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8일 화요일

10-5. 베버: 법-합리적 지배

1. 법-합리적 지배 이론

베버의 이론 중에서 법-합리적 지배와 관료제 지배는 가장 많이 알려진 이론이다. 법-합리적 지배이론은 다소 복잡하다. 보통 말하는 법-합리적 지배는 간단히 법의 지배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법의 지배를 자유시장경제 또는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연상하는 경향이 있다. 베버는 법-합리적 지배에 대하여 매우 복합적인 주장을 하였다. 법-합리적 지배는 당연히 예상가능한predictable 지배 시스템을 말한다. 법=합리적 지배에는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따르는 관찰 가능한 법이 존재한다. 사실 법-합리적 지배는 확실히 시장경제와 선택적 친화elective affinity와 밀접하다. 매우 반-직관적counter-intuitive 이게도 베버는 가장 순수한 법-합리적 지배는 관료제bureaucracy라고 주장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시장 경제가 관료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베버는 가장 순수한 유형의 법-합리적 지배와 시장 자본주의가 함께 맞물린 것이 실제로 관료제라고 하였다. 그러나 베버는 법-합리적 지배와 관료제 그리고 자본주의가 반드시 민주주의와 함께 나아간다고는 가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베버는 과연 민주주의가 그러한 그림에 들어맞을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법-합리적 지배이론은 1914년에서 1920년 사이에 쓰여졌다. 그당시 어느 나라도 자유 민주주의이나 보편적 참정권 보장에 도달하지 못했다. 세계의 정치제도는 지난 100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베버의 법-합리적 지배이론은 사실상 대단히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이 오늘 강의를 위한 가이드 라인이다. 놀랍게도 가장 이상적이면서 순수한 법-합리적 지배 형태는 다름아닌 관료제 지배라는 것을 기억해두자. 우리는 이 관료제 지배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또 관료제의 제한으로서 공치관계collegiality와 기능적인 노동분업 살펴볼 것이다. 정부 기관의 분리도 관료제에 대한 제한limitation on bureaucracy이다. 대의제representation와 민주주의의 활용은 분명 정부에 대한 제한이다. 민주주의와 관료제 지배, 법-합리적 지배, 자본주의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놓여있고 보통 우리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맞물려 있지 않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베버의 아이디어도 살펴볼 것이다.

2. 순수한 법-합리적 지배

법-합리적 지배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이슈에 중점을 두어야겠다. 법과 기준law and norms이 세워지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는 과연 동일한 것인가. 잘 알다시피 법의 지배는 민주적일 수 있지만 민주적이 아닐 수 도 있다. 사실 법의 지배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또는 무엇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이것은 바로 법-합리적 지배의 문제이기도 하다. 법과 기준이 세워지는 방법에는 여러 경로가 있고 법의 지배는 분명 아이디어에 기초한다. 베버에 따르면 규범norms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듯이 동의agreement 또는 부여imposition에 의하여 제정된다. 법은 사람들을 향하여 부여될 수 있다. 또 법은 편의expediency를 위하여 제정될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동의절차를 거쳐서 가장 알맞은 법을 제정하고 그 법에 복종한다. 또는 지배자가 법을 일방적으로 부여할 수 있다. 또 법은 가치 합리성value rationality에 기초하여 부여될 수도 있다. 그 법은 불편할 수 있고 또 반드시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공통된 가치에 따라서 제정되거나 지배자 개인의 가치에 따라서 제정될 수도 있다. 물론 법 시스템은 일관적이어야 한다. 법 시스템의  예측가능성과 의도성은 매우 중요하다. 법은 우연히 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intentionally 제정되는 것이다. 사실 베버가 법-합리적 지배에서 의도했던 것은 권위주의authoritarian 시스템일 수도 있다. 피노체트는 칠레에서 정권을 거머쥐게 되자 참주tyrannical 지배자가 되었다. 나중에 피노체트는 민주적이지는 않았지만 법-합리적 질서를 세웠다. 피노체트는 칠레에서 법 시스템legal system을 운용하였다. 역사상 이러한 예는 많이 있어왔다. 그 사람들은 "이 나라에는 법과 질서가 있다. 우리는 법의 본질을 잘 알고 있고 실제로 이 법은 비이성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법은 지배자가 부여한 것이었다.

+ 법의 지배rule of law에는 누가 무엇에게 복종하는가
법의 지배에는 누가 누구에게 복종하는가. 만약 우리가 인격적 지배자에게 복종한다면 우리는 그 사회에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잘 알겠지만 법의 지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지배자, 즉 명령자 또한 비인격적인impersonal 명령에 구속된다는 점이다. 법의 지배에는 우리 모두 동일한 명령에 구속된다. 이것이 순수한 법-합리적 지배의 핵심이다. 그러나 법의 지배에는 예외도 있다. 에를 들어 이탈리아의 대통령인 베를루스꼬니Berlusconi가 좋은 예이다. 이탈리아 의회는 법-합리적 지배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형사사건에 연루된 베를루스코니를 탄핵하고 기소하는데 실패하였다. 이것이 법-합리적 지배의 에외적인 경우이다. 법-합리적 지배의 게임 룰은 최고 권력자라 할지라도 동일한 지배시스템에서 그를 구속한다. 따라서 누구나 법에 복종하여야 한다. 이것은 아주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거울 영상the mirror image이라는 것이 있다.사실 사회의 구성원들은 우월한 지배자에게 복종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 개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격적인 질서impersonal order, 즉 법에 복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명백한 사실이다.

3. 법-합리적 지배의 특성

법-합리적 지배시스템의 주요한 특성characteristics은 무엇인가.

+ 합-규칙적 지도rule-bound conduct
법-합리적 지배는 지속적인 합-규칙적 지도rule-bound conduct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합-규칙적인 지도는 명확성clarification을 필요로 한다. 합-규칙적 지도란 지속적이고 일관된 규칙을 말한다. 규칙rules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점차적으로 변화한다. 이를테면 의회는 건강보험 법률안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사투한다. 그 법률안이 확정되고 시행되면서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새 법률은 법-합리적 지배에서 권위grandfathered를 갖게 된다. 새 법률안을 시행된다는 것은 게임의 룰을 바뀌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 법률은 분명 권위grandfathered를 갖지만 그 법률이 제정되기 이전에 게임에 들어온 자들은 여전히 이전의 구법의 지배를 받게 된다.  대학을 한 번 보자. 대학의 학위 자격degree requirements 규칙은 자주 변하다. 새 학위 자격 규칙은 항상 권위를 갖는다. 잘 알다시피 새로운 규칙은 이전의 프로그램에 이미참가한 자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 이 규칙은 오직 새 프로그램에 참가한 자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규칙에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참가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새 규칙안을 선호하는 이전의 참가자는 새 규칙을 선택할 수 있도 있게된다. 물론 참가자가 이전의 규칙에 머물기를 원한다면 그것도 가능하다. 새로운 규칙은 오직 그 시스템에서 그 규칙을 선택한 자에 한하여 권위를 갖는다. 이 지속성과 합-규칙성은 법-합리적 지배에서 매우 중요하다.

+ 경쟁의 범위(관할구)spheres of competence(jurisdiction)
법-합리적 지배는 경쟁의 범위spheres of competence를 매우 명확하게 분리한다. 이것은 지배자가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관할구의 지배자는 법을 합리적으로 운용한다. 관할구 지배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므로 다른 곳으로 찾아가시오." 라고 한다.  당신은 나가서 학부 담당자를 만난다. 그 담당자는 당신의 거주지 대학의 학장을 만나보라고 말한다. 이것은 바로 거주지 지역 대학들 간의 관할구(spheres of competence(jurisdiction) 때문이다.. 법-합리적 지배는 경쟁의 범위를 결정한다. 때문에 대학의 학장dean of college은 말하기를 ''당신은 사회학 교수나 경제학 교수를 만나시오.''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당신이 여름학기 학점credit을 원한다면 학장은 " 그것은 정치학과나 경제학과 또는 인류학과의 소관이므로 그들을 찾아가시오.'' 라고 말한다.

+ 위계hierarchy
법-합리적 지배에는 항상 위계a hierarchy와 탄원권a right of appeal이 따른다. 잘알다시피 당신이 디스커션 섹션discussion section 리더로부터 더 좋은 점수grade를 받고 싶다면 교수에게 탄원할 수 있다. 당신은 교수에게 탄원하기를 "나는 이 점수가 정말로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섹션 리더가 실수를 했던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교수는 냉담하다. 당신이 여전히 불만족스럽다면 학과장을 찾아가서 탄원할 수 있다. 보다시피 정당한 일처리를 위한 탄원에는 위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법-합리적 지배에서 탄원의 구조a chain of appeal와 위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 특화된 훈련specialized training
법-합리적 지배에서 당신은 특정한 위치에 오르기 위하여 특화된 훈련을 해야한다. 대학의 디스커션 섹션 리더들은 항상 최소한 대학원생으로 되어 있다. 대학원생은 박사과정Ph.D을 통과하면 자신의 전공를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박사학위논문을 끝마쳤거나 박사학위를 가지고 았어야 한다. 따라서 법-합리적 지배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특화된 훈련이 필요하다.

+ 관료staff
재미있게도 베버에 따르면 법-합리적 지배에서 관료는 행정수단의 소유와 일반 행정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 베버는 이것을 매우 강조하였다. 그러나 베버는 관료가 행정수단의 소유와 일반행정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 행정 관료가 행정 수단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행정 관료들은 법과 규칙의 근거 조항에 손 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행정 관료가 법과 규칙을 변경하는 일은 자신들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관료는 법-합리적 지배시스템의 여러 예측불가능성을 사전에 막을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이 시스템에서는 법과 규칙들이 항상 변동하게 된다. 행정관료들은 이 규칙들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지만 스스로 이 규칙을을 변동해서는 아니된다.. 이것이 법-합리적 지배의 근본적인 원칙이다. 예를들자면 당신은 학기 초 강좌 개요syllabus와 과제requirements를 받는다. 당신은 교수가 부과한 이러한 규칙들을 이행하지 않으면 않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교수가 강의 커리큘럼 위원회courses and curriculum committee의 승인을 거쳐서 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수들도 이러한 규정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오늘 예정에 없었지만 학기말 시험을 치르곘다."고 말한다면 당신들은 이러한 결정에 대하여 탄원할 것이다. 물론 나는 학교규정에 묶여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지는 못한다. 이것은 내가 행정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나는 단지 강좌개요에 따라서 행정관리할 뿐이다. 나는 단지 조금의 자유재량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당신들을 위하여 연장 강의 정도는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에서는 조금의 유연성 만이 있을 뿐이다. 이 강의는 강의개요에 따라서 수행되어야 하고 과제물도 미리 정해진 강의개요에 따라서 제출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행정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이전의 전통적 지배에서는 봉건영주가 군주로부터 여러 행정수단을 전유appropriate하였다. 영국과 프랑스의 대귀족들은 규칙을 제정할 수도 있었다. 대귀족들은 기존의 규칙들을 이행했을 뿐만아니라 새 규칙도 제정도 하였다. 현대 법-합리적 지배의 독특한 특징은 비인격적 과정에 있다. 규칙 제정자는 규칙 수행자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 이것이 행정수단의 분리이다. 이것은 매우 베버다운 아이디어이다. 맑스는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매우 강조하였다. 그러나 베버는 행정문제와 행정수단의 소유를 이슈화했다.

4. 관료제bureaucracy 지배

베버의 관료제 지배이론은 매우 재미있지만 또 매우 논란이 된다. 또 믿기 힘들겠지만 반-직관적counter-intuitive이다. 관료제란 무엇인가. 베버는 매우 놀랄만한 주장을 하였다. 당신은 가장 효율적인 조직은 관료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관료제는 가장 비효율적이다. 재미있게도 어떤것이 매우 비효율적inefficient일때 당신은 "이것은 정말 관료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버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은 바로 관료제라고 주장하였다. 관료제는 자본주의 또는사회주의와 어떤 관련을 갖고 있는가. 자본주의는 정말 관료제 조직인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관료제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관료제의 종말은 무엇인가. 관료제에는 어떤 모순이 있는가. 관료제의 특징은 무엇인가. 베버는 반-직관적이게도 행정 관료로 구성된 관료제가 가장 순수한 유형의 법의 지배라고 말하였다. 그러면 행정관료의 속성을 살펴보자.

+인격적인 자유personally free
행정관료들은 인격적으로 자유롭다. 따라서 행정관료는 단순히 지도자의 부하clients of mentor일 수 없다. 행정관료는 법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이다. 이것이 이전의 전통적 조직과 구별되는 점이다. 따라서 가족은 관료조직이 될 수 없다. 가족은 선택으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위계화된 직위
관료제에서 행정관료들은 직위를 가지고 있다. 그 직위는 위계화 되어있다.

+ 직위의 자유계약화
행정관료는 자유계약free contract에 따라서 직위를 얻는다. 또 행정관료들은 능력주의meritocracy따라서 규율된다. 관료들은 능력에 따라서 특정한 직위을 차지한다.

+고정된 급료
관료들은 고정된 급료를 받는다. 어떤 관료가 수수료commission만을 위하여 일을 한다면 그는 관료가 아니다. 관료가 되기 위해서는 계약절차를 거치고 부가 헤택fringe benefits과 연봉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관료조직에 입문하게 된다.

+ 유일한 직업
행정관료의 유일한 직업은 그 직위office이다. 그 직위는 경력이 따른다. 중요하게도 이것은 전통적 조직과 구별되는 것이다. 전통적 조직의 참모들은 다양한 직위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참모들은 자신이 맡은 모든 직위로부터 급료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순수한 관료조직의 관료들은 오직 한가지 직업만 가질 수 있다. 예를들어 예일 대학의 직위를 보유한 자는 이전 대학의 재직권tenure를 포기해야 한다. 예일 대학에 의하여 고용된 자는 오직 예일대학의 고용인employee이다. 당신은 동시에 다양한 직업을 보유할 수 없다. 그리고 직위office는 경력으로 구성되어있다. 경력이란 사다리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관료는 자신의 미래 직위를 예측할 수 있다. 예를들어 대학은 고전적 관료제 기구이다. 당신은 조교수assistant professor로 시작해서 보직없이 7-8년을 보내다가 마침내 보직을 받게 되는데 그때부터 정교수full professor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경력이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계를 포함한 많은 관료제 조직에는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있다. 만약 당신이 법률회사law firm에 들어간다면 미래에 댜한 확실한 아이디어를 갖게 된다. 실제로 대학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보통 7년간 법률회사를 위하여 일을 한다. 그리고나서 당신은 그 법률회사의 파트너가 된다. 따라서 당신은 자신의 경력이 어떻게 나아갈지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법-합리적 지배시스템에 현존하는 행정수단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당신은 규율을 따르고 규율에 따라 통제된다.

+ 관료제의 효율성
관료제의 효율성은 매우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베버의 주장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상반된다. 베버는 순수한 행정관료제는 최고로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베버는 관료제 중에서 특히 프러시아 관료제는 역사적으로 매우 효율적이었다고 말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관료제는  '기술적인 관점technical point of view' 에서 가장 효율적이라고 강조하였다. 물론 관료제가 최상의 복지welfare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술적인 관점에서 관료제는 가장 효율적이다. 왜냐하면 관료제는 가장 높은 수준의 예측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예측가능성이란 관료제 관청의 까다로운red tape 통과 절차나 시간적 지체를 말할 수도 있다. 관청의 예측가능한 까다로운 절차로 인하여 사람들은 몸소 탄원을 하기도 하고 빠른 일처리를 위하여 수소문하기도 한다.  베버에 따르면 관료제는 기술적으로 정당competent하고 예측가능하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이다. 실제로 관료제는 시장에서 매우 잘 들어맞게 되었다. 베버는 관료제의 기술적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관료제가 아니었다면 정당한 조직의 구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어떤조직이 관료제적으로 조직되지 않았다면 그 조직은 취미조직dilettantism에 불과한 것이다.

+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관료제
관료제와 자본주의는 서로 잘 들어맞는가. 매우 충격적이게도 베버는 관료제 행정의 최고 우월성은 기술적 지식technical knowledge에 근거한다고 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관료제란 지식을 통한 지배이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충격적이다. 관료제는 매우 훌륭한par excellence 능력주의 조직이다. 관료제에서 명령자는 그 조직에셔 가장 유능한 자라는 가정이 깔려있다. 잘 기억하겠지만 베버는 언제나 이상적 유형ideal type, 즉 순수유형을 이용하여 이론을 전개하고 있었다. 따라서 현실의 상황은 이상적 유형과 다를 수 있다. 어떤 관료는 유능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한 판단은 이상적 유형에서 추론된 것이다. 예를들어 당신은 흥분하면서 말하기를 " 이 웃기는 자는 너무 무능해서 일처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라고 하면서 상부에 탄원한다. 또 당신은 말하기를  "이 사람은 없는 것이 낫겠다. 이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르고 있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발언은 모두 이상적 유형에서 추론된 판단이다. 실제로 이러한 탄원은 매우 자주 벌어지고 있고 관료들의 무능력이 밝혀지면 그들은 곧 직위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대학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기는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대학은 재직제도tenure system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당신은 7년 동안 조교수로서 고생한 후에 보직을 갖게된다. 당신은 그때부터 그 직위을 그만두기 힘들어진다. 어느 동료교수가 당신의 무능력을 발견하고 문서를 작성하여 이 교수는 무능력하고 모든 저자들을 곡해한다고 밝히면서 정말이지 쫒겨나야 한다고 대학에 탄원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의 재직tenure은 대학에 반환될 수 있다. 당신은 무능력으로 인하여 직장을 잃어버릴 수 있다. 물론 그 이유는 당신의 무능력 때문이어야 한다. 실제로 대학은 그렇게 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렇게 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은 관료제이고 그러한 규칙이 있으므로 이러한 예는 일어나기도 한다. 베버는 이상적 유형은 사소유권에 기초한 자본주의 경제이든지 또는 공공소유권에 기초한 사회주의 경제이든지 간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사실 베버는 1919에서 1920년 사이에 이상적 유형 이론을 정립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소비에트 연방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사회는 이미 사소유권이 제거된 상태였다. 베버는 말하기를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형식적 관료화formal bureaucratization를 요구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매우 재미있는 아이디어이다. 이전까지 베버는 관료제는 자유시장 경제와 가장 잘 들어맞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베버는 사회주의가 실제로 훨씬 더 관료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매우 충격적이게도 베버는 말하기를 "그러나 사회주의 관료제는 형식적인 합리성과 실질적인 합리성substantive rationality사이에 큰 갈등적 문제가 놓여있다." 고 하였다. 왜 베버는 형식적 합리성과 실질적인 합리성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였을까. 관료는 형식적 합리성에 따라서 행위의 형식적 목표인 게임의 룰을 실행할implement 수 있다. 또 관료는 실체적 합리성에 따라서 행위의 실체적 목표인 복지welfare를 실행할 수 있다. 베버는 말하기를 "강제적 공공 소유, 즉 중앙계획 경제에 있어서 중앙의 계획자는 경제 전반에 대한 실질적 결정을 한다." 고 하였다. 사실 중앙의 계획자는 납세자의 돈과 정부 계획을 이용하여 구체적으로 사회 전반의 투자 분야을 결정한다. 그러나 전형적인 자본주의 정부는 그렇게 결정할 수 없다. 자본주의 정부는 단지 게임의 룰을 정할 뿐이다. 자본주의 정부는 최대한 이자율을 조정하고 환율을 조정할 수 있지만 자원을 경제 전반에 걸쳐 구석구석 할당할 수 없다. 만약 정부가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은 "우리는 사회주의로 가고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한 정부는 실질적인 합리성을 포함되는 범위까지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베버는 말하기를 "그 정부가 사회주의체제라면 대단한 문제가 될수 있다." 라고 하였다. 실제로 관료는 형식적 합리성을 갖는 동시에 실질적으 합리성을 갖는 것은 있을 수는 없다. 관료는 결정의 내용를 고려하든지 절차를 고려해야한다. 따라서 관료가 절차procedure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형식적 합리성이다. 그리고 관료가 내용content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실질적 합리성이다.. 예전의 공산주의 국가와 중국의 법 제도와 법의 정의를 살펴보자. 그 나라의 법원은 기소된 피고인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잘알다시피 공산주의 법 제도system는 계급 법class law으로 되어있다. 법 제도의 목적은 범법자에 대하여 눈을 감는 것이 아니다. 사실 공산주의 법 제도의 목적은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방어하는 데에 그 정당성 있었다. 따라서 공산주의 법은 구체적으로 실질적 합리성에 기초한 법시스템이었다. 반면에 자본주의 법 시스템은 절차적 형식 합리성에 기초를 두고있다. 자본주의 법시스템에서 판사는 원칙적으로 누가 기소되었는지 문제삼지 않는다. 이것이 베버가 말한 이상적 유형이다. 그러나 판사들은 현실적으로 사법하면서 피고인의 실질적 특수성을 고려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판사는 판결을 내릴때 형량 완화를 고려할 수도 있다. 분명 이 게임 안에는 실질적 고려들considerations이 들어오고 있다. 이를테면 당신이 백인이면서 부자라면 당신은 훨씬 능력있는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을 것이고 동일한 게임 룰 안에서 무죄가 될 확률이 더 높다. 사실 실질적 고려들은 이런 식으로 게임 안에 들어온다.  이것은 예외적인 경우이고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격노한다. 사람들은 얼굴없는faceless 법시스템을 갖기 원한다. 정의는 맹목적이다justice is blind라는 말이 있다. 정의의 맹목이란 절차적으로 정당just한 것이지 실질적으로 정당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의는 눈을 감으면 나타난다.

5. 관료화의 결과들

관료화의 결과는 무엇인가.

+ 이익의 수평화
베버는 관료제에서는 이익이 수평화된다고 하였다. 모든 관료는 원칙적으로 법 앞에서 평등하므로 이익interest은 수평화levelled될 것이다. 관료제에는 위계적 지위에 따른 이익이 있다.

+ 능력주의화
베버는 관료제에서는 능력을 우선시한다고 하였다. 고위직의 관료는 고도로 훈련되었거나 더 많은 훈련량을 쌓았다. 이것은 정의는 맹목이라는 명제를 반영한다.

