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1일 수요일

1. 홉스: 권위, 인권, 그리고 사회질서

1. 역사적 맥락에서 본 홉스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1588년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영국의 웨스트포트Westport에서 태어났다. 홉스의 부친은 교구목사였는데 한 성직자와 주먹질하면서 싸웠다. 그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홉스의 부친은 그 일로 인해서 도망을 쳤고 그 후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가족을 버린 것이다. 당시, 엘리자베스 1세 때, 홉스의 삼촌은 부유한 장갑제조인이었다. 그 삼촌이 홉스를 길렀다.

1602년 홉스는 옥스포드의 막달린 홀Magdalene Hall에 들어갔고 1608년에 졸업하였다. 졸업후에 홉스는 데본셔Devonshire의 백작이었던 코벤디쉬William Cavendish 2세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1610년 홉스는 제자를 데리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갈릴레오의 현대과학을 접하게 되었다. 토마스 홉스는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베이컨Bacon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부정하면서 진리는 오직 감각적 관찰에서 출발하는 귀납법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귀납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법과는 정반대의 방법론이었다.

1635년과 36년 홉스는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갈릴레오와 데카르트의 저작들에서 '자연과학의 원리' 를 탐구하였다. 홉스는 갈릴레오로부터 분해-합성법resolutive-compositive method을 배웠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연역법으로 추론을 시작한 후에 베이컨처럼 귀납법을 이용하여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방법론이었다. 한편 데카르트Renee Descartes(1596-1650)는 이원론자였다. 이원론이란 육체와 정신을 분리함으로써 실체 본질의 일원성을 부정한 사상이었다. 홉스Hobbes는 데카르트의 그러한 이원론(dualism)을 부정하였다.

1640년 홉스는 광학(optics)에 관한 원고를 마무리하였다. 그것이 홉스의 첫 학문적 저작이었다. 홉스는 데키르트의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을 거절하면서 마음(mind)이 대상(object)인한, 마음은 대상(object)의 운동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홉스는 삼부작(Trilogy), 즉 육체에 관하여(1655), 인간에 관하여(1658), 시민권에 관하여(1642)을 완성하면서 생물학과 개인 그리고 사회를 분해하면서 합성하였다.

2. 왕당파로서의 홉스

1626년 홉스는 왕당파(royalist)로서 정치에 입문하였다. 홉스는 윌리암 코벤디쉬가 데본셔의 백작이 되면서 정치에 입문하자 자신도 정치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1628년에 홉스는 투키디데스thucydides를 번역하였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방어하긴 하였지만 민주주의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를 보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품게되었고, 강력한 중앙권력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홉스는 당시, 찰스1세와 의회 사이의 갈등의 골이 갚어져가는 상황에서 자신은 왕당파의 위치로서 선동정치가들과 군중지도자들에 대항하였다. 당시 영국은 종교적 갈등으로 인하여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이전에 헨리 8세(1509-1547)는 그 유명한 결혼 문제를 초래했었다. 헨리 8세의 첫번째 부인, 캐더린 아비뇽Catherine Avignon은 딸 메리Mary를 낳았다. 그러나 아들을 바라고 있던 헨리 8세는 바티칸에 결혼무효를 청원하였지만 바티칸은 그의 청원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영국내의 프로테스탄트들은 반발하였고 부화뇌동한 헨리 8세는 앤 볼린Ann Boleyn과 결혼하여 딸 엘리자베스를 낳아버렸다. 나중에 헨리 8세는 앤 볼린이 사이모Jane Seymour와 혼인하게되자 그녀을 처형해버렸다. 헨리 8세는 아들을 얻기 위하여 세번 결혼하였고 두번 이혼하였다. 이 틈에 영국은 로마 캐돌릭과 단절하면서 프로테스탄트국가가 되고말았다. 헨리 8세가 타계하자, 헨리 8세와 캐더린과의 사이에 낳은 딸, 메리가 즉위하여 메리 1세가 되었다. 실제로, 메리 1세는 캐돌릭을 복구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실패하였고 끝내 왕위를 막내 여동생인 엘리자베스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1558-1603)는 재위동안 걸림돌이 되었던 전직 여왕 메리를 1587년에 처형해버렸다. 이것을 빌미로 영국의 로만캐돌릭은 엘리자베스여왕에 대하여 음모를 꾸미기시작하였지만 청교도들 또한 여왕으로 하여금 로만캐돌릭을 숙정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당시 영국의 농민들은 영주에 대항하여 세력을 키워나갔고 의회 또한 군주에 대항하여 세력을 키워나갔다. 엘리자베스 1세가 재위하는 동안 청교도들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로만 캐돌릭을 숙정하기시작하였다. 재이있게도, 당시 미국의 뉴 헤븐New Heaven은 청교도와 긴밀히 연결되었다. 영국의 목사, 존 데븐포트John Devenport는 1638년 청교도들을 인솔하여 뉴 헤븐에 정착하였던 것이었다.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은 처녀여왕이라고 불리웠지만 진짜 처녀였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그녀 주위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녀는 유능하고 똑똑한 여왕이었으나 결혼하지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상속자 없이 타계하자 왕위는 영국인들이 불신하는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Stuart가로 넘어가게되었다. 이것은 대재난의 시작이었다. 영국 의회는 새 왕인 제임스 1세James 1(1603-1625)와 충돌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찰스 1세가 즉위하였다.

