시피, 뒤르켐은 미국 사회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가하였다. 먼저 청년 뒤르켐은 기능주의자로서 대충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그 충격은 사회학에 한정되었다. 반면에 맑스와 베버는 역사, 경제, 정치 등 광범위하게 충격을 주었다. 사실, 진정으로 사회학자라고 할만한 사람은 에밀 뒤르켐 뿐이다. 베버는 생애 후반기에 사회학자라고 할 만한 평가를 받았다. 에밀 뒤르켐은 분명 자신을 사회학자로서 인식했던 것같다. 한편 사회학, 경제학, 그리고 정치학 사이의 학과경계disciplinary boundary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확실히 정해졌다. 실제로 사회학이 강단과목으로서 완성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에밀 뒤르켐은 1858년 태어나서 1917년 타계하였다.

+ 뒤르켐의 생애
1858년 뒤르켐은 프랑스의 작은 도시인 Epinal에서 태어났다. 뒤르켐의 부친은 랍비였으므로 그 자신은 랍비가 될 예정이었다.

1879년 뒤르켐은 에꼴 노말 수페리에Ecole Normale Superieure에 입학하였다. 그 학교는 미국의 MIT같은 엘리트 학교였다. 뒤르켐은 이때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포기하였다.

1887년부터 1902년까지 뒤르켐은 보르도Bordeaux 대학의 교수였다.

1893년 뒤르켐은 학위논문 <노동분업Division of labour in society>을 출간하였다. 이책은 기능주의적인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

1894년 드레퓌스 사건Dreyfus Affair으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드레퓌스 사건은 당시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유럽에서 대단한 사건이었다. 1894년 유대인 드레퓌스는 독일 스파이라는 명분으로 기소되고 수감되었다. 프랑스 지식인들은 이것을 반-유대적인anti-Semitic 판결이라고 보았으므로 들고일어났다. 당시 유명한 작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프랑스 일간신문에 기고하였다.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J'accuse>에서 프랑스의 사법부를 반-유대주의적이라고 비난하였다. 뒤르켐도 그 판결에 항의하면서 다른 저명한 프랑스 지식인들과 합세하였다. 후일 드레퓌스는 결국 무죄로 판명되었고 나중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Knight of Legion of Honour를 받았다. 잠시나마 프랑스 반-유대주의는 해피엔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차 대전으로 나찌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상황은 뒤바뀌었다. 프랑스인들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반-유대주의에 그렇게 무죄innocent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많은 프랑스인들이 나찌에 협력하였기 때문이다.

1895년 뒤르케임은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The rules of sociological method>를 출간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실증주의적인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1897년 뒤르켐은 <자살론Suicide>를 썼다. 이 책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살론>은 최초로 시도된 경험적 사회과학empirical social science이었기 때문이다. <자살론>에서는 자살과 같은 매우 드물고 이상한 현상에도 사회적 결정인자social determinants가 적용될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조사되었다. 운좋게도 자살률이 높은 나라에서도 자살은 드문 현상이다. 그러나 뒤르켐은 매우 조심스런 경헙적 분석들을 제시하면서 충격적인 이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1902년 뒤르켐은 파리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파리대학은 에꼴 노말 수페리에 만큼 유명하지 안았다.

1915년 뒤르켐은 자신의 가장 성공작인 <종교생할의 기본 형태The elementary forms of religious life>를 발표하였다. 뒤르켐은 이 작품에서 자신의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1917년 뒤르켐은 파리에서 타계하였다.

+  <노동분업Division of labour in society>의 주요 내용
이 책 <노동분업>은 실제로 뒤르켐의 박사학위 논문이었다. 재미있게도, 보통 학자들은 학위논문이 자신의 유일한 책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뒤르켐은 논문이외에도 좋은 책들을 많이 발간하였다. 뒤르켐은 몽테스키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실 뒤르켐의 이론은 매우 프랑적인 몽테스키와 루소에 뿌리박고 있다. 뒤르켐은 루소도 동경하였지만 몽테스키외야말로 진정한 영감이었다. 뒤르켐은 몽테스키외가 했던 것처럼 사회발전을 측량하기 위한 도구로서 법을 이용하였다. 뒤르켐은 법과 법제도를 이용하여 노동분업의 발전단계와 사회진화를 전개하였다. 알다시피 맑스는 희소한 경제적 자원을 둘러싼 경제적 갈등과 투쟁으로서 역사발전단계 이론을 전개하였다. 베버와 니체는 권력을 향한 투쟁을 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뒤르켐의 포인트는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에 있었다. 재미있게도, 맑스와 베버는 갈등 이론가들이다. 맑스와 베버는 무엇이 사회를 붕괴시키는지를 분석하였다. 반면에 뒤르켐은 무엇이 사회를 통합시키고 우리들을 결집시키는지, 또 왜 사회는 분열되지 않는지를 분석하였다. 뒤르켐은 <노동분업>에서 연대 유형type of solidarity을 두가지로 분명하게 나누었다. 그것은 기계적mechanical 연대와 유기적organic 연대이다. 우리는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에 대하여 장황하게 다룰 것이다. 이 연대 유형은 역사발전의 정도를 가늠하는 사회진화의 유형학typology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맑스의 생산양식, 즉 노예제로부터 봉건제 그리고 자본제로 전환해가는 방법론에 익숙해졌다. 또 우리는 베버의 전통적 지배와 법-합리적 지배의 방법론도 살펴보았다. 뒤르켐의 대안alternative적 방법론은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에 있다. 어떤 면에서 베버의 전통적 지배는 뒤르켐의  기계적 유대에 해당한다. 또 맑스의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들pre-capitalist formations은 기계적 유대에 해당할 수 있다.  그리고 법-합리적 지배의 현대 자본주의는 유기적 연대에 해당할 수 있다. 한편, 뒤르켐은 노동분업의 병리적 형태들pathological forms을 구별하고 정의하면서 이러한 병리현상을 아노미anomie라고 불렀다. 뒤르켐의 아노미 아이디어는 맑스의 소외 아이디어나 베버의 탈마법화disenchantment아이디어와 유사하다. 물론 그것들 사이에는 중요한 치이점 있다.