+ 비인격적 정신의 공식화 경향
베버는 관료제의 핵심은 형식적 비인격성formalistic impersonality에 있다고 하였다. 형식적 비인격성이란 미움과 열정이 없는 상태sine ira et studio(without hatred and passion)를 말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관료와 직면했을때 종종 흥분을 하게된다. 진정한 관청의 관료들은 개인의 심각하고 특별한 문제에 관하여 무관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말하기를 "나는 아까 여자친구와 싸워서 지금 시험 치를 생각이 없습니다." 라고 한다. 그러나 관료는 당신에 대하여 미움도 열정도 없는sine ira et studio 상태이다. 진정한 관료제의 디스커션 리더나 교수는 당신에게 '' 그것 참 안됐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개인적인 문제이고 시험은 치러야 한다. 당신은 시험을 치르든지 떠나든지 하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 교수들은 그렇게 바보같은 관료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관료제의 정신이다. 관료가 미움과 열정이 없다는 것은 개인적인 느낌에 따라서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나는 이 학생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므로 좋은 점수를 준다거나, 저 학생에게는 미움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쁜 점수를 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관료제화의 모순
관료제는 매우 형식적formalistic 이다. 베버는 관료제에는 또다른 재미있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비록 관료제는 형식적이긴 하지만 간단한 규칙에 의하여 수행되어진다고 하였다. 사회주의에서 뿐만아니라 관료제의 모든 시스템에서 사람들의 복지와 관련하여 합리성을 실질화하고자 하는데 매우 민감하다. 이 때문에 관료제는고객주의적clientalistic 시스템으로 변질되는 경향이 있다. 관료제는 이러한 경향을 가질 수 있다. 복지 관청welfare bureaurocracy를 생각해보라. 그 관청들은 대단히 고객편의주의적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있다.

5. 관료지배의 제한들

관료지배에는 여러가지 제한들이 있을 수 있다. 관료지배의 제한에는 공치collegiality, 권력의 분립 , 대표제representation가 있다.

+ 공치적 권력 분립collegial division of powers
베버는 공치collegiality는 전문적인 조직그룹에서 자란다고 하였다. 공치는 운용방법에 따라서 여러가지 있다. 이를테면 당신은 공치를 통하여 조직원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당신은 의사 관료로서 환자의 자문을 받게 되는데 당신은 그 환자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다른 동료 의사 관료에게 떠맡겨서 사태를 악화시키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공치collegiality란 서로 함께 몰입하는 것을 말한다. 법률가들도 매우 강한 공치감각이 있다. 법률직 관료들은 매우 공치적인 윤리를 갖고있다. 또한 대학 관료도 그렇다. 각 과faculty의 관료들은 서로 험달질하지 않는다. 그관료들은 공치관계를 학생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관료들은 상호 존경 속에서 서로 결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베버는 비토 공치veto collegiality가 있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베버는 공치the collegiality조직은 특정인에게 비토권을 수여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 특정인은 조직의 결정을 비토할 수 있다. 이 전형적인 예는 대학에 있다. 대학 총장은 교수의 종신재직권tenure의 수여 여부에 대하여 비토권을 가지고 있다. 대학내의 모든 기구가 재직권을 승인할지라도 대학 총장은 그 결정에 대하여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비토권은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행사되고 있다. 비토권은 공치조직인 행정관청에서도 행사되고 있다. 보통 의원회나 고문단advisory boards에 의하여 비토권이 행사된다. 공치는 보통 공통의 직업과 교역에서 생겨나고 비로소 공치관료 조직으로서 성장하게 된다. 당신들 대부분은 그러한 공치적 환경 안에 있는 직업을 택하게 될 것이다.

+ 기능적안 권력분립functional division of powers
공치는 관료제의 냉정함과 개인에 대한 무관심을 보완할 수 있다. 조직 내의 공치는 조직원 상호간의 특권을 기초로 한다.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에 대하여 특권royalty을 인정해준다. 의사는 동료 의사에 대하여 특권을 인정해준다. 교수들도 서로 특권을 인정한다. 이러한 권력의 분립은 로크, 몽테스키외, 그리고 루소가 주장했던 기능적인 시스템과 일치한다. 그러나 베버는 이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은 시스템 내에서 어느 정도의 예측 불가능성을 창조한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분립은 참주정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따라서 베버는 권력분립은 시장 경제를 위해서 좋은 것이라고 하였다.

+ 대표제representation
대표제에는 상이한 유형이 있을 수 있다. 대표제는 민주적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민주적일 필요는 없다. 사실 유전적hereditary인 인자에 따른 대표제도 가능할 수 있다. 전통적 지배에 따른다면 몽테스키외처럼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서 태어난 사람은 특정한 이익을 대표할 수 있다. 그 대표자는 개인적인 이익을 능가하는 전 신분의 이익을 대표하게 된다. 현대사회 또한 대표제를 가지고 있다. 대표는 순환rotation이나 추첨lot에 따라서 선출될 수 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렇게 행해졌다. 대표제는 제한된 위임limited mandate에 따라서 행해질 수 있다. 대표자는 반드시 그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소환될 수도 있다. 이것이 전형적인 공산주의 관료제이다. 베버는 자유 대표제free representation가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자유대표제는 대표자가 지명되거나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하여 선출되는 민주주의와 관련된다. 자유 대표제의 대표자는 타자의 지도instructions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신념에 구속될 뿐이다. 자유대표제는 일반적으로 미국의회Congress에서 볼 수 있다. 사실 미국의 민주당원은 공화당원과 함께 투표한다. 종종 민주당원은 "나는 민주당의 규율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고유한 양심에 따라서 행동한다.''고 말한다.

+ 자유 대표제와 자본주의 경제
자유 대표제는 자본주의경제와 양립할 수 있는가. 베버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산성calculability과 신뢰성reliability이라고 하였다. 이전의 자유 대표제에서는 투표를 위한 조건으로서 재산 자격property qualification이 있었다. 사실 자유 대표제은 자산가 계급을 위한 시스템이었다. 부르조와지는 보편적 참정권 보장에 대하여 많은 걱정을 하였다. 왜냐하면 부르조아지는 보편적 참정권 실시로 인하여 선거결과의 예측불가능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군주들은 참정권의 확대를 밀어붙였다. 군주들은 부르조와 자산가를 견제하기 위하여 보편적 참정권을 도입하고자 했다. 매우 반-직관적counter-intuitive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한 사실이다. 자본주의 경제질서와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를주의깊게 살펴불 필요가 있다. 베버의 근본적인 주장은 민주주의 역사학자들도 동의하는 것이다. 의회의 자유 대표제는 투쟁의 산물이다. 실제로 자유 대표제는 군주와 부르조아지 사이의 투쟁의 결과물이다.






<참고문헌>

원문번역,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2012년 2월 26일 일요일

10-4. 베버: 카리스마적 지배

1. 베버의 카리스마 이론

베버의 카리스마 이론은 가장 재미있는 이론 중에 하나이다. 아마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다음으로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카리스마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대하여도 항상 이야기한다. 베버를 읽지 않은 사람조차도 프로테스탄트 윤리라는 용어나 카리스마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용어들은 모두 베버가 조어하였다. 재미있게도 베버는 카리스마라는 용어 때문에 1930년대와 1940년대, 그리고 1950년대에 원조-독재자proto-fascist로서 의심받았다. 왜냐하면 그의 카리스마 아이디어는 독일의 강력한 지도력과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예견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베버의 카리스마 아이디어는 실제로 아돌프 히틀러를 예고했던 것이다. 물론 베버는 1920년대에 타계하였으므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철학자 게오르크 루카치는 베버를 가리켜 비합리주의자irrationalist라고 칭하면서 베버야말로 나찌와 아돌프 히틀러의 이데올로기를 기초놓았던 원형-독재주의자proto-fascist라고 비난하였다. 아마도 베버가 그때까지 살아있었더라면 1930년대 혹은 1933년에 분명히 나찌즘을 찬양했을지도 모르겠다. 또 그와는 반대로 베버는 자신의 동생인 알프레드 베버처럼 파시스트나 나찌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희망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카리스마 개념은 아돌프 히틀러의 경우와 맥을 같이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다루게 될 중심주제는 카리스마의 정의이다. 카리스마적 지배란 무엇인가. 카리스마의 근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왜 베버는 원조-나찌주의자가 될 수 없는가.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누구를 말하는가. 카리스마는 변화의 힘으로서 혁명적 동력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베버의 강점이면서도 약점일 후 있는 이슈를 살펴볼 것이다. 한편 맑스는 베버보다 훨씬 더 일관적coherent이고 설득적인 역사 발전이론을 전개하였다. 맑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대립을 설정하여 계급투쟁론을 전개하였다. 이 계급투쟁론은 역사적으로 무효화invalidated되었지만 매우 일관적이고 설득적인 주장이었다. 반면에 베버가 주장한 혁명적 힘revolutionary force으로서의 카리스마는 실제로 경험적 연관성empirical relevance을 갖고 있기는하지만 그다지 설득적이지는 못하다. 카리스마 이론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카리스마적 지도력은 일반화되고 개념화될 수 있는가.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승계방법은 무엇인가. 카리스마적 지배는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복종을 이끌어 내는가. 물론 사람들은 비인격적인 규칙에 대하여 복종할 수 있고 또는 인격적인 주인에 대하여 복종할 수도 있다. 지배의 핵심은 복종에 있다. 지배자가 규칙에 따라서 지배한다면 그것은 법-합리적 지배이다. 법의 지배는 현대 자유민주적 제도와 관료제를 포함한다. 사실 법의 지배로서 운용되는 형태로서 권위주의가 있다. 권위주의적 지도자는 실제로 법을 따르고 스스로 법을 진지하게 실행한다. 따라서 법-합리적 지배는 반드시 자유 민주주의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지배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다. 법-합리적 지도자는 반드시 민주적일 필요는 없다. 잘알다시피 민주주의는 매우 최근의 현상이다. 서구세계의 보편적 참정권은 1920년대 이후에 널리 퍼져나갔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정치의 지배적 형태가 되었다. 예를들어서 스위스의 여성 투표권은 매우 최근에 실시되었다. 따라서 자유 민주주의는 매우 최근의 신제품이다. 그러나 법-합리적 지배는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신제품이 아니다. 영국은 과거 오렌지 혁명 때 법의 지배를 실시했다. 미국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에 법의 지배가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그런 자유 민주적인 형태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어떤 보편적 참정권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민주주의는 아니었지만 법의 지배가 가능했다. 그리고 그 법의 지배는 분명히 주인에게 복종하는 시스템과는 매우 구별되는 형태였다. 사람들이 주인master에게 복종하는 데는 두가지 길이 있다. 먼저 사람들은 전통적인 주인의 권력때문에 복종할 수 있다. 또 사람들은 주인의 카리스마적 특질 때문에 복종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세가지 지배유형을 알고있다. 법-합리적 지배, 전통적 지배, 카리스마적 지배는 각각 상이한 존재론적 위상ontological status를 갖고있다. 역사의 두 거대한 흐름은 먼저 전통적 지배는 합리화rationalization과정을 통하여 결국 법-합리적 지배가 되었고 다음 카리스마적 지배는 보통 과도기 단계transitory stage에서 작용했다는것이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사람들의 엄청난 기대와 열망, 변화에 대한 필요성에 따라서 등장하게된다. 그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사람들을 해방하는 한 여전히 지도자로 남게된다. 그러나 해방이 중단된다면 그 지도자의 카리스마는 박탈당하게 된다. 카리스마적 지배시스템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자신의 카리스마를 후계자에게 이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 카리스마의 정의

카리스마란 무엇인가. 우리는 자주 카리스마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지난 18개월 동안 카리스마라는 용어를 매우 많이 사용했다. 왜냐하면 당시 대선 후보였고 지금은 대통령인 바락 오바마 때문에 그렇다. 아마도 이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오바마의 카리스마에 관하여 토론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오바마를 좋아하지 읺던 사람들조차도 그의 카리스마 부족을 언급하였다. 잘알다시피 카리스마라는 용어는 매우 자주 사용되고있다. 베버는 카리스마라는 용어를 다소 애매한 신학용어로부터 따왔다. 실제로 카리스마는 초인적인 기질을 가진 개인을 가리킬때 사용한다. 그들은 보통 반-신semi-god과 같은 존재들이다. 반-신들은 인격적으로 신들과 독점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신들과 교제할 수 있었고 신의 의지God's will를 인간들에게 해석해줄 수 있었다. 따라서 반-신semi-god이 카리스마적 지도자였다. 고전적인 카리스마의 정의는 세계의 위대한 종교 창시자들에 해당한다. 원래의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모하메드, 예수, 모세를 가피킨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에 대한 특별한 접근법special access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신으로부터 두 돌판two tablets을 받았다. 모세는 신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으로부터 두 돌판을 받았다. 모세 이외의 다른 어느 누구도 산 정상으로 걸어 올라가서 신으로부터 돌판을 받고서 '이것이 바로 법이다.' 라고 선언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세는 그것을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예수는 신과 매우 특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대상은 신 뿐만아니라 신의 육화embodiment of God인 신의 아들에게도 있다. 잘알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신의 의지를 각 사람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매우 특별하고 독특한 카리스마이다. 모하메드도 신에 대한 특별한 호소력를 지니고 있었다. 몰몬Molmon교의 스미스씨Mr.Smith는 신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날 천사가 내려와서 성경에 후속하는 신성한 책을 스미스씨에게 놓고갔다. 스미스씨는 그 책을 번역하였지만 그 번역이 사라져버렸다. 왜냐하면 천사가 내려와서 그것을 갖고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초인이 갖고있는 특별한 카리스마의 전형이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다른 어느 인간에게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직 스미스씨에게만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래의 카리스마 개념이다. 이제 베버는 카리스마의 개념을 다소 확장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카리스마는 특별한 기질의 인격적 개인에게도 해당한다고 하였다. 비범한 개인은 초자연적인 기질이나 초인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베버는 카리스마로서 "비범한 힘과 기질exeptional powers and qualities."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신성한 기원을 가지고있는 것으로서 믿어졌다.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들은 이러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이제 베버는 이것을 다소 수정modified하여 간단하게 모범화exemplary 하였다. 이제 반-신이거나 신의 육화적 존재를 믿을 필요는 없게 되었다. 카리즈마적 지도자는 비범한 힘과 기질을 지니고 있는 모범적exemplary 존재자이다. 카리스마적 개인이나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한정하는 기준은 비범한 힘과 자질이다. 포인트는 사람들은 카리스마적 개인person을 비범하면서 초인성을 지니고 있고 모범적 특질을 부여받았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베버는 카리스마적 초인superhuman은 사실, 인간적으로 비범하지는 않다고 말하였다. 이 개인의 초인적 이미지는 관찰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자신들이 추종하는 지도자에게 카리스마적 기질을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추종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3. 카리스마의 근거

카리스마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제 더 엄밀하게 따져보면서 카리스마를 인식recognition 하자.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그 추종자들 사이에는 상호-인격적inter-peresonal인 관계가 있다. 사실 카리스마는 이 지도자와 추종자 사이의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하여 창조된다. 카리스마는 주의 은혜grace of Lord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카리스마는 피지배인들subjected to authority 에 의하여 창조되는 것이다. 또 추종자는 자신을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제자로 생각한다. 따라서 추종자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위하여 각별히게 헌신extraordinary commitment한다. 이 추종자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열정적으로 매료excitement되었기 때문에 마침내는 추종자 또는 제자공동체를 창조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 때문에 지난 18개월 동안 바락 오바마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로서 신봉되었다. 바락 오바마는 군중들 앞에 등장해서 흥분과 감동으로 군중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다. 바락 오바마는 제자라고 할만한 추종자들을 창조했다. 그러나 이제 오바마의 카리스마는 철회withdraw될 위기에 처해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베버의 아이디어이다. 베버에 따르면 카리스마적 성공이 너무 오랜동안 그 지도자를 비춘다면 곧 카리스마적 지배는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일반적으로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곧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약속한다. 그러나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기적을 연출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카리스마적 기대를 그 지도자부터 철회withdraw할 것이다. 그리고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자신의 카리스마적 호소력을 상실하고 평범한 개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베버의 포인트이다. 잘알다시피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기적을 약속하면서 필요한 대상을 필사적으로 완수하겠다고 다짐한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카리스마는 추종자들의 기대와 열망에 긴밀하게 구속되어있다. 보통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때 사람들은 이 어려움을 타계할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필사적으로 찾는다. 이때 카리스적 지도자는 자신의 비범한 기질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되돌아보자. 오바마 후보자가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러한 경우였다. 기억하겠지만 지난 선거운동에서 특별했던 주요 선거구호는 희망, 변화, 할 수 있다hope, change,  yes, we can였다. 이것은 매우 전형적인 카리스마적 요소이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말하기를 "당신은 무언가 필요하다. 당신은 희망한다. 당신은 새롭고 독특한 직업을 원한다. 나는 당신들에게 그것을 약속하겠다. 나는 변화와 희망으로 당신들을 돕겠다. 나는 그 최적임자이다. 나는 해낼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예, 나는 희망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나야말로 그것을 해낼 수 있다." 라고 한다. 이것이 전형적인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발언이다. 최근의 역사를 보더라도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은 오바마 못지않게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였다. 피델 카스트로는 카리스마적 지배자이다. 쿠바사회는 1960년대 필사적으로 변화를 갈구하였다. 피델 카스트로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호소하였다. 카스트로는 부패한 정부를 멸하고 평등을 창조하겠다면서 사람들에게[ 호소하였다. 또 가난한 자들을 부유하게 만들고 풍요로움을 가져다주겠다고 호소하였다. 피델 카스트로는 정의로운 복지사회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마침내쿠바인들은 자신들의 카리스마를 카스트로에게 부여하였다. 아돌프 히틀러도 카리스마적 지도자였다. 잘알다시피 독일은 1차 대전에서 모욕적인 패배를 당하였고 이어서 대공황을 겪게되자 상황은 미국보다 훨씬 더 나빴다. 이때 히틀러는 오바마 못지않게  이 난국을 타계할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호소하였다. 히틀러는 독일인들에게 말하기를 " 이 모든 문제는 모두 유대인 음모이다. 우리는 유대인들을 제거하고 원래대로 복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제국이 필요하다." 라고 호소하였다. 히틀러는 이 문제를 다룰만한 능력이 있었다. 당시 독일인들은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갈구하고 있었다.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카리스마를 히틀러에게 부여하였다. 히틀러는 독일안들을 위하여 난국을 타계할 수 있었는가. 히틀러는 러시아 군대가 베를린으로 쳐들어자 확실히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더 이상 아니었다. 히틀러는 벙커에 몸을 숨기고 자살을 고민하고 있었다. 히틀러의 카리스마는 모두 사라졌다. 결국 히틀러는 독일인들을 구원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적을 연출하지도 못했다. 따라서 히틀러의 카리스마는 철회withdraw된 것이다.

4. 추종자들

베버에 따르면 추종자들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감정적 결합emotional tie을 통하여 감정 공동체를 창조한다고 하였다. 추종자들은 실제로 공동체(페어게마인샤프퉁Vergemeinschaftung)를 형성한다. 그 공동체에는 진정한 카리스마적 종교지도자가 존재한다. 그 지도자는 항상 인간 공동체를 창조하는 기질을 지니고 있다. 당신들은 근본적인 종교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십 대때 종교 경험을 했다. 그당시 나는 지극히 평범하게 보였던 한 설교자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설교자는 대단한 카리스마적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나의 카리스마를 그 설교자에게 부여하게 되고말았다. 곧 그 설교자는 자신의 주위에 공동체community를 창조하였다. 우리는 공동제에서 그 카리스마적 설교자를 신봉하면서 함께 형제와 자매가 되었다. 사실 이 공동체는 근본적으로 이단sectarian적 종교집단으로서 그리스도인, 무슬림, 복음주의에 매우 흔한 것이다. 당신들은 이러한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십 대 청소년들은 가족을 벗어나서 새로운 공동체를 찾고자 한다. 이러한 종교 공동체는 기존 종교의 대안으로서 기능한다. 당신들 중 몇몇은 분명 그러한 공동체에 몸담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종교공동제들이 분명 존재한다. 나는 공동체Vergemeinschaftung에서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공동체 안에서 가족과 버금가는 정신적 가족을 이루게 되었다. 이것은 상식적인 일인가. 당신들도 한번 공동체 경험을 해보면 알게 될 것이다. 베버에 따르면 공동체(vergemeinschaftung페어게마인샤프퉁)는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가 대중사회관계mass society relationship 속에서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카리스마적 정치운동은 사람들을 상식적인 공통원인common causes으로 결합시키면서 공동체를 창조한다. 예를들어 시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은 공동쳬Vergemeinschaftung를 창조한다.  마틴 루터 킹이나 바비 케네디Bobby Kennedy는 시민권 운동을 이끌었던 카리스마적 지도자였다. 그들은 공동으로 모여서 지독한 남부 인종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시민권 운동을 하였다. 이것은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사이에서 공동체감sense of community을 창조하였다. 실제로 그러한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지도자에 대하여 인격적으로 헌신한다. 왜나하면 그들은 지도자의 열정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자신들을 구원할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찾게 된다. 이것이 바로 레닌과 마오쩌둥, 카스트로가 공산주의 사회에서 등장하게 되었던 이유이다. 당시 그 공동체 사회들은 치욕humiliation적인 전쟁으로 인하여 깊은 수렁에 빠졌다. 이때 사람들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들을 파라다이스로 인도할 구세주saviour를 찾아야했다. 재미있게도 카리스마적 공동체는 관료공동체와 다르게 상대적으로 미미한 위계질서relatively little hierachy가 존재한다. 실제로 카리스마적 지도자 뿐만아니라 그 추종자들도 일정한 보수나 혜택에 동기화되어있지 않다. 보통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대규모 자원봉사자volunteer를 활용한다. 그 자원봉사자들은 자발적으로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위하여 시간과 자금을 제공한다.

