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5일 수요일

6.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와 자유


1. 존 스튜어트 밀의 스승인 벤담

공리주의는 근본적으로 매우 중요한 아이디어이다. 공리주의는 현대 경제 이론과 정치사회 이론들이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 아이디어에 따라 굴러가도록 예고하였던 것이다. 공리주의의 출발점은 벤담이다.  여러 면에서 벤담은 공리주의의 창시자라고 볼 수 있지만, 공리주의란 용어를 써본 적은 없었고 단지, 존 스튜어트 밀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부친인 제임스 밀은 식민지 인도의 역사와 인도에서의 영국 역사를 방대한 세권의 책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제임스 밀은 1808년 벤담을 만나면서 공리주의에 매료되었고 자신의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의 교육을 부탁하였다. 벤담은 1789년 <도덕과 입법의 원리The Principle of Morals and Legislation>를 출간했었다. 벤담은 <도덕과 입법의 원리>에서 매우 중요한 주장을 하였다. 처음에 그것은 매우 이성적으로 보였으나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았다. 벤담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쾌락을 좇고 고통을 피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가능한 고통을 최소화하려고 하고 쾌락을 최대화하려고 시도한다. 이때 바로 최대의 행복(greatest happiness)이루어 진다. 이것이 공리(utility)이다. 공리는 근본적으로 벤담의 아이이디어이다. 따라서 무엇이든 행복으로 이끌어주기만 한다면 어떠한 행동도 올바르다는 결론이 나올수 있다. 실제로 이 행복은 양화(quantified)될 수 있다고 하였다. 재미있게도, 쾌락의 합계에서 고통의 합계를 뺀 결과가 증가한다면 그 행동은 올바르고 도덕적으로도 옳다. 이러한 벤담의 주장은 꽤 이성적으로 보인다. 벤담에 따르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면 그 사회 또한 더 행복해지게 된다. 벤담의 포인트는 쾌락과 고통에 있었다. 우리 인간은 자연적으로 두 주권자를 떠받들도록 설계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쾌락과 고통이다. 벤담은 개인의 행동은 공리utility의 원칙에 순응하여야 할뿐만 아니라 공동체 행복의 증가분은 그 감소분보다 훨씬 더 커야한다고 하였다. 벤담의 공리(utility)란 개인이 미래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행복을 증가 또는 감소시키는, 찬성 또는 반대하는 행동원칙이다. 따라서 공리는 이익, 혜택, 쾌락, 선, 행복을 창조하는 속성(property)을 가지고 있다. 이 공리 개념은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경제학적 효용개념과 큰 차이가 없다. 재미있게도, 벤담은 행복한 사람들의 수와 불행한 사람들의 수를 계산한 후에 행복의 총합이 불행의 총합을 능가하면 그것은 좋은 사회라고 보았다.


2. 역사적 맥락에서 본 존 스튜어트 밀

1806년 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의 런던에서 태어났다. 밀은 운좋게도 학교에 다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운은 아니었다. 부친인 제임스 밀과 벤담이 그의 선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세살 때부터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1822년 18세의 어린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 학회Utilitarian Society를 창설하였고 공리주의Utilitarianism란 용어를 처음으로 조어하였다. 그리고나서 밀은 신경실조를 겪었다. 밀은 공리주의와 도구주의를 설파하는 중에 격렬한 논쟁를 벌리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다. 그 후 존 스튜어트 밀은 시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결국 멋진 여성인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를 만나게 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녀와 절친한 관계로까지 발전하였다. 해리엇 테일러는 놀랄만한 지식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당시 영국 최초의 급진적 페미니스트라고 할 만 하였다. 사실 헤리엇 테일러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작품들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만약 존 스튜어트 밀이 진정한 페미니스트였더라면 아마도 자기 저작들의 공동저자로서 해리엇 테일러의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해리엇 테일러는 유부녀였는데 그녀의 남편을 포함한 셋은 재미있게도 삼각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테일러 부부와 존 스튜어트 밀은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1851년 존 스튜어트 밀은 헤리엇 테일러의 남편이 사망하자 즉각 그녀와 결혼하였다.
1858년 존 스튜어트 밀의 부인인 헤리엇 테일러가 불행하게도 결혼 후 7년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1873년 존 스튜어트 밀은 Avignon에서 타계하였다. 향년 67세였다.