+ <자살론Suicide>
뒤르켐은 <자살론 >에서 최초로 엄밀한 경험적 방법을 통하여 사회현상을 분석하였다. 개인의 행동은 사회와 관계를 갖고있는가. 당신은 목숨을 포기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현상이 정말로 당힌자신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뒤르켐은 개인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는 사적인 행동에서도 예측 가능성과 사회적 결정인자social determinants가 있다고 말하였다. 뒤르켐은 자살의 유형을 아노미적anomic 자살, 이타적altruistic 자살, 이기적egoistic 자살, 운명적fatalistic로.구별하였다.

+ 뒤르켐의 방법론
뒤르켐은 몽테스키외와 같이 방법론적 집단주의자methodological collectivist였다. 홉스, 로크,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맑스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와 방법론적 집단주의 사이의 중도halfway에 놓여있다. 뒤르켐은 혁명적인 의식이론가revolutionary consciousness로서 방법론적 집단주의자였다. 사실, 뒤르켐의 '집단적 양심collective conscience' 개념은 맑스의 계급 의식class consciousness 아이디어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맑스의 계급 의식은 근로자들 각 개인들의 의식의 총합sum total이 아니었다. 그러나 맑스는 착취이론theory of exploitation에서 애덤 스미스나 존 스튜어트 밀과 거의 같은 선상에 있었다. 맑스는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self-interested rational individuals을 가정하여 착취이론을 전개하였다. 베버는 이들과 같은 선상에 있느가. 이것은 어려운 문제이지만 확실히 베버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의 중도자였다. 그러나 베버는 생애 후반기에 방법론적 개인주의자로 전환하였다. 반면에 뒤르켐은 일관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방법론적 집단주의자였다. 또 뒤르켐은 사회적 사실social facts 개념을 주장하면서 사회적 사실들은 엄밀한 경험적 방법론에 의하여 관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면에서 뒤르켐은 실증주의자였다.

2. <노동분업>의 주요 내용

뒤르켐은 <노동분업>에서 어떤 식으로 논증해 나아갔는가.  뒤르켐은 왜 하필 법laws으로부터 출발하여 사회 분석을 시도하였는가. 뒤르켐은 어떻게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를 나누었는가. 이것이 <노동분업>의 포인트이다. 뒤르켐은 방법론적 집단주의자로서 개인보다는 사회 탐구에 역점을 두었다. 뒤르켐은 몽테스키외와 같이 법은 집단 현상collective phenomenon이라고 믿었다. 뒤르켐에 따르면 법은 개인적인 견해나 의견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탐구되고 제정된다. 뒤르켐이 조어terminology한 '집단양심collective conscience' 은 개인 의식individual consciousness을 초월하는 상위개념이다. <노동분업>의 주요 포인트는 연대solidarity에 있다. 뒤르켐은 사회통합인자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개인은 제각기 다양하므로 사회는 분열되어야 마땅하다. <노동분업>은 산업화industrialization와 도시화urbanization가 급격하게 진행되고있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작품이다. 당시 사람들은 전통적인 촌락 공동체의 농부의 신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도시의 산업 노동자가 되기위하여 대도시로 밀려들었다. 전통적 질서가  더이상 개인들을 구속하지 못한다면 사회질서는 곧 붕괴될 것인가.  아것이 뒤르켕이 파악하고자 했던 포인트이다. 현대산업사회에서 개인은 무엇에 의하여 통합되는가. 뒤르켐은 그것을 연대solidarity에서 찾았다. 뒤르켐에 따르면 이 연대를 창조하는 것은 집단의식이다. 이 집단의식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루소의 일반의지general will 아이디어에서 유추된 것이었다. 이 뒤르켐의 집단의식은 맑스의 계급의식으로부터도 유추될 수 있다. 따라서 뒤르켐의 집단의식은 개인의식들의 총합sum total으로서의 의식이 아니다. 그 집단의식은 각 개인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하면서 사회집단을 생성시킨 공통된 기준norms, 신념beliefs, 가치values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 집단의식은 이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이 집단의식은 역사를 통틀어 통시적으로 존재하면서 법에 표상되었다. 따라서 법의 본성은 집단의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법은 시간에 따라 변해가지만 그 변화의 흐름은 매우 느리고 몇 세대가 걸린다. 뒤르켐의 아이디어는 매우 프랑스적이었다. 프랑스인들은 방법론적 집단주의자 성격이 매우 강하다. 반면에 앵글로-색슨Anglo-Saxons인들은 방법론적 개인주의자 성격이 강하다고 보겠다. 프랑스인들은 독일인들과는 다르게 매우 과학적이다. 왜냐하면 프랑스인들은 매우 과학자적인 속성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독일어에는 '과학적scientifique' 이란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인들이 과학자'Wissenschaftler' 라고 말할때 Wissen이란 지식knowledge을 말한다. 따라서 독일어로 과학Science이란 모든 지식을 포함한 것이므로 매우 폭넒은 개념인 것이다. 프랑스어나 영어에서의 과학은 자연과학 유형들 중의 특정한 과학을 말하는 것이다. 뒤르켐은 시회학이 자연과학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뒤르켐은 객관적 데이타를 통한 엄밀한 사회분석을 시도하였으므로 충분히 과학적이었다고 보겠다. 독일어의 과학자Wissenschaftler는 아이디어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포함한다. 독일어의 과학은 훨씬 더 넓은 개념인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학자 뿐만아니라 인문학humanities과 이이디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자도 과학자이다. 홉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는 자는 과학자Wissenschaflers이다. 보통, 아이디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자를  가리켜 과학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에 대한 개념적으로 확실한 용어는  인문학자humanities자이다. 그러면 사회학은 과학인가. 실제로 과학자들은 사회학자들에게 묻기를 "사회과학이라고? 사회과학은 무엇이냐? 당신이 말하는 과학은 무엇이냐?" 라고 말한다. 경제학 전공자들은 경제학이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칠판 가득 방정식을 채움으로써 경제학이 과학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과학자는 안심relax할 수 있다. 보다시피, 나는 칠판에서 단 하나의 방정식도 써놓지 않았다. 사회학은 정말로 과학인가. 어쨌든 뒤르켐은 엄밀한 분석을 시도했다는 면에서 매우 과학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뒤르켐의 집단의식은 사회의 평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신념과 감정들의 총합totality of beliefs and sentiments과 관련되어있다는 것은 이미 언급하였다. 뒤르켐에 따르면 집단의식은 스스로 고유의 생명력a life of its own을 지닌 결정적 시스템a determinate system을 창조한다. 이것이 과학자로서의 뒤르켐이 말하는 집단의식의 과학적 기능이다. 집단의식은 분명 개인의식consciousness of individuals과는 다른 것으로서 집단의식은 개인 안에서 실현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뒤르켐은 개인들에게관습과 가치customs and values를 질문하고 이 자료들을 모아서 패턴을 분석하는 조사연구방법을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뒤르켐은 이런 식으로 조사연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뒤르켐은 이런 조사연구를 찬성했으리라 본다. 물론 뒤르켐은 이러한 개방적 조사연구 가능성으로 인하여 미국의 1930년대와 40년대 그리고 50년대의 영향력있는 사회학자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미국의 사회학은 매우 실증주의positivist적이고 경험적empirical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단양심(의식)을 가장 명백하게 표상하는 것은 법과 아마도 언어이다.