1640년 홉스는 정치학의 기본서라고 할 수 있는 <법, 자연, 정치의 원리Elements of Law, Natural and Politics>를 완성하였다. 실제로 홉스는 군주를 지지하면서 의회에 대립하였다. 홉스는 왕당파였으므로 매우 어려움을 겪게되었다. 변란이 임박하자 홉스는 목숨이 위태로웠고 영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되었다. 홉스는 영국을 떠나서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었고 10여넌 후인 1651년까지 살았다. 홉스는 프랑스에서 체류하는 동안 왕당파 망병객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1642년 당시 찰스 1세Charles1의 군주정에서 내란Civil War이 일어났다.

1649년 찰스 1세는 처형되었고 군주제가 폐지되었다. 올리버 크롬웰은 권력을 거머쥐었다.

1651년 홉스는 프랑스에서 <리바이어던Leviathan>을 완성하였다. 재미있게도, <리바이어던>은 찰스 1세를 지지하는 왕당파 망명객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구실이 되었다. 왜냐하면 홉스는 <리바이어덩>에서 새 주권자는 합법적(legitimate)일 수도 있다고 제안하였던 것이 마치 올리버 크롬웰의 합법성을 인정해주는 꼴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홉스는 왕당파 망명객의 미움을 받으면서 프랑스를 떠나서 영국으로 돌아갔다. <리바이어던>은 대단한 문제작이었다. 특히, 19세기에 뜨거운 이슈가 되었고, 삼 사십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많은 경제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은 홉스의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이론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즉, 홉스는 최초의 합리적 선택 이론가였다. 홉스는 방정식을 이용하여 많은 명제들를 다루었다. 경제학자들이 원했던 것은 과학적 방정식을 통한 진리값이었다. 홉스는 그것에 걸맞게 명확한 이성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3. <리바이어탄Leviathan>의 구조와 주요 내용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악하다. 따라서 만인이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를 피하기위해서는 아주 강력한 주권자(sovereign)가 필요하다. 이것이 홉스의 포인트이다. 원래,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다 괴물이다. 홉스는 질서를 부여하는 국가 또는 주권자를 리바이어던으로 표상하였다.

1651년에서 1660년까지 홉스는 주로 대학구조를 비판하는 저작들을 발간하였다.

1660년 영국은 군주제로 복귀하였다. 이제 찰스 1세의 아들인 찰스 2세가 왕이 되자, 홉스는 법복을 입으면서 왕당파로서 명성을 누렸다. 하지만

1666년 런던에 대화재가 발생하였고 전염병이 퍼졌다. 사람들은 이 화재가 죄 많은 런던에 대한 신의 복수라고 믿었다. 곧 이어서 무신론에 대한 정죄령이 내려졌고 사람들은 속죄양을 찾기시작하였다. 속죄양은 다름아닌 홉스였댜. 홉스는 유물론자였고 그의 저작은 무신론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홉스의 책들은 불살라 태워져야했다. 운좋게도, 홉스 자신과 그의 책들은 화형을 면했다.