5. 카리스마의 비합리성, 카리스마의 혁명적 힘

재미있게도 베버는 말하기를 "카리스마는 비범한 능력이다. 따라서 카리스마적 지배시스템은 합리적이고 관료적인 시스템과는 정반대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카리스마적 지배는 비합리적이고 인류역사상 존재했던 지배rules 시스템과  비교할때 매우 희귀한 시스템이다. 왜냐하면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속성 때문에 그러하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속성이란  변화를 이끄는 능력을 말한다. 변화란 새로운 게임의 룰rules of game이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사람들은 이 게임의 룰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른다. 때문에  카리스마적 지배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이 예상된다. 잠시 미국의 정치를 살펴보자. 미국은 명백히 법-합리적 시스템에 따라 운용된다. 이것이 미국의 특질이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종종 일정한 변화를 약속하면서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치인의 사회구제 능력과는 상관없이 그 정치인에게 카리스마를 부여할 수 있다. 미국은 루즈벨트, JFK, 마틴 루터 킹,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여러 카리스마적 정치인들이 있어왔다. 그러나 미국의 제도system 자체는 카리스마적이 아니었다. 카리스마는 미국의 지도자를 뽑는데 도움을 주었고 또 초창기에 지도자를 도와서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보통 오바마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오바마가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고 강압적이라거나 대통령직 초반에 그의 카리스마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사실 오바마의 카리스마적 호소력이 약화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오바마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 사람들은 정치적 변화를 약속받았지만 실제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불평한다. 따라서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법-합리적 지배에서 작동한다면 불가피한 문제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합리적 지배에서 변화를 가져오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규칙과 법을 바꾸고자 한다면 의회를 통하여 그렇게 하여야한다. 당신은 단지 지금 새로운 게임 룰rules of game이 세워졌다고 선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정치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레닌이나 마오쩌둥의 정치는 매우 다른 것이다. 레닌과 마오쩌둥은 절차적인 법-합리성을 외면하고 자의적으로 게임의 룰을 바꾸었다. 특히 마오쩌둥은 매우 재미있는 기질character의 소유자였다. 마오쩌둥은 중국대륙에서 처음으로 관료지배제를 세우고나서 문화혁명Cultural Revolution을 시작하였다. 충격적이게도 마오쩌둥은 이어서 반-관료적 운동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그 관료제의 최고지도자는 가장 반-관료제적인 자가 되었다. 마오쩌둥은 정말이지 불가사의하면서 비범했다. 잘알다시피 마오는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내었다. 그것은 1960년대까지 약화된 그의 카리스마를 벌충하고도 남았다. 마오는 맨 처음 중국인들에게 "대 도약 약진great leap forward"을 약속했다. 마오는 곧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고 미국처럼 풍요롭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대 약진의 결과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대재난이었다. 중국사람들은 굶어죽어갔다. 따라서 마오는 기적을 연출해내지 못했다.  그 다음에 마오는 무엇을 했는가. 마오는 게임의 룰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마오는 곧 문화혁명을 시작하였고 실제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마오는 그런 식으로 기적을 연출했던 것이다. 마오쩌둥이 나이가 들어서 마지막으로 연출하고자 시도했던 기적은 양쯔강에서 헤엄치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말하기를 "당신들은 내가 늙고 죽어가고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나는 초인이고 여전히 수영할 수 있다." 라고 하면서 자신의 카리스마적 호소력을 복구rescue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그때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카리스마를 마오쩌둥에 투사하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세워서 카리스마적 지배 시스템을 세운 후에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다. 잘알다시피 중국의 역사는 매 5년마다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 백화Hundred flowers시대가 열렸다. 모든 중국인들은 자유로웠다. 그 다음은 대 도약 약진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서 문화혁명이 출발하었다. 마오는 게임의 룰을 항상 바꾸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예측 불가능한 환경속에서 이루어졌다. 예측 불가능한 환경속에서 경제는 잘 작동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나찌와 스탈린주의자들도 똑같은 경우이다. 당시 예측불가능한 환경은 경제사업을 위해서 좋지 못했다. 사업business은 예측가능한 환경을 원한다. 또 사업은 법의 지배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와 경제사업은 법-합리적 지배를 선호한다. 자본주의는 반드시 민주적인 시스템을 선호할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는 권위주의적 특성들과도 멋지게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서 자본주의자들은 칠레의 피노체트를 선호하였다. 피노체트는 상당한 법-합리적 지배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 피노체트는 칠레인들을 미친듯이 학살했었다. 그리고나서 피노체트는 자본주의자들이 상당히 좋아할 정도로 예측 가능한 시스템을 창조하였다. 당시 칠레 경제는 밀턴 프리드만의 조언을 받으면서 한동안 성장을 계속하였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예측가능한 환경이다. 잘알다시피 민주주의는 여러 면에서 예측가능한 환경을 위해서 그렇게 좋은 시스템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매 4년 마다 투표를 하고 새 지도자를 뽑는다. 그 새 지도자는 이전과 구별되는 새 아이디어를 실행하게 된다. 이것은 다소 혼잡스럽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시장경제는 권위주위적 지도자와 더불어 정치적으로 안정된 법의 지배를 선호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자본주의자는 지배시스템의 대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 카리스마의 혁명적 힘revolutionary force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재미있게도 베버는 카리스마는 전통적 사회에서 혁명적 힘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사실 현대사회의 법-합리적 지배에서 변화를 이끄는 동력은 적어도 카리스마는 아니다. 법-합리적 지배에서 변화를 이끄는 것은 기술혁신technical innovation과 매 4년 마다 실시되는 일상적이고 지루한 선거이다. 대 변화는 전통적 지배에서 다른 유형의 지배로 이동할 때 일어난다. 이 전통적 지배는 다름아닌 가치시스템의 변화를 통하여 다른 전통적 지배유형으로 변화한다. 이때 가치시스템의 변화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담당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베버는 관료제화bureaucratic rationalization는 주요한 혁명적 힘이라고 말하였다. 알다시피 현대사회의 관료시스템은 실제로 밖without에서 들어온 혁명이다. 왜냐하면 관료제는 기술적 변화로 인하여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혁명을 경험하고있는 중이다. 나는 1976년 처음으로 인터넷과 이메일을 접하게 되었다. 잘알겠지만 나는 이메일에 빠져산다.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당신은 몇 분 안에 답장을 받게된다.  나는 미친듯이 이메일을 체크하기 때문이다. 이 이메일은 새로운 기술이다. 이 기술은 밖에서 들어오고있다. 반면에 카리스마는 안에서부터 나오는 직관적인 혁명이다. 카리스마의 임무는 가치시스템value system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카리스마적 자도자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새로운 가치시스템을 성취한다. 따라서 카리스마는 전통적 사회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법-합리적 지배에서도 사람들의 가치시스템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 벌어졌던 10년간의 시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은 미국인들의 가치시스템을 변화시켰다. 그 시민권운동이 없었더라면  인종race차별과 성gender차별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앞으로 100년간 불변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10년의 짧은 기간을 통하여 인종과 성문제에 대하여 완전히 새로운 사고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치 시스템의 변화는 전반적으로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하여 수행되었다. 마틴 루터 킹을 보라. 마틴 루터 킹은 새로운 사회적 가치시스템을 꿈꾸었다. 당신들은 너무 어려서 인종차별과 성차벌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의 부모와 조부모에게 한 번 물어보라. 미국인들은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과 세계관이 많이 바뀌었을 뿐만아니라 여성들에 대한 태도도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이러한 가치의 변화는 안으로within부터의 혁명이었다. 이것이 카리스마적 혁명이다..

6. 카리스마의 일상화 문제와 승계방법problem of routinization, method of succession

카리스마적 변화는 일상routine과는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카리스마적으로 행한다는 것은 일상적으로 익숙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카리스마적 지배는 분명 전통적 지배와 구별되는 것이다. 한편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사망하거나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는가.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어떤 식으로 대체되는가.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승계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검색search 될 수 있고, 계시에 의할 수 있고, 원 지도자에 의하여 지명될 수 있고, 참모들에 의하여 지명될 수 있고, 또 유전적hereditary 계보에 따라서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세워질 수도 있다. 또 직위 카리스마office charisma의 경우는 직위 자체office itself가 카리스마적 일 수 있다.

+ 검색search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검색을 통하여 세워질 수 있다. 가장 좋은 예는 달라이 라마이다. 달라이 라마는 검색을 통하여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다. 달라이 라마Dalai Lamar가 타계하면 그는 곧 환생reincarnated 한다. 따라서 사람을 보내어 환생한 갓난아기 달라이 라마를 탐문하게 된다. 환생한 달라이 라마는 유일한 어린아기이다. 전문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 아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 어린아기는 새 달라이 라마로서 성장하게 되고 대단한 역량의 카리스마를 발휘하게된다. 잘 알겠지만 달라이 라마의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당신이 환생을 믿든지 안 믿든지 그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아마도 당신들 대부분은 환생을 믿지 않을 것이다. 왜 달라이 라마는 놀라운 카리스마를 갖는가.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를 보고서 열광wild한다. 내가 대만에서 가르쳤던 한 학생은 스스로 불교도로 개종하고 열광적인 달라이 라마 추종자가 되었다. 그는 UCLA에서 박사학위을 땄지만 달라이 라마가 어디를 가든지 항상 따라다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카리스마를 달라이 라마에게 부여attributed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달라이 라마는 검색을 통해서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 세워진다.

+ 계시revelation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계시를 통하여 세워질 수 있다. 실제로 신성한 권위자는 특정인을 다음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 계시하고 선포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계시는 꼭 그렇게 작용하지는 않는다. 신문newspapers을 보라. 신문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창조한다. 사람들은 신문을 보고 특정인에 카리스마를 부여한다. 그 특정인은 사람들의 카리스마를 이용하여 카리스마적 지배 시스템을 세운다.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대중매체media를 탄생한 것이다. 사람들의 카리스마가 록스타에게 부여되면 그 록스타는 대중매체를 통하여 창조된 카리스마를 갖게 된다. 재미있게도 대중매체는 신탁oracle을 계시한다. 신문사들은 누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고 누구의 콘서트 행사장이 진짜로 값나가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 원 지도자에 의한 지명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죽기 전에 다음 승계자를 찾아내야한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 지도자는 다음 승계자를 지명하고 난 후에 독살되거나 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인수인계를 원하는 새 지도자를 살해하는 경우도 있어왔다. 이것은 인류의 오래된 역사이다. 재미있게도 스탈린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의 유언testimony을 위조하면서 자신의 카리스마를 세우고자 하였다. 그 유언장에 따르면 '레닌은 스탈린을 다음 승계자로서 지명했다' 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레닌은 실제로 스탈린을 대단히 싫어했고 승계자로서 지명하는 것도 꺼려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그 유언장을 위조하면서 바로 자신이 레닌의 카리스마를 상속했다고 말하였다. 실제로 스탈린은 자신의 카리스마를 세우는데 대단한 어려움을 겪었다. 스탈린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서야 가까스로 소비에트 연방과 서방세계로부터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 등장할 수 있었다. 사실 스탈린의 소비에트 연방이 독일을 격퇴하자 모스크바와 스탈린그라드에서 뿐만아니라 미국에서도 스탈린을 위대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 보기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붉은 군대Red army의 성공적 임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 자격있는 참모staff에 의한 지명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자격있는 참모에 의하여 지명될 수 있다. 가장 좋은 예는 교황이다. 교황Pope은 자격있는 참모들에 의하여 선출되고 난 후 카리스마적 지배를 행사하게 된다. 잘 알다시피 교황은 평범한 로만 캐돌릭교도들이 가질 수 없는 신에 대한 특별한 접근법access to God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교황의 카리스마는 다음 승계자로 이전되는 것이다. 교황의 기질character은 제 각각이다. 교황이 매력적이고 설득적이라면 그 교황은 더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 인정받게된다. 교황이 관료적이더라도 그 교황 또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 인정받는다. 교황을 세우기 위한 참모로서 대주교archbishops의 모임이 있다. 대주교들은 교황이 타계하면 모두 로마에 모여서 합의consensus한다. 대주교들은 누가 신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서 카리스마를 행사할지에 관하여 전원이 동의할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못한다.

+ 유전적 카리스마hereditary charisma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유전에 의하여 세워질 수 있다. 카리스마가 자식에게 전해지기는 매우 힘들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게 하고있다. 김일성은 자신의 카리스마를 아들 김정일에게 전달했다. 잘알다시피 북한에서 김정일은 카리스마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유전적인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이런 식으로 카리스마를 전한다면 이것은 좋지않은 아이디어이겠다.

+ 직위 카리스마office charisma
직위 카리스마는 매우 중요하다. 현직위incumbents of an office는 어느 정도 일정한 카리스마를 내포하고 있다. 알다시피 교황직은 카리스마를 내포하고있다. 실제로 우리는 직위 카리스마를 매우 자주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이 직위 카리스마를 지도력leadership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권력자가 비전을 갖고 지도력을 발휘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일종의 직위에 따른 카리스마이다. 잘 알다시피 나는 여러 차례 학과장이었다. 사실 학과장department chair의 위치에 오른 일과 거기서 내려온 일은 매우 재미있었다. 특히 동료관계에 있어서 대단한 변화가 따라왔다. 학과장 직위는 동료들의 카리스마가 부여된 자리이다. 학과장은 지도력을 발휘하여 동료들의 믿음위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오기로 되어있다. 처음에 한 동료는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신선한 공기처럼 그 자리에 들어왔다." 고 하였다. 그러나 2년 후에 그것은 모두 사라졌고 나는 더 이상 신선한 공기가 아니었다. 나는 일상적이 되어버렸다. 잘 알다시피 나는 관료제 사회 안에서 활동하면서 최대한 관료제를 마사지하였으므로 나의 카리스마는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어쨌든 자신들의 기대를 현직incumbents of the office에 거는 것은 매우 미국적인 것이겠다. 직위 카리스마는 결국 신선한 공기를 불러일으키면서 비전을 통하여 이전보다 훨씬 나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것이 직위 카리스마이다. 고맙습니다.






<참고문헌>

원문번역,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2012년 2월 23일 목요일

10-3. 베버: 전통적 지배

1. 베버의 지배이론 리뷰

간략하게나마 베버의 지배이론을 재검토해보자. 이 지배이론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통찰력이 있을뿐만 아니라 영항력도 지대하다. 베버는 권력이라는 뜻의 마흐트Macht와 헤어샤프트Herrschaft를 명확히 구별하였다. 마흐트Macht는 영어로 논란의 여지없이 권력Power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헤어사프트Herrschaft는 권위Authority 또는 지배Domination로 번역된다. 헤어Herr는 주인Lord를 의미하므로 헤어사프트Herrschaft개념은 매우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를 함축하고 있다고 보겠다. 따라서 그것을 권위Authority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지배Domination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는 Herrschaft를 Authority로 번역하였는데 그는 베버가 권위주의를 보다 강조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못된 번역은 아니지만 중요한 점을 놓지고 있다. 베버가 중점을 두었던 것은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가에 있었다. 베버는 프리드리히 니체와 심지어는 홉스에 기초하고 있다. 베버와 니체 그리고 홉스는 모두 인간 역사는 권력을 위한 투쟁의 역사로 보았다. 이것이 베버가 생각했던 권력에 대한 아이디어였다. 권력power이란 행위자가 사람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명령에 복종하게 할 수 있는 개연성likelihood을 의미했다. 반면에 지배domination란 행위자가 사람들을 강제하지 않고도 명령에 따르도록 할 수 있는 개연성이었다. 따라서 지배domination, herrschaft의 개념에는 명령 복종자의 자발성voluntariness과 더불어 명령자에 대한 신뢰수준을 내포할 뿐만 아니라 명령자와 명령 복종자 사이에는 적어도 이성적 관계가 존재해야한다.  오늘날 지배에 대한 개념은 명령자에 대한 복종 이라는 의미 이외의 다른 대체개념은 없는 것 같다. 지배개념은 정당성legitimacy아이디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말하자면 권력 더하기 정당성은 지배라는 방정식이 성립한다. 그러면 정당성이란 무엇이었는가. 베버는 정당성의 극단적인 면을 예로 들면서 단지 권력만을 투입하여 사람들을 강제로 복종케하는 지배자에게는 정당성이란 매우 드문 현상이라고 말하였다. 베버는 지배자는 자신의 지배를 합법화legitimate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지배자는 자신에게 종속된 사람들을 항하여 복종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정당한 이유를 창조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매우 니체적인 아이디어이다. 지배자는 자신의 권력을 사람들의 의식 속에 내부화하면서 어떻게든 도덕성을 심고자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심어진 이 원칙a set of principles에 따라서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구다'' 라고 말하게 된다. 심지어 사람들은 지배자의 명령에 복종하고 싶지 않더라도 "그것 말고는 할 것이 없다What else can I do." 라고 말하게 된다. 사람들은 지배자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 사태는 더 악화될 지 모른다. 사실 사람들은 지배자를 좋아하지 않지먄 그 지배자에게 복종하는 것 외에 다른 대체수단이 없다. 이를테면 당신은 강의를 선택할 수 있고 학점이 매우 짠 강사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은 다른 강의를 수강하려고 알아보지만 오히려 그 강의들은 최악이다. 따라서 당신은 차악the least worst을 선택하게 된다. 당신은 그렇게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과제물에 대하여 후한 학점을 줄 것 같은 강사를 선택하게 된다. 당신은 강의와 과제물을 신나게 즐기고 있다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조응하면서 차악less evil을 선택한다. 이것이 베버가 강조한 정당성 개념의 극단적인 예이겠다. 베버는 모든 정당성은 신화myth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지배자는 꼭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진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논점에서 벗어난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지배자는 사람들로부터 복종을 끌어내기 위하여 신화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베버의 정당성 개념은 일반상식과는 다르게 매우 미묘sophisticated하고 다소 관습적less liberal 이면서 니체적이다. 보통 우리는 정당성을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잘알다시피 권력은 정당화된다. 예를 들어서 이 사람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통하여 선출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큰 일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 카자이Karzai를 생각해보라. 아프가니스탄이 놓여있는 상황으로 미뤄볼때 사람들은 카자이를 대통령으로 뽑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댜. 잘 알다시피 그 아프가니스탄의 선거는 매우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그 시스템의 정당성과 관련하여 매우 신화적인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다른 방식을 선택한다면 그 새로운 대안은 더 큰 혼란chaos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혼란스러운 대안 보다는 기존의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막스 베버의 어두운 면이기도 하겠다. 베버는 맑스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맑스는 인간 역사를 생산양식들이 발전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맑스의 역사는 소유권, 생산수단, 경제적 이익에 관련한 투쟁의 역사였다. 그러나 베버의 역사는 경제적 이익에 따라 견인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투쟁이었다. 베버는 시간에 따라서 변해가는 상이한 지배시스템을 기술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지배자는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는데 그 정당성은 신화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맑스와 베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베버는 역사변화를 기술하기 위하여 상이한 지배유형을 개발하였다. 베버는 전통적 지배, 카리스마적 지배 그리고 법-합리적 지배아이디어를 이용하여 인류의 진화를 기술하였다. 반면에 맑스는 생산양식의 변화를 이용하여 역사의 진화를 기술하였다. 베버가 강조한 세가지 지배유형은 오늘날 모든 종류의 조직들과 더불어 사회적 개체social units까지도 기술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는 법-합리적 지배, 전통적 지배, 카리스마적 지배가 모두 공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베버는 법-합리적 지배의 가장 순수한 유형으로서 오늘날의 자유시장자본주의를 꼽았다. 오늘날에도 전통적 지배에 기초한 조직들이 있다. 가장 명백한 전통적 지배유형은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주로 전통에 의하여 서로 결합되어 있다. 당신이 발을 닫고있는 이 기구institute, 즉 대학은 전통적 지배의 맛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교수에 대하여 존경을 표시하는데 그것은 윤리ethos적인 것이다. 대학은 모든 종류의 전통적 의례를 걎추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대학을 보다 전통적인 조직으로 만드는데 기여한다. 당신은 졸업식때 우습기는 하지만 학구적인 복장을 하고 학위를 수여받게 된다. 이것은 거의 여왕으로부터 영주권Lordship을 수여받는 것과 유사하다. 대학총장은 "By the power vested in me"라고 말하거나 "will confer to you"라고 말하면서 학사학위를 수여한다. 이것은 영국여왕이 누군가에게 영주권의 권원the title of Lordship을 수여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베버는 맑스보다 훨씬 더 유동적이다. 베버는 단지 사회를 기술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조직을 전부 다.기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카리스마에 대하여도 얘기한다. 우리는 지난 18개월 동안 카리스마에 대하여 많은 논의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바락 오바마에 대하여 얘기할때 그의 카리스마적 자질을 빼놓을 수 없다. 따라서 카리스마는 오늘날에도 지배자의 본성으로서 종종 언급된다.

2, 지배의 세가지 유형

잘 알다시피 세가지 지배유형이 있다. 전통적 지배는 인격적인 주인personal master이 오래된 신성한 규칙에 호소하면서 사람들을 향하여 복종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여왕이 그러한 지위를 오랫동안 누려왔다. 이것이 전통적 지배이다. 또 하나는 카리스마적 지배이다. 카리스마적 지배자는 초자연적이고 비범한 자질을 근거로 하여 사람들을 향하여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법-합리적 지배자는 명령에 복종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동일한 법에 구속된다. 법-합리적 지배에는 인격적 주인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인격에게 복종하지는 않지만 법과 규율에 복종한다. 이것이 바로 법-합리적 지배라고 불리게 된 이유이다. 법-합리적 지배는 자유적 지배라고 불린다. 이 세가지 지배유형은 동일한 존재론적 위상same ontological status를 갖지는 않는다. 원래 베버는 두 가지 지배유형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전통적 지배와  법-합리적 지배였다. 카리스마적 지배는 다른 전통적 지배나 법-합리적 지배 만큼 생명력이 길지 않았다. 우리가 다루게 될 이 카리스마적 지배는 혁명적 힘revolutionary force을 가지고 있다. 보통 카리스마적 지배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일어난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전형적으로 한 인격person이다. 이 카리스마적 인격은 자신이 책임을 맡는 동안 끝까지 카리스마를 유지한다면 그야말로 운이 매우 좋은 경우이다. 선거가 끝난지 9개월 후에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강력한 카리스마적 호소력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카리스마적 지배자가 직위에 있는 내내, 더군다나 평생동안 카리스마를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지배자가 카리스마를 후계자에게 전수하는 것은 더 더욱 어려운 일이다. 베버가 말한 카리스마적 지배란 이 전통적 지배형식에서 다른 전통적 지배형식에로의 변화사이에서 가능하다. 보통 말하는 현대화와 관련해서 맑스가 강조했던 봉건주의로부터 자본주의에로의 이전는 베버에 따르면 전통적 권위로부터 법-합리적 권위에로의 운동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면 베버가 말한 순수 유형pure types이란 무엇인가. 이미 지적했듯이 막스 베버는 칸트주의자Kantian였다. 베버는 인간지식을 통하여 존재의 실재reality를 완전하게 기술할 수 있다고 절대로 믿지 않았다. 칸트는 실재는 무한하게 풍부해서infinitely rich 우리가 개발한 어떤 개념도 이 대상(실재)을 단지 정신적 영상mental images으로 반성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것도 주체the subject를 완전히 기술할 수 없다. 베버는 마음 속에 세겨진 이 대상은 앞으로 지식으로 발전한다고 하면서 이 정신적 대상을 가리켜 이상적 유형ideal types이라고 불렀다. 이 대상은 세계로부터 기원한 추상이지만 세계에 대한 정밀한 기술은 아니다. 베버는 우리가 목표로 할 수 있는 최선은 이상적 유형, 즉 순수 유형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모든 현실적 대상은 우리가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이상적 유형과는 언제나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 지식이 진보함에 따라서 베버를 읽기는 더 어려워졌다. 우리는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이상적 유형과 세계에 대한 개념들을 개발하고 난 후에 현실reality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이상적 유형과 세계에 대한 개념은 현존하는 물질적 대상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신적 실재는 이전에 몇가지 중요한 특질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상적 유형을 다시 개발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상적 유형이 물질적 실재에 훨씬 잘 맞도록fit 강화enrich 한다. 이것이 베버의 근본적인 아이디어이다. 이것이 베버를 읽기 어려운 이유이다. 왜냐하면 베버가 말하는 이상적 유형, 즉 순수 유형을 개발하여 갖고 나오지만 "역사적 실재에 비추어볼때 그것은 잘 맞지 않아요. 좀더 이상적 유형에 맞게 수정하고 강화할께요." 라고 말한다. 때문에 당신은 베버를 읽으면서 쉽게 책을 내려놓을 수 없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이 베버가 진행하는 방법론이다. 베버는 우리가 절대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베버가 믿었던 것은 기술하고자 하는것을 가능한 한 최대한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순수유형아이디어이다.