3. 전-현대 사회pre-modern society와 현대 사회의 법 차이점

전-현대pre-modern사회의 법과 현대 사회의 법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제 뒤르켐은 기계적연대와 유기적 연대를 구별하여 주장하였다.

+ 전-현대 사회의 법: 억압적repressive, 형사적penal
뒤르켐은 전-현대pre-modern 사회에 존재했던 법은 주로 억압적이고 형벌적이라고 하였다. 전-현대 사회의 법의 목적은 악행evil behaviour를 처벌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악행이란 무엇인가. 당시 사람들은 무언의 동의로서 악행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전-현대사회의 법은 엄하게 개인을 처벌함으로써 공격적 행동의 재발을 방지하였다. 이것이 전-현대 사회의 법 제도legal system 였다.

+ 현대 사회의 법: 보상적restitutive, 민사적civil
그러나 현대modern 사회의 법 제도는 매우 다르다. 현대 사회의 법 제도는 게약contract에 기초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현대 법 제도의 핵심은 게약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 법이 형법전penal code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형법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새로운 계약법이 생성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대의 계약법contractual law은 그 성격이 보상적restitutive 이다. 왜냐하면 계약법은 더이상 악행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계약을 위반함으로써 초래된 손해를 타 당사자에게 단지 배상한다. 뒤르켐에 따르면 계약법은 현대시대modernity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법이다. 아마도 맑스는 이 계악법는 자본주의와 함께 출현한 새로운 법 제도라고 말했을 것이다. 또 베버는 계약법은 법-합리적 지배의 핵심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 왜 법이 문제인가
뒤르켐은 왜 법을 조사했는가. 뒤르켐에 따르면 법제도는 확실히 집단의식을 표상하는 최선의 유일한 근거 measure이다. 잘알다시피, 집단의식은 매우 업밀하고 객관적으로 조사되어야한다. 법률서적과 법 실무legal practice, 재판 기록, 법 제정 , 법 실행에 관한 조사는 대단한 엄밀성을 요구한다. 예를들어, 계약법이 정말로 새로운 형태의 법인지를 조사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법 역사에 관한 자료들은 계약법이 정확히 언제 등장했는지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 베버는 자신의 법학박사 학위논문에서 계약법의 등장을 중세말 이탈리아에서 찾았다. 재미있게도, 뒤르켐과 베버는 동시대헤 살면서도 서로 백안시했다. 뒤르켐과 베버는 같은 분야에서 있었지만 상대의 저작을 절대로 인용하지 않았다. 당시 뒤르켐과 베버는 모두 프랑스어와 독일어 구사하였고 학계의 거인들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많은 면에서 너무 가까웠고 또 서로 인용하기에는 너무 심한 경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뒤르켐은 베버의 부인인 마리안느 베버의 책을 리뷰했었다. 그러나 뒤르켐은 베버의 책에 대하여는 결코 그런적이 없었다. 당시 마리안느 베버의 결혼법에 관한 책이 뒤르켐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느지도 모르겠다. 베버는 종교에 대한 책을 쓰고 있었는데 종교는 뒤르켐의 중요 관심사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뒤르켐과 베버는 서로 외면했다.

4.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mechanical solidarity and organic solidarity
뒤르켐은 두 가지 연대유형을 제안하였다. 그것은 전-현대사회의 기계적 연대와 현대사회의 유기적 연대이다.