3. 존 스투어트 밀의 주요작품과 <공리주의>의 주요내용

1859년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On Liberty>를 출간하였고 1861년 <공리주의Utilitarianism>를 출간하였다.
1865년 존 스튜어트 밀은 의회의원이 되었댜. 당시 밀은 영국 최초로 여성참정권을 주장한 사람중에 한 명이었다.
1868년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투표권을 주장하는 바람에 재선거에서 낙선하고 말았다.
1869년 밀은 <어성의 종속Subjection of Woman>을 출간하였다. 그 책은 여러 면에서 페니니스트적이었다. 그 책은 당시 남성들이 읽기에는 어려웠다.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를 새롭게 정의하고자 시도하였다. 밀은 공리주의가 너무 냉정하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감성적인것(sentiments)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침 해리엇 테일러는 밀에게 풍부한 시문학의 감성세계를 소개하였다. 이제 밀은 더 높은 행복(a higher happiness)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낮은 행복과 높은 행복을 구별하였다. 이를테면 좋은 스테이크를 먹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베토벤의 9번 심포니를 듣는 것은 더 큰 행복이다. 당신은 9번 심포니의 마지막 합창을 들을 때 더 높은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당신은 좋은 스테이크를 먹을때 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의 절정 속에서 더 높은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하는 더 높은 수준의 행복(a higher level of happiness)이다. 재미있게도 밀은 공리(utility)는 편의(expediency)보다 훨씬 큰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또 자유는 최종의 가치이면서도 편의라고 강조하였다. 밀에 따르면 편의(expediency)란 최소의 수단을 사용하여 최대의 이익(return)을 얻는 것아다. 존 스튜어트 밀은 말하기를 ''편의는 개인의 자유에 반하는 간섭을 정당화할 수 없다(expediency cannot justify intervention against individual liberty)''고 강조하였다. 여기에 딱 맞는 매우 적절한 예가 있다. 미국의 9/11을 생각해 보라. 당시 많은 사람들이 편의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당했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제한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편의는 무시될 수는 없겠지만 개인의 머리 위에 무언가chips가 떨어지면 그것은 개인적 자유(individual liberty)에 해당한다고 말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의 자유의 신성을 강조하였다. 어떤 면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 개인주의의 완성자이자  정신적 지주라고 할만 항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문제와 관련하여 여성의 법적 지위는 노예의 상황과 유사하지만 사실 노예보다 훨씬 더 열악하다고 주장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은 직업과 공공생활,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 평등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사실, 존 스튜어트 밀의 이러한 주장은 장 자크 루소와 완전히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들은 결혼을 통하여 남성과 친밀한 유대를 창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해리엇 테일러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헤리엇 테일러는 두 번 결혼하였지만 두 번 모두 성공적이지 못랬다. 그녀는 두 번 결혼했지만 결혼제도를 신뢰하지 않았다.


4. 존 스튜어트 밀의 행복론

오늘날까지도 존 스튜어트 밀의 영향력은 매우 강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주의의 완성자이다. 어떤 면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가장 일관적이고 명확하게 이론을 전개한 학자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의 이론의 출발점인 아담 스미스에서부터 자신의 스승인 벤담에 이르기까지 가장 논리적으로 공리주의를 완성하였다. 오늘날 존 스튜어트 밀은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이론은 1960년대와 70년대의 많은 자유주의자와 민주주의자를 신보수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로 전향시키면서 그들을 공화당으로 넘어가게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의 이론은 매우 중요한 분할선(dividing line)이었다. 개인의 자유는 어느 정도까지 인정되어야 하는가. 국가는 어는 정도까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 이것이 존 스튜어트 밀의 포인트였다. 존 스튜어트 밀의 이론은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의 많은 정치적 좌파, 중도좌파, 극좌파들이 차별철폐조치(affirmative action)와 빈곤과의 전쟁 등에 직면했을때 자신들의 노선을 버리게 되었던 분할선이었다. 정말로 민주주의자들은 자유주의를 배신했는가. 그렇지 않다. 존 스튜어트 밀을 읽어라. 존 스튜어트 밀은 진정한 자유주의가 무엇인지를 선포하였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메세지는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는 많은 조명을 받고있다. 비판가들은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적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바난하면서 정부야말로 일반선(general good)을 위하여 많은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존 스튜어트 밀이 벤담으로부터 출발하여 전개한 공리주의의 주요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또 존 스튜어트 밀이 공리주의 중요한 변수로서 더 높은 행복을 강조했다는 정을 기억해두자. 일반적으로 우리가 갈구하는 것은 양적 행복일 뿐만아니라 질적인 행복이다. 이것이 존 스튜어트 밀 행복론의 포인트이다. 이 행복론은 이전에 아담스미스가 손대긴 하였으나 적절하게 전개되지 못했던 아이디어였고 벤담 또한 전혀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 이 행복 아이디어는 현대경제학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이 행복 아이디어를 선호(preference)라고 부른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개인은 저마다 선호를 가지고 있으면서.자신의 선호가치에 저마다의 효용(utility)을 부여한다. 이것은 정말로 존 스튜어트 밀의 이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법(legality)과 정의를 구별하면서 합법적(legal)인 것이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며 정당하다고 하여 반드시 법의 승인을 받은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또 편의와 정의에 관련해서는 편의는 반드시 정의로운 것은 아니며 정의로운 것은 비용이 들 뿐만아니라 목적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도 아니라고 하였다.