3. 정당성의 기초basis of legitimacy

베버는 전통적 지배의 정당성에 관하여 간단하면서도 명확하게 정의를 내렸다. 베버는 전통적 지배의 정당성은 오랜동안 지켜왔던 규칙들의 신성성sanctity of age-old rules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전통적 지배자는 사람들을 향하여 전통에 근거하여 복종하는 것은 신성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족을 생각해보라. 부모는 몇몇 사안들에 대하여 자식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신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져왔으므로 자식들은 부모에게 복종한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그렇게 지켜져왔기 때문이다. 자식들은 전통적으로 부모에게 복종해 왔다.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에게 어느 정도까지 복종해야하고 또 부모들은 자식에게 어느 정도까지 명령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다. 일반적으로 부모는 어느 정도까지는 명령할 권리가 있다고 믿어져 왔다. 믿는다believe in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믿음 안에서 부모는 자식들에게 복종을 강요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믿음 안에서 자식들은 부모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정말로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자식들은 부모의 명령이 지겹더라도 복종한다. 자식들은 때때로 부모중에 한 분 또는 두 분 다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법을 위반하고 도망가지 않는 한 어느 정도 부모에게 복종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부모가 자식들을 강제로 복종하도록 하는 것은 확실히 극단적인 경우이겠다. 부모는 때때로 어느 정도 억압coercion을 사용한다. 억압은 베버에게 매우 중요한 아이디어이다. 잘 알다시피 억압은 모든 유형의 지배에서 항상 존재해왔다. 법-합리적 지배도 억압을 사용하는가. 법-합리적 지배체인 미국은 약 3백만명 이상이 감옥에서 살고있다. 그들은 실제로 억압되어 있다. 또 미국정부에 의하여 때때로 사람들이 살해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처형되기도 한다. 따라서 법-합리적 지배에서도 억압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장 자유민주적이라고 믿어지는 이 미국에서 법을 어긴다면 당신은 분명 억압될 것이다. 당신이 아직 법을 어기지 않았다면 억압의 약속promise of coercion이 항상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베버는 이것을 가리켜 말하기를 " 당신은 특정한 환경에서는 억압될 수 있다.'' 고 하였다. 다음 논점으로너머가자. 잘 알다시피 주인master은 전통적 규칙에 따라서 명령자로서 지명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야한다. 왜냐하면 전통적 신분Eigenburde때문이다. 독일어 Eigenburde는 영어로 전통적 신분traditional status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진정한 의미는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덕virtues을 지켜왔던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주인들은 사람들을 향하여 명령할 덕을 가지고 있다. 주인은 명예honor을 소유하고 있다. 명예라는 용어는 전통적 지배에서 매우 중요하므로 기억해 둘 필요가 있겠다. 일반적으로 전통적 주인traditional master은 항상 명예로운 인격자로서 가정되어왔다. 전통적 주인이 더 이상 명예롭지 않다면 그 주인은 지배를 상실하게 된다. 부모를 한 번 생각해보라. 부모라는 신분은 명예롭게 여겨져왔다. 한 가족의 가장이 더 이상 명예롭지 않다면 그 가족 내에서는 위기가 발생한다. 아서 밀러스Arthur Millers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The Death of Salesman>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아들은 부친을 그토록 존경하였다. 그러나 부친에게 새 여자가 생기자 부친의 명예는 갑자기 추락하였다. 이제 부친은 더 이상 명예롭지 않게 되었고 부친과 아들사이에는 일평생의 위기가 초래되었다. 따라서 명예는 전통적 지배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용어이다. 또 전통적 지배는 인격적 충성심personal royalty에 기초한다. 당신은 어느 한 인격에 충성해야겠다고 느낄 수 있다.  이 이슈는  대학같은 기구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교수들은 명예롭게 행동하는 것으로 믿어져 왔다. 만약 교수들이 명예롭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교수들은 정당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대학에는 양적으로 대단히 많은 인격에 대한 충성심이 있다. 특히, 대학원graduate school과정에서 지도교수mentor와 박사과정Ph.D.의 학생 사이는 매우 인격적인 상호충성의 관계이다. 지도교수는 학생을 위하여 배려하고 학생을 위하여 감당해야 할 것이 많다. 학생은 박사논문을 심사하는 교수에게 매우 비판적일 수 있지만 교수는 학생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충성심을 기대한다. 학생은 논문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에 교수데 대하여 매우 실망하기도 한다. 전통적 지배의 모든 유형은 상호간의 충성을 기초로 한다.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지배에는 인격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지배자로서 감독자나 사장은 단지 복종의 대상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충성심이 담지된 인격적 주인과 같은 것이다.

4. 참모staff 모집의 형태

이 전통적 지배시스템 안에서는 어떻게 참모staff를 모집하는가. 여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소위 말하는 가산제적patrimonial 모집이 있다. 말하자면 우두머리the chief는 전통에 따라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골라서 적절한 위치에 올려 놓는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러 조직에서 대단히 많이 일어난다. 특히 대학사회는 가산제적인 전통적 지배 시스템 안에서 간부모집을 많이 한댜. 또 초-가산제적인extra-patrimonial방법도 있다. 주인master은 스스로 충성스럽다고 판단되는 자들에게 직위를 나눠주는데 그것은 오로지 그들의 충성심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미국 대학의 교수는 자신의 학생들을 참모로서 모집할 수 없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가능하다. 미국대학에서는 거의 그런 경우가 없다. 따라서 미국 대학의 교수는 자신의 친구의 학생들이나 동료의 학생들을 참모로서 모집하게 된다. 대학 참모 모집에는 상당한 가산제적 전통이 작용한다. 그리고 대학 시스템에서는 충성심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학 관리자를 지명하는 데 있어서 충성심은 매우 중요하다.

+ 역사적 변동historical variation
전통적 지배는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변동하였다. 베버는 전통적 지배라는 용어terminology와 관련하여 매우 어지럽게 정리했다. 전통적 지배에는 두가지 큰 형태가 있을 수 있다. 먼저 가부장주의patriarchalism가 있고 다음은 가산제적 지배patrimonial domination가 있다. 가부장제patriarchal system는 참모staff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전통적 지배, 즉 가부장제는 주인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행사되므로 지배를 행사하기 위한 따로의 참모들이 필요하지 않다. 반면에 가산제적 지배는 간부들을 가지고 있다. 가산제는 가부장제 보다 더 큰 규모의 사회 또는 조직으로서 참모들은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게 된다. 베버에 따르면 주인master과 참모와 복종자들 사이의 구별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베버를 이해할 수 없다. 베버는 정당성에는 항상 어느 정도의 믿음 또는 신념belief or faith이 내포되어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 정당성의 기초가 되는 믿음이란 누구의 믿음을 말하는가. 그것은 주인이 임명한 참로들의 밍음을 말하는가. 아니면, 복종자들의 믿음을 말하는가. 베버에 따르면 그것은 참모들의 믿음을 말한다. 이것이 베버의 근본적인 아이디어이다. 베버는 참모들이 주인에 대하여 긍정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 한 그 시스템은 합법적legitimate이라고 말하였다. 대중들, 즉 사람들은 보통 주인에 대하여 긍정적인 믿음을 갖고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지배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단지 지배자를 차악lesser evil으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참모는 지배자인 주인에 대하여 긍적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 역사를 한 번 보아라. 혁명은 언제 일어났는가. 참모가 주인에 대한 믿음을 상실할때 바로 혁명이 일어났다. 잘 알겠지만 이란의 샤Shah of Iran는 언제 무너졌는가. 그것은 바로 이란의 보안 당국security services이 샤shah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일반적으로 이란 사람들은 국왕인 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대중들은 단지 대안alternative이 없었으므로 샤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란 정보당국이 샤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자마자 이란 정부regime는 무너지고 말았다. 공산주의도 그와 똑같이 무너졌다. 공산주의는 공산당 참모들과 특히 정보당국secret services이 그 지배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기 시작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공산주의 하에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부 다 열렬한 공산주의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참모는 열렬한 공산주의자들 이었다. 따라서 공산당 참모들이 공산주의를 반대하게 되자 곧 공산주의는 무너져 버렸던 것이다. 한편 가부장주의patriarchalism는 제일 가부장주의primary patriarchalism와 장로주의gerontocracy로 구별될 수 있다. 반면에 가산제적 지배patrimonial domination는 순수 가산제적 지배와 신분-유형의 지배, 즉 봉건제로 구별된다. 순수 가산제적 지배에서 참모는 주인에게 충성하는 순수한 사람이거나 또는 기구이다. 신분-유형의 지배estate-type of domination, 즉 봉건주의에서 관리참모administrator staff는 주인으로부터 특정한 권력을 전유appropriate한다.

5. 지배 유형의 역사적 진화

이것은 베버의 역사론으로서 우리는 지배 시스템의 상이한 유형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게 될 것이다.

+ 가부장주의Patriarchalism
베버는 역사는 가부장주의로부터 시작하였다고 강조하였다. 예를들면 가부장주의는 친족망kinship networks과 같은 비교적 작은 사회였고 연장자나 부친들이 사회를 지배했으므로 참모로서 경찰이나 간수, 판관, 관리자, 세금징수자가 필요없었고 우두머리가 직접 다스렸다.

+ 제일 가부장주의Primary Patriarchalism
그리고나서 가부장주의는 제일 가부장주의로 이동하였다. 제일 가부장주의에서는 사회가 더 커졌다. 그리고 참모들이 생겼다. 참모들은 주인에 의하여 사적으로 간택되었고 참모들은 전적으로 주인에 의존하였다. 제일 가부장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예는 술탄주의Sultanism이다. 술탄은 자의적으로 자주 참모들을 임면할 수 있다.

+봉건지배feudal(estate)-type of domination
봉건지배에서 참모들은 주인으로부터 특정한 권리를 부여받는다. 참모들은 토지를 보유land holding할 수 있었다. 주인은 토지를 귀족가문noble family에 수여하였고 귀족은 그 토지를 후손에게 상속시킬 수 있었다. 또 참모들은 주인으로부터 특정한 권력을 전유하게 되면 참모들은 스스로 주인처럼 그 권력을 행사하였다. 예를들면 참모는 판사로서 복무하가도 하였다.

+ 법-합리적 지배legal-rational authority
법-합리적 지배에서는 국가만이 독점적으로 억압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어떠한 개인도 억압적인 권력power of coercive을 행사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오직 국가state만이 권력을 소유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사실은 아니다. 예를들면 부모는 여전히 억압을 행사할 권리를 가지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개인은 어떠한 억압도 행사할 수 없고 오로지 국가만이 억압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통념이다. 잘 알겠지만 인류역사는 억압수단의 진화 역사이다. 맑스에 따르면 역사는 생산양식의 진화 역사였다. 베버에 따르면 역사는 관리수단과 억압수단의 진화 역사이다. 니체는 사실 역사를 암울하게 바라보았는데 니체에 따르면 역사는 점점 더 악화되고worse 있다. 왜냐하면 지배자는 더 많은 사람들을 억누르기 위하여 점점 더 교묘한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 더 나쁜 것은 지배자는 순종submission을 사람들 마음 속에 내부화 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한 것을 내부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스스로 믿게 되어버린다.

++ 지배유형 재검토

+ 가부장주의Patriarchalism
가부장주의는 지배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다. 가부장주의에는 유일한 주인만 있고 사람들에게 명령할 권리를 갖는 참모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부장주의의 하위 그룹, 예를들면 친족 망kinship networks의 구성원들은 참모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주인에 대한 복종심을 강하게 느낀다. 베버는 친족망의 구성원들을 동료Genossen라고 칭하였다. 그들 동료는 동무 또는 동지comrades들이다. 왜냐하면 친족망에는 동료애camaraderie가 있기 때문이다. 또 가족 구성원은 어느 정도의 단일성oneness을 갖고 있다. 베버는 가족 구성원은 신민Untertanen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들은 지배에 종속되지 않는 공동체의 동지들이라고 말하였다.

+ 제일 가부장주의Primary Patriarchalism
전형적으로 제일 가부장주의는 가친이 지배하는 것이다. 제일 가부장주의에는 모친maternal의 지배도 가능하다. 모계사회matriarchal society가 존재했었는지에 관한 역사적 기록들은 다소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했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부계사회와 모계사회가 모두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모친이 가족을 지배하기도 했고 또 부친이 가족을 지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가족 관계는 반드시 혈연에 기초한 관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랜동안 섹스행위가 출산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과학 지식의 발전때문이었다. 따라서 초기의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부친과 자식들 사이에 혈연관계가 있었는지 몰랐다.

+ 장로주의gerontocracy
장로주의는 연장자들이 지배하는 시스템이다. 연장자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 장로주의는 현대사회에서 거의 전무하다.

+ 가산제patrimonialism
가산제는 관리 참모들이 생겨나자 등장하게 되었다. 가산제는 이전보다 더 대규모 사회였다. 이 가산제 사회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군대와 경찰, 세금징수자 등이 필요하였다. 이 가산제에 종속되는 구성원들은 신민subjects으로서 다루어진다. 이를테면 나는 한때 오스트레일리아 시민이자 여왕Her Majesty의 신민이었다. 나는 오스트레일라아 시민이었을 뿐만아니라 여왕의 신민이었다. 그 지배제가 의존하는 대상은 영국에도 있고 오스트레일리아에도 있다. 왜냐하면 그 지배자는 여왕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가산제적 지배는 실제로 대가족large household이다. 잘 알다시피 옛날에는 지배자, 황제, 왕은 참모들을 데리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동하면서 수금하러 다녔다. 그것은 점점 복합적이 되어가면서 신분estate을 창출하게 되었고 드디어 세금징수를 위한 관료집단이 생겨났다.

+순수 가산제pure patrimonialism
순수가산제에서 참모들은 주인의 순수한 도구이다. 술탄주의에서 술탄은 실제로 자신의 지배아래 있는 참모들을 자의적으로 언제든지 임면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권력을 갖고 있다.

+봉건주의 (토지제 지배estate-type of domination)
봉건주의 또는 토지제 지배는 역사적으로 더 진화된 복합적인 시스템이다. 봉건주의feudalism에서 참모는 어느 정도의 안정감을 가지고 있다. 그 참모가 얼마나 안정되어 있느냐는 그 참모가 얼마만한 댓가를 받고 있는냐에 달려있댜. 베버는 은급benifices과 봉토fief를 명확히 구별하였다. 은급과 봉토는 봉건주의에서 참모가 보상을 받는 방법이다. 봉토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우리는 종종 그 사람은 봉토fiefdom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가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이 그 토지에 따라 명분을 지킬 수  있는 하부-시스템sub-system을 창조했다는 의미이다. 대학에서도 그런 예가 있을 수 있다. 대학의 교수실office space for faculty은 전형적인 봉토이다. 교수실은 봉토를 하사받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서 재직tenure기간 동안 보유하게 된다. 교수가 퇴직하면 교수실은 즉시 반환되므로 그 봉토는 상실되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봉토의 개념은 신분에 따라서 지속적인 권력lasting power을 유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반면에 은급benefice이란 특정한 보상reward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 은급은 반드시 지배자에게 반환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실제로 봉건시스템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그 한가지는 은급benefices에 기초한 녹봉prebendal 형태의 봉건주의이다. 러시아의 경우에 이반 뇌제Ivan the Terrible이후 러시아 혁명전까지 짜르Czar에게 봉사했던 귀족 영주들은 녹봉prebendal을 하사받았다. 귀족 영주들은 녹봉시스템에 따라 짜르에 대한 충성을 전제로 하여 봉토fiefdom를 수여 받았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러시아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 국민들은 엘친대통령으로부터 개인재산으로서 수십억 달러를 하사받았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는 그 부를 다시 압수하였다. 왜냐하면 푸틴 대통령은 그 재산을 하사받은 사람들이 충성스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당국에 의하여 그 재산이 압수되었고 또 철창에 갇히게 되었고 이민emigration을 떠나기도 했다. 따라서 현대 러시아에서 조차도 녹봉prebendal유형의 봉건주의가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어떤 면에서 사람들에게 충성을 강요했던 이반대제와 같은 존재이다. 당시 러시아는 봉건시스템을 바꾸었으므로 참모인 보야르boyar는 포메쉬쉭스pomeshchiks가 되었었다. 이반 대제 이전의 보야르boyar는 부wealth를 상속하였지만 이반 대제와 피터 대제는 보야르들의 재산을 몰수하였고 대신에 충성을 댓가로 몰수재산을 새 귀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무소그스키Mussorgsky의 환상적인 오페라 <보리스 구두노브Boris Godunov>에는 그것이 잘 나와있다. 한편 서양의 봉건주의의 참모들은 장기적 권력을 유지하였다. 서양의 봉건영주들은 일생lifetime 동안 재산을 하사받았고 실제로 그 재산을 자식들에게 상속시킬 수 있었다. 또한 봉건영주들은 상당한 관리권력administrative power을 행사하였다. 프랑스와 영국의 봉건영주들은 재판을 주재held court하였으므로 자신들의 지배하는 농노들serfs에 대하여 심판하였다. 따라서 왕들의 권력은 다소 제한되었던 것이다. 그후 왕들은 봉건영주들에게 넘어간 권력을 회복하고자 여러모로 시도하였다.  바로 이 때문에 절대주의와 입헌군주주의 사이에 심한 골이 파이게 되었던 것이다. 봉건영주들은 입헌군주정에 저항했다. 또한 새롭게 등장한 부르조아지들도 입헌군주정 시스템을 통하여 군주의 권력을 제한하고자 하였다. 잘알다시피 봉건제를 비롯한 전통적 지배는 경제와 잘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통적 지배의 기원은 필요와 만족satisfaction of needs이지 이익 창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적 지배는 상업활동business-oriented activity의 발전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친근한 전통적 지배유형인 가족이나 대학에도 해당한다. 가족이나 대학은 상사기업처럼 운영되지 않으므로 경제적 이익추구나 경제적 타산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가족과 대학의 구성원들은 시장주의market mechanism에 대항하고 방어할 수 있다. 가족이나 대학은 시장주의를 전파하지 못한다. 가족이나 대학에는 다른 현대조직들 보다 훨씬 더 심한 자유재량성arbitrariness이 존재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조직은 피지배자들의 복지welfare에 대한 무한한 관심을 갖는다.





<참고문헌>

원문 번역,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2012년 2월 21일 화요일

10-2. 베버: 지배이론의 개념적 기초

1. 질문과 검토

+ 1. 맑스의 소외이론과 니체와 프로이트의 도시civilization이론에 관련하여 이 세 저자들 사이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는가.

맑스, 니체, 프로이트는 모두 현대성modernity과 더불어 현대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존재상실감sense of being lost과 통제control에 관심을 가졌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들은 너무 많은 통제를 당하고 있다. 그 통제는 우리 밖에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점접 증가해가고 있다. 현대성의 문제는 그 통제가 억압적coercive이라는데서 출발한다. 이것이 바로 맑스, 니체, 프로이트가 공유했던 공통된 감정이겠다. 20세기 초의 여러 문학작품들은 이러한 인간의 감정feeling을 표출하고있다. 프란츠 카프가와 알베르트 까뮈는 맑스, 니체, 프로이트가 느꼈던 감정을 공유했다. 맑스, 니체, 프로이트 사이에는 큰 차이점 또한 존재한다. 맑스는 헤겔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헤겔의 소외이론을 구체화시켰지만 소외개념을 경제적 생산과정으로 환원하였다. 맑스는 사회해방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우리를 해방시킬 역사적 인자historic agent로서 프롤레타리앗을 제시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니체는 매우 달랐다. 니체의 계보학적 방법론은 사회문제에 대한 옳은 답right solution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니체의 계보학적 방법론은 단지 현대성과 더불어 도덕성, 즉 우리가 매력적이고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유대-그리스도인 도덕성을 보여줄 뿐이었다. 또 니체는 이상의 작업실workshop of ideals에서 제작되는 사회의 이상들과 원칙들이 억압과 고문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니체에게는 어떤 선한 사회도 있을 수 없었고 거기에 우리들을 데려다 줄 어떤 인자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우리는 사회 문제를 각자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한편 프로이트는 도시civilization는 인간 섹스충동sexual drives의 억압으로부터 창조된다고 하였다. 프로이트는 도시 비판가였지만 동시에 양면적인 자세dual attitude를 취하였다. 프로이트는 도시는 억압된 인간들로부터 창조되는 것이지만 또한 자신들을 승화sublimation시킨 인간들로부터도 창조된다고 보았다. 또 인간사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에술과 과학으로 승화되면서 창조된 것들이라고 말하였다. 프로이트는 나찌가 출현하는 1930년대에 반-도시anti-civilization성을 밝혀내면서 나찌에 반발하였고 도시문화를 거부하였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어떤 면에서 선한사회good society에 대한 비전vision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프로이트는 니체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보겠다. 프로이트는 말하기를 "당신은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그 의미는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사회발전에 대한 맑스와 같은 역사적 인자를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 2. 두번째 질문 또한 쉽지 않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실제적인 이론과 니체의 계보론학적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맑스와 니체 사이에는 공통된 지점이 존재하는가.

맑스와 니체는 객관적인 추상적 진리objective abstract truth를 믿지 않았다. 맑스는 어떤 객관적인 추상적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진리는 실습적인 것practical question 이었다. 진리는 사회에서 개인적인 실습을 통하여 성취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니체 또한 객관적인 진리를 믿지 않았다. 니체는 진리를 찾고자 하였다. 니체에 따르면 진리는 상이한 도덕 개념들을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하는 중에 발현되는 것이었다. 니체는 허무주의자nihilist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니체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허무주의란 니체에게는 매우 부적절한 용어이다. 니체는 진리가 정말로 없다고 말하지 않았고 진리란 상대적인relative 것이고 자신의 상황을 타인의 상황과 비교하는 중에 비판적인 이해를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맑스와 니체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맑스가 말한 실습적인 진리practical truth란 무엇이었나. 이 진리는 인간활동human activity 이었다. 맑스는  생산시스템를 통한 물리적인 노동physical work을 변화시킴으로써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맑스는 혁명의 역사적 인자를 발견하였고 그것은 다름아닌 프롤레타리앗이라고 말하면서 프롤레타리앗이 우리를 진리로 인도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니체는 맑스와 같은 어떤 것도 없었다. 니체는 맑스가 강조한 역사적 인자와 같은 것이 없었고 선한사회에 대한 진리개념도 없었다.