+ 기계적 연대
기계적 연대는 전형적인 전-현대 사회의 연대유형이다. 기계적 연대는 분명 현대 사회의 연대유형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기계적연대는 유기적연대에 선행한다. 나는 45년 전에 뒤르켐을 읽으면서 처음 2 , 3년 동안 실수를 했었다. 나는 유기적 연대가 전-현대사회의 전형적인 연대유헝인 것으로 착각했었다. 기계적 연대는 부분들의 유사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기게적 연대는 형사법을 창조할 수 있었다. 형사법은 당사자 개인의 특수성을 구별을 하지않고 그룹의 동일성sameness of the group을 가정한다. 잘알다시피, 동일한 그룹 안에서 개인들은 서로 유사하다. 이것이 뒤르켐의 기계적 연대의 포인트이다. 반면에 유기적 유대는 사회적 개인의 차이성에 기초한다. 유기적 연대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노동분업에 의하여 창조된다. 뒤르켐에 따르면  '유기적organic' 이란 생물학적으로 유추analogy된 개념이다. 뒤르켐은 현대사회를 인간 육체에비유했던 것이다. 인간 육체의 장기들organs 사이에는 기능적인 차이점이 있다. 이것이 바로 유기적 연대의 포인트이다. 알다시피, 심장은 폐와는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폐는 심장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이것이 유기적 연대이다. 사회는 마치 생물체organism 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역사 초기에 사회는 부분이 상실된 기계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회는 기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즉, 그 사회는 간단한 기계였다. 이것이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뒤르켐은 기계적연대와 유기적 연대를 구별하여 사회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재미있게도, 뒤르켐의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는 베버의 전통적 지배와 법-합리적 지배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 당시 베버는 뒤르켐의 기계적 연대를 당대사회에도 적용하였다. 기계적 연대는 당대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베버는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를 결혼 상대자를 찾는 지표로 삼았다. 데이트 상대로는 누가 적당하고, 결혼 상대자로는 누가 적당한가. 때때로 우리는 자기자신과 유사한 상대방을 찾고자 한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당신들은 서로 오누이brother sister같다.''고 할 때가 있다. 만약 게이gay라면 "당신들은 형제같다." 라거나 " 당신들은 자매같다." 라고 할 수도 있다. 연인들은 서로 같아 보이거나 닮아 보일 수 있다. 보통, 우리는 지속적인 관계를 위하여 파트너를 고른다. 나는 나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똑같이 좋아하는  파트너를 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과 정반대일 수도 있다. 즉, 파트너는 유기적 연대의 논리에 구해질 수도 있다. 이릍테면, 당신은 자신을 보완해줄 파트너를 찾을 수도 있다. 나는 계산을 잘 못하므로 회계에 능한 파트너를 구할 수 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자신을 보완해줄 파트너를 찾게된다. 이것은 현대사회가 높은 수준의 노동분업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노동분업은 마치 육체의 장기의 기능과 같은 것으로서 개인은 자기의 일을 수행하면서 또 사회에 통합된다. 따라서 개인들은 서로의 유사성 보다는 차이성에 기초하여 서로를 보완하고 필요로 한다. 사실, 계약법은 그러한 유기적 연대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뒤르켐은 사회가 기계적 연대로부터 유기적 연대로 이전transition하는 데는 많은 혼란이 뒤따라온다고 하였다. 이러한 혼란이 아노미anomie이다. 사회가 기계적 연대로부터 유기적 연대로 이전하는 과정, 즉 전통적 사회로부터 현대 사회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우리 개인들은 가치 시스템의 붕괴를 경험하면서 아노미 상황에 이르게된다.