+ 더 높은 행복(the higher happiness)
우리 인간은 동물보다 더 높은 식욕(appetite)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또 동물이 가지고 있지 않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또 우리는 도덕감정(moral sentiments)를 가지고 있다. 이 도덕감정은 우리를 이끌어서 대상을 선택하도록 할 수 있다. 아담 스미스의 인간공감설(sympathy theory of human)은 존 스튜어트 밀의 더 높은 행복과 맥을 같이 한다. 때문에 존 스튜어 밀은 인간의 식욕(appetite)이 동물의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하였다. 벤담은 식욕 하나를 더 추가하면 개인의 식욕이 만족스럽게 증가하고 또 사회가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그렇지 않았다. 존 스튜어트 밀에 따르면 제일의 선(good)은 덕(virtue)이었다. 따라서 ''덕스러워라, 그러면 당신은 선해질 것이다.'' 라고 말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이 덕스러우면 개인은 더 행복해 질 것이라고 말한다. 덕virtue은 공리주의의 기본적인 자격요건이다. 대부분의 합리적 선택 이론가들이나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도 이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반-신자유주의자들과 반-공리주의자들은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utilities)는 질적인 차이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개인은 합리적 행위자이고, 개인은 자기이익을 추구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 우리 개인은 각자 필요한 상품들의 가치가 행복한 가격으로 매겨져 있는지 어떤지 잘 파악한다. 이것이 오늘날 살아있는 공리주의의 근본적인 아이디어이다. 찬성자와 반대자가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존 스튜어트 밀의 포인트이다. 존 스퓨어트 밀은 더 높은 행복과 관련하여 짐승들의 쾌락(pleasure)은 저질적인 것으로서 폄훼하였다. 우리는 동물적인 만족보다 더 높은 만족을 갖고자 한다. 당신은 적은 양의 음식을 제공받더라도 오성급 레스토랑에 가고자 한다. 거기는 음식이 매우 맛있다. 그곳은 동물적 식욕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음식을 주는 우스터 스트리트Wooster Street의 이탈리안 패밀리 레스토랑과는 다르다. 우리 인간은 더 높은 차원의 만족과 더 높은 차원의 식욕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단지 배를 채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방법으로 식사가 제공되길 바란다. 우리는 지성적이면서 풍부한 상상적 쾌락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미 루소를 통해서 보았다. 당신이 비교문학이나 영문학을 전공하였다면 독일 시인이자 심미주의 이론가인 쉴러를 접했을 것이다. 쉴러는 아름다움(beauty)의 본질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 쾌락의 질(the quality of pleasures)
우리 인간을 만족시키는 것은 단지 쾌락의 양뿐만 아니라 쾌락의 질에 달려있다. 이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어느 인간도 저급한 동물로 변신하느데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바보들이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만족스럽게 산다고 할지라도 어떤 지성인들도 바보가 되려고하지 않을 것이다. 바보들을 만족시키기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졍말 멋진 말이 있다.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낫다.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이것이 존 스튜어트 밀의 포인트이다. 누구도 이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필요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존재자보다 소크라테스처럼 불만족스럽게 살아가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5. 정의와 법, 정의와 편의