+ 3. 맑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와 <그룬트리세>의 차이점을 비교하라.

매우 간단하다. 맑스는 1848년 처음으로 생산양식에 대한 개념을 개발하였다.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생산양식mode of production의 본성을 주로 노동분업과 동일시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노동분업division of labour은 결국 혁명을 몰고오게 될 계급간의 갈등적 관계를 포착해내는데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맑스는 그 노동분업 이론을 포기하였고 <독일 이데올로기>를 완성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맑스는 이 책 <독일 이데올로기>의 마지막 부분을 쓰면서 운좋게도 생산양식의 두가지 요소인 기술, 즉 생샨력과 더불어 생산관계아이디어를 발견해내었다. 생산양식은 <독일 이데올로기>의 대부분에서 노동분업으로서 다루어졌었다. 그러나 이제 맑스는 생산양식은 노동분업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것은 다름아닌 재산관계라고 못을 박았다. 재산관계란 재산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또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매우 결정적인 역사관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맑스는 모든 사회는 동일한 생산양식을 순서대로 통과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족제 생산양식, 노에제 생산양식, 봉건제 생산양식,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가리킨다. 반면에 <그룬트리세>에서는 두 가지  대변혁이 있었다. 먼저 맑스는 이제 중심과제를 재산관계property relations로 이동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절정기에 생산자는 생산수단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었다. 다음 맑스는 이전의 결정적인 역사관으로부터 단절하였고 다선적 역사발전관multi-linear development of history으로 전향하였다. 따라서 모든 사회가 노예제와 봉건제를 순서대로 통과한는 것은 아니게 되었으므로 준-공동사회quasi-communal society인 아시아적 사회는 직통으로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게 되었다.

+ 4. 다음은 네번째 질문이다. 역사적 유물론자로서의 맑스와 프로이트를 비교하라.

유르겐 하버마스는 맑스가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에서 이론의 출발점을 감각적인 인간활동sensuous human activity에서 찾은 것은 옳다고 하였다. 하버마스는 그 당시 여전히 유물론자였지만 그 후 전향하였고 아마도 이제 더 이상 유물론자가 아니다. 하버마스는 "유물론의 출발점은 아이디어로부터가 아니라 감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하버마스는 맑스의 실수를 꼬집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맑스는 감각적인 인간 활동을 경제와 생산으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하버마스는 오히려 프로이트가 더 재미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프로이트는 상이한 감각적 인간활동을 주장하였는데 프로이트가 말하는 감각적 인간활동이란 사람들 상호간의 섹스관계를 말한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그 감각적 인간활동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을 이해하기 위하여 감각적 인간활동을 이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말하자면 프로이트는 감각적 인간활동을 경제가 아닌 섹스로 환원하였던 것이다. 따러서 프로이트의 인간 감각활동이론은 역사에 대한 범-에로틱pan-erotic한 분석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맑스와 프로이트는 인간의 아이디어와 인간의 의식의 본성과 관련하여 먼저 감각적 인간활동으로부터 자신들의 이론을 출발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맑스와 프로이트는 물질적인 감각 경험material sensuous experience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뽑아냈다. 맑스와 프로이트는 유물론자들이었지만 자신들의 관심을 각각 경제와 섹스에 환원했던 것이다.

+ 5. 다음은 계급문제이다. 맑스의 계급이론을 설명하라.

잘 알다시피 맑스는 계급문제를 재산관계로서 분류하고 정리하였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계급을 두가지로 즉, 브르조와지와 프롤레타리앗으로 분류하였다. 그러면 이 계급문제는 아직도 사회이슈가 되고 있는가. 미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재산관계가 적대적인 계급갈등 문제를 초래하고 있는가.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중간계급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중간계급middle class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맑스는 중간계급은 부르조와도 프를레타리아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대부분의 미국시민들은 자신들이 중간계급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우리들중 대부분은 중간계급인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맑스는 중간계급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지만 사실 현대사회에 비추어불때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오류임에 틀림없다. 맑스가 살아있다면 아마도 "아, 나는 이론을 망쳐놓았다. 나는 실수를 했다. 이제 거대한 중간계급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겠다."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하여정말로 맑스를 싫어할 이유는 없겠다. 잘 알다시피 중간계급은 존재한다. 맑스는 확실히 실수를 했다. 물론 당신은 과연 누가 중간계급이냐고 물을 수 있다. 우리는 정말로 모두 중간계급인가. 또 거대한 부르조와지 세력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이 합당sensible한 일인가. 현재 거대한 브루조와지 세력은 더 이상 없다. 지금 우리는 대중 자본주의people's capitalism 사회에 살고 있다.

+ 6. 노동가치설과 관련하여 애덤 스미스와 맑스를 비교하라..

잘 알다시피 애덤 스미스는 모든 가치는 노동에 의하여 창조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부의 분배distributing wealth 또는 소득 분배와 관련하여 노동, 자본, 토지로 분화하여 나아갔다. 반면에 맑스는 가치가 노동에 의하여 창조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하였다. 맑스는 모든 가치가 노동에 의하여 창조된다면 모든 가치는 노동에 귀속되어야 마땅하다고 강조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가치는 노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노동은 결국 착취문제와 관련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진보인가 아니면 오해인가. 이것은 분명 오해일 수 있다. 왜냐하면 애덤 스미스의 주장이 옳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분명 모든 가치는 노동에서 창조된다고 하였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이 축적되어있지 않고 토지가 사소유화되어있지 않은 사회에서는 모든 가치가 노동에서 창조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분명 일관성이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맑스를 두둔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사회에는 엄연히 착취가 존재하고 또 착취관계가 역사를 견인하고 이끌어 왔기 때문에 맑스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다.

+ 7. 일곱번째 질문은 지배와 생산양식에 관한 것이다. <프로테스탄트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나타난 베버는 관념론자였는가. 베버는 자본주의를 창조한 것은 칼빈주의라고 주장했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 정말 베버는 그렇게 주장했는가.

베버는 맑스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다. 베버가 생각한 맑스는 그저 유물론적 분석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일 뿐이었다. 맑스는 인간 의식을 결정하는 것은 실존이라고 강조하면서 그 반대가 절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면 베버는 맑스가 강조한 것과는 정반대로 주장했는가. 그리고 베버는 현재 우리의 실존, 즉 자본주의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 의식이라고 주장하였는가. 베버는 인간의 윤리 의식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를 결정한 아이디어라고 주장하였다. 베버는 재미있게도 선택적 친화elective affinity를 주장하였다. 선택적 친화란 바로 아이디어와 경제 사이에는 정말로 인과적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분석을 시도한 이론이다. 반면에 맑스는 현대의 사회이론가들과 많이 닮아있다. 왜냐하면 맑스는 인과적인 해명causal explanation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맑스의 인과적 해명론은 오늘날 우리가 정치학과 경제학에서 배우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참된 사회과학은 인과적인 해명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베버는 인과적 해명을 외면하였지만 맑스는 인과적 분석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맑스는 단순한 경제 결정주의자economic determinist였는가. 맑스는 정말로 인간 의식을 결정하는 것은 실존이라고 주장했는가. 맑스는 이보다 더 복잡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리고 맑스는 스스로 모순적이지는 않았은가. 맑스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실습praxis철학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주장은 적절한 분석인가. 맑스는 스스로 모순적인가 아니면 일관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는가. 베버는 관념론자인가, 아닌가. 베버가 선택적 친화이론을 가지고 의도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우리는 앞으로 이것들에 대하여 살펴보게 될 것이다. 한편 베버는 자본주의를 창조한 동력으로서 인간의 탈마법화, 합리화, 그리고 칼빈주의의 예정론을 거론하였다.

+ 8. 마지막 질문은 재미있지만 쉽지않다. 맑스는 인간본성에 관한 확실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가.

맑스가 주장한 인간본성 이론은 루소의 것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다. 특히 맑스의 소외이론은 매우 급진적이다. 루소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원래 선하지만 사회가 우리를 소외시켰다. 그러나 맑스는 루소를 조금 더 능가한다. 맑스는 자연상태에서조차 우리 인간은 사회적이라고 하였다. 맑스는 사회적인 것은 우리 인간 본성안에 새겨져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루소는 인간의 본성이 사회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루소는 숭고한 야만인noble savage 아이디어에서 밝혔듯이 우리 인간은 시민사회체 내에서 사회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맑스는 이러한 자연상태에 대한 아이디어는 추상abstraction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맑스는 우리 인간은 모두 사회 안에서 태어났고 또 인간본성은 사회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자본주의만이 우리를 경쟁적 부르조와로 만들면서 또 비사회적이고 이기적으로 만든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 베버는 루소나 맑스와는 다른 인간본성 이론을 가지고 있었는가. 이것은 조금 더 어려운 문제이겠다. 만약 베버가 그런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도 그것은 홉스의 이론과 가까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베버는 인류의 역사는 권력을 위한 투쟁struggle for power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본성은 권력을 향한 끊임없는 투쟁이다. 베버는 인간역사를 권력투쟁으로서 설명하였다.

2. 사회적 행동의 네가지 유형

베버의 행동이론은 홉스의 자발적 행동이론theory of voluntaristic action과 유사한 면이 있다. 우리는 베버의 합리성 개념을 다루게 될 것이다. 권력과 지배의 구별 및 정당성 이론에 대해서도 다룰것이다. 이것들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것들은 특히 정치이론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개념들 중에 하나이고 경제이론과 사회이론에 있어서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배 유형에 대하여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회적 행동의 네가지 유형을 살펴보자.

+ 1. 도구적으로 합리적인 행동instrumentally rational action
우리는 사회에서 어떻게 서로에 대하여 마주하기 시작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타인들과 상호작용하도록 동기화 하는가. 베버는 우리는 서로에 대하여 도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  2. 가치-합리적인 행동value-rational action
우리는 가치를 위하여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  3. 감정적인 행동affectual orientation
우리는 서로 감정에 이끌려서 상호작용하게 된다. 베버는 이것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감정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은 반드시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비합리적일 때가 있다.

+  4. 전통적인 행동traditional orientation
우리는 서로 전통에 이끌려서 상호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동일한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때로는 도구적으로 때로는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때때로 우리는 누군가를 목표로 하여 행동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깊은 감정, 즉 사랑과 증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 우리는 도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얻기 위하여 다른 누군가를 이용한다. 이를테면 내가 당신으로부터 20달러를 빌릴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은 도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증오와 사랑으로 인하여 행동한다. 이러한 것들은 베버의 방법론의 근거가 되었다. 베버는 사회에 대한 자신의 접근법을 '해석가능한 사회학interpretative sociology' 이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독일어에서 번역된 것인데 그것은 이해understanding를 의미하는 Verstehen에서 나왔다. 베버가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사회학자는 동시에 경제학자 그리고 정치학자, 역사학자, 인류학자가 되어야 하고 단지 사람과 사물들에 대한 가치판단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끄는 인자를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베버는 타인들이 자신들과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들이 어리석고 악하고 비합리적이라고 가정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댜. 이것은 특히 경제학자들과의 논쟁에서 볼 수 있었다. 경제학자들은 보통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동 유형이 있다고 강력하게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베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행동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베버는 개인의 직업은 개인의 행동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만 개인의 직업은 타인이 왜 그러한 위치에서 그러한 행동을 해야했고 어떻게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기준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해석가능한 사회학interpretative sociology이자 베버가 말하는 이해understanding, verstehen가 의미하는 바이다. 이를테면 나는 감정적으로 나자신을 당신의 상황에 위치시키고 "이것이 정말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이라면 그와 동일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인지 어떤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이해는 왜 당신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베버는 단지 개인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사회적 행동의 내가지 유형 재검토

+ 1. 도구적으로 합리적인 행동
이것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 특히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소위 합리적 경제행동rational economic action이라고 부르는 것과 가장 근접한 것이다. 베버는 이것을 도구적으로 합리적인 행동Zweckrationalitat이라고 불렀는데 목적과 수단ends and means이 모두 함께 충실하게 고려된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다소 공리 최대화utility maximization처럼 들리는 면이 있다. 공리주의자들은 도구적 합리성을 행동에 관련하여 합리적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당신은 행복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 공리utility를 최대화하려고 시도한다. 당신은 비용을 최소화하고 또 소득을 얻을 수 있는 한 최대화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렇다고 도구적 합리성이라고 하여 목적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베버는 실제로 존 스튜어트 밀이 강조했듯이 우리 인간은 선호preference를 가지고 행동하면서 어떤 목적은 다른 목적보다 더 큰 가치있다고 생각했다. 베버가 말한 도구적 합리성이란 우리가 목적을 성취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면 아마도 최선보다는 차선의 선호를 택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를테면 나는 누군가와 데이트하고 싶다. 나는 정말로 그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싶다. 그러나 성공적인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사성급이나 오성급호텔 레스토랑으로 데려가야 한다. 그 식사비용은 200 달러이다. 그리고 나는  데이트하고 싶은 또다른 사람이 있다. 나는 이 차-선호second- preference를 위해서 오성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50 달러를 쓸 수 있다. 나는 양쪽 데이트에 대한 선호를 저울질하면서 200 달러를 지불하는 것이 나은지 어떤지 숙고하게 된다. 사실 50 달러를 지불해도 되는 차-선호는 실제로 꽤 괜찮다. 따라서 나는 50 달러 식사를 선택한다. 보다시피 당신은 목적과 수단 양쪽을 모두 다 합리적으로 저울질하면서 결론을 얻는다. 잘 알다시피 이것은 홉스와 그렇게 다른 것이 아니다. 홉스의 아이디어는 우리는 한편으로 이러한 선호, 즉 충동 또는 식욕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 공포fear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양자 사이에서 결국 의지a will에 도달하개 된다. 이것이 바로 도구적 합리성이다.

+ 2. 가치-합리적 행동
베버는 우리 인간은 가치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누군가가 가치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그 사람은 비합리적인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가 "이 가치는 나에게 너무 소중하므로 값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 말했다면 이 내용은 가치 합리적인 것이다. 간단한 예를들면 당신은 인간 생명은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 또는 당신의 파트너는 아기를 기대하고 있으므로 이제 결정하여야 한다. 아기를 낳을 것인가, 아니면 낙태를 할 것인가. 이것은 가치 합리성의 문제이다. 태아의 생명은 최우선적인 가치이므로 비록 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갖기로 결심한다. 왜냐하면 나는 가치-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결정이 도구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아기를 양육하기 위하여 학교를 중단하고 돈을 벌텐데 그것은 나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강한 가치 헌신value commitment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행동은 비합리적인 행동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합리적인 행동이다. 왜냐하면 나는 궁극적 가치에 자극을 받았고 때때로 이 궁극적 가치는 너무 귀해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희생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숭고한 원인noble causes때문에 죽기까지 한다. 그것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당신은 상황을 저울질해보고 당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러나 이 숭고한 원인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행동한다면 어느 누구도 당신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가치-합리적인 행동이다.

+ 3. 감정적 행동affectual orientation
감정적 행동이란 감정에 이끌리는 것을 말한다. 베버는 감정적 행동은 경계선에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감정적 행동은 그 상황에서 단순히 억제되지 않은 반작용uncontrolled reaction에 의하여 나왔다면 그것은 비합리적 행동이라고 하였다. 이를테면 당신이 단순히 격노에 이끌려서 행동한다면 그것은 비합리적이겠다. 당신은 파티에서 취한 상태로 당신의 파트너애게 헤어지자고 말을 했고 실제로 서로 헤어져버렸다. 그러나 당신의 본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당신은 일어나서 "이런, 내가 그런 말을 했다니. 내가 어리석었다. 나는 비합리적이었다. 나는 감정에 이끌린 나머지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다." 고 말한다. 이 경우에 당신의 감정은 비합리적이다. 그것은 외부자극에 대한 억제되지 않은 반작용uncontrolled reaction이었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과는 다르게 사랑으로 행동하고 사랑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사실 우리는 보통 그렇게 사랑으로 행동한다. 당신의 부모는 그렇게 당신을 사랑한다. 잘 알다시피 부모님은 되돌려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의 예일대학 학위를 위하여 200,000 달러를 지불한다. 부모님은 아마 당신으로부터 사랑을 되돌려 받고싶어할 지도 모르겠다. 종종 어떤사람들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보고서 미쳤다고 말한다. "왜 당신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가. 자식들은 당신을 양로원에 보낼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이 최대한 잘되기를 바라오." 이다. 이것은 정말이지 비햡리적인 행동이 아닌것으로서 잘 정당화justified되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감정적 행동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 4. 전통적 행동traditional orientation
전통적 행동이란 전통에 따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중매결혼arranged marriage을 믿는다. 당신이 무슬림이나 정통파 유대인이라면 아마도 당신의 파트너를 중매결혼을 통해서 얻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당신이 랍비를 찾아가면 랍비는 당신을 위해서 중매를 설 것이다. 이것은 비합리적인가. 그렇지 않다. 절대 비합리적이지 않다. 실제로 낭만적인 사랑이란 그렇게 합리적이지 못하다. 누군가가 사랑에 빠져서 그 다음날 프로포즈를 한다면 그것은 바보같은 짓이겠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을 잘 알고 있고 당신의 부모와 파트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랍비를 찾아가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포인트는 전통은 당신의 행동을 안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완전히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면 그것은 비합리적이다. 당신은 자의식self-conscious적으로 행동할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나는 재생한reborn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방식을 따른다면 당신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3. 베버의 합리성 개념

합리성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매우 복합적인 개념이다. 함리성이란 어떤 상황에 대처하면서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즉 사려없는 즉각적인 반작용spontaneous reaction이 아니라 신중한 적응deliberate adaptation을 말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의식conscious하고 있다면 당신은 실제로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고 적어도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다. 베버는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을 구별하였다. 합리적인 것이란 많은 생각에 공을 들이는 것이고 비합리적인 것은 여전히 반성을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한다. 베버를 연구하는 학자인 슐르흐터Schluchter는 수단과 목적에 관련하여 도구적 합리성이야마로 궁극적 합리성이라고 말하였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수단과 목적, 양쪽 모두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슐르흐터는 가치-합리성은 낮은 단계의 합리성이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가치-합리성은 수단에 대하여는 더 이상 고려하지 않고 목적만을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사실적인 합리성에 대하여는 상위의 한계유형marginal types이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하버마스는 합리성과 관련하여 '베버가 강조했던 것은 개인의 반성력 수준level of reflexivity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당신은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하는가. 그리고 당신은 스스로 어느 만큼 타인과 교통할 수 있는가. 당신이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매우 높은 반성력reflexivity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또 그런 행동을 하게된 동기motivation는 무엇이었는지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합리성 아이디어이다. 그렇다면 이 합리성 아이디어는 최고 단계의 합리성이겠다. 왜냐하면 당신은 실제로 반성력을 통하여 자신의 가치를 매우 잘 설명할 수 있게되기 때문이다. 한편 도구적 합리성에는 논의할 만한 것이 많지 않다. 이를테면 "나는 이런 식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이러한 발언이 내포하는 것은 교통communication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비록 당신이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결론은 베버의 합리성은 당신은 스스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얼마나 의식적이고 또 일의 결과에 대하여 얼마나 의식적일 수 있느냐와 관련되어있다. 당신이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스스로 의식적이지 못하다면 그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4. 권력과 지배

베버는 권력macht, power과 지배domination를 근본적으로 구별하였다. 베버는 권력이란 "한 행위자actor가 사회관계 내에서 타인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자신의 의지를 타인들에게 실행시킬 수 있는 개연성probability이다." 라고 말하였다. 권력을 가진자는 사람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사람들에게 강제할 수 있다. 베버는 실제로 이러하 권력관계는 시회적 상황에 따라서 매우 드물게 발생한다고 하였다. 전형적으로 사회적 상황을 규정하는 것은 지배herrschaft, domination관계이다. 베버에 따르면 지배는 행위자의 명령대로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개연성probability이다. 지배와 권력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지배는 권력과 정당성legitimacy을 합쳐 놓은 것 이외의 어떤것도 아니다. 권력을 거머쥔 자는 자신이 수행하는 일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 잘 알지모르겠지만 나는 처음 20분 동안 이 강의실에서 지배를 시도하였다. ''봐라, 알다시피 어렵게 느껴졌던 질문들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것들은 어렵지 않았고 재미있었다." 나는 그때 나 자신을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질문에 답하는 것은 상식적인 것이다. 당신은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단지 권력을 행사했다기 보다는 과정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9시 까지 강의실에 도착하지 못하면 당신은 F학점을 받게 될 것이고 당신은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학위를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당신들에게 합법성를 시도했던 것이 아니라 오늘 오후에 하게 될 일을 정당화하고자 시도하였던 것이다. 내가 이것을 합법성으로서 말했던 것은 당신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신들은 그렇게 하므로써 혜택을 받게된다. 나는 당신들이 수강해야하는 것을 7시와 9시 사이에 당신들 의식에 내부화하였다. 다행히 당신들은 그렇게 7시와 9시 사이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믿기 시작했다. 재미있게도 나는 가르치면서도 또한 배우고 있다. 나는 지식이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자기-개발self-development이다. 나는 권력을 지배로 바꾸었던 것이다. 이것이 정당성이다. 내가 7시에 당신들에게 하라고 했던 것은 칵테일 타임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었다. 7시에 컴퓨터 앞에 않아서 작문하는 것은 당신을 위해서 좋은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스스로 내부화하면서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만족스럽게 지배를 성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권력이라기보다는 지배이겠다. 지배란 권력에 덧붙여서 정당성이 합하여진 것이다.