<참고문헌>

원문번역,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2012년 3월 1일 목요일

10-6. 베버: 계급이론

1. 베버의 계급이론 소개

베버는 맑스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계급이론가이다. 베버와 맑스는 여러모로 서로 충돌한다. 베버와 맑스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세 가지 이슈에서 서로 충돌한다. 잘 알다시피 맑스는 계급을 재산관계property relationship와 동일시 하였다. 계급 이분법dichotomy은 자본을 소유한 자와 노동력만 소유한 자 사이를 나눈다. 그러나 베버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계급을 시장에서의 시장상황으로 정의한다. 베버의 계급관계는 고용주employer와 고용인employee 사이의 관계이고 또 매니저와 근로자 사이의 관계이다. 따라서 맑스가 말한 소유자owner와 노동력 보유자possessor사이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맑스는 말하기를 ''모든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라고 강조하였다. 이렇듯 맑스는 모든 인간 역사를 총괄하는 계급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맑스와는 대조적으로 베버는 매우 구체적으로 계급이론을 전개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계급은 단지 현대사회에 등장한 현상이라고 강조하였다. 계급은 오직 시장경제, 즉 시장자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등장했다고 하였다. 베버는 자본주의-이전 사회pre-capitalist society에서의 계층stratification은 계급에 기초하지 않았고 오로지 신분status에 기초하였다고 강조하였다. 또 베버와 맑스사이에는 중요한 정치적 차이점이 있다. 맑스는 계급투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점 더 강도가 심해진다고 하였다. 종속된 계급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키고 결국엔 자본주의를 전복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베버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베버는 계급투쟁은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가장 심하다고 하면서 자본주의가 굳건해consolidated지고 관료화 되어짐에 따라서 계급투쟁은 실제로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이 베버와 맑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한편 베버의 게급이론은 영국의 사회학자인 런시만Runciman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해석되었다. 런시만은 현재 살아있고 여전히 활동하고있다. 런시만은 베버의 계급이론을 사회 불평등의 세가지 차원three dimension of social inequality으로서 해석하였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라. 베버와 계급에 관한 내용은 90퍼센트 이상 런시만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 런시만의 세가지 차원(신분, 계급, 권력)
런시만의 그 세가지 차원이란 무엇인가. 그 첫번째 차원은 신분status 또는 명성prestige 이다. 그리고 두번째 차원은 계급이다. 사실 계급class은 소득 또는 부wealth로서 정의되어진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차원은 권력power이다. 일반적으로 사회 계층은 이 세가지 차원들 중에 어느 한가지가 불평등하거나 또는 어느 하나 또는 모두에 특권화privileged 되어져 나타난다. 런시만은 베버의 계급이론을 대단히 경험적empirical인 연구과정을 거쳐서 개념화 하였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조사 연구는 이 세가지 차원의 바탕위에서 어떻게 조합이 되는 지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한편 게하르트 렌스키Gerhard Lenski는 노스 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대학의 명예교수였다. 렌스키는 신분 일관성/비일관성status consistency/inconsistency이론을 개발하였다. 이 아이디어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 세가지 차원 중에 어느 한 가지 차원이 높을 수 있고 다른 차원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 예를들어서 당신은 사회학 교수이다. 당신의 명성은 상당히 높아서 적어도 평균 이상이다. 더군다나 당신이 예일 대학의 교수라면 적어도 평균보다 높은 명성을 지니게 된다. 아마도 평균 보다 훨씬 더 높은 명성를 지니게 될지도 모르겠다. 예일대학의 교수인 당신은 소득과 관련하여 평균보다 약간 높은 월급을 받는다. 그리고 권력 위계상in hierarchy 매우 낮은 권력을 지니고 있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어느 누구도 사회학 교수의 말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사회학과 교수들은 어쩌다가 학생들이 사회학 걍의를 수강하게되면 그때가 유일한 권력행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최고 법원Supreme Court의 판사라면 당신의 명성은 지극히 높을 것이고 적어도 명성에 있어서 미국에서는 최고의 위치에 있다. 미국에서 가장 명망있는 직업은 무엇인가. 그 답은 분명히 최고법원의 판사일 것이다. 하지만 최고법원 판사는 소득과 관련하여 연봉은 그렇게 상당하지 않다. 최고법원 판사는 아마도 대학의 교수 만큼 급료을 받는다. 공공 서비스 분야에 일하는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많은 급료를 받지 못한다. 아마도 각 주의 주지사governor of state들은 대학교수 만큼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주지사는 권력 위계상 대단히 높은 위치에 있다. 최고법원 판사도 권력 위계가 매우 높다. 최고법원 판사들은 미국 대통령을 지명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농담이다. 마피아를 생각해 보라. 대부godfather의 명성은 마피아 세계의 밖에서는 매우 낮고 사람들은 그 대부를 범죄자로 여긴다. 하지만 대부들은 소득과 관련하여 정상급이다. 대부들은주로 마피아 세계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국내의 일반적인 권력이 아니다. 당신은 이제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렴푸시나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신분, 계급, 권력은 각각 세가지 차원을 측정하는 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은 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결정화crystallized 되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는 자는 또한 높은 소득과 높은 권력을 가진다. 이를테면 마루를 청소하는 자는 매우 낮은 명성과 낮은 소득과 낮은 권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회를 상-상upper-upper계급과 하-하under-under계급으로 계층화stratify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오늘날 베버의 이론은 보통 이렇게 사용되고 있다. 나는 이 이론을 논박하고자 한다. 앤쏘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나와 뜻을 같이 하고 있다. 나는 베버가 주장한 계급과 신분의 구별은 사실 역사적인 구별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연히도 런시만은 영어권의 학자로서 신분status 개념을 기든스가 해석하는 방식과 동일하게 해석한다. 당신이 독일어를 조금 안다면 그리고 베버를 독일어로 읽는다면 지위status는 실제로 독일어의 슈탄트stand에서 번역한 것이다. 슈탄트stand는 영어의 스테튜스status로서 번역될 수 있지만 그렇게 좋은 번역이 아니다. 더 나은 번역은 신분estate이겠다. 당신이 슈탄트stand를 신분estate으로 번역하면 베버가 제안하고자 하는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신분 계층화status stratification는 실제로 현대사회의 현상인 계급 계층화class stratification와 분명히 구별되는 고풍스러운 개념이다. 바로 이것이 베버에게서 보게 될 중점 포인트 중에 하나이다. 그러면 세번째 차원인 권력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신분과 계급은 역사적 범주categories안에 있었다. 그러면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런시만의 아이디어에 매료되었다. 런시만은 베버를 재미있게 해석하였다. 시실 권력을 계급에서 독립된 차원에 위치시킨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나는 공산주의의 사회구조를 이해하면서, 사실 공산주의자들의 권력은 독립된 차원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베버의 <경제와 사회Economy and Society>를 두 세번 읽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세번째 차원인 권력을 발견하지 못했다. 여러분들도 한번 읽어 보라. 권력은 거기에 없다. 나는 베버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이해하고자 시도하던 중에 마침내 결론에 이르렀다. 베버에게 있어서 권력은 종속변수dependent variable였다. 베버는 권력의 기원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권력행사가 계급 특권class privilages에 기초한 것인지 아니면 지위 또는 신분status type or estate type에 기초한 것인지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막스 베버와 다른 것이 없다. 베버는 지배유형들에 관하여 여러가지를 주장하였고 이제 권력의 기원에 대하여 논박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이 권력을 합법화legitimate 하는가. 그 권력은 전통적인 지배인가, 아니면 법-합리적 지배인가. 물론 계급 계층화class stratification는 법-합리적 지배 사회에서 가능하다. 반면에 신분 계층화status stratification는 전통적 지배 사회에서 가능하다. 베버는 또한 자신의 지배유형을  일석이조화 하고자하였다. 베버는 계층화의 역사적 변수에 대한 거시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베버에 따르면 전통적 사회로부터 현대의 법-합리적 사회에로의 이전transition은 신분계층화estate type of stratification로부터 계급계층화으로 이전하는 것과 같다. 또한 베버는 계층화의 역사적 변수와 관련하여 미시이론도 가지고 있었다. 베버는 말하기를 "좋다. 오늘날 사회는 주로 계급 계층화되었지만 나는 현대사회에서 신분 권력status power 또한 밝혀낼 수 있다." 고 말하였다. 이것은 베버가 지배유형을 다루면서 했던 것과 똑같다. 오늘날 미국은 법-합리적 지배제 사회이다. 그러나 미국은 전통적 지배제의 요소 또한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서 카리스마적 지배제의 요소들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은 지배 유형상 법-합리적 지배제이므로 전통적 요소들이나 카리스마적 요소들은 부차적secondary인 것이다. 법-합리적 지배제의 독특성과 차별성은 바로 법laws에 있다. 그렇지만 이 미국사회에서도 전통은 차이와 독특함을 창조한다. 이것은 우리가 생활하는 이 사회에 필연적consequential 이다. 전통적 지배는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는 법 앞에서 모두 펑등하지만 실제로 전통적 편견이나 전통적 권력행사 등, 전통을 무시할 수 없다. 전통은 신분status 아이디어에도 똑같이 해당한다. 따라서 지위stand를 신분status이라고 번역한다고 하여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겠다. 이것은 단지 각주footnote일 뿐이다. 그 각주는 신분stand은 주로 지난 전통사회에 대한 역사적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각주는 현대의 계급 계층화 사회에서 조차도 권력이 신분status에 기초하여 행사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곤 한다. 최고 법원의 판사가 행사하는 권력이나 지위상 그 보다는 못하지만 대학의 교수에 의하여 행사되는 권력을 생각해보라. 그것은 권력 작용act of power이다. 그것은 심지어 억압적인 권력 작용일 수도 있다. 부르디외는 그것을 상징적 폭력symbolic violence이라고 불렀다. 이를테면 나는 당신의 마음에 폭행violate했다. 이것은 내가 당신의 의식에 새 아이디어를 꽂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권력 작용act of power이다. 이것은 주로 신분status에 의하여 폭넓게 행샤되는 것이다. 당신은 말하기를 "이 사람은 박사학위Ph. D를 가진 교수이므로 뭔가를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한다. 당신이 정말로 나를 믿는 이유는 나의 신분my status과 많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분 뿐만 아니라 좋은 논박과 설득으로 나를 믿도록 매료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들이 나를 믿거나 안믿거나는 양자의 혼합mixture에 달려있다고 보겠다. 내가 현직으로 가지고 있는 이 신분은 당신이 나를 믿고자 하는 의도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계급의 정의

베버는 계급을 어떻게 정의하였는가. 재미있게도 베버는 계급은 시장에서 입증identified되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베버가 말하는 계급이익과 계급작용에 대하여 살펴보고 또 맑스와는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짚어보자.