+ 정의와 법(justice and legality)
정의와 법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누군가가 타인의 재산을 침해한다면 그것은 법이 규정하고 있듯이 부당한 행위이다. 잘 알다시피, 공산주의 정부는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하였지만 그것은 합법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존 스튜어트 밀에 따르면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행위이다. 그것은 법적으로 행하여졌지만 부정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재산을 침해당한 자의 정의감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법률 중에는 마땅히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생성되지 못한 법률들이 있다. 그 법률들은 개인 권리를 적절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생성되어 제졍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존 스튜어트 밀의 시대에는 여성의 권리나 노예의 권리를 보호할 법들이 생성되지 못했다. 최근 미국사회에서 벌어지는 감시기술(surveillance techniques)은 개인의 자유권(individual liberties)로 인하여 미국 시민의 자유권이 적절하게 보호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새 법률이 생성되어서 정부의 민간인 전화 감청을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 또 법률은 고문의 개념을 정확히 정의할 법 조항이 필요하다.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률의 개념적 불비는 인권침해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차별철폐조치(affirmative action)는 인간자유(people's freedom)의 불평등을 다소나마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자유는 인간에 따라 각각 다르다. 분명 어떤 사람의 자유는 더 제한되어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제각각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존 스튜어트 밀은 사람들의 자유의 평등을 창조할 새로운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이 존 스튜어트 밀의 포인트이다. 현실에는 마땅히 생성되지 말았어야할 법률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부당한 악법들에 대하여 논박할 것이다. 정부는 살인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형제(death penalty)를 반대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형제를 찬성한다. 사형제는 타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가. 존 스튜어트 밀은 아마도 사형제를 반대하면서 사형제 폐지를 입법하였을 것이다. 낙태의 자유는 인정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법으로 금지되어야 하는가. 낙태 금지론자들은 태아의 자유와 권리가 보호되어야 하므로 낙태의 자유는 인정될 수 없다고 믿는다. 반면에 낙태 찬성론자는 수태한 여성의 자유(liberty)가 방어되어야 하므로 낙태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오늘날 매우 논란이 되고있는 이슈이다.

+ 정의와 평등
재미있게도 존 스튜어트 밀은 사람들은 실제로 정의를 평등과 관련시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불평등이 지나치면 그것을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느낀다. 적법하게 목적이 실현되었더라도 그것이 정의롭지 못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평등은 편의라는 이름으로 왜곡되고 정당화된다. 사실 높은 수준의 불평등으로 인하여 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 예를들어 월 스트리트 금융기업의 CEO를 생각해보라. 그 사장은 직원들의 보너스를 삭감하려고 하고 있다.그러나 사장은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큰 타격을 받을지 모른다. 그 능력있는 브로커 직원들은 사장의 결정에 반발하여 기꺼이 다른 회사의 스카웃 제의에 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장은 브로커 직원들을 계속 고용하기 위해서라도 수백만 달러에 상당하는 높은 수준의보너스를 지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장은 회사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은행을 생각해보라. 미국의 은행들은 수 십억 달러의 부채를 연방정부에 되갚았다. 왜나하면 그 은행들은 부채상환의 혜택으로서 정부의 간섭을 피할 수 있었으므로 과다한 보너스 지불에 대한 법적, 행정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편의이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어떻게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의아해하면서 그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월스트리트의 브로커들은 엄청난 보너스를 받고있다. 그 직둰들은 다른 회사로 이적하면 더 많은 보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은 분명 편의에 따른 것이지 정의에 따른 것이 아니다. 정의의 핵심 포인트는 무엇인가. 정의는 '타인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고 강조한다. 이것이 존 스튜어트 밀의 중요 포인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의 자유(individual liberty)를 매우 강조한다. 재미있게도 존 스튜어트 밀은 '만약 개인의 법적 권리가 침해되었다면 그것은 그 개인에게 속해서는 아니되는 권리일 수 있다.'고 미묘하게 말하였다. 사실 이것은 현대사회에 흔한 일이 아니다. 당시 존 스튜어트 밀이 살던 시대는 여러 봉건적 특권들이 보장되고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 봉권적 특권들을 폐지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그 법들은 정의롭지 못하였기(unjust)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은 비록 법으로 보증되지는 않더라도 자신에게 합당한 것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 또한 대단한 논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복지국가의 국민은 정부릃 향하여 기본적인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주장할 수 있다. 모든 개인는 주거을 제공받고 거주하면서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존 스튜어트 밀과 맥을 같이하는 주장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사람들의 믿음을 깨버리는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하였다. 무언가를 하겠다고 약속하고나서 그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누구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존 스튜어트 밀은 정의는 편파적일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고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 정의와 편의
존 스튜어트 밀은 편의적인 것이 반드시 정의로운 것은 아니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를테면 최소한의 노력을 가지고 어떤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그것은 편의적인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편의상 지름길로 간다. 그러나 지름길로 가지 않는것 이 훨씬 나은 이유는 그것은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국가와 전인류와도 공감할 수 있다. 이것은 루소의 아모르 프로퍼 아이디어와 비슷하다. 정의와 편의의 관계는 안타깝게도 서로 혼동될 소지가 있다.