5. 정당성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매우 난해한 질문이다. 당신들은 내가 갖고있는 고유한 견해에 대하여 증거를 들이대면서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베버는 모든 진정한 형태의 지배란 최소한의 자발적 순종minimum of voluntary compliance과 더불어 복종으로 인한 이익an interest in obedience을 내포한다고 말하였다. 만약 내가 이 강의를 포기하고 시험을 치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당신들은 이것과 관련하여 일종의 자발적인 순종과 더불어가장 중요한 복종에 따른 이익이 필요하겠다. 그러나 당신이 이 강의를 통해서 뭔가를 배우겠다고 생각했다면 나로서는 지배를 성취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지배라고 하겠다. 이제 매우 중요한 주장이 되겠는데 모든 특권화된 그룹, 즉 권력의 위치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우월성 신화를 개발하고 있다. 권력자들은 그러한 신화를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복종하는 것이 유용한 것이라고 믿게끔 만든다. 따라서 정당성의 핵심은 권력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권력의 정당성을 어느정도 믿게끔 하는데 있을 뿐만아니라 이것은 신화를 통해서 가능하다는데 있다. 이 정당성의 핵심적인 것은 니체에 매우 근접해있다. 니체가 들고 올라온 것은 신화학이다. 신화는 실제적 사실이 아니다. 당신은 단지 지배체제에 대하여 스스로 자신의 고유한 순종submission을 자신 안에 내부화하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순종을 우리 안에 내부화하여 왔다. 따라서 이러한 순종을 통한 내부화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정당성과는 매우 다르다고 보겠다. 현대의 정치적 정당성의 흐름에서 본다면 아프가니스탄의 새 대통령인 카자이Karzai는 합법적legitmate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카자이는 선거를 조작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자는 합법적인 지배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베버는 이것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베버에 따르면 지배자를 합법적으로 만드는 것은 보편적 참정권과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가 아니다. 베버는 지배자를 합법적이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주어진 명령에 훨씬 잘 복종하도록 정당화하기 위한 신화 개발에 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복종하는 것이 어느 정도 자기이익self interest을 위해 좋은 것이고 실제로 지배자가 원하는 데로 따르는 것이 나쁜것이 아니라는 데에는 어느정도의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을 위아여 신화가 필요한 것이다.

6, 지배의 유형

베버의 지배유형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이 지배유형이 바로 베버와 맑스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미 보았던 것처럼 맑스는 경제제도로부터 사회유형을 개발해냈다. 맑스에 따르면 경제는 역사를 견인한다 economy drives history. 반면에 베버는 홉스주의자이거나 또는 니체주의자이다. 베버는 역사를 견인하는 것은 권력 또는 권력을 위한 투쟁이라고 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권력의 본성은 권력이 어떻게 세워지는가에 있었다. 또 프로이트식으로 말하자면 권력이 어떻게 지배로 승화되는지에 달려있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사회의 작동방식과 동일하다. 따라서 역사의 진화는 생산양식의 진보에 따라서 기술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진화는 지배유형types of domination에 따라서 기술된다. 베버는 실제로 세가지 유형의 합법적 지배를 거론하였다. 역사를 통틀어서 지배자가 자신의 지배를 합법화한 데는 세가지 길이 있어왔다. 그 것은 법-합리적 지배, 간단히 말해서 자유주의적liberal 지배, 전통적 지배, 그리고 카리스마적지배이다.

+ 법-합리적 지배
베버에 따르면 법-합리적 지배는 제정된 규칙의 적법성the legality of enacted rules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여 세워진다. 실제로 명령을 발하는 자들은 스스로 그러한 규칙들에 묶여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법의 지배를 말하는 것이다. 베버는 이것을 법-합리적 지배라고 명명하였다. 이 법-합리적 지배는 관료적 방식bureaucratic manner에 따라서 관리되는 법의 지배를 말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인격적인 주인을 갖지 않는다. 사람들은 인격체에게 복종하지 않고 단지 게임의 룰rules of game에 복종한다. 이 게임의 룰은 미리 규정되어prescribed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행동하기 이전에 이미 게임의 룰을 알고있다. 규칙은 이미 세워졌고 사람들은 그 규칙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법-합리적 지배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법-합리적 지배는 민주적일 수 있거나 또는 권위주의적일 수 있다. 또 그것은 실제로 입현군주주의일 수도 있다. 입헌군주정에서는 이미 분리된 입법체가 여러 법률안을 통과시키는데 그 입법체는 민주적이거나 또는 민주적이지 않게 선출된다. 18세기와 19세기초 영국 입헌군주정에서 모든 사람은 누가 게임의 룰을 지배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당시 의회는 민주적으로 선출되어 구성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입헌군주정에서 법률은 존재했고 군주는 그 법률을 따랐다. 이것이 법-합리적 지배이다.

+ 전통적 지배
베버는 전통적 지배는 태고적 전통의 신성sanctity of immemorial traditions과 더불어 그 전통적 지배자의 정당성에 기초하여 세워진다고 하였다. 어떤 면에서 당신이 부친에게 복종하는 것은 전통적 지배에서 행동하는 것이다. 부친의 지배는 전통에 의하여 부친에게 주어진 것이다. 잘알다시피 부친은 합법적으로 "12시 전까지 집에 돌아오라."고 말할 권리를 가지고있다. 아들은 이 말을 듣고 그렇게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잘 알겠지만 보통 16세가 되면 이런 말에 반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들은 보통 부친이나 모친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또 부친은 아들에게 "너는 이러이러한 것을 했으므로 이번 주말에는 집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부친은 전통적 지배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다. 그 지배는 전통에 의하여 부친에게 주어진 것이다.

+ 카리스마적 지배
베버는 카리스마적 지배의 지도자는 명령을 발할 권리를 합법화하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베버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비범한 자질character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비범하면서 평범하지않다unusual.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은 예외적으로 특별하게 초자연적이거나 초인superhuman으로 비춰진다는 점이다. 베버가 강조한 카리스마적 지배는 실제로 지도자 개인의 특질characteristics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러한 특질을 그 개인에게 부여하여 그러한 비범한 특질을 갖추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최근의 미국역사를 돌아보자. 지난 대통령선거운동에서 바락 오바마Barack Obama는 매력적인 인간성과 함께 비범한 연설기술을 가지고서 자기주위에 일종의 카리스마적 후광aura를 창조해낼 수 있었다. 잘 알다시피 사람들은 오바마를 보면서 마치 록 스타를 보는 것처럼 흥분했다. 게다가 오바마는 자신을 합법화하고자 시도하면서 자신의 모든 주장과 관련하여 매우 카리스마적 용어들을 사용하였다. 예를들자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Hope you can believe in." 이 명제는 매우 전형적인 카리스마적 호소이다. "당신들은 나를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당신들에게 희망을 안겨다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카리스마적 지배가 창조하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전통적 지배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는 문제이지만 오바마 후보자가 정말로 카리스마적 지도자인지도 문제일 수 있다. 베버는 기본적으로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세계의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들과 동일시하여 정의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였다. 어떤 면에서 현대정치인들을 카리스마적 자도자로서 거론하는 것은 다소 오류slippery일 수 있겠다. 그러나 희망과 소명hope and call을 강조하면서 "나를 믿어라, 왜냐하면 나는 당신들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든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오바마가 "예,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라고 말했을때 그것은 정말로 카리스마적 호소였다. 그것은 그렇게 이성적인 발언은 아니었다. 바락 오바마가 튀어 나와서 "당신들은 어떤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 당신은 희망할 수 있다." 라고 했을때 이것은 매우 카리스마적인 호소였다. 이것이 카리스마적 지배에 관한 모든 것이다.






<참고문헌>

원문번역,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2012년 2월 19일 일요일

10-1.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1. 맑스, 니체, 포로이트, 베버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

맑스, 니체, 프로이트 그리고 베버는 서로 유사점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비판 이론가였다. 맑스, 니체, 프로이트, 베버는 모두 인간 마음 속에 있는 것들에 관하여 비판적으로 분석할 것을 제시하였다. 이를테면, 비판 이론가들은 말하기를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반드시 당신이 생각해왔던 것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은 자신의 의식을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아라." 라고 한다. 이들 모두 공통적으로 그렇게 주장했다. 실제로, 맑스는 각 시대의 지배 아이디어는 지배 계급의 아이디어라고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자기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재미있게도, 맑스는 말하기를 "당신의 계급을 말해보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갖고있는 그 아디디어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겠다." 라고 하였다. 또 니체는 말하기를 "당신의 도덕적 기준을 말해보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 도덕이 비도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라고 한다. 또, 프로이트는 말하기를 "여기 누워서 당신의 아이디어를 말해보라. 나는 당신이 경험했던 이전의 섹스 생활을 상기시켜줄 것이고 당신은 진정한 자기존재를 발견할 것이다." 라고 한다. 그러나 베버는 이들 보다는 좀 더 복잡하다. 베버의 포인트는 정당성(legitimacy)과 지배(domination)아이디어에 있었다. 나중에 맑시스트들은 베버의 이 정당성과 지배 아이디어를 공유하게 된다. 베버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니체로부터 나왔다. 베버에 따르면 개인은 자기의 순종원칙(the principle of submission)을 자기 자신 안에 내부화한다. 이것이 베버가 의도했던 지배 개념의 포인트이다. 지배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지배는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베버가 이해하고자 했던 핵심문제이다. 베버를 비롯한 맑스, 니체, 프로이트는 모두 포스트모던적인 분석가라고 할만 하다. 그들은 모두 비판 이론가들로서 인간의 의식을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았다. 분명, 맑스, 니체, 프로이트, 베버 사이에는 근본적인 유사점과 차이점이 존재한다. 맑스와 프로이트는 모두 감각적인 인간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인간 의식을 비판하면서 물질적인 실재(material reality)을 강조한 유물론자였다. 맑스는 감각적 인간 경험을 경제로 환원시켰던 환원주의자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맑스는 말하기를 "당신의 경제적 위치를 말해보라. 그러면 나는 당신의 경제적 관심이 무엇인지 알겠다. 당신은 경제적 관심에 따라서 행동하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아이디어를 알겠다." 라고 한다. 이것은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던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개인' 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맑스와 애덤 스미스도 서로 유사한 점이 있는 것이다. 단, 맑스는 인간 감각의 합리성을 비판적으로 제시했던 반면에 애덤 스미스는 그것을 긍정적(affirmatively)으로 제시하였을 뿐이다. 맑스는 인간 감각을 비판하면서 결국엔 인간의 감각적 경험을 경제로 환원(reductionism)하였다. 독특하게도, 맑스는 경제사회의 진화에 대한 역사적 인자(agent)를 제시하였다. 맑스는 선한 사회good society에 대한 아이디어도 갖고 있었다. 맑스는 우리를 선한 사회로 이끌고 갈 역사적 인자가 무엇인지 제시하였다. 아마도 미래세계에 대한 맑스의 비전vision을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맑스 이론의 강점중에 하나는 선한사회good society에 대한 비전이 있다는 점이다. 맑스는 선한사회에 어떻게 갈 수 있는지을 알고 있었다. 만약, 미래 사회에 대한 해답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맑스에게 물어도 좋겠다. 한편 프로이트는 미래사회에 대한 비전을 갖고있었는가. 프로이트는 미래사회에 대한 해답을 갖고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를테면, 프로이트는 당신을 소파에 눕힌다. 이어서 당신은 프로이트의 도움으로 고통의 원인인 억압된 욕망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은 마음 속의 절망, 걱정, 그리고 히스테리 등 모든 고통을 제거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자신 안에 억눌려 있는 질료들을 발견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프로이트는 단지 그것을 찾도록 당신을 도울 뿐이다. 그러면, 프로이트는 선한 시회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갖고있었는가. 프로이트는 다소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하였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현대도시사회는 억압으로부터 창조되었다. 따라서 도시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통제하고있다. 인간 무의식 이드Id 안의 추악하고 공격적인 많은 질료(stuff)들은 억압되지 않으면 안된다. 애매하게도, 프로이트는 도시를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도시의 어두운 면과 인간의 어두운 면을 동시에 보았던 것 같다. 그러면 프로이트는 니체와 공통되는 점이 있는가. 프로이트와 니체는 모두 인간의 감각적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면서 인간의 감각적 경험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아이디어의 근거라고 하였다. 따라서 니체는 인간 의식을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고자 했던 것이다. 니체는 베버처럼 권력과 지배를 이슈화하였다. 니체와 베버의 포인트는 경제나 섹스가 아니라 권력이었다. 재미있게도, 니체와 베버는 홉스로 되돌아간 것이었다. 니체와 베버에 따르면 인류의 모든 역사는 권력을 위한 투쟁이다. 니체는 이것을 매우 급진적으로 전개하였다. 실제로, 니체는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가장 숭고한 아이디어가 이상의 작업실(workshop of ideals)에서 강제와 고문을 통하여 더럽게 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니체가 말하는 강제 도구란 무엇인가. 맑스의 역사 박물관은 생산수단을 전시한다. 박물관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가옥구조는 어떠했는지, 어떤 도구를 제작했는지 보여준다. 이것이 현대의 박물관이다. 이 현대 박물관은 맑시스트에 의하여 설계된 것은 아니지만 맑스의 아이디어를 많이 참고한 것이다. 그럼, 니체의 박물관은 어떤가. 먼저, 당신은 단두대를 발견하고나서 고문도구를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이고 또 고문의 역사이다. 이 지점이 니체와 베버가 서로 만나는 포인트이다. 니체와 베버는 인류의 역사는 진화하지만 단점(down side)을 가지고있다고 하였다.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육체는 더이상 고문당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영혼(soul)은 포로로 붙잡혀있다. 이것은 분명 기쁜 이야기가 아니다. 이상, 맑스, 니체, 프로이트, 베버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2. 역사적 맥락에서 본 막스 베버Max Weber

막스 베버는1864년 태어나서 1920년 타계하였다. 막스 베버는 더 오래 살 수도 있었을텐데 폐결핵(pneumonia)으로 사망하였다. 운좋게도 베버는 나찌즘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친-나찌였다는 등의 불쾌햔 질문을 피할 수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아마도 베버는 나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베버는 합스부르크 제국(Hapsburg Empire)의 살쯔버그Salzburg의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자랐다. 살쯔버그Salzburg는 실제로 대주교가 지배하던 독립 캐돌릭 도시였다. 18세기 후반까지 대주교(archbishops)들은 반-개혁(counter-Reformation)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였다. 따라서 로만 캐돌릭이 아닌 자들은 그 도시에서 떠나는 게 더 나았다. 베버의 가족은 독일의 라인란트Rhineland로 이주하였고 빌레필트Bielefeld에 정착하였다. 거기서 베버 가족은 섬유제조업을 시작하였고 성공을 거두었다. 베버의 부친인 막스 시니어 베버는 두 아들 중 막내였다. 사업은 성공적으로 잘 운영이 되었지만 두 가족을 먹여살리기에는 부족하였다. 그래서 막스 시니어 베버는 무역을 배웠고 나중에는 공무원이 되었고 그 다음에는 정치인이 되었다.

 1864년 막스 베버는 당시 부친이 머물고 있던 독일 동부의 에어푸르트Erfurt에서 태어났다. 막스 베버의 모친은 팔렌슈타인Helene Fallenstein 이었다. 팔렌슈타인은 매우 멋지고 예민한 여성이었는데 막스 시니어 베버와의 사이에 8남매를 두었다. 막스 베버의 동생인 알프레드 베버는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이면서 사회학자가 되었다. 알프레드 베버는 당시 산업지역 이론theory of industrial location으로 유명했는데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교수였다. 1933년 알프레드 베버는 나찌에 의하여 해고되었지만 전쟁 후 1945년 대학에 복귀하였다. 사실 알프레드 베버는 막스 베버 보다 더 유명했다. 한편 막스 베버의 모친인 헬레나는 멋진 여성이었다. 헬레나 팔렌슈타인은 독실한 칼빈주의자였고 사회이슈와 박애주의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베버의 사회감각(social sensitivity)은 이런 모친의 영향을 받았다. 예민한 헬레나와 권위적인 막스 시니어 사이에는 대단한 갈등관계가 있었다. 막스 시니어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이었다. 그 부부 사이에는 대단한 다툼이 있었다. 베버는 어린시절 부친을 편들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오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해낸 자는 자신을 자신의 부친과 동일시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베버는 성장하여 결국엔 모친편이 되었다. 막스 시니어는 에어푸르트Erfrut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으로서 출발하였다. 그리고나서 국민자유당National Liberal Party의 하원의원(deputy)이 되었다. 그런데 그 정당은 자유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보수주의 정당이었다. 당시 국민자유당의 당수는 철의 재상이었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였다. 비스마르크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베버는 하이델베르크에서 수학하였고 그리고나서 베를린에서 법학과 농업사(agrarian history)를 수학하였다. 실제로 베버는 법학이론가, 역사학자 그리고 경제학자였고 마지막으로 사회학자였다.

1892년 베버는 마리안느Marianne Schnitger와 결혼했다. 사실, 마리안느는 베버의 재종조카(second-cousin)였다.

1895년 베버는 프라이베르크 대학의 경제학교수가 되었다. 그 후 베버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겨가서 나머지 생애를 보냈다. 베버는 정치학 교수이기도 하였다. 베버는 초기에 학문적으로 매우 열정적이었다. 베버는 법학과 역사학 박사학위 논문을 발간하였다. 법학박사학위는 중세 이탈리아의 상업법에 관한 것이었고 역사학 박사학위는 로마의 농업사에 관한 것이었다.

1897년 베버는 매우 심한 신경실조(nervous breakdown)에 빠졌다. 그해 여름에 있었던 그의 부친과의 불화 때문이었다. 당시 베버는 베를린에 있는 부모를 방문했었다. 그때 모친은 부친에게 베버가 정착하고 있던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하겠노라고 하였다. 그러자 부친은 모친에게 안된다고 하면서 당신이 가면 누가 식사를 준비하느냐고 따지면서 다그쳤다. 그 자리에 있던 베버는 부친을 향하여 반발하면서 모친이 원하면 자신을 방문할 수 있다고 대꾸하였다. 이것이 베버가 처음으로 부친에게 대항했던 반발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부친은 3개월도 채 안되어서 타계하고 말았다. 베버는 부친이 타계하자 심각한 신경실조를 겪었다. 부친이 어떤 일로 타계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확실히 이 사건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베버의 병은 매우 심각했는데 운좋게도 정말 멋지고 똑똑한 부인인 마리안느의 도움으로 신경실조로부터 회복할 수 있었다. 베버는 5년동안 가르칠 수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었다. 베버는 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그냥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마리안느는 그런 베버를 데리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1902년 베버는 결국 회복되었고 하이델베르크로 돌아가서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예전처럼 정규적으로 가르치지는 못하였다.

1904년 베버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국을 방문하였다. 베버는 그 당시 세인트 루이스 세계박람회에서 훌륭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1906년 베버는 엘자Elsa von Richthofen와 사랑에 빠졌다.사실, 엘자는 베버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정치사회학자 야페Jaffe의 부인이었다. 이것은 베버의 생애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엘자와의 관계는 베버가 죽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실제로 베버의 임종을 지켜봤던 이는 마리안느가 아니라 엘자였다. 엘자와 마리안느는 매우 절친한 친구였다. 그런데 베버는 마리안느보다는 엘자와의 관계를 통하여 진정한 에로틱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베버는 엘자와의 관계에서 에로티시즘을 재발견하면서 현대사회modernity와 생활에 대한 아이디어를 바꾸기 시작하였다.

1913년부터 1919년까지 베버는 종교에 대한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것은 대부분 자신의 저작에 햔 비평에 대하여 답하는 글이었다. 베버는 여러 종교들을 논박하면서 어떤 종교도 그리스도교 만큼 합리화(rationalization)의 과정을 거치지는 못했다고 강조하였다.

베버는 1914년부터 20년까지 경제와 사회에 관하여 작업하였는데 끝내지 못하고 1920년 타계하였다. 한편 베버의 연인인 엘자 폰 리히토펜은 저명한 독일가문 출신으로서 리히토펜 세자매는 모두 아름다웠다. 엘자는 야페Jaffe의 부인이 되었고 프리다Frieda 리히토펜은 로렌스D.H Lawrence와 열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끝내는 결혼하였다. 로렌스는 자신과 리히토펜과의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Sons and Lovers>를 발간하였다. 베버는 신경실조 이전의 초기의 작품들에서 주로 고대에 관한 것들을 논박하였다. 1903년에서 1904년까지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를 저술하였다. 1913년부터 1919년까지 세계종교, 중국, 인도, 유대교에 대한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나서 경제와 사회에 관한 작업을 하였는데 끝내지 못하였다. 마리안느는 실제로 베버의 재종조카였다. 말하자면 마리안느의 할아버지는 베버의 부친과 형제였다. 마리안느는 대단한 지성인이었다. 그녀는 1907년 <Wives and mothers in the evolution of law>를 발간하였는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에밀 뒤르켐은 이 책을 리뷰하였다. 그 당시 마리안느가 베버보다 더 유명했다. 베버는 1차 세계대전동안 다른 독일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매우 민족적이었다. 그러나 베버는 제 1차 세계대전의 끔직스러움을 경험하고나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엘자와의 관계로 인하여 스스로 자유주의로 기울어졌다. 그 당시 자유주의는 절망한 자유주의liberal in despair라고 불릴 정도로 현대성에 저항할 만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베버는 그 후 평생 자유주의자로 남아있었다. 베버는 항상 자본주의는 우리가 지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생존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현대사회modernity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어떤 대안alternative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버는 점차적으로 현대사회가 안고있는 단점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베버는 "나는 어떤 나은 것도 생각해낼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현대세계가 마법을 상실loss of magic한 것에 대하여 환멸감과 공포감을 느끼지 않는것도 아니다.'' 라고 말하였다. 베버는 민족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베버는 베르사이유 평화조약Versailles Peace Treaty의 대표단의 일원이었고 조약의 48조Article 48를 바이바르 헌법에 삽입하는데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불운하게도 그 바이마르 헌법은 히틀러가 1933년 권력을 거머쥐는데 발판이 되고말았다. 베버가 나찌즘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알아둘 필요는 있겠다. 베버는 나중에 경제와 사회에 관하여 집필하게 되는데 주로 지배이론theory of domination에 관한 것이었다. 베버는 기본적으로 정당한 권력을 지배개념과 연결하면서 맑스사관를 빌려왔다. 베버는 인간역사를 지배 유형subsequent types of domination으로 분류하면서 전개하였다. 따라서 베버의 사회역사는 맑스처럼 생산에 딸린 생산양식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에 딸린 상이한 지배유형을 기술하는 것이다.


3. <프롵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베버는 신경실조로부터 회복한 후에 자신의 첫 대작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Protestant Ethics and Spirit of Capitalism>을 발표하였다. 베버는 신경실조 이전에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지향자Pro-liberal였다. 베버는 1897년 이전까지는 주로 독일 동부지역의 저개발의 원인을 비롯하여 자본주의가 어떻게 저개발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관심을 가졌다. 베버는 애덤 스미스나 존 스튜어트 밀의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자유주의적이었다. 그 후 베버는 신경실조을 겪게 되자 니체처럼 되어갔다. 베버가 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작업할 당시 독일의 지배적인 지적 압력intellectual force은 맑시즘이었다. 독일의 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은 멋지게 민주적인 기초를 세우고 선거에서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베버의 계획은 근본적으로 맑시즘에 정면도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맑시즘에 대한 첫 도전의 발판이자 큰 걸음이었다. 그러면 막스 베버는 무엇과 관련하여 맑스와 다투었는지 살펴보자.