+ 계급과 시장
베버의 유명한 정의가 있다. 베버는 "계급 상황은 시장 상황에 의하여 결정된다class situation is determined by market situation."고 말하였다. 계급 상황은 궁극적으로 시장 상황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베버는 말하기를 "본래적 소유naked possession는 본질적으로per se 물적 계급 형성의 유일한 선구자이다. 노예와 농노는 계급이 아니고 신분그룹status group이다. the effects of naked possession per se... is only the fore-runner of real'class formation'... slaves, are not... class. They are rather a status group.''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계급과 신분 사이에는 분명한 구별이 있다. 이것은 맑스에 대한 도전이겠다. 원래 재산이 있거나 그 재산을 상실한 자는 계급에 속하지 않는다. 베버에 따르면 전통적 사회에서는 어떤 개인도 재산에 의하여 높은 신분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전통 사회에서 당신이 높은 신분이라면 당신의 부유한 재산은 그 신분에 따른 결과이다. 전통 사회의 왕 또는 여왕은 당신에게 작위nobility, 즉 신분estate을 수여한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돌아간다. 당신은 십억장자가 되기 위하여 미국대통령으로부터 승인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냥 간단히 월 스트리트로 가서 당신의 돈을 영리하게 투자하면 된다. 당신은 천 달러로 시작하였지만 영리하게 투자하였으므로 곧 십억 달러을 벌게 된다. 곧 당신은 십억장자 계급에 속하게 된다. 당신은 재산과 시장 활동으로 인하여 특정한 계급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귀족주의 사회에서 신분은 법적 행위legal act였다. 왕 또는 여왕은 정치적 행위를 통하여 당신에게 귀족권이나 영주권을 수여하였다. 이 결과로서 당신은 부유한 재산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매우 재미있다. 당신이 그 재산wealth를 상실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가난한 귀족으로서 여전히 신분특권status estate privileges을 보유하게 된다. 따라서 당신은 귀족으로서 세금을 납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모든 신분을 상실한다면, 예를들어서 당신이 몬테 카를로에 가서 도박을 하고 재산을 다 날렸다면 당신은 가난뱅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귀족이고 세금을 납부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신분특권status privileges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당신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돈을 투자하였고 주식시장에서 그 돈을 대부분 날렸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자본가가 아니다. 따라서 당신은 일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당신은 모든 돈을 날렸기 때문에 괜찮은 직업을 찾을 수 없다. 누가 사회의 낙오자를 고용하겠는가 말이다. 베버는 말하기를 "계급 위치라는 것은 사람들이 공통된 생활 기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당신이 계급상 다른 위치에 있다면 이것은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점이겠다. 당신은 시장에서in the marketplace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특권화되어진 위치에 있다. 만약 당신이 시장에서 부정적으로 특권화되었다면 당신의 생활기회life chances는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다. 당신이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특권화privileged되었다면 당신의 생활 기회는 대단히 좋은 것이겠다. 이 강의실에 있는 당신들 모두는 매우 긍정적으로 특권화되어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예일대학 학위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하바드대학 학위는 당신들을 위해서 더 나은 생활기회를 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런말을 강의중에 했다고 릭 레빈Rick Levin에게 말하지 말라. 어쨌든 이것은 당신들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학위이다. 따라서 당신은 노동시장에서 매우 좋은 위치를 선점한 것이다. 당신의 생활 기회는 대단히 좋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망가뜨리고 싶다면 대단히 많은 실수를 저질러야 할 것이다. 당신은 올바른 궤도trajectory위에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나 고등학교 중퇴자라면 노동시장에서 당신의 생활 기회는 매우 비참해질lousy 것이다. 특히 당신이 가난하고 아프리카 출신의 미국인이면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면 당신은 30살이 되기 전에 철창에 갇히게 될 생활기회가 70퍼센트라고 보겠다. 이것이 생활 기회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 생활 기회는 물론 계급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신분 그룹status group은 특별한 작용을 한다. 인종race은 생활 기회를 감퇴시키는 역할을 한다. 베버는 실제로 사람들은 각각의 단일한 시장 상황on every single market situation에서 계급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였다. 예를들자면 주거 계급housing class을 살펴보자. 주택의 소유자와 임대료를 지불하는 세입자tenant 사이의 차이점은 계급관계 안에 있다. 그들의 차이점은 계급관계로서 해석될 수 있다. 지주landlords는 자주 세입자tenants들에 의하여 파렴치범bloodsucker으로 몰린다. 왜냐하면 지주는 세입자에게 너무 많은 지대rent를 요구하고 세입자는 주거unit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않기 떼문이다. 세입자는 지주에게 찾아가서 물이 새고 있으므로 수리공을 불러야 겠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지주는 왜 직접 수도를 고치지 않느냐면서 변명의 구실을 찾는다. 따라서 지주는 인색하다. 그리고 세입자tenant의 계급 위치는 부정적으로 특권화 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사실이다. 베버는 매우 중요한 두가지 시장 위치market position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당신의 계급 위치를 정한다. 이것은 다름아닌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을 말한다. 이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은 당신이 좋은 생활 기회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약한poor 생활 기회를 갖고 있는지 정한다.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에서 당신의 위치가 결정되면 여기서 결정된 당신의 위치는 다른 모든 시장에서도 통용된다. 이것은 실제로 베버와 맑스가 처음으로 다소 가까워진 경우이다. 왜냐하면 베버는 시장경제의 현실를 인정하였고 재산의 차이는 계급위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버는 맑스와는 다르게 이것은 시장경제가 존재하는 곳에 한하여 계급결정 인자라고 강조하였다