6. <자유론The Liberty>: 자유와 개인성

벤담은 우리 인간은 단지 쾌락을 좇는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의 자기-개발(self -development)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생애 전반에 걸쳐서 자신들의 능력을 개발하여야 한다. 개인주의와 자유는 자기-개발로부터 시작된다. 자기-개발은 단지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중심가치이겠다. 자유는 존 스튜어트 밀의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이이다. 또 자유는 가장 존 스튜어트 밀다운 아이디어이다. 우리는 단지 자유를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서 믿어서는 안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말하기를 "지배자가 자신을 대중들(the people) 동일시한다면 그 지배자를 매우 조심하라. 그 지배자는 자유를 보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지배자는 다수에 의한 횡포(the tyranny by majority) 정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은 개인의 권리와 소수의 권리를 방어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왜냐하면 개인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의 선호(preference) 개념과 더 높은 행복 개념을 강조했던 것이다. 개인은 정부의 선택결정과는 무관하게 개인 스스로 공리(utility)에 따라서는 더 높은 가치를 선택하고 결정한다. 따라서 소수자는 대다수가 선택한 것과는 다른 선호를 갖고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소수자의 선호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존 스튜어트 밀의 아이디어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에서 가장 선행하는 것은 다름아닌 개인의 자유라는 것을 기억해두자.것이다. 자유의 중심가치는 논리적으로 개인의 선호preference 아이디어와 공리(utilities)간의 질적 차이에서 나오는데 그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최악인 것을 선택하여 결정할 수 있는 유일자는 바로 개인 자신이다. 다른 어느 누구도 개인을 위하여 선택하고 결정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애덤 스미스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 표현의 자유
존 스튜어트 밀은 매우 독특하게도, 완전하고 무제한적인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였다.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러한 표현의 자유에 근접해있다. 사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적이고 자유롭고 리버럴한 국가들에서조차도 제한될 수 있다. 실제로 표현의 자유는 여러 방식으로 제한될 수 있다.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부정하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존 스튜어트 밀의 아이디어에 매우 근접해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절대적인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였다. 이를테먼 어떤 개인이 자신의 의견(opinion)으로서 타인의 권리를 억압했다고 치자. 이때 절대적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그 개인은 자신의 과오와 진실(truths)을 논변할 표현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발언의 기회가 허용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 진리이다. 자신의 과오를 발언하도록 허용하다면 더 큰 문제를 불러오지는 않을까. 분명 홀로코스트에는 유력한 증거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코스트의 부존재를 주장하는 발언을 허용해야 하는가. 존 스튜어트 밀은 확실히 그 발언을 허용하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과오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논란이 되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동조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양쪽 편에 똑같이 귀기울여라. 그것이 진실을 발견하는 유일한 길이다.'