+ 역사적 유물론과 그 진화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에 따르면 역사는 오직 경제적 힘economic forces에 의해서만 설명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베버는 아이디어Idea도 역사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말하자면 베버가 말하는 아이디어와 문화적 특질들은 경제적 조건들로부터 연역deduce되는 것이 아니다.

+ 인간 동기화human motivation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인자와 관련하여 맑스는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었다. 맑스와 관련하여 인간 동기부여 인자는 생존과 경제적 이윤이었다. 그러나 베버는 우리 인간은 경제적 이윤에 동기부여가 될 뿐만아니라 전통tradition에 의해서도 동기부여가 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은 가치에 의해서 동기부여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베버는 인간동기에 관하여 맑스보다 더 복잡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생산양식
베버에 따르면 맑스가 말하는 역사는 후속하는 생산양식에 의하여 기술될 수 없다. 왜냐하면 권력의 본성nature of power은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는데 그 후속하는 역사형태는 인간동기의 상이한 유형에 따라서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역사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은 권력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복종케하고 그리고 사람들은 어떻게 그 종속의 원칙principles of subordination을 자신 안에 내부화 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래서 베버는 세가지 상이한 지배의 유형different types of authorities을 개발하였다. 이 세가지 유형이란 전통적 지배, 카리스마적 지배 그리고 자유주의적인 성격의 법-합리적 지배를 말한다. 이 법-합리적 지배는 자유주의를 표현하는 다소 어색한 용어이다.

+ 계급
베버는 계급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계급을 재산관계나 시장에 관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베버는 맑스는 계급은 역사 속에 항상 존재하여왔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오류라고 말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계급이란 오직 현대 시장경제에서 등장한 새로운 현상이다.


4.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사이의 상관관계

베버는 먼저 자본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윤리 사이에는 서로 상관하는 경헙적 증거empirical evidence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부자와 프로테스탄트교도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인과관계causality가 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이것은 다소 첫눈에 그럴듯prima facie해보이는 증거였다. 자본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윤리 사이의 인과관계는 아마도 이 책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있어서 가장 빈약한 부분이겠다. 베버는 자본주의는 과연 무엇이냐고 물었다. 베버는 루터의 소명calling의 개념을 살피면서 이 소명이 자본주의 정신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베버는 세계의 종교 근원을 살펴면서 이 세속적 심미주의this worldly asceticism, 특히 칼빈의 심미주의와 예정론predestinaion이 어떻게 종교개혁Reformation을 이끌었는지 살펴보았다. 이것들은 중요한 이슈들이었다. 그러나 종교의 계층화와 기원적 결연stratification and affiliation 그리고 사회의 계층화와 관련된 것들은 이 책의 빈약한 부분이겠다. 데이타를 한번 살펴보라. 프로테스탄트국가들은 자본주의적으로 캐돌릭 국가보다 앞서있다. 큰 부자들을 보라. 프로테스탄트교도 부자가 캐돌릭교도 부자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그렇게 설득적이지는 못하다고 보겠다. 베버는 자신의 이러한 주장에 다소 확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베버는 자본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윤리 사이의 인과관계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프로테스탄트교도는 캐돌릭교도에 비하여 더 많은 상속을 받는가. 아니면 프로테스탄트교도이기 때문에 캐돌릭교도보다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는가. 미국역사를 살펴본다면 확실히 첫눈에 그럴듯한prima pacie 증거가 존재한다. 19세기 미국을 생각해보라. 부자들은 먼저 백인-앵글로섹슨-프로테스탄트교도WASP였다. 그리고나서 가난한 이민자들이 미국에 들어왔다. 그들은 아일랜드인들과 이탈리아인들이었다. 그들의 종교는 무엇이었나. 로만 캐돌릭이었다. 그러므로 19세기의 미국을 본다면 그 첫눈에 그럴듯한prima facie 증거는 꽤 설득력이 있다고 보겠다.


5. 자본주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밝히고 있다. 베버는 먼저 인간의 탐욕greed이 윤리적 명령ethical imperative으로 변신하는 자본주의의 독특성과 다음으로 자본주의의 본성은 합리주의와 계산calculation이라는 점을 꼽았다.

+탐욕은 윤리적 정언명령으로 변신한다.
인간의 탐욕이 정언명령으로 변신한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점이겠다. 왜냐하면 이전의 맑스는 한 번도 왜 자본주의자들이 갑자기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맑스는 자본의 축적동기를 기원적으로 설명할 어떤 이론도 갖고있지 못하였다. 맑스는 단지 자본의 본원적 축적original accumulation of capital은 도둑질이라고 하면서도 한번 자본을 갖게되면 더 이상 도둑일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본원적 자본축적은 도둑질에 가깝다. 그러나 맑스는 왜 사람들이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베버는 재미있게도 대부분의 역사에서 우리같이 밤 낮 일하는 사람들은 적은 돈이나마 은행이나 주식시장 등에 넣는다. 인간역사를 통틀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들은 바보들이다. 왜 이 사람들은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지 못하느냐. 먹을 거리가 충분하므로 이제부터 즐겨야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밤낮 일한다. 그것은 어디서 오는가. 베버는 이것은 자본주의의 독특한 특질이라고 하였댜. 베버는 탐욕자가 부자가 되는것은 윤리적 명령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현대사회의 독특한 특질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베버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본질essence이다. 베버는 자본주의는 현대성의 합리화와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댜. 이제 우리는 자본주의가 칼빈주의와 예정론 그리고 루터의 소명개념과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자본주의 이전의 정신
실제로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사람들은 현재의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들도 밤낮을 일했지만 생존하기 위해서 일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충분한 양식과 주거를 마련하게 되자 더 이상 돈을 좇아 달려가지는 않았다. 따라서 자본주의 정신은 현대인에게 독특한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들 각자의 헌신devotion을 돈 버는데 이바지하도록 요구한다. 말하자면 이것은 우리들의 윤리적 명령이다. 그리고 예정론과 관련하여 부자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더 부자가 되어야겠다. 왜냐하면 부자가 되는 것은 선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들을 위하여 직업을 창출하고 있으므로 얼마나 선한 사람인가." 이것이 바로 당신이 부자가 되고싶어하는 이유이겠다.

+ 계산
이것은 베버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베버는 자본주의는 합리적인 경제적 계산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베버는 애담 스미스가 주장한 합리적 계산이론으로 부터 논의를 출발한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합리적이지 못했다. 베버는 우리가 서로에 대하여 노력과 댓가effort and return을 계산하기 시작한 것은 역사적으로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계산을 통하여 이중부기double bookkeeping를 발명했다. 이 이중부기는 우리가 돈과 정력을 들여서 고안해낸 것인데 이 이중부기가 댓가이자 이윤이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합리적인 경제적 계산이 자본주의 정신의 키포인트이겠다. 이 두가지을 명심하자.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기위해서는 당신은 먼저 선한 사람이어야 한다. 당신은 오직 이타적인 행위를 통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 다음, 당신은 합리적인 이중부기를 함으로써 진정한 자본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당신이 이중부기를 하지 않는다면 잘 알다시피 당신의 소득과 지출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진정한 자본주의자가 아닌 것이다. 당신은 발란스를 체크하면서 얼마를 쓰고 얼마를 벌어들이는지에 대하여 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 합리주의
역사에는 하나의 큰 흐름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점점 더 합리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베버에 따르면 오직 나이브한 역사적 유물론자들만이, 아이디어는 경제적 조건들에 대한 반성으로써 도출한다고 주장한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은 이미 자본주의 질서 이전에 존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베버는 역사적 유물론자들은 자본주의와 자본축적 이전 단계에서 합리주의와 합리적 계산 아이디어를 발명했어야 했다고 논박하였다.


6. 루터의 소명개념

루터의 소명calling은 매우 중요한 세속적 개념이다. 소명 개념은 중세 캐돌릭이론으로부터 탈출한 대변화였다.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베루프Beruf란 용어를 조어하였다. 베루프Beruf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베루프는 영어로 소명calling으로 번역된다. 베루프는 독일어로 간단히 직업occupation을 의미하지만 소명calling을 의미하기도 한다. Ruf는 독일어로 call이다. 그래서 Beruf란 신이 부르는 것God calls you이다. 당신은 부름을 받았다You got call 등으로 쓰일 수 있다. 소명이란 신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소명Beruf, calling의 의미이다. 그러면 신은 무엇 때문에 당신을 부르는가. 그것은 당신이 소명을 잘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중세의 심미주의에서 보면 생활의 핵심essence of life은 죽음이후lifeafer에 있었다. 이를테면 당신은 생뢀로부터 물러났을때 성인saint이 된다. 당신은 거의 먹지 않는다. 당신은 하루동안 단지 계란 하나를 먹고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인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중세로마캐돌릭의 성인성sainthood이다. 그러나 이제 이것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루터는 생활속에서 직업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때 바로 당신은 성인이 되는 것이지 생활에서 물러나서 죽음이후를 기다리는 것으로는 성인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루터는 당시 신학에 대단한 변혁을 일으켰던 것이다. 신이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이 세계에서 물러나서 소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의무를 이행하라는 것이었다. 베버는 루터를 평가하면서 루터 또한 전통적인 이론가라고 하였다. 사실 루터가 소명을 강조한 것은 당신이 사회적 지위 안에서 스스로 직업을 수행하라는 의미였다. 이 소명은 결코 변혁을 위한 이론이 아니었다. 이 소명은 현상유지status quo의 재생산을 위한 이론이었다. 실제로 루터는 당시 독일 농민혁명peasants revolutions을 확실하게 반대하였고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자들과 한패를 이루었다. 베버는 이러한 루터의 비역동적인non-dynamic 역사관 때문에 루터주의는 역사의 진정한 동력moving force가 될 수 없다고 보았고 따라서 루터주의는 너무 전통적인 것으로 밖에 남을 수가 없었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이 바로 루터주의에 이어서 칼빈주의가 등장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러면 왜 칼빈주의가 중요한가. 베버에 따르면 현대성에 있어서 큰 변화는 마법magic이 제거되었다는데 있었다. 마법이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신에 대하여 일종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신에게 우리를 위하여 뭔가를 하도록 강요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세상 일에는 일종의 처방전이 필요하였다. 비가 오지 않으면 마법사들이 꼼수tricks를 써서 비가 오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마법적 수단을 동원하였다. 이것이 마법이댜. 그러나 세계가 합리화rationalize되는 과정에서 마법은 제거될 필요가 있었다. 세계가 합리화되자 사람들은 비와 날씨에 대하여 이해하게 되었고 비를 내리게 하기위하여 할만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것으로 마법이 제거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칼빈주의 교회에서 보게되는 것이다. 칼빈주의 교회, 즉 장로교회는 어떤 성인의 초상화도 걸어놓지 않고 합리주의적 냉정함을 강조한다.


7. 세속적 심미주의의 종교적 기초로서의 예정론

가장 중요한 칼빈주의의 요소는 예정론theory of predestination이다. 예정론은 매우 재미있는 교리이다. 칼빈은 기본적으로 이 예정론을 가지고 급진적으로 마법개념을 제거하고자 시도하였다. 사실 당신이 구원을 받든지 버림을 받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신에 의해 결정되었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잘 알다시피 루터는 이것 때문에 중세 로만캐돌릭 교회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불운하게도 몇몇 타락한 로만캐돌릭 사제들이 있었다. 그 사제들은 돈을 받고 천국 시민권을 팔았던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구원salvation을 돈 주고 살 수 있었다. 잘알다시피 칼빈은 그러한 가르침에 반박하면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칼빈은 사제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타락한 개인의 행실practice이라고 하였다. 칼빈은 구원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면서 구원은 예정되어 있다고 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 칼빈의 예정론이 실제로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를 창출할 수 있었는가. 구원이 이미 결정되었다면 우리는 왜 열심히 일하는가. 이러한 결정론은 실제로 칼빈주의 성직자들의 설교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은 청교도 도시들이 진정한 예정론의 장소라고 설교하였다. 청교도들은 미국의 뉴헤븐New Haven을 건설하였다. 그들은 '당신이 천국에 가게 될지 지옥에 가게 될지 걱정스러운가' 라며 설교를 시작하곤 하였다. 물론 당신은 천국에 가게 될지 어떨지 알고 싶다. 칼빈주의 성직자들은 이것을 알아낼 수 있는 단 한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바로 '열심히 일하라. 그러면 당신의 일이 당신을 위해 보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징표이고 따라서 당신은 천국에 가게 될 것이다. 당신은 천국시민권을 사기위하여 일을 열심히 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스스로 바른 길 위에 있다는 신의 징표sign of God를 얻기 위하여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버는 이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불운한 프로테스틴트 윤리는 이미 이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라졌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청교도들은 일을 열심히 하도록 강권하였지만 이들은 지금 모두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실제로 창조된 것은 우리를 가두는 철장in iron cage만이 남아있다. 베버는 '현대사회는 철장을 창조하였고 사람들은 거기서 열심히 일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8. 심미주의와 자본주의 정신

베버는 베블런Veblen의 <유한게급론theory of leisure class>을 접했던 것 같다. 20세기 초 미국의 부자들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한생활을 위하여 일을 하였다. 그들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충고를 더 이상 따르지 않았다. 해가 뜰때 일찍 일어나서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어가라. 왜냐하면 양초를 태우지 않아도 되고 양초 태울 돈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청교도 정신이다. 이 정신은 바로 이 학교 예일대학을 창조한 정신이기도 하였다. 양초를 태우지 마라. 그렇지않으면 돈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돈을 아껴라. 이것이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구원받았다는 징표이다. 그러나 베버는 이러한 명제는 불운하게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하면서 실제로 사람들은 유별난 소비를 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베버는 아주 중요한 말을 했는데 이것은 맑스와 분명 구별되므로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다. 베버는 "나는 맑스가 제안햐는 역사에 대한 편파적one-sided인 유물론적 설명을 편파적인 관념론적 역사로 대체하는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자본주의가 칼빈주의에서 나왔다고 제안하지 않는다. 내가 제안 하는것은 중세에서 종교개혁Reformation까지의 신학 교리에 독립적인 변화independent change가 있어왔다는 것이다. 그 독립적 변화란 종교적 사고에 대한 합리화였다. 즉 그것은 마법의 상실loss of magic, 합리주의, 예정론이다. 이것들이 없었더라면 자본주의 제도는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법의 상실, 합리주의, 예정론 자체가 스스로 자본주의 제도를 초래한 것은 아니겠다. 그것은 경제제도에 진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쪽에서는 물질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다른 쪽에서는 이념계sphere of idea의 변화가 일어났다. 베버는 이 둘 사이에 선택적 친화elective affinity가 있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적절한 아이디어는 적절한 경제제도와 만나서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발생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주의는 적절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본주의와는 공존이 불가능하였다. 12세기의 중국에서는 모든사람이 자본주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중국의 유교Confucian아이디어와 도교Taoist아이디어는 자본주의를 도모할 수 있는 이념적 틀ideological framing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정체된 이유였다. 그리고 칼빈주의 경우에 아이디어의 합리화는 일어났지만 자본주의를 위한 경제적 조건이 없었가 때문에 자본주의가 불가능하였다. 이것이 선택적 친화 아이디어이다. 베버는 아이디어와 물질적 조건 사이의 단순한 인과관계를 거부하였고 이것을 상호작용 효과interactive effect로 대체하였다. 아이디어와 물질적조건material conditions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있다. 베버는 이것을 선택적 친화elective affinity라고 불렀다.






<참고문헌>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2012년 2월 16일 목요일

9. 프로이트: 섹스와 도시

1. 니체의 접근법

먼저, 프로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니체를 검토하자. 계보학적 방법론(genealogical method)이란 무엇이었나. 이 니체의 접근법은 새로운 것이었나. 니체의 계보학적 방법론에 따르면 사회의 이상(ideals)과 도덕율은 역사적 기원상, 그러한 통념과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들어, 선(good)을 한번 생각해보라. 니체는 일반적인 선good과 그 반대 개념인 비-선not-good은 상식적인 통념과는 다르게 건축되어왔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니체의 출발점은 선과 악에 대한 유대-그리스도인 도덕 비판이었다. 니체에 따르면 고대사회 선은 오늘날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이것이 바로 계보학적 방법론이 조명한 것이었다. 니체는 고대사회의 선good이 진정한 선이라고는 주장하지 않았다. 니체의 포인트는 단지 비교학적으로 선에 대한 통념은 시대에 따라서 변천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 물론 니체의 주요 촛점은 당시 현대사회의 도덕개념(notion of morality)이었다. 니체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도덕은 매우 독특하다. 그 도덕은 우리 마음 속에서 내부화하고 종속과 억압을 주입한다. 이 도덕적 가치는 우리 내면의 깊은 곳을 파고들어간다. 이것이 계보학적 방법론의 포인트이다. 이 계보학적 방법론은 비판적으로 우세한 관점(critical vantage point)과는 거리가 멀다. 비판적으로 우세한 관점이란 이를테면, 당신은 선과 도덕에 대한 보편적 개념으로부터 츨발하여 사회의 도덕 문제를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 재미있게도 니체는 이러한 비판적으로 우세한 관점을 이용하지 않았다. 니체는 계보적으로 모든 도덕 개념과 정의의 본질, 공정의 본질, 인간의 본질 등은 이상의 작업실(workshop of ideals)에서 제작되어왔다고 하였다. 이 이상의 작업실은 억압과 고문을 통하여 대단히 위대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제작하는 암실이다. 따라서 여기서 제작된 아디디어는 사회와 인간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통제하게 된다. 이것이 니체의 포인트이다. 그럼, 잠깐 맑스로 돌아가자. 재미있게도, 이러한 니체의 도덕론과 맑스의 소외론 사이에는 거의 다르다고 할만한 것이 없다. 니체는 말하기를 "맑스가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의 운명(fate)의 주인이 되지 못한채로 소외되었다고 말하는한, 나는 맑스와 동의한다"고 하였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은 현대세계에서 소외되었고 생life에 대한 권력을 갖고있지 못할뿐만 아니라 인간의 외부적 조건들은 마치 천둥번개와 같은 자연력처럼 우리의 생활을 일일이 결정한다. 이것이 니체의 현대진단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니체는 맑스와 달리, 현대사회에 대한 처방을 내리지 못하였다. 맑스는 인간해방과 선한 사회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니체는 맑스의 주장을 철없는 짓(churlish)이라고 폄훼하면서 자신은 또다른 이상을 제작하지 않겠노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상을 제작하는 작업실에는 억압과 육체적, 정신적 고문으로 인하여 나쁜 냄새가 진동하기 때문이다. 엣날에는 육체적 고문이 많이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그것보다 더 나쁜 정신적 고문이 사용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니체의 핵심 포인트이다. 니체의 이러한 통찰은 베버와 미쉘 푸코, 그리고 포스트모던니즘 이론을 예고하였다. 재미있게도, 니체는 비판 이론을 급진화(radicalized)하였다. 원래,헤겔에서부터 맑스에 이르는 비판 이론은 의식에 대한 비판이었다. 즉,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은 현실의 왜곡(distortion of reality)이므로 인간의식을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니체는 이러한 비판을 가장 급진적 방법으로 시도하였다. 니체는 옳은 의식(도덕)의 본질에 무지하더라도 의식의 단점들shortcomings(비-도덕)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이 니체의 포인트이다. 이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니체와 매우 유사하다. 프로이트 또한 비판 이론가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가 마음에 갖고있는 것은 한때 내면 깊이 억압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경증을 일으키지만 그 억압을 발견한면 분명 치료가 된다. 이것이 프로이트의 포인트이다. 기본적으로, 프로이트는 니체의 아이디어를 따라간다. 프로이트는 <도시와 불만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에서 니체가 다루었던 갈등을 다루었다. 프로이트는 현대 도시문화(civilization)를 억압이라고 보았지만 도시를 거부하지는 않았고 다만, 도시의 가치에 대하여 고민하였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니체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한편, 프로이트는 구강암 때문에 마지막 20년 동안 고통을 당했는데 결국에는 자살하여 생를 마쳤다. 그의 구강암은 분명 담배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프로이트는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자인언트 사상가 중의 한 명이다. 보통 일컬어지는 19세기의 자인언트 사상가는 찰스 다윈, 칼 맑스,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이다.


2. 역사적 맥락에서 본 프로이트

1856년 프로이트는 지금의 체코 공화국의 남부인 모라비아의 작은도시인 프라이버그Freiberg에서 태어났다. 프로이트의 부친은 유대인 울(wool) 상인이었다. 그는 이미 20살 연하의 세변째 부인과 혼인 중에 있었는데 성격이 꽤 지배적이었다. 반면에 새 부인은 매우 섬세한 여인이었다. 프로이트는 나이 많고 권위적인 부친과의 트러블 속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모친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났다. 나중에 프로이트는 이러한 성장 조건 위에서 인간에 대하여 사유하게 되었다. 프로이트 가문은 프로이트가 태어난 직후에 프라이버그Freiberg를 떠나서 라이프찌히로 이사하였고, 그리고나서 비엔나로 이사하였다. 프로이트는 비엔나에서 교육받았다.

1873년 프로이트는 비엔나 대학교에 입학하여 잠시 법학을 공부하였는데 지루함을 느낀 나머지 의과대학(medical school)으로 전학하였다.

1881년 프로이트는 의학학위를 받고 비엔나 대학교의 병원인 제네럴 병원General Hospital에서 근무하였다.

1885년 프로이트는 파리에 공부하러 갔는데, 매우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는 거기서 신경학(neurology)에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이트는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들이 히스테리hysteria환자를 다루기위하여 이용하고있던 최면(hypnosis) 요법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그후 프로이트는 비엔나로 돌아와서 신경학자가 되었고 최면요법을 쓰면서 히스테리환자를 다루게되었다.

1886년 프로이트는 함부르크 랍비장(chief rabbi)의 손녀인 마르타Martha Bernays와 결혼하였다. 프로이트는 골수 유대인가문 출신이었으나 신앙심은 매우 약하였다.


3. 정신분석(psychoanalysis)과 그외 성공들

프로이트는 정신요법(psychotherapy)을 실습하기 시작하면서 비엔나의 버그슈트라서Bergstrasse 19번지에 사무실을 차렸다.

1886년 프로이트는 심리학자인 브로아어Joseph Breuer와 합동하여 실습하였다. 당시 브로이어는 최면요법을 쓰지않고 대화치료(the talking cure)를 하고있었다. 대화치료란 쉽게말해서, 당신이 보통 하는 것이다. 당신은 마음의 문제가 생기면 친구를 불러서 "나는 뭔가를 말해야겠다."고 한다. 당신은 큰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 누군가가 당신의 얘기를 들어주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브로이어가 했던 것이다. 브로이어는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말걸도록 요청하였다. 이 대화요법은 당신도 경험했을지 모르겠으나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좋은 친구는 기꺼이 당신의 묻어둔 얘기를 듣고자하고 좋은 충고도 해준다. 브로이어가 발견했던 것은 상대방의 말을 그냥 듣고, 끄덕이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말하도록 하고, 좋은 질문을 하면서도 충고는 하지않는다.