+ 계급이익과 계급활동class interest and class action
베버는 계급이익과 계급활동에 관련하여 맑스를 반박하면서 말하기를 "그 재능있는 자의 발언은 개인은  이익과 관련하여 실수할 수 있으나 계급은 이익과 관련하여 무오류infallible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사이비 과학pseudo-scientific 이다.''라고 하였다. 베버는 실제로 말하기를 "계급은 실제로 공동체communities가 아니다." 라고 하였다. 사실 공동체는 집단적인 이해collective understanding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단지 노동시장의 위치로 인하여 계급에 속해있댜고 생각한다면 실제로 아담 스미스에 동조하는subscribes 것이다. 계급 구성원들은 자기-이익self-interest을 위하여 활동하는 개인들이다. 따라서 개인들은 집단이익collective interest을 위하여 활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개인들은 노동시장에서 비슷한 위치에 있으므로 공통된 계급이익common class interests을 가질 수 있다. 놀랍게도 그 개인들은 때때로 같은 방식으로 활동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개인들은 집단이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개인들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시장에서on the marketplace 결정되어진 합리적인 개인으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베버는 말하기를 "계급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계급이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나는그때 계급을 알아차리겠다. 계급은 물질화하여 활동한다materialize in action. 나는 사변적으로 어떠한 계급도 구별 할 수 없지만 개인들이 스스로 계급 이익을 위해서 활동함으로써 계급은 구별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3. 신분그룹status group에 관한 정의

신분 그룹에 관한 문제들을 살펴보자. 신분 그룹status group이란 무엇인가. 나는 간략하게 베버가 말하고자 하는 신분 그룹은 누구를 가리키고 신분 특권이란 무엇이며 신분 계층과 카스트the caste, 민족성의 문제에 대하여도 밝히겠다.

+ 신분 그룹status group(stand)이란 무엇인가.
계급 또는 신분을 의미하는 용어인 Stande와는 다르게 Stand는 복수형태이다. Stand는 보통 명목적으로nominally 그룹groups을 말한다. 따라서 신분그룹status groups이 의미하는 것은 당신이 어느 한 그룹에 속해 있어서 매우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고 또 그룹 안에서 연대성solidarity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당신은 어떤 명예를 가지고 있는데 그 명예는 신분그룹에 속하면서 부여된 것이다. 당신은 왕 또는 여왕에 의하여 귀족직을 수여 받는다. 대학의 학위를 얻기 위해서는 신분그룹에 들어가야 한다. 학사학위bachelor's 또는 박사학위를 얻는 방법은 신분그룹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식장에서in the ceremonies 이렇게 우스운 중세 복장을 걸치고 학위를 수여받는 것은 우연한 일이 이니다. 공식적인 대학 훈련을 요구하는 많은 직업들은 신분그룹으로서 작용한다. 의사들도 신분그룹을 구성한다. 어떤 면에서 대학교수들은 신분그룹을 구성한다. 법률가들도 신분그룹을 구성하는데 그들은 법률직에 대한 윤리와 통과의례를 규정한다. 당신은 변호사가 되기 위하여 시험board exam에 통과하여야 한다. 당신은 법학 학위를 얻기 위하여 캘리포니아로 이주한다. 그러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하여 피튀기게 경쟁하여야 한다. 당신이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에 간다면 쉽게 시험에 통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우스 다코타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지원자가 변호사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는 많은 사람들이 변호사가 되기를 원한다. 따라서 캘리포니아 의원회는 사우스 다코타 의원회보다 훨씬 더 엄격하다. 의학시험medical exam도 같은 경우로서 노동시장의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매우 중요하게도 신분 명예status honour는 특정한 생활유형lifestyle으로 나타난다. 당신이 옷을 입는 방식과 음식을 먹는 방식 그리고 행동하는 방식은 신분그룹 안에서 결정되어진 것이다. 전통적으로 귀족은 무기를 소지할 수 있었지만 비-귀족non-nobles은 그렇지 못했다. 당신이 예일대학의 교수라면 당신은 J. Press를 입을 수 있다. 어떤 면에서 현대사회에서 조차도 신분그룹을 구성한다. 당신은 계급 계층 안에서 신분그룹에 속하여 적응하면서 이러한 독특한 생활유형의 질료stuff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도시의 젊은 직장인인 여피족yuppie으로서 월 스트리트에서 멋진 직장을 얻고 맨하탄으로 이사할 수 있다. 당신은 트럼프Trump 빌딩의 콘도를 임차하거나 살수 있다. 또 당신은 직장까지 리무진을 몰고갈 것이고 월 스트리트 저널을 읽을 것이다. 또 아침식사로 크르와상croissants을 먹을 것이고 특정한 방식으로 옷을 입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당신이 월 스트리트의 중개인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이러한 신분그룹은 득특한 생활유형을 창조한다. 사람들은 생활유형을 보면서 서로 잘 알고 서로 잘 구별한다. 사람들은 생활유형에 따라 함깨 잘 어울리는 장소가 따로 있다. 여피족들이 좋아하는 장소는 따로 있다. 밖을 한 번 돌아다녀보라. 여피족들이 가득 찬 여피 빠yuppie bar가 따로 있다. 이것이 신분그룹에 따른 생활유형이다. 그리고 신분 특권이 따로 있다. 그 신분특권은 이상적이고 물질적인 상품goods을 가리킨다. 당신은 신분그룹에 속하게 되면서 그 상품을 얻게 되는 것이지 그 신분그룹의 물질적인 상품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신분그룹에 속하면 구체적으로 특정한 고용기회를 갖게 된다. 어떤면에서 이것은 관습적being controlled this way이다. 의료직은 매우 좋은 예이겠다. 실제로 우리는 의료행위를 하기위하여 도대체 왜 의학학위medical degree을 취득해야 하는 시스템이 필요한지 많은 논쟁과 의심을 해왔다  도대체 왜 재판정에서 특정인을 방어하기위하여 법학학위가 필요한가. 이것은 그 시스템에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신분그룹 장벽barrier이다.