+다수에 의한 횡포(tyranny by the majority)
다수에 의한 참주제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다수에 의한 횡포는 대중 민주주의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악행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에 의한 참주지배자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소수 의견을 억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다수의 횡포에 저항하지 않으면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다. 이것이 존 스튜어트 밀의 포인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인간 본성은 인간의 자기걔발(self development)을 원하는 것이지 인간의 사회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동형주의(conformism)는 도덕적 억압이다. 동형주의는 개인에게 많은 압력을 가하여 다수, 즉 주류에 동참하도록 억압한다. 존 스튜어트 밀에 따르면 이것은 악행으로서 우리가 저항해서 고쳐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 자유를 방어해야하고 법적이든 비법적이든 어떤 간섭에도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오늘날 대중매체는 주입과 세뇌를 통하여 개인들을 동형적 개조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격노할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에 따르면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한 라이프스타일, 성적 선호, 기타 가치들은 보호되어야 한다. 재미있게도 아담 스미스도 기본적으로 이와 똑같은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스미스는 존 스튜어트 밀처럼 확실하고 명백하게 자유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정부의 간섭은 단지 개인의 자유가 침해(injury)되었을때만 허용된다고 하였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고 다만 침해되었을때는 예외라는 것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은 동정심(compassion)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으로부터는 관용(tolerance)을 기대하라고 하면서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타인의 선택을 대신 결정해주지는 말라고 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실제로 동형(conformity)을 매우 싫어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도덕적 기준(moral standards)를 강화해 나가지 않으면 참주 또는 다수에 의한 횡포가 시회를 전복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밀의 주장은 시대에 앞선 것이다. 동형주의(conformism)가 악(evil)이라는 것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대단한 화제가 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것을 이미 18세기 중반에 언급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정부는 오로지 개인의 보호(self-protection)를 위해서 개입할 때만 그 간섭intervetion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홉스의 주장과 같은 선상에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우리는 서로 무관심할 것이 아니라 관용(tolerance)으로서 서로 도와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개인 또는 국가의 의지, 취미 또는 선호를 타인들에게 강요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어린이는 누구나 성년이 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선택하고 결정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매우 문제가 될 수 있는 주장이다. 마약사용 문제를 생각해 보라. 존 스튜어트 밀 자신이 그러한 실수를 한다면 아마도 그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편을 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존 스튜어트 밀은 아마도 마약사용을 비불법화(decriminalization)할지도 모르겠다.  마약사용 여부는 오로지 개인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마약의 위험성과 생명에 해롭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 사용자들의 문제인 것이다.


7. <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 주요 내용

잘 알다시피, 여성들은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물론 영국에서도 평등권을 갖지 못했다. 여성들은 투표할 권리뿐만 아니라 실제로 재산을 소유할 권리조차 갖지 못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의 애인이자 부인이었던 해리엇 태일러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였다. 그녀는 매우 똑똑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존 스튜어트 밀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다. 사실, 그녀는 결혼제도도 반대하였다. 이 책 <여성의 종속>의 중심 주제와 관련하여 포인트는 결혼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노에상태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노예는 세계 어디서나 존재했고 불운하게도 사실상(de facto) 여전히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존 스튜어늩 밀은 여성의 종속은 노예상태의 한 예이고 그것은 여성의 본성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결혼에서의 법적 평등과 더불어 정치와 교육에서의 여성의 평등을 기술하였다. 마지막으로 우정관계로서의 결혼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결혼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노예상태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결혼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노예상태의 한 예라고 하였다. 사실, 부인들은 재산들 소유할 수 없고  남편들은 성적인 욕망의 대상으로서 부인들을 사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부인들은 노예들보다 훨씬 더 나쁜 상황에 놓여있다. 노예는 적어도 주인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부인은 자기의 남편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인들은 노예들보다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남편이 원하는 것은 단지 부인의 복종뿐만 아니라 부인의 사랑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관계 19세기에 흔한 현상이었고 현재 21세기에서 조차도 많은 예가 있다. 남편은 부인에게 사랑표현을 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지만 부인의 사랑표현은 기꺼이 기대한다. 불행운하게도 아직도 이런 남편들이 많다. 어쨌든 <여성의 종속>이 19세기 중반에 쓰여진 것 치고는 매우 도발적이고 중요한 발언이다. 한펀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러한 노예상태는 여성의 본성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루소는 이러한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을 반박할 것이다. 루소는 여성은 남성과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루소에 따르면 여성은 바느질하기를 좋아하고 종속되기를 원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두가지 점에서그러한 여성의 본성에 대한 편견을 반박(counter argument)한다. 첫째, 보통 여성의 본성이 간과되는 이유는 여성은 자기-개발(self-development)을 위한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정치적 무능력을 입증해야한다. 만약 여성들의 정치적 능력이 인정된다면 여서의 종속은 여성의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겠다. 이것은 깔끔한 논박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의 본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자체는 타당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또 존 스튜어트 밀은 결혼의 평등성을 주장하였다. 그것은 오늘날 상식이 되었다. 여성의 평등은 정치, 교육, 그리고 직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바드 대학 총장인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는 여성들은 공학(engineering)을 전공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였다. 아마도 그는 존 스튜어트 밀을 주의깊게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여성의 속성은 남성만큼 공학에 능하지 못한데 있지 않다. 여성의 속성은 매우 다양하다. 여성들은 확실히 정치적 직업에도 적합한 면이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결혼과 우정에 대하여 말하기를 "내가 여전히 결혼을 믿는 이유는 결혼은 파트너와의 평등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이것이 존 스튜어트 밀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논란이 되는 이론가였지만  자기 이론을 가능한 최대로 밀어 부쳤다. 존 스튜어트 밀은  매우 영리한 사람인 것 같다.