1895년 프로이트와 브로이어는 <히스테리 연구Studies in Hysteria>를 공동집필하였다. 그들은 그 책 <히스테리 연구>에서 실제로 새 요법을 제안하였다. 이를테면, 당신은 상대방을 그냥 자게 내버려두지말고 말하도록하고 자유연상하게한 다음 한 단어를 제시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 단어를 가지고 이 세계와 연결하여 자유롭게 연상할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상대방의 무의식을 들추어낼 준비를 하는 것이다. 각 개인은 무의식 단계를 갖고있는데 자유연상을 이용하여 무의식을 들춰낼 수 있다. 실제로 프로이트는 환자들을 상대로 자유연상을 실습하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잠재의식에 있는 많은 것들은 실제로 섹스(sexuality)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잠재의식에 억압된 것들은 성취되지 못하고 불만족스러운 성적 욕망이라고 하였다. 프로이트는 자유연상을 이용하여 무의식 속을 파고들면서 성적인 많은 질료(sexual stuff)를 발견하였다.

1896년 프로이트는 현대사회 사상의 역사상 매우 중요한 이 해에 자신의 작업을 정신분석(Psychoanalysis)이라고 명명하였다. 정신분석의 핵심은 의사가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당신은 정신분석을 이용하여 잠재의식에 있는 문제를 의식으로 끌어올리고 현실에서 그 문제를 다루게 된다. 결국 당신은 자신이무엇 때문에 고통을 당하였는지 발견하게 된다.

1899년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Interpretation of Dream>을 출간하였다. <꿈의 해석>의 많은 분량은 프로이트 자신의 꿈을 분석한 내용이었지만 환자들의 꿈에 대한 분석도 있었다. 프로이트는 부친이 막 타계하자 부친에 대한 대단한 죄의식을 가졌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는 오랜동안 부친에 대하여 증오심을 품어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증오/사랑 관계였지만 나중엔 증오에 대단히 많이 동기화 되었다. 프로이트는 부친과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하여 자신에 대한 정신분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프로이트는 부친과 모친에 관련한 자신의 문제들를 포착하기 시작하였다. <꿈의 해석>은 정신분석을 향한 매우 중요한 발판이었다. 이 책 <꿈의 해석>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꿈은 우연한(accidental)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이란 무의식에 들어앉은 몇몇 질료(stuff)들이 의식으로 올라가려는 입구의 작은 창(this little window of opportunity)이 열리는 시간이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사람들에게 꿈을 기억하도록 당부하였다. 왜냐하면 꿈으로부터 부상하는 물질들은 잠재의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1905년 프로이트는 또다른 성공을 거두었다. 프로이트는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The pathology of everyday life>출간하였다. 프로이트는 <일상생활의 병리학>에서 '프로이트의 미끄러지기Freudian slippage' 를 언급하였다. 프로이트의 미끄러지기란이를테면, 우연히 자신의 혀를 잘못 굴려서 의도하지 않았던 다른 말이 나왔을 때 이것은 실제로 당신의 잠재의식이 의식으로 밀고 올라오는 것으로서 억압된 질료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따라서 우연한 실수는 실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실수의 저편에서는 잠재의식이 올라오는 것이다. 또 프로이트는 이 해에 정신분석 이후 가장 중요한 작품인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Three essay on the theory of sexuality>를 발표하였다. 이때부터 프로이트는 범-섹스주의(pan-sexualist)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프로이트의 섹스이론에 따르면 모든 문제들은 억압된 성적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 남자아이는 어린시절 모친을 사랑하게되면서 부친을 시기하고, 여자아이는 그 반대로 부친을 사랑하게되면서 모친을 시기하게된다. 이것은 오늘날 정신분석학자들이 그 진실성에 시비를 걸고있는 오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푸스 왕은 우연히 자신의 모친과 결혼하게되고 나중에 오디푸스가 그 사실을 알게되자 대비극을 맞게된다. 알다시피, 이것은 근친상간으로서 모든 문명에서 금지되어왔다. 즉, 오디푸스 컴플렉스란 우리는 반대 성(sex)을 가진 부모를 향하여 사랑에 빠지게되고, 같은 성sex을 가진 부모를 향하여 시기질투하게된다는 가설이다. 또 오디푸스 콤플렉스는 모친(부친)과 성적 사랑을 하기위하여 부친(모친)을 살해하려는 욕망을 의미한다. 프로이트는 나중의 작품들에서 메타-심리학(meta-psychology)를 향하여 나아갔다. 즉, 단지 개인의 정신보다는 사회의 기능에 대하여 해명하고자 하였다.

1913년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Totem and Taboo>를 발간하면서부터 개인의 정신보다는 사회적 기능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토템과 터부>에 따르면 원시사회의 기원인 친족 네트워크는 부족사회로 전환하였다. 최초에 형제들은 부친을 살해함으써 복합사회의 기원이 시작되었다. 부친은 친족관계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면서 근친상간을 하였다. 당시 근친상간에 대한 터부가 없었기때문이다. 그래서 부친은  딸들과도 섹스를 할 수 있었다. 이제 형제들은부친을 살해하고 최초의 도시civilization를 창조하게되자 자신들의 욕망을 억압하면서 권력을 공유하였다. 이것이 <토템과 터부Totem and Taboo>의 내용이다.

1920년 프로이트는 <쾌락원리의 저편Beyond the Pleasure Principle>를 발표하였다.

1923년 프로이트는 <에고와 이드Ego and id>를 출간하였다.

1930년 프로이트는 자시의 모든 작품들을 종결하는 <도시와 불만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를 발표하였다. <도시와 불만>은 곧 절판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중요한 사회 이론으로서 자리잡았다.

1938년 프로이트는 비엔나를 떠나야 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부친에게 그랬듯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모에게 그런 것처럼, 비엔나에 증오와 사랑이 교차하였다. 나찌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자 게슈타포는 실제로 프로이트의 딸, 안나Anna를 인터뷰했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유대인이므로 독일의 제 3제국(The Third Reich)을 떠나야한다는 암시를 받았다. 프로이트는 런던으로 떠났고, 1년 후에 자살하였다. 그것은 보조 자살(assisted suicide)였다. 프로이트의 주치의는 그가 오랜동안 다투어왔던 고통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생전에 프로이트의 아이디어는 과격했으므로 매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2년에 프로이트는 매우 능력있는 젊은이들인, 페렌찌Sandor Ferenczi와 칼 융 그리고 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존스Ernest Jones 등과 모임을 만들었다. 그들은 매주 수요일 베르그슈트라서Bergstrasse 19번지에서 모였다. 이것이 수요 심리학회Wednesday psychological Circle이다. 1908년 이 모임은 비엔나 심리학회Vienna psychological Society로 바꾸었다. 재미있게도, 프로이트는 서로 잘지내기 매우 힘든 인간형이었다. 프로이트는 기본적으로 모든 동료와 싸웠다. 먼저, 1911년, 그의 초기 동료였던 아들러Adler와 결별했다. 그리고나서 20세기 초 2, 30년을 주름잡았던 심리학자인 융과 결별하였다. 그 후 페렌찌Ferenczi와도 결별하였다. 프로이트는 여기저기서 원수를 만들어 내었다.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1895-1982)는 오랫동안 살면서 정신분석을 전파하였다.


4. 자아(Ego)와 이드(Id)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 섹스에는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과 의식이 지리잡고 있다. 프로이트는 이제 그것들을 다루게될 개념적 장치가 필요하였다. 먼저, 프로이트는 우리의 지각 시스템은 세 가지 속성을 가지고있다고 하였다. 첫째, 자아(Ego) 둘째, 무의식적 이드(Id) 셋째, 초자아(Superego)이다. 우리는 이 세가지 전부를 다루게 될 것이다. 자아와 무의식적 이드와 초자아사이의 상호작용은 매우 재미있다. <도시와 불만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은 이것들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프로이트는 인생을 안내하는 두 계급two class, 즉 의식과 무의식의 본능에 대하여풀이하면서 최초로 의식과 무의식을 나누었다. 재미있게도, 무의식 아이디어는 억압이론(theory of repression)에서 추론되어 나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기억 못하는 몇몇 경험들 때문에 무의식을 갖게된다. 예를들어, 역사상 금기시되어온 모친을 향한 섹스 욕망은 우리의 잠재의식에 밀려들어갔다. 또 망각하고싶은 생활의 불쾌한 경험들도 잠재의식에 들어갔다. 이것이 바로 억압이다. 보통, 우리는 바람직하지않은 경험들을 억압한다. 무의식은 잠재적이면서도 동시에 의식으로 올라오려는 속성이 있댜. 정신분석가는 개인의 억압되어있는 무의식을 의식화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프로이트는 모든 억압된 것은 무의식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정말 사실이다. 이를테면, 당신은 나쁜 기억을 잊고자 노력하고 또 무의식화하고자 한다. 재미있게도,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든 무의식이 반드시 다 억압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즉, 의식화되기를 준비하는 억압된 질료와는 관계없는 질료(stuff)가 존재한다. 나중에 프로이트는 그 무의식의 질료들은 역동적이 아닌 단지 기술적으로(descriptively) 억압되어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분명, 프로이트는 그 무의식에 들어있는 질료들은 단지 기술적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전-의식(pre-consciousness) 이라고 불렀다. 전-의식은 이전에 결코 의식에 존재하지 않았었다. 전-의식은 당신의 깊은 내면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역동적인 억압에 한정하여 사용하였다. 이제 두가지 무의식, 즉 억압된 무의식과 전-의식은 모두 함께 이드Id를 구성하게 된다. 그럼, 의식과 전의식 그리고 무의식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갖고있나. 프로이트에 따르면 자아ego란 각 개인이 갖고있는 정신과정의 질서 조직(coherent organization of mental process)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자아이다. 인간의 의식은 이 자아에 부착된다. 우리 안에 있는 의식이라는 것은 바로 자아이다. 자아는 또한 개인의 사유(thinking)를 감독하고 구성하는 정신 인자(mental agent)로서 자아는 잠들지만 동시에 꿈조차도 통제한다. 이것이 자아의 정체이다. 또 자아는 억압 인자이다. 따라서 자아는 자기자아를 의식화하고자하는 질료(stuff)를 억압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놓여있는 억압된 것들을 자아로 가져오는 것이 정신요법의 목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무의식에는 억압되지 않은 질료들도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매우 중요한 충동(drive)인 이드(Id)이다. 이드란 당신 내면에 깊이 박힌 욕망으로서 언제라도 의식화할 준비가 된 충동이다. 사실, 이 무의식적 이드는 억압되어 본 적이 없다. 이드는 각 개인에게 고유한 것으로서 본성적인 것이다. 예를들어, 성적 충동은 이드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자아는 전-의식 시스템으로부터 출발하여 전-의식에 따라서 작동하는 실체(entity)이다. 이 자아는 스스로 확장하여 무의식적 마음으로도 활동한다. 이것이 이드Id이다. 이드는 무의식적이지만 억압된 질료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드는 억압된 것과 전의식의 조합일 수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자아는 이드로부터 매우 날카롭게 분리되었고, 자아 아래에 놓여있는 것은 이드이다. 이것이 프로이트의 포인트이다. 재미있게도, 프로이트는 자아를 말 등에 탄 사람으로 비유하였다. 즉, 말 등에 탄 자는 말이 가고자하는 곳으로 말을 안내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드는 이 말이다. 따라서 자아ego는 말 위에 있고 말은 이드Id이다. 말horse은 때때로 당신을 따르고 싶어하지 않고 제멋대로 가고자 한다. 당신은 말을 통제해보려고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제시한 매우 중요한 아이디어이다.

+ 초자아(superego)
프로이트에 따르면 자아는 단지 이드의 일부분이 아니다. 자아는 등급을 갖고있다. 그것이 초자아 또는 자아-이상(ego-ideal)이다. 자아의 그 부분은 확실히 의식과 연결되어있다. 초자아는 이전에 이드가 대상 선택으로서 남겨둔 잔여물이지만 초자아는 이드의 선택에 역동적으로 반발하는 형식이다. 이를테면, 초자아는 당신에게 존재(what you are)가 아니라 당위(what you should be)를 호소한다. 반면에, 자아는 당신에게 현실을 속삭인다. 당신의 자아는 현실(reality)의 세계의 현실적 조건들을 따진다. 그러나 초자아superego는 실제로 당신이 마땅히 되어야 할 것(what you should be)을 말해주는 의식의 부분이다. 이미 보았다시피,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 이론>에서 당신 안에 존재하는 내부자가 당신을 감시하면서 옳은지, 그른지 판단한다고 하였다. 초자아 아이디어는  애덤 스미스의 내부자 아이디어와 매우 유사하다. 종종, 사람들은 정신분석이 인간생활의 더 높은 가치들을 무시하면서 섹스같은 것이나 들먹인다면서 비판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그것은 잘못된 행태라고 말하면서, 우리 인간은 초자아의 존재를 매우 잘 알고있다고 말하였다. 자아와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는 복합적인 상호작용이 있다. 자아는 본질적으로 억압적이고 당신의 외부적 현실세계을 표상한다. 반면에, 초자아는 비록 이룰 수는 없을지라도 당신이 바라는 고유의 내부세계를 표상한다. 당신의 자아는 더러운 당신의 충동이 이루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실제로 정신생활의 가장 낮은 부분에 속한 것은 이 억눌린 질료(stuff) 이다. 이 억눌린 질료는 인간 마음의 가장 높은 부분인 초자아로 전이할 수 있다. 한편 프로이트는 본능에는 두 계급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프로이트의 초기 작품에는 리비도(libido)본능이 나온다. . 리비도란 섹스욕망과 생존욕망 그리고 자기-보존(self-preservation)욕망을 말한다. 그리고 또 다른 본능이 존재한다. 프로이트가 생애의 후반기에 발견했던 본능은 타나토스(Thanatos)이다. 타나토스는 죽음 본능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능에는 에로스욕망이 있고 타나토스욕망이 있는 것이다. 그 하나는 우리를 생존케하고 다른 하나는 파괴적이고 죽음을 가져온다. 따라서 인간 생활과 인간 역사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사이의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타나토스의 좋은 예로서 가학주의(sadism)을 들었다.


5. <도시와 불만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

이 책 <도시와 불만>의 주요주제는 자아발전, 종교, 생활의 목적, 도시에서 억압되는 섹스생활이다.

+ 자아개발
프로이트는 자아는 결국 개인 안에서 진화한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자아는 개인에게 그냥 주어진 것아 아니기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뚜렷하게 차별화될 수 있다. 예를들어, 나는 말하기를 ''이 사람은 매우 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자아는 차별화되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자아를 강하게 표출하지만 정작, 당신의 이드는 내면에 숨어있다. 고프만Erving Goffman은 '이드는 백 스테이지(back stage)에 있다.' 는 표현을 쓴다. 이를테면, 당신은 자신의 이드를 보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자아를 표출하고자 한다. 자아는 인간 발전과정에 따라서 점진적으로 진화한다. 당신의 자아는 어린시절부터 점차적으로 발전해가면서 형성되었다. 재미있게도,한가지 중요한 것은 당신은 쾌락 원칙으로부터 떠나서 점차 현실 원칙(reality principle)에 따라서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 인간 생활의 목적
인간 생활에는 목적이 있는가. 프로이트는 오직 종교만이 인간생활의 목적에 해담을 줄 수 있다고 말하였다. 프로이트가 생각한 인간생활에 대한 목적은 공리주의 아이디어와 매우 가깝다.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과 관련하여,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고자 매우 노력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실, 운나쁘게도 행복해지기 보다는 불행해지는 것이 훨씬 더 쉽다. 우리는 일생동안 여러 어려운 문제들과 직면하기 때문에 사실, 행복보다는 불행이 훨씬 더 우리의 운명(fate)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따라서 우리의 쾌락 원칙은 현실 원칙으로 전환해간다. 우리는 때때로 말하기를 "이것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런 현실로부터 탈출하고자 한다. 우리는 자신의 불행을 통어하기 위하여 현실 원칙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고통속에서 생존하기위하여 현실감각(sense of reality)을 갖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자아 길들이기, 본능의 승화
자아는 어떻게 길들여지는가. 이제, 프로이트는 니체와 매우 근접해졌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 본능의 승화(sublimation of instincts)는 도시의 형성과 직결되어있다. 재미있게도, 행복감이란 길들여지지 않은 자아(untamed ego)가 난폭한 지적 충동(wild intellectual impulses)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블론드 짐승(blonde beast)은 진정한 쾌락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그러나 블론드 짐승은 길들여져야 한다. 이 니체의 아이디어는 프로이트의 아이디어와 매우 유사하다. 당신은 자아을 길들이고자 하지만 끝내는 실패하게 될때 당신은 마니아(maniac)가 되거나 또는 중독이 된다. 이를테면, 당신은 현실을 마주할 수 없어서 술을 마시게된다. 당신은 술집에 가서 더블스카치를 주문한다. 그리고 편안히 휴식을 취한다. 중독(intoxication)이란 현실을 외면하는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부러 술에 취한다. 그것은 나쁜 아이디어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것은 사태를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당신은 몇분간 행복을 느끼지만 불행은 더 악화될 것이다. 자아를 길들이는 방법은 본능을 억제하고, 되도록 멋지게 본능을 승화하는 것이다. 이제, 당신은 억압된 욕망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환상계(sphere of fantasies)로 이동하여 억압된 상상을 그려내게 된다. 당신은 이 환상기계론을 통하여 예술과 과학을 창조하게 된다. 사실, 가장 숭고한 인간 활동은 승화된 불만족한 욕망(sublimated unsatisfied desires)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그 욕망이 기원지는 자아이고 또 이드이다. 자아는 현실과 대면하고나서 그 욕망을 억누르고 그리고 그 욕망을 높은 단계로 승화시킨다.

+ 괴테의 과학, 예술, 종교
프로이트는 괴테의 발간되지 않은 한 시로부터 따오면서 인용하기를 "과학과 예술을 가진자들은 또한 종교를 가진자들이다. 과학도 예술도 갖고있지 않은 자들은 종교를 가져야 한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매우 재미있는 아이디어이다. 과학과 예술은 종교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신이 실제로 과학자나 예술가라면 자신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종교적일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당신이 과학자도 예술가도 아니라면, 생활을 의미있게 하기위해서라도 종교가 필요하다. 이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어쨌든 이 괴테의 시는 발간되지 않았다.

+ 집단 망상으로서의 종교
프로이트는 너무 멀리 나갔다. 프로이트는 반종교적이었고 종교를 집단 망상(mass delusion)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종교는 인상(impression)을 창출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종교인은 실제로 인상을 가지고 실재reality를 주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교인은 생활의 목적이 생겼고 아마도 이 땅에서가 아니라 저 너머에서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프로이트는 이것을 집단 망상이라고 불렀다. 이를테면, 당신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 당신은 자신의 현실 원칙을 충분히 개발하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유치하다(infantile)고 하였다. 이를테면, 당신은 아버지 신으로써 신의 형상를 창조한다. 재미있게도, 이것은 어린 유아들이 위험에 대처할 때 바로 그 반작용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어린 유아들은 현실에서 아버지로부터 보호를 받기위하여 아버지의 형상을 창조한다. 이것이 바로 종교가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프로이트의 포인트이다. 당신은 이 때 신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 불행과 고통의 근원: 도시에서의 불만족
가장 먼저, 자연은 불행의 근원이다. 특히, 우리 자신의 육체가 그렇다. 프로이트는 병들고 늙게되자 자신의 육체에서 얼마나 많은 불행이 나오는가를 보면서 고마워하였다. 당신도 50년만 더 기다려 보라. 실제로, 가장 큰 불행은 인간관계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맑스와 니체의 아이디어와 비슷하다. 기억하겠지만, 청년 맑스는 인간은 동료로부터 소외될 때 최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니체는 모든 문제는 인간 관계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그럼, 인긴 관계의 문제는 어떻게 풀 수 있는가. 우리는 인간 관계의 큰 문제들 때문에 도시 문화(civilization)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니체도 도시문화를 비난하였다. 재미있게도, 프로이트는 현대 사회에 살고있는 사람들보다 이전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또 루소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숭고한 야만인(noble savage)이었다. 프로이트는 루소의 주장은 비합리적이 아니라고 하였다.

+ 도시개발
도시는 어떻게 개발되는가. 프로이트에 따르면, 개인은 점점 더 외부세계를 통제하면서 또 공동체와 인구의 확장으로 인하여 점차 타인들을 통제하려들게된다. 도시라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과 자연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다. 프로이트는 모든 문화와 도시는 억압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이면서도 니체의 도덕 비판과 매우 유사하다.

+ 도시는 섹스생활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도시는 섹스생활을 억제한다. 도시의 목적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사회에 데려다 놓는 것이다. 또 도시는 역사상 금기시된 섹스를 막는다. 프로이트는 섹스생활의 억제는 서유럽 문명에서 그 정점에 다다랐다고 하였다. 이것은 니체의 아이디어와 유사하다. 섹스 대상의 선택은 반대 성(sex)에 한하고 혼외정사는 변태(perversion)로서 금지된다. 심지어 이성간의 섹스도 억제될 때가 있다. 서양 문명에서는 오직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고독한 섹스 관계만이 용인되었지만 다른 문명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서양 문명은 가장 억압적인 섹스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섹스의 억압보다 더 심한 것은 다른 모든 종류의 충동들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웃과 심지어 자신의 원수까지도 사랑하게되었다. 이것은 프로이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소의 공격성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이기Homo homini lupus 때문이다. 이것은 홉스적인 인간 본성 이론이다. 사실, 우리들은 실제로 마음 깊은 곳에서 그렇다.

+ 맑스에 대한 비판
알다시피, 실제로 맑스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위한 손쉬운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사소유권이 제거되고나면 호모 호미니 루푸스Homo homini lupus가 해결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맑스의 주장을 나이브하다고 일갈하였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것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프로이트는 도시의 억압적인 본성을 보여주고자 하였지만, 모순되게도 나찌를 반-도시(anti-civilization)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프로이트는 스스로 초자아가 불필요하다고 제안하지 않았다. 물론, 초자아는 필요하지만 초자아가 잔인해(tyrannical)질까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나이브하지 않은 중도(middle way)를 찾아야한다. 그 중도란 이드는 나쁜 충동들을 의식화하므로 초자아는 이드를 통어하지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자아는 너무 멀리 그리고 너무 많이 나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것이 맑스와 니체사이의 좁은 길을 가는 중도이겠다.







<참고문헌>

원문,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