+ 지위 그룹의 경제적 조건들
시장은 인격적인 구별에 무지하다. 시장은 단지 당신이 성공한 자인지 실패한 자인지 만을 문제삼는다. 또 당신이 신분그룹에 속한 특권을 행사한다면 이것은 사장의 기능을 제한할 수 있다.  신분그룹이 강하면 강할수록 시장경제의 자유로운 발전에 방해hindrance될 수 있다.

+ 신분그룹, 카스트와 민족성ethnicity
베버는 카스트와 민족성에 대하여 어떠한 아이니어를 가지고 있었을까. 베버는 신분그룹이 확실히sharply 후퇴하면 그때 카스트를 논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예들들어서 카스트 간의 상호 결혼이 금지되는 경우에는 카스트 차별caste differences이 발생한다. 낮은 카스트들은 보통 더럽고 불결한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당신은 그들을 만질 수도 없다. 당신이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에게 손을 대었다면 인도 문화에 따라서 당신은 정화절차를 거쳐야 한다. 베버에 따르면 신분그룹이 점차 분리되어서 카스트화가 된다는 것은 분리되어진 민족 그룹들이 수평적 공존horizontal coexistence으로부터 수직적 사회시스템vertical social system으로 전환해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재미있게도 이것이 베버가 생각한 민족성에 대한 아이디어이다. 베버는 당시 192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베버는 민족 우열은 혈연성과 관련이 있다는 공통된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사실 민족적 차이는 혈연과 관계없다. 그러나 혈연성이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공통된 믿음이 존재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민족적, 인종적 차이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베버는 이것을 믿지 않았다.


4. 계급과 신분의 비교, 계급 유형

신분 게층status stratification은 안정성stability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계급 계층class stratification은 역동적이고 갈등적이다. 이것이 베버의 아이디어이다. 사실 계급관계는 맑스가 예고했던 것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점 더 적대적antagonistic으로 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계급 관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점 덜 적대적이 되었다. 포인트는 계층시스템에는 두가지 기본적 형태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하나는 신분 또는 지위status or stand 에 따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계급class에 따른 것이다. 신분과 계급은 역사적으로 볼때 서로 다르다. 또 신분 계층에 기초한 계급계층 사회에는 또한 하부sub-type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계급 유형types of classes
베버는 무엇을 기준으로 각각의 계급을 나누었는지 살펴보자.

 1. 재산적 계급property classes
베버는 실제로 재산에 기초한 계급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negate하지 않았다. 개인의 재산이 시장에서 운용되는 한 재산적 차이는 실질적으로 중요substantial하다고 하겠다. 봉건제와는 다르게 개인의 재산이 매매될 수 있고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이 존재하는 한 개인의 재산적 차이는 자본시장에서 계급으로 나타난다.

 2. 상업적 계급commercial classes
그러나 베버는 가장 중요한 구별은 상업적 구별이라고 하였다. 베버는 상업계급은 시장상황에 기초하고 특히 노동시장에 기초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에 있어서 베버의 기본적인 계급 구별은 고용주management와 고용인employees사이에 있다. 계급은 맑스가 말했던 자본의 소유자와 노동력의 소유자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매우 돋보이는 베버의 통찰력있는 주장이겠다. 이것은 적어도 맑스에 관한 제한qualification이거나 현대사회를 이해하는데 훨씬 더 잘 들어맞는 이론으로서 맑스를 대체할 만한 유용한 주장이겠다.

 3. 사회적 계급social classes
베버는 사회적 계급을 도입하였다. 현대사회에는 세번째 유형의 계급이 있는데 그것이 사회적 계급이다. 사회적 계급이란 무엇인가.사람들은 전형적으로 계급 내에서 개인적 그리고 세대적 이동성generational mobility이 쉽게 이루어질때 사회적 계급 상황에 놓이게 된다. 베버는 사회적 계급을 논하면서 재미있게도 "근로 계급working class이 사회적 계급이고, 쁘띠 부르조와지가 사회적 계급이고, 무산 지식인이 사회적 계급이다." 라고 일갈하였다. 여기서 포인트는 근로자 계급은 상업 계급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때 당시는 19세기였다. 이것은 오늘날 미국에서도 여전히 사실이다. 다른 경제국들 보다는 적어도 미국에서 더 그렇다. 근로계급이 되는 것은 확실히 유럽에서는 가능했다. 지금은 덜 하지만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근로자들은 매우 강한 근로계급의식working class consciousness을 가지고 있었다. 그 근로자들은 노동계급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근로계급이라는 용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보통 근로계급 보다는 근로자working people에 대하여 논의하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근로계급은 강한 정체성과 톡특한 생활유형lifestyle을 가지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당신은 선술집에 들어가면 누가 막노동자manual worker인지 아니지 90퍼센트 이상 확실히 구별할 수 있다. 행동하는 양식과 옷을 입은 양식은 좋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의 몇몇 주의 노동계급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배관공이 되어서정말 좋다. 만약 나의 아들이 배관공이 되기를 원한다면 기꺼이 밀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라고 말한다. 나에게 좋은 것은 아들에게도 좋다는 것이다. 그 배관공은 경제적 계급과 구별되는  사회적 계급을 이해하고 있다. 배관공의 딸이 변호사와 데이트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계급과 관련된 사실이다. 배관공은 딸에게 말하기를. ''너는 근로자 계급의 청년과 사귈 수 없느냐. 왜 하필 이런 지식인egghead과 사귀느냐." 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훨씬 덜 하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계급간의 결혼 이동성marital mobility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오늘날에도 계급간 결혼 이동성이 그렇게 활발하지 못 하다. 이것이 사회적 계급이다. 보다시피 사회적 계급 아이디어는 신분 그룹을 유도해냈다. 그것은 현대판 신분 그룹status group이자 사회적 계급으로서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적 계급은 생활유형, 가치, 문화, 이동성, 열망aspiration과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원문번역.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