8. 질문과 검토

+ 질문 1: 인간본성과 관련하여 홉스는 성악설을 주장하였다. 반면에 로크와 루소는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그들을 서로 비교하라.

사람들은 홉스를 읽으면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하다고 믿게 된다. 이것은 결코 비이성적인 생각이 아니다. 인간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결국 리바이어탄같은 괴물은 필요없었을 것이다. 한편 로크는 자연상태에서의 인간 합리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루소의 숭고한 야만인(noble savage)아이디어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창조주의 손으로부터 완벽하게 만들어져 나왔지만 사회가 인간을 타락시키고 억압하였다. 여기에는 다소 논쟁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반면에 홉스는 인간은 선호와 공포사이에서 저울질하면서 합리적 결정을 한다고 믿었다. 홉스는 인간의 합리적 선택을 인정했던 것이다. 루소에 따르면 선하게 태어난 우리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야만인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사회에는 야만적인 개인들의 결정을 뒤집어 엎을 만한 일반의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정말로 악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법과 질서가 필요하고, 또 정부의 간섭(intervention)이 필요하다. 그러나 로크나 존 스튜어트 밀에 따르면 인간은 결국 윤리적이고 선의지에 따라서 행동한다. 따라서 개인은 중앙의 계획자에게 필요한 것과 해야할 것을 결정해달라고 부탁할 것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 선택하고 자유롭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 질문 2: 홉스는 강력한 주권자 국가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로크의 주요 관심사는 집행부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로크는 집행권이 입법권으로부터 분리되기를 원했다. 두 이론가를 비교하면서 강한 국가가 필요한지 아니면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 최소 국가가 필요한지 검토하여라.

이에 대하여 홉스는 할 말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9/11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강한 정부가 필요하다. 우리는 안보가 필요하다. 우리는 평등에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9/11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살펴보라. 개인의 자유는 너무 많이 제한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유와 짝해왔던 미국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쨌든 이 문제와 관련하여 확실히 의견이 나누어질 수 있겠다.

+ 질문 3: 몽테스키외와 루소는 방법론적 집단주의자이다. 반면에 홉스와 로크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자이다.  이 문제를 살펴보고 당신은 어떠한 입장인지 또 왜 그러한지 검토하라.

방법론적 집단주의자들은 개인들의 총합을 넘어서는 질료(stuff)가 있다고 주장한다. 좋은 예로서 몽테스키외는 방법론적으로 법을 강조하였다. 법은 각 개인들을 규율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먼저 선천적인 법이 존재하였고 그 후 개인들 속으로 입력된다. 따라서 집단양심 또한 선행하는 것이고 집단양심은 개인 속으로 들어간다. 반면에 홉스와 로크는 정반대로 주장한다. 그들의 방법론적 출발점은 개인들이다. 홉스와 로크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개인들의 행동, 욕망, 그리고 의지이고 결국 이것을 가지고 집단(collectivity)의 문제를 살필 수 있다고 하였다.

+ 질문 4: 루소의 일반의지(general will)가 가능한 강력한 예를 들어라. 로크, 몽테스키외, 그리고 존 스튜어트 밀을 이용하여 일반의지를 비판하라.