1679년 홉스는 타계하였다. 홉스는 해외에서 대단한 존경의 대상이 되었지만, 영국에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리바이어탄>은 두 권으로 되어 있다. 각 권은 500페이지 분량이다. 제 1부Part 1는 인간에 관한 것이다. 제 1장에서 5장 까지, 인간의 작동에 관한 여러 기게론을 다루었다. 홉스는 갈릴레오의 운동 이론에 빠져있었다. 홉스가 말하는 감각, 상상력, 화술, 이성 등은 생물학적인 운동이었다. 제 6장은 재미있게도 충동, 선호, 욕망과, 혐오, 공포에 대한 것이었다. 홉스에 따르면 모든 자발적 행동은 선호와 혐오간의 숙고의 결과로부터 나온다. 제 7장에서 11장까지, 사람들 간의 행동습관에 대한 것이었다. 제 12장에서 16장까지, 자연 상태, 자연법,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었다.  제 2부Part 2는 코먼웰스Commonwealth에 관한 정치이론이었다. 그것은 정부와 주권자와 신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제 3부Part 3는 그리스도인들의 연방국에 대한 것이었다. 제 4부Part 4는 어둠의 왕국에 관한 것이었다. 다음, <리바이어탄>의 주요 내용은 첫째,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둘째, 자연과 계약의 관계는 무엇인가. 알다시피, 홉스는 최초의 계약론자였다. 홉스에 따르면 사회를 통합하는 수단은 사회계약이므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계약을 이해하여야 한다. 셋째, 주권자의 정당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홉스는 자신이 경험했던 혼란한 시기를 통하여 정당한(identifiable)주권자를 찾고자하는 욕망이 있었다. 주권은 왕이 가져야 하는가, 아니면 지주가 가져야 하는가, 아니면 농민이 가져야 하는가, 아니면 의회가 주권자인가. 도대체 누가 주권자인가. 홉스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정당한 주권자를 찾고자 하였다. 그럼,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홉스는 인간은 선호와 혐오사이에서 숙고한 결과로써 자발적으로 행동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놀랄만한 이슈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홉스의 포인트이다. 홉스는 자유의지로부터 자발적 행동(voluntary act) 개념을 개발하였다. 홉스에 따르면 자발적 행동이란 절대적 자유의지와 완전한 결정주의 사이의 중도(halfway)이다. 우리 인간의 본성은 선호와 욕망에 이끌리면서 자발적으로 행동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그렇듯이, 선호와 욕망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드라이브를 건다. 홉스는 이 드라이브 충동을 따르는 것을 선호라고 불렀다. 홉스는 혐오와 공포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이를테면,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이 여기 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손에 넣을 수가 없어서 두렵다. 이때 당신은 선호 또는 욕망과 저편의 혐오 또는 공포와의 사이에서 스스로 협상하여야 한다. 이 협상의 결과로서 나오는 것이 자발적 행동이다. 당신은 선택을 통하여 행동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값의 행동을 할 것인지 저울질힌 후에 그 행동이 충분한 가치가 있는지 결정한다. 예를들어, 여기 나에게 딱 어울릴지 모르는 파트너가 있다. 나는 그녀에게 접근하여 "차 한잔 할까요?"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위험한 행동일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로부터 "꺼져" 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녀로 부터 차이고 싶지않다. 때문에 나는 그녀로부터 거절당하지 않을까 공포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나는 어떤 합리적 선택을 할 것인지를 저울질하기시작한다. 만약, 당신이 "꺼져"라는 말을 듣게되리라는 숙고를 한다면 결코 "차 한잔 할까요?"라는 말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고 그녀를 포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본성인 공포가 선호를 뒤엎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발적 행동이다. 자발적 행동은 자유이다. 물론, 인간 본성인 선호를 충족하기위하여 한번 더 그녀에게 시도하는 결정 또한 자유이다.

4. 인간의 본성

+ 인간의 본성은 권력 추구이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 본성의 본질은 권력 투쟁이다. 이것은 중요한 이슈이다. 인간은 타인을 지배하고자 한다. 한 인간이 생존하고자 한다면 그는 마땅히 전능한 주권자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전능한 주권자가 필요하다. 홉스는 인간의 자발적 행동(voluntary act)에는 두가지 운동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첫째, 생명적 운동(vital motion)이다. 이것은 혈액, 맥박, 영양, 음식 등을 말한다. 둘째, 동물적 운동(animal motion)이다. 이것은 자발적 운동이라고도 하는데 선호, 욕망, 혐오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필요를 만족시키기위하여 비용을 지불한다. 우리는 먼저 그것이 우리를 만족시킬 만큼 가치가 있는지를 알아본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정도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든 전부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할만한 물질적 자금과 정신적 여유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무엇을 먼저 해야 하고 무엇을 더 많이 해야 하는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홉스의 이 합리적 선택 이론은 후일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매우 상통하고, 애덤 스미스의 경제이론과도 매우 가깝다. 오늘날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라든가 합리적 선택이론 경제학자 그리고 정치학자와 몇몇 사회학자들은 홉스로부터 이 합리적 선택(rationanl choice)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다. 홉스가 주장한 숙고와 의지에 관련해서, 우리는 선호 또는 혐오의 감정 있을 때 비로소 무엇이 가치있는 것인지 숙고하게된다. 이를테면, 당신의 선호, 욕망, 혐오의 총합은 당신이 바라는 대상이 성취되거나 또는 아예 불가능하게될 때까지 계속된다. 이 계속된 과정이 바로 숙고이다. 당신은 이 숙고의 과정을 통하여 마지막 단계의 선호 또는 혐오를 남겨두게된다. 이것은 바로 의지이디. 이것이 합리적 선택에 관한 홉스의 포인트이다. 예를들어, 나는 결정했다. 그녀와 차 한잔을 해야겠다. 아니다,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들이 바로 의지이다. 재미있게도, 자발적 행동은 이성에 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벌적 행동은 의지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인간 본성으로서 권력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다.
홉스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일반적인 습성은 끊임없이 또 쉼없이 권력에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타인에 대하여 영향을 끼치고자 욕망한다. 그 욕망은 죽어서야 끝난다. 이것이 홉스의 포인트이다. 홉스는 권력에 대한 욕망은 악이 아니라 그것은 필요하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존하고자 한다면 계속해서 타인들에게 영향을 끼치지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권력을 그토록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홉스의 아이디어로서 나중에 니체와 막스 베버도 공유한다.

+ 인간 본성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홉스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주창한 최초의 철학자 중의 한명이다. 따라서 1651년에 귀족, 농노, 노예 그리고 노예 보유자는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빈약한 인간도 가장 강한 인간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심지어 다윗도 골리앗을 죽일 수 있었다. 또한 우리 인간은 육체적으로보다 지성적으로 더 평등할 수 있다. 정말 아름다운 말인지도 모르겠다. 재미있게도, 홉스는 이러한 평등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끊임없는 싸움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모두 서로 같아지고자 욕망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욕망하는 대상은 희소하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욕망을 충족하기위해서 서로 싸우면서 쟁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싸울 수 없다. 왜냐하면 재미있게도, 우리 인간은 서로 평등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우리 인간이 평등한 이유는 인간은 서로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홉스의 이러한 논증은 평법하지않다. 홉스는 매우 아이러닉한 인간이었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 평등은 사회 갈등의 해결책이 아니라 사회갈등의 불씨일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재미있고 아이러닉한 문제이다.

+ 인간의 본성은 만인이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이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전쟁 상태에 놓여있다. 한 개인과 상대방은 자신들의 이성의 한게 내에서 행동한다. 따라서 재미있게도, 그 개인은 상대방의 육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게 된다. 재미있게도, 상대방 또한 그와 똑같이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다.