분명 일반의지를 필요로 하는것이 있다. 예를들어서 보편적 건강보험이 그렇다. 개인에게 건강보험에 가입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건강보혐에 가입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편적 건강보험에는 일반의지가 필요하다. 한편 로크와 몽테스키외, 존 스튜어늩 밀은 보편적 건강보험을 반박할 수 있다.. 도대체 일반의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일반의지가 나온다면 그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일반의지는 개인의 의식에서도 나올 수 있는가. 정부는 개인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정부는 개인이 필요로서 선택하고 결정한 개인의 선호를 뒤집을 만큼 개인보다 더 잘 알 수 있는가. 이것은 분명 문제이다. 확실히 일반의지는 전체주의의 길을 열었다. 칼 맑스와 레닌은 루소의 일반의지를 매우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앙의 계획자가 일반의지로서 개인들에게 명령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중앙의 계획자는 말하기를 "물론 당신은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잘 알고 있소. 그러나 그것은 단기간의 필요일 뿐이오. 나는 당신이 장기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소. 따라서 내 말에 따라 행동하시오." 라고 한다. 루소는 말하기를 "자유롭기 위해서 강제된다(you have to forced to be free)"고 하였다. "나는 당신을 자유롭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나는 당신의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필요를 잘 알고있다."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비판받을 만한 발언이다.

+ 질문 5: 애덤 스미스는 자기-이익(self-interest)을 추구하는 것이 곧 공통선(common good)에 따르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와는 정반대로 루소는 일반의지는 개인의지의 총합(sum total of individual will)을 너머선 그 이상이라고 믿었다. 두 이론가의 공통선을 대조하고 누구의 아론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말하라.

애덤 스미스가 옳은 이유는 개인들이 자기 스스로 무엇이 필요하지 결정하지 않는다면 어느누구도 그를 대신해서 자기-이익을 잘 파악하고 결정할 수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자기규제(self regulating)적인 시장과 완벽한 정보체계를 가정하였다. 불운하게도 그러한 가정은 현실세계에서 실현되기 힘들다. 반면에 루소의 일반의지는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 질문 6: 홉스는 강한 정부를 옹호하였다. 반면에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과 작은 정부를 옹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이론의 강력한 예를 들어보라. 그리고 강한 정부와 작은 정부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은가.

21세기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애덤 스미스를 보이지 않는 손과 작은 정부의 아이콘으로서 생각한다. 로날드 레이건 정부는 작은 정부로서 정말로 문제의 불씨였는가. 자유 민주주의자들은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융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큰 정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금융위기가 초래된 이유는 정부가 제역할을 하지 못하였고 또 규제완화를 시행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조지 더블유 부시가 했던 것처럼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부시는 납세자의 돈으로 금융기업을 구제(bail-out)하였다. 이것이 포인트이다.

질문 7: 루소와 존 스튜어트 밀은 성차별(gender relation)과 관련하여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하였다. 각각의 가능한 예를 들고 당신의 입장는 어떤지 밝히라.

성(gender)차별과 관련하여 루소를 방어하기란 매우 힘들다. 루소는 진짜로 성차별주의자이다. 재미있게도 루소는 sex와 gender를 최초로 개념화 하였다. 그런 면에서 루소는 섬세힌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루소는 여성은 남성과 같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여성은 똑같이 인간이고 똑같은 인권을 가지고 있지만 남성처럼 옷을 입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였다. 루소는 여자들이 여성다움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이런 식으로 루소와 뜻을 같이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한편 존 스튜어트 밀은 성(gender)과 관련하여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 질문 8: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자였다. 존 스튜어트 밀에 따르면 개인은 합리적으로 자기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면 존 스튜어트 밀은 아담 스미스와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어려운 질문이다. 거기에는 그렇게 많은 차이는 없다고 보겠다. 존 스튜어트 밀은 상이한 공리(different utilities)에는 개인의 선호(preference)와 질적 차이(qualitative differences)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애덤 스미스보다 훨씬 더 우아하게 자기-이익 아이디어를 전개하였던 것이다.

+ 질문 9: 홉스는 안보(security)을 강조하였다. 반면에 로크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를 강조하였다. 이것들이 가능한 예를 들어보아라.

총기소지와 관련하여 로크와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총기소지가 가능하다고 볼 것이다. 반면에 홉스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총기에 의한 대량 학살을 보면서 총기소지는 미친짓이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총기소지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홉스는 고문, 감청 등과 관련하여 우리는 위험한 세계에 살고있으므로 CIA에게 그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로크와 밀은 그것을 부정하면서 개인의 자유는 신성하므로 개인은 먼저 고문과 감청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참고문헌>

원문,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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