5. 사회계약

과연, 진정한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는 많은 논란이 되어왔다. 모든 구속이 제거된 자연 상태에서는 어떠한 도시 문화(civilization)도 이루어질 수 없다. 알다시피, 모든 인간은 자기이익(self-interest)를 추구한다. 홉스는 두가지 기본적 자연법을 주장했다. 첫째, 제1자연법은, 자기 자신에게 해로운 것은 금지된다는 것이다. 홉스의 합리적 선택이론에 따르면 개인은 자기이익을 추구한다. 또 개인은 자기보존을 위한 자연권을 가지고 있다. 둘째, 제 2자연법은 남이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들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계약을 필요로한다. 개인들은 권력을 주권자로 이전(the transfer of rights)할 수 있다. 홉스의 자연법은 아주 중요한 윤리이론으로서 다음 세기의 임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과도 일치한다. 재미있게도,홉스에 따르면 자연 상태를 제한하기위한 억압이 필요하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아이디어와도 일맥상통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도시문화(civilization)는 인간 충동drive의 만족을 통해서가 아니라 충동drive의 억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개인들의 충동이 충족되었다면 도시는 완성되지않았을 것이다. 도시문화(civilization)는 개인들의 고통을 통해서 또 억압된 충동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당신은 성적 욕망과 같은 충동의 억압을 통하여 위대한 에술작품을 남길 수 있고, 위대한 과학자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제 2자연법에 따르면 각자의 권리는 모아서 타자에게 넘겨질 수 있다다. 이러한 권력 이전은 상호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몇몇 권리를 포기하는대신에 보호와 안전 등을 타자와 교환할 수 있다. 사회계약은 우리가 이러한 권리들을 타자에게 이전(transfer)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사회계약론의 공식(formulation)이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로크나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공포에 의하여 계약하였을 때 그것은 구속(obligatory)적이다. 우리가 두려움속에서 강제로 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우리는 그 계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은 현상유지status quo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홉스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홉스는 최초의 계약은 이후의 모든 계약을 무효화한다고 하였다. 이런식으로 해석하면, 어떤 이혼도 있을 수 없다. 한번 결혼 서약를 했으면 죽을 때까지 살아야하는 것이다. 최초의 계약을 무효화하는 어떤 새로운 계약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6. 주권자의 권력

정당화된 주권자의 권력(power of the sovereign justified)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에 그 목표가 있다. 권력은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한다. 시민들은 단지 주권자가 안전을 보장하는 범위까지만 복종의 의무가 있다. 혼란한 시절을 경험했던 홉스는 묻는다. 도대체 누가 주권자인가. 첫째, 주권자는 한 인간 즉, 군주일 수 있다. 둘째, 주권자는 인간 집합체인 의회일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홉스는 절대주의에 매우 호의적이었지만 주권자는 올바르게 구성된 의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홉스는 올바른 의회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후 로크와 루소는 주권자의 정체에 대하여 확실히 밝혔다. 또 미국 헌법은 아주 명확하게 주권자의 정체를 밝혔다. 미국 헌법은 "우리들은We the people" 이라고 시작하는데, 바로 그들이 주권자이다. 재미있게도, 홉스는 군주가 주권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홉스에 따르면 주권자는 의무를 갖고있다. 주권자는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는 단순한 안전 보장을 넘어선 생존 이상의 의미이다. 따라서 시민들은 주권자에게 이런 것을 배달하도록 기대할 수 있다. 만약 군주가 안전보장과 생존보장을 배달하는 데 실패했다면 시민들은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철회할 수 있다.  홉스는 절대주의 이론가였지만 악한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철회하고 선한 군주인 새 주권자에게 충성심을 이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않았다. 그럼, 선한 법이란 무엇인가. 보통, 사람들은 선한 법은 주권자를 위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선한 법이란 주권자를 위하여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법이다.

7. 홉스의 강점과 약점

홉스는  평화와 질서에 역점을 두면서도 주권자가 권력을 남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이것은 나중에 로크에 의하여 비판을 받게된다. 로크는 주권자가 충분히 권력을 남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홉스는 권력 견제에 대한 어떤 이론도 개발하지 못했다. 홉스는 견제와 균형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지 못했다. 미국 헌법은 홉스가 아니라 로크와 몽테스키외의 이론에서 나왔다. 몽테스키외의 견제와 균형 이론은 미국 헌법에 자리잡았다. 홉스는 단순한 절대주의 이론가라기 보다는 계몽 절대주의 이론가였다. 홉스는 진짜 괴물과 대항했으므로 군주와의 사이가 멀어졌다. 홉스가 군주 권력에 너무 많은 제약을 가한 것도 그 이유였다. 재미있게도, 홉스는 당시 막 등장한 부르조아 계급에게도 냉대받았다. 부르조아들이 보기에 홉스는 군주제에 너무 많은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도 홉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하여 오늘날 홉스의 목소리에 귀를 틀어막을 일도 아니겠다.







<참고문헌>

원문,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